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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내 죽음에 네가 들어왔다

어느 날, 내 죽음에 네가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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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5월 09일
쪽수, 무게, 크기 404쪽 | 368g | 128*188*20mm
ISBN13 9791191043723
ISBN10 119104372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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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 뉴스로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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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 한마디

모든 걸 포기하려던 순간, 기적처럼 시작된 사랑에 관한 이야기. 죽고 싶어 하는 소녀와, 시한부 인생을 사는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남자, 두 사람이 펼쳐내는 삶과 죽음,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시공초월 로맨스 -소설PD 박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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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죽을 수 있었는데.”
이치노세는 팔을 붙잡힌 채 삐친 듯이 말했다. 아니, 분명 삐쳐 있다. 그녀가 또렷하고 커다란 눈동자로 노려보았지만 무섭기는커녕, 나를 올려다보는 눈이 오히려 귀엽기만 하다.
“이제 그만 자살을 포기할 생각은 안 드나?”
내 말에 이치노세는 질린다는 표정이다
--- p.16

낯선 여자가 말을 걸어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아이바 준 씨. 당신의 수명을 제게 넘겨주시겠어요?”
온몸에 검은 옷을 걸친 께름칙한 여자였다. 키가 크고 놀랄 정도로 말랐다. 긴 은발 머리는 이 세상 사람의 것이 아닌 듯 아름다웠으나 그 감동을 다 덮어버릴 만큼 섬뜩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 p.26

한참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반대쪽에서 중학생으로 보이는 소녀 네 명이 걸어왔다. 처음에는 자살한 소녀의 반 친구들이 추도하러 온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네 소녀는 몹시 즐거운 얼굴로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자살 현장을 찍기 시작했다. “드디어 사라져줬네”, “이제 두 번 다시 걔 얼굴 안 봐도 되겠어”라고 떠들며 소녀의 자살을 기뻐하는 그들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나는 난간을 쥔 손에 점점 더 힘을 주면서 그 애들이 하는 말을 들었다.
--- p.45

이런 상황에서 심신이 피폐해진 이치노세가 무심코 내뱉은 말이 “죽고 싶어”였다. 하지만 아무도 동정하지 않았다. 의붓아버지는 “그런 소리 할 거면 지금 당장 죽어버려!”라고 고함쳤고 언니들은 “비련의 여주인공 납셨네!”라며 욕을 퍼부었다. 어머니는 보고도 모르는 척했다.
식구들과의 관계를 다 털어놓은 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이치노세에게 물었다.
“자살하려고 한 건 식구들에게 ‘자살할 용기가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선가? 만약 그렇다면 그런 사람들 때문에 자살하는 건 너무 아까운데.”
--- p.77

어마어마한 정어리 떼를 보며 문득 생각했다. 저렇게 많이 모여 있으면 따돌림당하는 정어리도 있지 않을까. 만약 질투도, 괴롭힘도 없다면 나도, 이치노세도 인간으로 사느니 차라리 정어리로 태어나는 게 더 행복했을지 모른다.
--- p.117

“네, 시간을 되돌리면 실패를 없었던 일로 할 수 있으니까요. 소심하고 소극적이었던 사람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니까 그 기세로 무슨 일이든 잘해나갑니다. 자신감이 붙으니 주위 사람들도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대해주고요. 그러면 깨닫는 겁니다. ‘조금만 달라져도 살아갈 수 있었겠구나’ 하고 후회하면서 말이죠.”
--- p.146

“그게 아니라……, 왜 내가 살아 있길 바라는지, 그게 궁금해요.”
말문이 막혔다. 대답이 나오지 않아서가 아니다. 최근 한 달 동안 그녀와 지내면서 명분과 본심이 뒤바뀌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도 몰라”라고 짐짓 모르는 척하며 얼버무렸다.
지금의 관계를 1초라도 더 지속하고 싶으니까.
“……모르면서 지금까지 자살을 방해한 거예요?”
“뭔가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지.”
남의 일처럼 대답하자 이치노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p.213

‘살아 있으면 언젠가 좋은 일이 생길 거야’ 같은 말은 얼마나 무책임한 위로인가. 예전부터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 나 또한 별반 다르지 않은 말로 그녀를 위로하고 있다. 그래도 언젠가 그녀를 이해해줄 사람이 나타날지 모른다.
우리가 만났듯이, 살아 있으면, 반드시.
--- p.240

하지만 그것은 내 착각이었던 것 같다. 주위를 둘러보니 불꽃을 보지 않고 아이나 연인의 옆얼굴을 바라보는 사람이 많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만이 불꽃놀이를 즐기는 방법이 아니라는 걸 처음 알았다.
이치노세의 눈동자 속에서 빛나는 불꽃을 바라보며 나는 그 사실을 깨달았다.
--- p.246

나비가 그녀의 주위를 날아다니는 광경은 무척 신비로워 보였다.
그러고 보니 사신은 우리를 ‘날개 없는 나비’에 비유했지. 하지만 지금의 이치노세는 더 이상 날개 없는 나비가 아니다. 확실히 앞으로도 달라질 것이다.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시야가 넓어지면 눈앞에 있는 그녀도 달라질 게 분명하다. 내게 품고 있는 마음과 함께. 이제 내가 없어도 그녀는 혼자 어디까지든 날아갈 수 있다.
--- p.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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