주위의 많은 이들이 이 삭막한 도시를 떠나
시골로 가서 살 거라고들 하지만
저는 도시를 떠나서 사는 삶은
한 번도 생각해 본 일이 없습니다.
나를 쓸쓸하게 했던 사람들이 여전히 숨 쉬며
어디에선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곳.
도시가 좋아요. 나를 쓸쓸하게 하는 이 도시가.
--- p.148
단 한마디만 솔직하게 내 생각을 말해도 그 즉시 관계가 끝장나버릴 그런 사람이 있어요. 자꾸 나보고 자기랑 비슷하다는데 내 보기에 우린 조금도 비슷하지 않거든요. 무엇보다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난 너 같은 애 잘 알아, 라는 말을 그렇게 쉽게 하지 않아요. 누가 누굴 안다는 말이 얼마나 무례가 될 수 있는지, 그런 말은 얼마나 깊고 신중한 생각 끝에 해도 해야 하는지 아는 나와 모르는 그가 같은 부류가 될 수는 없다고 나는 생각해요. 하지만 간혹 얼굴 한번 보고 가끔 안부나 주고받는 사이에 굳이 정색하며 아니, 우리는 전혀 다른 사람들이에요 당신은 나를 모릅니다, 라고 하는 것도 오버인 것 같아 나는 그냥 당신을, 이 관계를 내버려 둘 뿐이죠. 이런 식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이 도리어 솔직하지 못하고 그래서 어쩌면 당신보다 내가 더 상대를 기만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이런 게 나의 방식이라 어쩔 수 없네요. 그래서 사람들은 이런 관계를 친구가 아닌 지인이라 부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p.205
기억나니.
사람들하고 대화할 때, 함께 있는 사람들에게 골고루 시선을 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내게 알려준 것도 너였지.
너는 그렇게 사려 깊은 사람이었는데
그런 너가 세상으로부터 받은 배려는
너무도 적었구나.
--- p.278
나는 꿈이나 목표, 하고 싶은 일 같은 것 없이도 지난 사십년간 충분히 잘 살아왔다. 그리고 그런 건 찾고 싶다고 찾아지는 것도 아니요, 찾아진다 해도 언젠간 시들해질 수 있으며, 또다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상태로 언제든 돌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여전히 누구나 하고 싶은 일이 있다거나, 누구나 잘하는 일이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내가 원하는 대로 살고 싶을 뿐. 그때는 그때대로, 지금은 지금대로.
--- p.3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