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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을 보다

: 불안을 다스리고 진정한 나를 만나는 침묵의 순간들

리뷰 총점9.8 리뷰 13건 | 판매지수 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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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철학 top100 3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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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22년 04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504쪽 | 620g | 140*210*35mm
ISBN13 9791163860921
ISBN10 1163860921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침묵’, 단순한 공백 상태가 아닌 그 이상의 근원적인 언어

“침묵을 듣는다는 것은 죽음 앞의 무력함을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을,
불안한 마음속의 고요를 찾는 것이다”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침묵의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는 침묵을 통해 자신의 내면과 마주할 수 있다. ‘순간’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고 살아가는 힘을 얻을 수 있다. 만약 우리가 침묵을 볼 수 있게 된다면 지친 일상 속에서 자신의 영혼이 위로받게 될 것이다.

현대의 삶은 편리하지만 소음으로 가득하다. 귀로도, 눈으로도, 감각으로도 우리는 잠들기 전까지 무수한 소음에 노출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소음을 피해 숲을 찾으면서도 이어폰과 스마트폰을 갖고 간다. 이런 디지털 기기들은 소음을 차단해 침묵이라는 자극을 만들어주기보다는 오히려 침묵의 소리를 없애는 소음을 귀로, 우리 내면으로 흘려보낸다. 끊임없이 정보를 퍼나르고, 알림이 계속되고, 언제나 대화가 가능한 메신저창이 현실을 의미하는 것 같이 시끄러운 세상에서는 ‘침묵’을 반사회적인 것으로 여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우리는 왜 소음에 중독되었을까? 왜 우리는 침묵하는 법을 잊어버렸을까? 복잡하고 번화한 현대 사회에서 침묵은 낡은 걸까? 왜 우리는 침묵을 두려워하고 그것을 피하려고 할까? 왜 우리는 소음을 갈망하고 필요로 하게 되었을까?

“침묵을 견디며 사는 일은 아주 어려워요. 진정한 침묵은 끔찍합니다. 이 침묵에 접근하려면 사막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사막으로 들어가는 것은 정체성을 찾기 위함이 아니라 잃기 위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읽고 익명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자신을 비우는 것이죠. 자신이 직접 침묵이 되는 겁니다. 주변의 침묵보다 더한 침묵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는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납니다. 침묵이 말하는 소리를 듣게 되는 겁니다.” _에드몽 야베스

이 세상 모든 삶은 병들어 있다. 만일 내가 의사이고 누군가 내게 충고를 요청한다면, 이렇게 답하겠다. 침묵하게 하라! 인간을 침묵으로 데려가라. 오늘날처럼 시끄러운 세상에서는 신의 말은 들을 수 없다. 모든 소음 가운데서 들을 수 있도록 더 커다란 소음으로 새겨놓으면, 그것은 더는 신의 말이 아니다. 그러니 침묵하라. _쇠렌 키르케고르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0. … 아이콘 | 암실 | 죽음에서 탄생으로 | 침묵 | 예술로 가득한 침묵
1. 없이 산길 | 말-쪽으로 구축하기 | 통로
2. 전에 당신을 듣고 있는 빛을 보기 | 미리-보기 | 비-유한을 탈-제한하기
3. 부터 침묵 제시하기 | 축약들과 개념들·침묵에 종을 울리다
4. …
5. 너머 마지막 회화 | 검은색 혹은 흰색? | 반복 강박
6. 맞서 불행한 의식 | 십자가의 길 | 어둠에 접근하기 | 침묵의 공간 | 죽음의 봉인
7. 내부에 회오리바람과 소용돌이 | 비밀들
8. …
9. 사이에 이것도 저것도 아니다 | 라스베이거스 잊기 | 사이에 존재하다 | ‘사이’ 놓기
10. 향하여 사막에서 보이는 것들 | 지평선에 다가서기·약속
11. 주변에 감정 | 빛의 춤 | 예술의 탄생
12. …
13. 함께 정원 가꾸기 | 더 깊이 파고들다 | 돌덩이에게 귀를 기울이다
14. 안에

감사의 말
미주
색인

저자 소개 (2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침묵은 고요함이며 고요함은 침묵이다. 침묵은 소음이 없을 뿐 아니라, 모든 말의 소리와 메아리에서 들리고 울려 퍼지는 고요함이다. 침묵 없이는 말도 없으며, 말없이는 침묵도 없다. 침묵은 끝없이 후퇴하는 말의 지평이다. 침묵은 말하지 않음으로써 말을 할 수 있다. 침묵을 듣는다는 것은 침묵을 배반하는 것이다. 듣지 않음으로써 듣는 것이고, 말하지 않음으로써 말하는 것이며,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드러내는 것이다.
--- p.13

왜 예술을 통해 침묵에 접근하는가? 좀 더 구체적으로, 왜 시각예술을 통해 침묵에 접근할까? 침묵을 본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을 듣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침묵’은 그토록 낯선, 심지어는 불가능한 낱말이다. 이 말은 필연적으로 자신의 모든 발화에서 자신을 부정한다. 이런 방식으로 ‘침묵’은 자신을 배신한다. 다시 말해서 자신을 거스르는 동시에 드러낸다. ‘침묵’을 말하는 것은 침묵을 깨는 것이고, 일단 깨진 침묵은 다시금 전체가 될 수 없다. 모호성과 어둠으로 점철된 침묵은 예술을 통해서만 또렷한 모습을 표현하거나 예술로 쪼갤 수 있다.
--- p.42

‘소음’이라는 말은 라틴어 ‘nausea’(‘뱃멀미’라는 의미이지만, ‘불쾌한 상황’ 혹은 ‘시끄러운 혼란’과 같은 부가적인 의미로 많이 사용되었다)와 그리스어 ‘nausea’(배라는 의미의 ‘naus’에서 왔다)에서 왔고, 도중에 프랑스 고어 ‘noyse’를 거쳤다. 어원만 보더라도 소음은 ‘역겹다’는 의미를 떠올리게 한다. 미셸 세르는 이렇게 썼다. “… 언어는 시간을 죽이지만, 침묵은 황금 혀보다 더 황금빛이어서 우리의 유일한 진짜 보물이라 할 수 있는 시간을 우리에게 돌려주고, 천둥 같은 언어와 감각의 위협으로 굳게 봉인되어 있던 감각에 충격을 주어 우리를 깨어나게 한다.
--- p.59

침묵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어떠한 말도 하지 않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말을 폭포처럼 쏟아내는 경우다. 이 말은 언어 아래 잠겨 있는 언어를 말하며 끝없는 다른 것에 관한 말하기다. 겉으로 보기에는 심오한 대화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을 피상적인 혼잣말에 지나지 않는다. … 끊임없는 수다는 사람들이 돌아보는 모든 곳에서 자신들의 말만 ‘듣는’ 자아를 강화하게 만든다. 그러한 세상에서 소음은 사소한 말을 방해하려 위협하는 침묵을 침묵시킨다. 소금쟁이들이 호수 표면을 가로질러 가듯이 ‘수다 떠는 사람들’은 그들이 말을 멈추는 순간 끝도 없는 침묵을 가진 텅 빈 공간에 떨어질까 두려워한다. 이와 반대로 침묵은 치유가 될 수 있다. 언어 수준이 완전히 저하되고 말이 소음이 될 때 저항을 위한, 그리고 아마도 치료를 위한 최고의 전략은 침묵이다.
--- p.82

사람들을 연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테크놀로지는 오히려 사람들을 분리하고 있다. 세상이 상호 연결되면 될수록 사람들은 서로를 더 듣지 못하고 있다. 폐쇄된 네트워크, 개인 요구에 맞춘 앱, 개인화된 매체, 소셜미디어는 오히려 반사회적이 되어 간다. 사람들이 말은 하고 있지만 듣는 방법을 잊어가고 있다. 자신과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하고만 대화하고 의견이 다른 사람들은 침묵시키려 한다. 의사소통하는 망이 닫히면 정보는 소음이 되고 목소리는 생겨나지만, 그 목소리는 결국 ‘침묵의 소리’가 되고 만다.
--- p.84

청각 기관인 귀의 복잡성을 고려하지 않고는 침묵을 이해할 수 없다. 귀는 이미 두 개라는 점에서 이중적이다. 그뿐 아니라 귀는 육체의 외부와 내부 사이의 단순한 경계가 아니라 내적으로도 경계를 가진 복잡한 구조로 되어 있다. 따라서 경계 내의 경계, (차이의) 가장자리 내의 가장자리를 만들어낸다. 귀는 두 개지만 하나만 따져 봐도 이미 하나가 아니라 셋, 즉 외이, 중이, 내이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 외부와 내부 사이의 단순한 경계처럼 보이는 것이 실제로는 구멍 속 구멍, 가장자리 속 가장자리, 한계 내의 또 한계다. 외부는 실제로 어디서 끝나며 내부는 어디서 시작되는가? 소리는 내부에 있는 것인가, 아니면 외부에 있는 것인가? 침묵은 세계에도 없고, 귀에도 없으며, 어딘가 그 사이에 있는 것인가?
--- p.303

가장 시급한 문제 중 하나는 빠르고 시끄러운 오늘날의 세상에서 사람들은 더 이상 듣는 법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생각 없는 잡담은 마음의 반성을 침묵시킨다. 항상 먼저 말하고 입을 다무는 것을 한사코 거부하는 것은 회피, 통제, 장악, 지배의 전략이다. 진정으로 경청하기 위해서는 침묵을 지켜야 하며, 하이데거의 설명처럼 침묵하려면 겸손함과 과묵함이 필요하다.
--- p.462

돌담은 묵상을 초대하는 공간을 열어준다. 그 공간에 들어가려면 세상의 소음을 내려놓고 침묵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내려놓는 것은 놓아주는 것이며, 역설적이지만 의지를 발휘하지 않을 의지를 필요로 한다. 묵상은 자신만의 이미지로 세상을 형성하기보다는 무한한 삶의 선물을 받을 수 있도록 우리를 열어준다. 이 삶의 선물은 죽음의 선물이기도 하다. 놀라운 사실은 죽음을 받아들이면 삶의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다는 점이다.
--- p.477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불안과 말이 넘치는 시대, 우리는 어떻게 침묵을 경험할 수 있을까?
소음의 시간을 살아가는 이들을 위로하는 침묵의 힘


과거에는 시대에 뒤떨어지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침묵 없이 사는 법을 배워야만 했다. 사람들이 시골에서 도시로 가기 시작했고 시골은 농업 경제에서 산업 경제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로 소음의 레벨이 올라가고 침묵은 이내 사라져버렸다. 소음은 하루도 쉬지 않고 모든 사람들에게 쏟아졌고 이제는 소음을 피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우리가 침묵이라는 감각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이어폰이나 헤드폰이 아닌 진정한 침묵 속에서 고요함을 맛보고, 귀로 듣고, 냄새를 맡고, 만져보고 살펴보아야 한다. 소리를 켜고 귀를 기울일 게 아니라 소리를 끄고 듣지 않고 내버려두어야 한다. 침묵 없이 살도록 프로그램화된 우리는 먼저 소음 없이 사는 법을 알아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침묵’을 아무 말도 없고 들리지 않는 고요한 상태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렇게 단순하게 정의하지 않았다. 흔히 침묵을 ‘소리’와 연결짓지만, 침묵은 ‘시각’과도 연결된다. 역설적으로 침묵을 듣기 위해서는 침묵을 ‘보아야’ 한다. 침묵은 오히려 눈으로 볼 때 더욱 선명해질 수 있다.

저자는 철학자나 문학가, 예술가, 작가 및 작곡가들의 작업을 인용해 침묵의 다양한 형태를 보여준다. 현대 미술 작가들에게 침묵은 작업이 생성되는 출발점이기도 했다. 바넷 뉴먼, 애드 라인하르트, 제임스 터렐 그리고 애니쉬 카푸어를 포함한 선구적인 시각 예술가들의 작품을 통해 다양한 침묵의 변화를 탐구하고, 헤겔, 롤랑 바르트, 하이데거, 비트겐슈타인 등 많은 철학자들이 다룬 ‘침묵‘을 따라가 본다. 또한 절친했던 자크 데리다의 해체론을 기조로 신학, 문화, 건축, 패션, 현대미술, 미디어, 기술, 금융, 자본 등 각종 영역을 해석한 후에 이해하고자 했다.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침묵을 음미하며 자신을 돌볼 시간이 필요하다. 저자는 침묵을 위해 우리가 말하지 않은 것을 듣고, 말할 수 없는 것에 주의를 기울일 만큼 충분히 오래 멈추기를 바랐다. 이 책의 본문 중 몇 개의 장은 실재로 ‘침묵’과 같은 공백으로 이뤄져 있다. 그리고 각 장의 제목(-없이, 이전, 부터, 넘어, 저항, 이내, 사이, 향해, 주변, 함께, 안에)에 의미를 두어 침묵을 묵상하게 했다. 소음으로 혼란스러운 불안의 시대에 사는 우리는 침묵을 보아야 한다. 침묵이 있어야 자신의 진정한 내면과 마주할 수 있다. ‘순간’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고 살아가는 힘을 얻을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침묵을 ‘듣는’ 방법은 그것을 ‘보는’ 것이라는 명제처럼 《침묵을 보다》는 독자들이 침묵을 볼 수 있을 만큼 오래 머물도록 초대하는 깊은 명상이다.

회원리뷰 (13건) 리뷰 총점9.8

혜택 및 유의사항?
침묵을 보다 - 예술을 통해 침묵에 접근하다.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숲**우 | 2022.05.24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 Seeing Silence ----- ('침묵을 보다' 표지 일부) <침묵을 보다>에서 저자 마크 C. 테일러는 '침묵'을 주제로 철학, 종교, 예술 전반을 넘나드는 성찰을 보여준다. 주로 미국 회화 작품들을 분석하고 이해를 돕고 있다. 미술 전공자이거나 미학, 예술 철학에 관심 있으신 분들에게 정말 흥미로운 신간 소식이다. 왜 예술을 통해 침묵에 접근하는가? 좀 더 구체적;
리뷰제목

------ Seeing Silence -----

('침묵을 보다' 표지 일부)

<침묵을 보다>에서 저자 마크 C. 테일러는 '침묵'을 주제로 철학, 종교, 예술 전반을 넘나드는 성찰을 보여준다.

주로 미국 회화 작품들을 분석하고 이해를 돕고 있다.

미술 전공자이거나 미학, 예술 철학에 관심 있으신 분들에게 정말 흥미로운 신간 소식이다.

왜 예술을 통해 침묵에 접근하는가?

좀 더 구체적으로, 왜 시각예술을 통해 침묵에 접근할까?

침묵을 본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을 듣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침묵을 보다' p42)

지은이 - 마크 C. 테일러

 

('침묵을 보다' 표지)

저자의 철학과 종교에 대한 깊은 사고가 <침묵을 보다>를 깊이 있게 만들었다.

이력을 보면 종교철학자이면서 문화 비평자이고 포스트모던 신학자, 대학 출판부 편집자이기도 하다.

종교와 예술이라는 두 축이 저자의 가장 큰 관심인 것을 알 수 있다.

책의 차례 - 특이한 차례의 소제목들

책의 차례가 정말 시적이다. " 없이, 전에,부터, ..., 너머, 맞서, 내부에 등등"

저자의 침묵에 대한 진지하면서도 창의적인 표현이 신선하다.

(아래 참조)

('침묵을 보다' 차례 일부)

예술을 통한 '침묵을 보다' - 내용 일부분만 ......

저자가 '침묵을 보는'방법으로 예술을 택한 이유는

"모호성과 어둠으로 점철된 침묵은 예술을 통해서만 또렷한 모습을 표현하거나 예술로 쪼갤 수 있다"

고 보기 때문이다.

(책 p43에서 )

<침묵을 표현하는 마크 C. 테일러의 글쓰기>

저자가 침묵을 표현하는 말들이 멋지다. 종교적이고 철학적이고 모호하면서도 본질에 가깝게 표현하려는 저자가 보인다. 평소 철학과 예술, 회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정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자 마크는 풍부한 지식들(철학, 종교, 인문, 예술 등의 지식들)을 재료로 삼아서, 한 주제를 두고 여기저기서 지식을 꺼내어 편하게 자신의 생각을 이어간다.

즉, 우리가 신변잡기로 대화를 이어가듯이 마크는 철학, 지식과 성찰로 <침묵을 보다>를 완성한다.

저자의 그런 노하우와 학식이 정말 대단하다.

얼마나 많은 공부를 했으면 어렵게만 느껴지는 헤겔, 칸트, 키에르케고르, 하이데거, 비트겐슈타인, 니체 ... 등 철학자들을 자유자재로 꺼내서 쓰고 있다.

 

 

('침묵을 보다' 표지 일부들)

<침묵에 주목하게 된 계기>

어느 날 정리하게 된 부모님의 흑백 사진들을 보며, '침묵'을 떠올렸다고 한다.

책의 처음은 그렇게 시작된다. 사진들이 '푼크툼'을 경험하게 했다.

<1. 없이>

진짜 흥미 있게 읽었던 장이다.

현대 사회는 소음의 시대다. 이를 잘 보여주는 예술가로 루솔로를 소개하고 있다. 정말 재미있는 음악가이다.

루솔로라는 아방가르드 음악가가 음악으로 이용한 소리는 '금속 긁는 소리, 울부짖는 소리, 천둥소리, 중얼거림....'이다. 이런 소리를 음악으로 분류하고 있었다고 한다.

또한 다양한 기계제품들과 문명의 이기들로 현대 사회는 엄청난 소음의 시대가 되었다. 생각해 보면 정말 소리가 안 들리는 공간을 찾기 쉽지 않다. 다양한 '백색 소음'에 둘러 싸여 살아가는 사회가 되었다. 빠른 음악에 식사 시간도 빨라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드디어 기업가들은 '침묵을 상품화하는 방법(책 p74)'을 찾았고 '시끄러운 세상에서 침묵은 소수의 사람이나 누릴 수 있는 사치품이' (책 p74) 되었다.

디지털화, 개인 요구에 맞춘 앱, 등 소셜 미디어는 오히려 인류를 유아론적 사고에 갇히게 만든다. 왜? 모두 자기 말만 하고 듣지를 않으니까. 수많은 목소리들은 있지만 의사소통이 안되는 이런 소리들은 소음이고 결국 '역설적으로 '침묵의 소리'가 되고 만다'(책 84) 왜 그것이 침묵의 소리일까?

극작가 해롤드 핀터가 말했다. 끊임없이 말함으로써 말하지 않는 전략 중 하나이기에 오히려 침묵이라고. 일상에서 이런 경우 가끔씩 있다. 뭔가 숨기려고 일부러 다른 주제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말해본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 같다. 그 순간 진짜 해야 할 말은 '침묵'했던 것이다.

<'빛의 침묵을 듣는 방법' - 제임스 터렐> (책 p89)

이런 말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빛이 침묵한다니! 빛이 침묵하다면 ... 어둠?

'제임스 터렐'은 빛을 탐구하면서 '완전한 침묵과 완벽한 어둠을 결합하는 방법'(책 p90)을 찾아 나갔다.

미국의 유명한 예술가인 제임스 터렐의 예술 작업들을 '빛의 침묵'으로 안내하는 과정들은 과학적이고 종교적이다.

<뉴먼, 라인하르트, 로스코>

미국 화가들이고 우리나라에는 색면 추상화가들이라고 알려져 있다.

세 사람 모두 '검정'이 가지는 정신적, 종교적 느낌을 표현했다. 책은 각 장을 따로 할애해서 세 사람의 삶과 작품 세계를 해석하고 있다.

<반복 강박>

"수전 손택은 현대 미술의 기본 원리 중 하나가 반복이라고 주장했다. "(책 p199)

프로이트가 엄마가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 엄마의 부재를 물건을 숨기고 찾기를 반복하는 손주를 바라보며 "욕망의 좌절이 주체의 개인화라는 결과"(책 p207)를 가져온다고 해석했다.

따라서 욕망을 욕망하는, 결코 충족될 수 없는, 욕망을 끊임없이 시도하는 것 그것 자체가 주는 즐거움이 '반복 강박'이라는 것이다.

떠올린 생각이라면, 미술가나 음악가 문학가들이 힘들다고 하면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작품을 반복하는 이유는 바로 그 행위 자체가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깨달음이다.

<침묵의 공간 ; 사막>

"하이드와 저드는 미국만의 고유한 예술을 창조하고 싶어 했고 그런 예술을 창조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로

미국 서부의 사막"(책 p347)을 꼽았다.

이들 예술가가 사막을 예술의 공간으로 어떻게 표현하고자 했고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는지 살펴볼 수 있다.

 

('침묵을 보다' 내용 일부분)

<엘스워스 켈리>

로스코의 침묵과 켈리의 침묵을 비교하는 내용이 흥미 있었다.

로스코는 키에르케고르에서 의심과 공포 체념을 읽었다면 켈리는 삶을 긍정하는 희망을 읽었다.

색으로 침묵을 표현했는데 켈리의 작품을 보면 다양한 색면이 자유롭고 화려하다. ( 책에도 나오지만 앙리 마티스를 떠올리게 한다.)

침묵이 꼭 검은색일 필요는 없지 않나?

"흔한 것의 숭고, 평범함의 아름다움, 세속적인 것의 성스러움, 어둠 속의 빛, 이것이 켈리의 교회가 드러내는 바다." (책 p412)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는 철학자 니체가 그림을 산다면... 로스코 회화를 샀을까? 켈리 회화를 샀을까?

침묵은 신의 영역이라고들 한다. 예술가가 가진 창조성은 신적인 영역이라고들 한다.

그럼 예술가는 신이다. 세계는 예술 작품이고. "이 창의성에 참여하는 것이야말로 성스러운 삶의 순간이다"

(책 p416)

디오니소스가 가진 '혼돈과 불안'의 에너지를 창조성의 원천이라고 니체는 보고 있다.

-혼돈을 품고 춤을 추는 것 -

그 긍정의 침묵을 보여 주는 작품으로 아마 켈리의 회화를 사지 않을까 싶다. (개인적 생각)

<돌담>

옛날 시골 할머니 댁에 가면 그 작은 마을 모두는 돌담으로 둘러싸인 집들이었다.

마지막 장에서 마크는 스스로 돌담을 만들고 사진도 실었다. 어릴 적 흔하게 보았던 돌담에 이런 예술적 가치가 있었나? 만약 그 마을이 아직도 있어서 저자가 둘러봤다면 어땠을까?

그런데 왜 돌인가? 마이클 하이저의 대지 미술에도 커다란 바위 덩어리가 나온다.

우리 지구 환경은 어디서 왔을까? 우주에서 온 암석들이 그 기원이라고 한다. 모든 것은 암석에서 시작되었다. 우리 생명 즉, 물고기도 나뭇잎도 고양이도 강아지도.....

"결국 모든 것이 돌덩이의 문제라면, 우리는 돌덩이의 말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워야 한다."(책 p461)

고대 암석에는 고대의 깊은 침묵이 숨어 있는 것이다. 그 침묵은 생명 탄생의 비밀 아닐까?

예술가가 이런 생각을 하려면 깊은 과학 지식이 있어야 한다.

여기에서 예술가들이 과학에 대한 호기심을 어떻게 예술 영역으로 끌어들였는지도 알 수 있었다.

<불행한 사람>

현존하지 못하는 사람은 불행하다. 키에르케고르가 말했다고 한다. 자신으로부터 부재한 사람은 불행하다고. 자신으로부터 불행하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아마도 흔히 말하는 '나답게'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내가 동의한 나로 살지 못하는 사람은 불행하다. "언제나 다른 곳에 있는 가장 불행한 사람은 이 세계 어디에서도 편안할 수 없다."(책 p224)

침묵이 현존하는 나를 일깨우는 시간이 되어 지금 여기 내가 행복할 수 있게 예술 작품들이 자꾸 시비를 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침묵을 보다' 표지)

예술가들이 아니면 어떻게 이런 상상을 해 볼까?

침묵은 신적인 것이면서 일상의 것이고, 선일 수도 있고 악일 수도 있고, 이성의 한계 그 끝에 있는 것이다.

침묵은 두 가지 종류가 있다. 말할 수 없는 것과 말하지 않는 것.

예술은 진정한 침묵의 상태를 체험하게 하고 침묵의 공간을 만들기도 한다. 수다나 노동이 침묵이 되기도 한다.

<침묵을 보다>를 읽으면서,

마크와 함께 예술을 통해 침묵을 보는 시간들을 보냈다.

역시! 예술가들이란 정말 놀라운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우리 인류의 한 부분이라서 다행이다.

예술가들이 아니면 이런 생각들을 어떻게 해 볼 수 있을까?

해봤다고 해도 그냥 지나치거나 의미를 부여하지 못했을 것이다. 먹고살기 바빠서.

예술가들이 시도한 다양한 표현방식을 살펴보는 일은 다양한 사고방식을 가져 보는 일이다. 안 하던 생각을 해보는 경험도 중요하다. 평소 못했던 생각들을 따라가보는 낯설지만 호기심이 가득한 체험을 <침묵을 보다>는 제공한다.

낯설고 용어가 생소하더라도 쉽게 그만두지 말고 그냥저냥 읽어 나가면 좋겠다.

예술과 회화를 통한 명상의 시간이 될 것이다.

('침묵을 보다' 표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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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을 보다』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m****d | 2022.05.23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올해 초 반려견을 가족으로 맞이하게 되며 북한산으로 매일 산책을 하게 되었다. 하루 세 번의 산책 후 마무리는 항상 해먹에서 잠시 쉬었다 가는 것으로 한다. 반려견은 조용히 숲의 소리를 듣고 나는 무언의 침묵, 또는 숲의 소리를 벗삼아 책을 읽는다. 『침묵을 보다』는 소음보다 침묵을 좋아하는 내가 그 시간에 읽으면 좋을 것 같아 선택하게 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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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반려견을 가족으로 맞이하게 되며 북한산으로 매일 산책을 하게 되었다. 하루 세 번의 산책 후 마무리는 항상 해먹에서 잠시 쉬었다 가는 것으로 한다. 반려견은 조용히 숲의 소리를 듣고 나는 무언의 침묵, 또는 숲의 소리를 벗삼아 책을 읽는다. 『침묵을 보다』는 소음보다 침묵을 좋아하는 내가 그 시간에 읽으면 좋을 것 같아 선택하게 된 책이다. 도시의 소음에서 벗어나 숲의 청량한 기운을 마음으로, 몸으로 느끼며 그 정적을 즐길때 이 책과 함께라면 그 침묵의 시간이 더욱 값질 것 같았다. 

 

보통 책을 고를때 책의 소개글을 참고 하는 편인데 이 책은 책의 표지부터 시선을 사로잡았다. 예쁜 초록빛의 색과 빛나는 제목과 그림, 책의 표지만 보고있어도 마음이 평온해졌다.

 

평소에도 조용한 것을 좋아한다. 사람이 많은 북적북적한 곳은 피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소래포구나 시장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북적북적한 곳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어렸을때부터 난 한적한 곳을 찾아 다녔다. 물론 부모님의 영향이지만 어려서부터 산을 즐겨 찾았고 지금도 집에 있으면 TV를 틀지 않는다. 오히려 반려견에게 소음에 익숙해지게 하기 위해 클래식채널을 가끔 틀어줬을 뿐이다. 오랜 회사 생활을 하며 아침에 울리는 핸드폰 알람부터 시작해서 저녁까지 온갖 소음으로 가득 찬 곳에서 하루 하루를 지냈다. 스트레스와 피로는 결국 저주파성난청 진단을 받게 하기도 하였다. 무언가 계속 불안하고 초조했다. 회사를 관두자 바로 침묵이 주가되는 삶이 찾아왔다. 반려견 입양으로 시끄러운 도심에서 벗어나 하루에도 몇 번씩 숲을 만나게 되었다. 침묵이 내 안의 불안을 다스리고 진정한 나를 만날 수 있게 해주었다. 『침묵을 보다』를 통해 그간 내가 느껴왔던 침묵을 눈으로 이해할 수 있길 바라며 책장을 넘겼다. 

 

책의 처음을 시작하는 것은 '0'이다. 첫 번째 장이 아닌 숫자 '0', 무, 첫 페이지를 읽는 순간 문장이 갖는 운율에 가슴이 뛰었다. 첫 문장을 읽기 시작하며 두번째 페이지까지 계속 같은 장을 반복해서 읽었다. 읽고 지시대로 눈을 감고 책이 지시하는대로 따르길 여러 번 그렇게 책의 한 장을 넘기기 힘들었다. 항상 빠르게 읽고 넘어갔던 독서 습관이 갑자기 달라지는 것을 경험했다. 같은 페이지에서 그렇게 한참을 머물렀다.

 

p.56 스톤힐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침묵은 가을의 침묵이다. 북쪽에 자리 잡은 이곳에서는 8월에서 9월로 넘어가는 시기에 들판은 황금빛 국화로 덮이고, 나뭇잎들도 색이 바래기 시작한다. 이미 몇 달 전 남쪽으로 여행을 시작한 태양은 하늘 낮게 떠서, 그 빛을 담은 형형색색의 들판과 잎들에 그윽한 색을 드리운다. 느지막한 오후가 되면 윙윙거리던 곤충 소리가 잦아들면서, 다른 어디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특별한 침묵의 소리가 뒤를 잇는다. 마치 빛이 지각할 수 있는 물건이 되어 고막을 내리누르며 공명을 만들어 내고, 그 공명이 어둠이 내린 후에도 오랫동안 지속되는 느낌이다. 이 가을빛이 만든 침묵의 소리는 언제나 이미 사라져버린 것에 대한 달콤한 애수의 색채를 띠고 있다. 이 빛을 보는 것이야말로 진정 훌륭한 침묵을 듣는 것이다. 

 

대게의 철학서가 그러하듯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실제로 이 책을 읽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시간을 갖고 음미하듯 천천히 한 문장 한 문장을 가슴으로 느낀다면 침묵의 의미를 서서히 묵상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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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을보다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스타블로거 : 수퍼스타 m****h | 2022.05.19 | 추천4 | 댓글0 리뷰제목
불안을 다스리고, 진정한 나를 만나는 “침묵을 보다”   겁쟁이에 소심한 개는 움직이는 모든 것에 두려움을 느낀다. 몸 안의 긴장감과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마구 짖는다. 짖다 보면, 두려움이 사라지는 듯하다.   침묵하는 개는 눈에 들어오는 들려오는 소리로 감지할 수 있는 모든 것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귀를 기울인다. 여차하면, 뛰어나가 목줄을 물어버릴 심산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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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을 다스리고, 진정한 나를 만나는 “침묵을 보다”

 

겁쟁이에 소심한 개는 움직이는 모든 것에 두려움을 느낀다. 몸 안의 긴장감과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마구 짖는다. 짖다 보면, 두려움이 사라지는 듯하다.

 

침묵하는 개는 눈에 들어오는 들려오는 소리로 감지할 수 있는 모든 것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귀를 기울인다. 여차하면, 뛰어나가 목줄을 물어버릴 심산으로…. 개의 침묵은 단순히 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라. 준비를 하는 것이다. 민감하게….

 

꽤 철학적인 주제, 14꼭지로 침묵을 갈파한다.

 

이 책은 침묵에 관한 사유를 담고 있다. 침묵을 듣는다는 것은 죽음 앞의 무력함을 받아들일 힘을, 불안한 마음속의 고요를 찾는 것이다.

침묵은 금이다. 침묵은 따발총같이 입을 여는 순간, 밥을 먹으면서도 반찬 삼아 쉼 없이 말하는, 재잘거리는 것은 은, 동, 아니 흙에도 못 미친다.

 

자크 라캉은 모리스 블랑쇼의 말을 빌려서 말한다. “말은 사물의 죽음이다.” 생명이 있는 것, 살아서 움직이는 것은 침묵을 즐긴다. 쓸데없이 나불거려, 주의 경계를 흩트린다. 라캉은 ‘말은 사물의 죽음이다’라는 의미 말과 이미지는 사라짐을 만들고 이 사라짐 없이 외양은 절대 등장할 수 없다…….

진정한 언어가 시작되려면 이 언어를 실어 나르는 삶이 반드시 무(없음)를 경험해야만 하며, ‘깊은 곳에서 떨고, 그 안의 고정되고 안정되어 있던 모든 것이 송두리째 흔들려 본’ 경험이 있어야 한다. 즉 언어는 빈 곳이 있어야만 시작할 수 있다.

 

우리는 소음이 중독돼 침묵하는 법을 잊어버렸을까?

우리는 왜 침묵을 두려워하면 그것을 피하려 할까?

우리는 왜 소음을 갈망하고, 소음을 필요로 할까? 라는 문제의식, 이에 해당하는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 바로 이 책의 흐름이다.

 

침묵의 소리를 듣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이다. 침묵은 고요함이요. 고요함은 침묵이다. 단순히 소리, 소음이 없는 것이 아니라, 침묵은 모든 소리와 메아리 속에서 울리고 퍼지는 고요함이다.

 

침묵의 두 가지 유형

 

침묵은 무를 동경한다. 또 다른 침묵은 전부를 동경한다. 전자는 상관물의 숫자이며, 후자는 상관물의 행위다. 이 두 양식은 프로이트가 인간의 삶의 바탕이라고 생각했던 두 가지 기본적인 욕망 <타나토스>(죽음의 본능)와 에로스(삶의 본능)에 조응한다.

 

시끄러운 스타일로 침묵을 옹호하는 것은 충만함과 텅 빔의 불안정한 대조에서 비롯된다. 침묵은 감각적이고 황홀하며, 초언어적인 충만함으로 가득 차 있다고 흥분하다가 부정적 침묵의 텅 빔 속으로 순식간에 떨어져 붕괴할 수 있다는 점은 이미 악명이 높다.

 

침묵은 말에서 소리를 없애는 것이다. 말이란 낱말을 삽입할 수 있는 문장을 당연한 의미하겠지만 조르쥬 바타유는 침묵이라는 말에 한정하려 했다.

독재자들의 명령에 복종하는 침묵, 소리 없는 침묵 속에서 꿈틀거리는 혁명의 기운, 모두 침묵이라는 외향을 띄고 있지만, 질에서는 다르다.

 

우리가 침묵에 천착하고 침묵을 깊이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는 침묵의 가치와 무게다. 소리 내서 말을 할 때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다면…. 침묵이다. 내면의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채 마구 떠들어대는 알맹이 없는 소리보다 침묵이 가치가 있을 때, 그래서 침묵은 금이라는 금언이 나오지 않았던가….

 

참으로 어려운 개념인 “침묵‘, 우리가 관념하는 침묵은 어떤 것일까, 부정적일까, 긍정적일까, 아니면 새로운 뭔가를 소리 없이 외치는 것일까? 소음보다 더 시끄러운 침묵….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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