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출간일 | 2022년 04월 28일 |
---|---|
쪽수, 무게, 크기 | 252쪽 | 272g | 128*188*18mm |
ISBN13 | 9791130690230 |
ISBN10 | 1130690237 |
출간일 | 2022년 04월 2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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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52쪽 | 272g | 128*188*18mm |
ISBN13 | 9791130690230 |
ISBN10 | 1130690237 |
“다이빙과도 같은 삶에 대한 단편들, 마지막 순간까지도 깔끔하고 우아하다.” 인생의 균열을 바라보는 단정한 시선, 문지혁의 두 번째 소설집 2010년 단편소설 「체이서」로 한국문학의 새로운 문을 열며 등장한 작가 문지혁의 두 번째 소설집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가 다산책방에서 출간되었다. 장편소설 『초급 한국어』로 정통문학의 문을 성공적으로 두드린 작가는 이 소설집에서 ‘SF 소설’과 ‘이민자 소설’의 경계에 놓인 다채로운 이야기를 선보인다. 장르와 정통 서사 사이에 놓인 다리 같은 소설집을 통해 작가 문지혁의 확장된 세계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책에는 2016년부터 발표된 단편소설 여덟 편과 함께 문학평론가 이지은의 해설을 함께 실었다. |
다이버 서재 지구가 끝날 때까지 일곱 페이지 폭수 아일랜드 애틀랜틱 엔딩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 어떤 선물 해설 다리 위에 머물기_이지은(문학평론가) 창작 노트 추천의 말 |
폭수 라는 작품은 특유의 유머가 참 재미있고, 상상이 재기발랄해서 좋습니다.
평범한 외국유학을 하는 대학원생의 마음 속의 염증도 느껴졌고, 필즈상을 수상한
독특한 교수와의 만남과 '폭수'라는 황당한 상상력에 웃음이 터져나오다가도,
동전을 던지는 일이 이야기의 끝에 다다르면 불가능한 희망을 향한 것이라는
아련한 느낌을 줍니다.
아틀란틱 엔딩은 한 유학생의 성공과 몰락이라는 과정에서 마치 욥기의 욥처럼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살아남아야 할 이유가 모두 사라진 인간들이 만나서
마지막으로 죽음의 룰렛을 돌리는 이야기입니다.
마지막 쿠키를 조각내는 순간. 작가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진다고 할까요.
하지만, 국수를 먹으러 간 이들의 뒤에 남은 일들은 무엇일까 생각하면 다시
착잡해집니다.
'포츈쿠키' 정도의 작은 희망은 무엇일까요? 거대한 운명의 바퀴를 돌릴 순 없을지라도,
잠깐 밥 먹을 짬 정도는 낼 수 있을 것입니다. 베트남 쌀국수집에서 둘이
우연히 만났듯이, 포츈쿠키가 우연히 이 둘의 인생의 한쪽 문을 닫고 나머지 문을
열어 젖힐지는 모르는 법입니다.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는 정말 몰입해서 봤습니다.
좋은 위대한 영화를 보고 난 느낌이 그렇듯, 작가의 명료한 주제의식과 탄탄한 구성에
도 불구하고 따라가지 못한 채로 서사를 끝마쳤습니다. 보고 나서 리뷰를 쓰며 생각을 정리
하지 않고는 뒤죽박죽인 채로 끝나버릴 것 같은 안타까움이 들어 막 떠오르는 걸 씁니다.
작가님의 의도에 가닿지 않을지라도 써보렵니다.
확률
이 소설에서는 '확률'을 얘기합니다. 아주 우연한 확률로 이루어지는 사건들로 대량 살상이
죽을 뻔했던 주인공이 삶을 이어가기도 합니다.
성수대교, 9.11테러, 일본대지진 과 같은 굵직한 사건들은 마치 책갈피처럼 우리의 시간에
이정표로 남지만, 이것도 우리가 살아있다는 가정하에 책갈피이지 이미 사건으로 사라진 자
에게는 책의 끝일 것입니다.
화자는 이 허드슨 강을 보며 200년 전 독립전쟁이 일어났을 때를 떠올립니다. 영국군과 맞서
요새를 세웠는데 당시 장군 이름을 따서 포트 '리'라고 이름을 붙이는데 이게 지금까지 전해
집니다. 이 다리가 세워지기 훨씬 전 죽어간 사람들을 떠올려 보면, 지금 나의 고난도 별 큰 일이 아닌 것처럼 여겨지기도 하는데, 허망하기도 합니다. 살아있을 수 있음이 신의 주사위
놀음으로 결정이 되는 것 때문에 그럴까요. 게다가 내가 지금 성수대교가 무너진 원인을
파해친다고 해서 이미 죽은 자들은 살아돌아오지 않을 겁니다. 그 논문을 누가 제대로 봐주기나 할까요. 여기서 주인공은 그래서 소설을 씁니다. 아니, 누가 '논문'을 쓰라고 하는데 '소설'을 냅니까? 하지만 이 사람은 성수대교에 관한 논문을 건축공학에 관심있는 이들이 한국인
인 본인의 관점에서 서술한 것에 관심이 있다고 한들, 죽은 사람이 살아돌아오는 것도 아니니
차라리 죽은 이들의 삶을 쓰고 추모하는 게 더 의미가 있기 때문에 800페이지가 넘게 쓴 것
아닐까 싶습니다.
대책이 없는 게 재난이라면 대책이 무슨 소용?
삶과 죽음이 우연에 의해 결정이 된다면, 살아남은 이들이 해야 할 일은 재난의 방지를 위한
대책이란 게 쓸모가 있을까요? 이번 재난은 피해 갔지만, 다음 재난은 피할 수 없다면, 그때의 나에게 '거봐. 그 논문을 안 써서 재난을 피하지 못했어.' 라고 누가 말할까요?
누군가는 그렇게 지키고 싶어했던 포트 리라는 '요새'가 어느새 다리가 놓여서 누구나 차로
쉽게 건널 수 있는 도시의 상징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제는 누구도 그 다리를 걸어서 건너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200년 전의 군인들에게는 생사가 걸린 문제였는데 말이죠. 그렇게 현재의 우리는 '다리를 건넌다'는 똑같은 문제가 그들과 우리에게 몹시도 다른 무게로 다가왔을 때, 누구도 이 문제를 무겁게 받아들이질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과거의 그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죠. 만약 200년 전의 영국군에게 다리가 어떻게 하면 무너지지 않는지 논문을 쓰는
게 정말 중요한 일이라고 묻는다면, 영국군은 콧방귀를 뀌고 어떻게 하면 당장 이 강을 건널
지나 고민하라고 핀잔을 줄 게 뻔합니다. 같은 공간에서 과거를 마주했을 때, 우리는 이토록
서로의 입장을 모를만큼 시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음을 확인합니다.
구원이란?
오직 나와 함께 '현재' 다리를 함께 건너는 '아야'만이 이런 고독에서 아주 '우연히' 나를 구원
합니다. 그러나 글의 마지막에서도 전하듯 이 모든 '우연'이라고 하는 것도 다 나의 '핑계'일
지도 모릅니다. 다리에서 떨어져 자살을 하려는데 일부러 커피숍에 들어가서 시간을 떼우고,
딴짓을 하면서 아마 그는 또 다른 이유를 찾아내어 '아, 이게 내가 살라는 계시인가?' 라면서
또 다리를 그냥 건너갔을 지도 모른다고요.
어쨋거나 그는 결국 소설을 구했고, 논문을 쓰는 등 당면한 현재의 문제로 돌아와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마치 포화가 치미는 전쟁터로 돌아가는 군인처럼 현실의 세계에서 등을 돌리려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가기로 결심합니다. 뭐 결심할 새도 없이 대화를 나누다가 건너버린
후라 결심이라고 하기도 뭐하네요. 하지만, 이것도 운명이려니 하고 순응합니다.
재밌게도 '아야'라는 이름의 의미를 묻는 장면이 있는데요. 한국에서는 '아파'란 뜻이냐고 묻자
주인공이 모음의 시작이라고 답합니다. 아야는 뭘까요?
아야는 '성수대교'가 무너진 자리에 또 다리가 세워진 것에 놀라죠. WTC는 그라운드 0로 죽은 이들을 추모하는 자리로 만들었는데 말입니다. 추모받지 못한 채로 낯선 미국 땅에서
죽어간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성수대교에서도 마찬가지죠. 마치, 죽은 이들의 묘비라도
되듯, 조지워싱턴 브리지에는 높은 펜스가 세워집니다. 죽은자를 살릴 순 없으나 산 자들의
자살 시도를 막는 방식이죠.
아야? 우유?
우리나라의 재난의 대처는 어떤가요? 무너진 성수대교를 4차선에서 8차선으로
오히려 늘려서 보강을 합니다. 아야를 옆으로 눕히면 '우유'가 됩니다. '우'는 좀 불안하게 물건
을 떠받친 느낌이구요. '유'는 안전하게 떠받치는 느낌이 듭니다. 다리를 보강해서 더 튼튼하
게 만들고, 학군이 강남,강북의 교차가 안되도록 하는 이런 방식으로 재난에 대처합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뭔가를 '보태는데' 그게 곧 과거의 상처의 흔적이라고 할까요. 그렇게 남아
있습니다.
어떤 방식이든 살아남은 사람들은 '아야' 하는 식으로 추모든, 예방이든 하면서 죽음에 가까울 누군가를 하나 구해낼 수도 있을 지 모릅니다. 혼자서 다리를 건너는 건 좀 무섭네요.
역시 아무리 사람이 싫어도. 힘들 땐 사람밖에 기댈 데가 없는게 사람인가 봅니다.
어서... 의지할 수 있는 AI가 나오길.....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
소설은 '영화나 드라마처럼 시각, 청각을
제공하지 않기에'
뇌를 더 능동적으로 움직이게 한다.
소설을 읽을 때면, 내가 했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글 속에 부여된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나의 뇌와 가슴은 많은 상상을 펼치곤 한다
다산북스의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 문지혁]작품은
'재난'이라는 유연히 벌어진 사고로
남은 이들의 상실감을 다루고 있다.
일반적으로 '불행'과 '상실'이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에서
우리는 동정, 연민, 가엾음 그리고 슬픔을
연상하게 끔하지만,
내가 읽은 문지혁 작가의 이번 소설은
죽음과 상실 뒤에 따라오는
슬픔의 침잠에 빠지기보단
(때로는 어찌 표현해야 할지 모르는 그 막막한 감정,
혹은 정의 내릴 수 없는 죄책감에
허우적대고 있기보다는)
오히려상처와 폐허에 대해, 그리고 그 후의 삶을
담담히 마주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소설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는
총 8개의 단편소설로 묶여있다.
주인공들은 하필 불규칙적인 확률로 발생하는
재난으로 상실의 삶을 겪게 된다.
비행기 사고로 아이와 아내를 잃은 아버지 「다이버」,
종이책을 소지하여 국가내란죄로 끌려간
아버지의 빈자리가 큰 자녀 「서재」,
「지구가 끝날 때까지 일곱 페이지」,
아이를 잃은 후 매일같이 호수에 동전을 던지는
천재수학자 「폭수」,
딸의 죽음 후 삶의 의지를 잃은 순간
물고기 모양의 섬을 찾아떠나는 아버지 「아일랜드」,
아내와 동료의 배신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이민자 「애틀랜틱 엔딩」,
성수대교 사건으로 논문을 써 내려가는
소설가이자 유학생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
팬데믹 현실 속에서 마스크와 지갑을 두고 나온
대학강사의 하루를 그린 「어떤 선물」.
?꽤나 몰입도 있게 소설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면서
열린 결말을 상상하게 한다.
다이버, 폭수, 아일랜드
이 단편소설들은 '자식을 잃고 남겨진 아버지'라는 대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작가는 [다이버]의 제작 노트에서, 자신의 유년시절의 물에 대한 공포와 세월호 참사 사건을 모티브로 따왔다고 했다.
8년이나 지난 일이지만, 한국인이라면 모두가 충격의 그날을 기억할 것이다. 이 재난에 대해 우리 모두는 자의적이거나 타의적으로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그리고 작가는 그 재난을 어떻게 애도해야 하는지 아직도 방법을 모른다고 했다.
나 역시 그렇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장례를 대신 치러 주다가 그의 마음을 문득 스쳐간 어떤 생각에 대해서, 사랑하는 가족이 이미 이 세상에 없다면, 청년이 택한 방법이야말로 진짜 다이빙은 아닌가 .... 선생님은 언제까지 돌아가실 겁니까 (p17-18)」
소설 [폭수] 역시 호수에서 아이의 실종 후에, 매일 호수에 동전을 던지는 천재수학자를 인터뷰하는 대학원생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 천재수학자의 행동이 아이에 대한 그리움인지 아니면 학문적 호기심인지 알 수 없지만 그것으로 인해 어떤 위로를 느낄 수 있다면 그로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미국에서의 성공을 꿈 꿨으나, 현실은 뜻대로 대지 않아 심드렁한 태도가 일색인 주인공 대학원생(강선생) 또한 '의지'와 '꿈'을 상실한 사람이다.
이는 아이를 잃은 천재수학자와 대학원생 모두 상실(죽음이던 혹은 꿈이던)을 겪었으나 그날의 '폭수(물의 폭발)'이라는 장면을 통해 그들 삶의 다음 이야기가 기대되었다.
또한 작가의 무표정한 듯한 문체는 소설 속의 장면과 주인공의 심리상태를 꽤 세련되고 묘사하고 있어 인상적이었다.
「규칙적인 듯하면서도 불규칙한 물결의 반짝임은 세상의 시끄러운 소문이나 나의 불확실한 미래 따위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 무심하게 반복됐다. 영원하지 않은 것이 분명한데도 영원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하는 그 광경은 묘하게 감동적인 데가 있어서... (p.106-107)」
서재, 지구가 끝날 때까지 일곱페이지
두 편의 소설 모두 '종이책이 금지된 미래'라는 독특한 설정을 가지고 있다. 모든 정보 '넷 Net'이라는 세상 안에 들어있고, 종이책은 정보의 균등한 배분을 반대하는 세력의 잔재로 왜곡되어 있다.
마치 영화 '매트릭스'가 연상되듯, Net의 세상에 통제되어 있으며 주인공들의 아버지는 마지막까지 [종이책 = 자유]를 지키려 했던 자들이다.
주인공들은 아버지가 '종이책 보유자 혹은 제작자'로 국가내란죄로 사회적 낙인이 찍힌 삶을 살아왔지만, 과연 그들이 진실된 미래 즉 '매트릭스의 빨간약'를 선택할 것인가 궁금해졌다
「불행은 언제나 패턴이 깨지는 순간 찾아온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나는 패턴을 벗어난 차에 흥미를 느꼈다. 그 차는 마치 나를 알아보기라도 한 것처럼 점점 내 쪽으로 다가왔고, 끝내 집 앞에 내려앉았다(p.26)」
애틀랜틱 엔딩,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
소설은 미국 이민자 혹은 유학생의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하며 성공 가도를 달리던 주인공(「애틀랜틱 엔딩」)은 성공 후에 느껴지는 공허함으로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믿고 있던 동료와 이혼한 아내에게 배신을 당한다.
주체할 수 없는 분노로 살인을 저지르고, 본인도 자살을 결심하나 사실 쉽지 않다
주인공은 자신과 유사한 아메리칸 드림의 성공 그리고 실패를 맛본 또 다른 한인 여성을 만나 공감을 느끼게 된다.
나는 「애틀랜틱 엔딩」을 읽으며 마치 스릴러 영화 한편을 보는 듯했다.
치밀한 주인공의 심리상태와 사건 흐름의 묘사는, 단편 소설이라 믿기지 않을 정도로 풍부한 상상에 빠져버렸다.
소설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는 소설가를 꿈꾸는 미국 유학생인 주인공과 일본에서 온 아야가 등장한다. 이들은 모두 성수대교 사건과 일본 대지진의 기억이 남아있다.
남자 주인공은 성수대교 사건을 논문과 소설을 쓰고 있으나 진전이 없어, 조지 워싱턴 브리지를 직접 건너려 하는 날, 우연히 일본인 친구 아야를 만난다.
「"확률에 관해 생각한다. 이를테면 포트 리 카페에서 아는 사람을 만날 확률. 그것이 아야일 확률.... 눈이 마주치고 서로를 알아볼 확률, 아야와 내가 각각 도쿄와 서울에서 태어날 확률, 30여년 뒤 뉴욕에서 만날 확률.
하나의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 모든 종류의 경우의 수, 그러니까 우리는 무한에 가까운 확률을 뚫고 하나의 사건에 이르러 지금 마주보며 함께 커피를 마시고 있다...(p.189)」
?모든 단편들이 끝나면, 작가의 [창작노트]가 이어진다.
어떻게 이런 재난이란 소재가 키워드가 되었는지,
각 단편들의 창작 과정이 담겨있어 꽤 흥미로웠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모아놓고 보니 이 책에 실린 여덟 편의 소설은
모두 '재난'이라는 하나의 키워드로 묶인다.
나는 재난과 재난 이후의 삶에 관해,
상처와 폐허와 트라우마에 관해,
우리가 스러지고 다시 일어선 곳에 관해,
계속해서 이야기해야 한다고 믿는다.
비록 두서없고 더듬거리고
때로는 말문이 막혀 한숨만 내뱉는다 하더라도,
이 소설 역시 그러한 더듬거림의
한 형태이자 기록일 것이다
출처,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 문지혁
이 글을 읽고 있는 우리는 모두 남은 이들이다.
그렇지 않다면, 재난이라는 불규칙한 확률의 싸움에
운이 좋게도 아직 걸리지 않은 자들이다.
작가는 '재난'과 '상실'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이야기하지만, 소설이 읽혀나가는 속도는
영화를 보듯 엄청 빠르게 지나간다.
탁월한 주인공의 심리묘사는
마치 우리가 겪었던 상실의 기억을 공감하게 하며,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꽤나 담담하게,
주인공들의 다음의 삶을 기대하게 만든다.
그리 이것은 우리가 가슴에 품고 있었던,
상실의 기억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담담히 마주할 수 있게 도와준다
마지막 책장을 넘기자마자 문지혁 작가의
또 다른 소설을 읽고 싶은 충동이 강하게 들었다
#우리가다리를건널때]를 통해
나의 첫 서평단 기회를 주신다산북스 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이 책은 서평단에 선정되어, 해당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1. 좋은 글귀, 마음에 드는 가사 인상 깊은 영화 대사 등을 메모해 주세요. |
2. 출처를 넣어주세요. ex) 234page, 4번 트랙<사랑해>, <브리짓존스의 다이어리>에서 브리짓의 대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