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업은 개인적으로 내게 커다란 복이었다. 그리고 이제 나는 다른 많은 사람들도 진실로 위대한 한 인물의 개인적인 글을 읽고 복을 누리기를 희망한다. 왜냐하면 그분이 내 시아버님이기 때문이 아니라, 직접 펜으로 쓴 글과 정신과 마음을 통해 그분이 얼마나 온전히 주 예수 그리스도께 복종했고 얼마나 진지하고 지혜롭고 일관되게 그 놀라운 자유의 복음을 그분이 무척이나 사랑한 한국인들에게 전하려고 했는지를 배웠기 때문이다.
--- 「아일린 플라워 마페트, “서언과 감사 2” 」중에서
나는 모든 것을 듣고 있지만 아는 것이 전혀 없고, 그저 내가 알지 못하는 무슨 일이 일어나리라고 확신합니다. 사람들은 점점 겁에 질려 수백 명씩 피난을 가고 있으며, 관리들은 동요하고 있는 듯합니다. 나는 아직까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할 일을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만약 보고대로 서울에서 평양으로 일본군이 오고 의주에서 중국군이 온다면, 아마도 나 역시 일어나서 도망가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진지하게 말하면 내 의무는 여기에 있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므로 나는 그분께서 명령하신 것 외에는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 「마포삼열 선교사의 1894년 7월 26일 편지」 중에서
우리는 이곳에 한국인의 유익을 위해 선교사로 와 있으며, 비록 모든 사람이 아마도 이 전쟁의 결과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의 입장은 친중국도 친일본도 아닙니다. 우리가 가장 보고 싶은 것은 한국이 혜택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께서 만사를 다스리신다는 것과, 전쟁의 결과는 의심할 바 없이 당신의 계획을 앞당기시는 것이 될 것을 믿으며, 이 믿음 안에서 우리는 안식을 얻고, 하나님의 교회가 이곳에 세워지고 한국인들의 마음이 변하여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예배하기를 기도하면서 사역합니다.
--- 「마포삼열 선교사의 1894년 11월 1일 편지」 중에서
백홍준 전도사의 중병을 보고하게 되어서 유감인데 그는 심한 폐결핵을 앓고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의 질병에서 큰 기쁨을 얻었습니다. 몇 달 동안 그는 너무 연약해져서 “사랑방”의 침상에 누워 있을 수밖에 없었지만, 찾아온 모든 자에게 고통 중에도 지탱해주고 위로하는 복음의 권능을 증언했습니다. 이로써 저는 그가 이전보다 더 많은 것을 하고 있다고 믿는데, 그의 증거에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질병이 그를 은혜 속에 성장케 하고, 그를 더 큰 신앙, 더 큰 사랑, 감사, 그리고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의 기쁨과 평안을 다른 사람들에게 선포하는 데 자신이 가진 힘을 사용하려는 진지한 갈망으로 인도한 것을 깨닫고 저는 크게 기뻤습니다. 제가 하나님께 기도했던 것처럼 만일 그가 죽음을 면하고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백홍준은 훨씬 더 성별된 사람으로, 그래서 더욱 쓰임을 받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 「마포삼열 선교사가 1893년 10월 북장로회 선교회 연례 회의에 보낸 보고서」 중에서
또한 그들은 자기 마을에 있는 한 여자의 경우를 저에게 보고했는데, 그녀는 소책자를 공부한 후 담대하게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라고 밝히고 나왔습니다. 그녀는 귀신을 내쫓았고, 오직 하나님께만 기도하며, 안식일을 지키고, 기독교 서적을 읽고 있습니다. 그녀의 아이가 아팠을 때, 그녀는 무당을 부르라는 이웃 사람들의 성화를 모두 뿌리치고 오직 하나님께만 기도드렸는데, 하나님께서 그녀의 기도를 들으시고 아이의 건강을 회복시켜주셨습니다.
--- 「마포삼열 선교사의 1894년 12월 전도보고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