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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귓속말이 떨어져 새들의 식사가 되었다

나무의 귓속말이 떨어져 새들의 식사가 되었다

걷는사람 시인선-062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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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5월 16일
쪽수, 무게, 크기 116쪽 | 134g | 125*200*7mm
ISBN13 9791192333120
ISBN10 1192333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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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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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한철 무엇을 뽑아 버리고 무엇을 심어야 할지 모르면서 땅을 팠다 끝없이 들끓어 여름이었고 더 이상 팔 수 없을 때 여름의 설원을 알았다 구멍 뚫린 하늘의 느닷없는 사태에 야윈 어깨로 쏟아져 내린 눈 폭풍은 고도로 계산된 여름의 생산 기술이었다

잘 익은 울음의 껍질을 벗겨 주겠다던 나는 나를 홀딱 벗어 버리고 말았다
지금 여기,
--- 「뒤뜰」 중에서

사막을 지나 지하철은 연착했다 늘 한발 늦었지만 기억의 터널에서 마지막에 놓친 발자국이 샘이었고 목을 축이기엔 불결해 보였다 검은 시간을 가시로 뽑아 쓴 선인장은 놀라웠고 더러는 수건으로 목을 가렸지만 여기저기 튀어나오는 소리가 더 날 세워 불편을 호소했다 눈치만 는 고양이는 웅크린 의자였고 역할을 다한 도구들이 얹혀졌다 등을 부리면 가시만 곤두서는 화분

캐어 맞춘 뼛조각들이 엉성하게 서성거렸다
생각하는 것만 보고 듣는 골격은 얼마나 끔찍하고 간결한 흉기인가
--- 「공원」 중에서

나무들의 귓속말이 떨어져
새들의 식사가 되었다
매일 진물에 젖던 나무의 무릎
죽는 줄 모르고 피운 꽃의 고역이다
고라니 너구리 방아깨비 고추잠자리
슬그머니 눈도장 찍는 핀잔에
밤마다 반딧불이 집회에 시달린 은행
이젠 수놈만 심는다고 노랗게 떴다
제풀에 지친 쑥의
희끗희끗 마른 정신들
베옷을 차려입은 강아지풀의 목례 앞에
서로 구름의 속사정을 둔 내기에
일기예보를 믿었던 소나무는
봄날 송순주로 대신하기로 했고
도토리묵을 내겠다는 떡갈나무

첫눈이 숨어 있는 입 말문이 튼다
--- 「첫눈」 중에서

후루룩 버들피리가
아주 오랜 실타래를 켜고 있다
--- 「버들 국수」 중에서

가난이 쌓인 가을볕 사이를
폐선이 되어 떠돌다
슬그머니 돌아와
낟알에 볕을 뿌리는 팔뚝에
‘사랑’
나비가 앉아 있다
--- 「문신」 중에서

삽날에 자루를 맞추고
못 하나 박았다

벼 끌 밟으며
지나간 흔적도 한몫이란 것을

고스란히 두렁으로 남은 발자국은
잃지 말아야 할 경계

못은 내가 쓸 수 있는
최고의 인감印鑑

손가락을 붙잡아
땅의 맥을 짚는다
--- 「못」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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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무석의 시는 질문의 양식이다. 그런데 답이 보이질 않는다. 번번이 빗나가는 답은 또 다른 질문이 되어, 고약한 파문을 남긴다. “철학이란 얼마나 과감한 톱날인가/뭉쳐진 톱밥 같은 생이여”(「안녕, 플라타너스」)처럼 꽉 찬 오답을 제시한다. 감각을 사로잡는 시어들이 출몰을 반복하면서 독자는 자꾸만 낯선 골목을 서성거린다. 촉수를 바짝 세워 언어의 나이테와 초록빛 햇살을 가늠해 보지만, 다시 둘둘 말린 대동여지도에 갇힌다. 도대체 편무석 시인과는 숨통을 못 나누겠다. “자신의 생을 그물로 돌돌 말아 버린 누구일까”(「낮술」). 또다시 질문을 따라가다가 그물에 갇힌다. 끝없이 채무를 상환하게 하려는 시인의 전략에 사로잡힌다. 시집 곳곳에 언어의 빚잔치가 흐벅지다. 물음표끼리 서로 엉켜 몸을 비비면서 허공으로 날아오른다. 일수 통장 도장처럼 작은 눈으로 굽어보니, 운석으로 쌓은 골목 담장 위에 편무석의 시가 있다. 가시를 꽃으로 바꾸는 선인장이 있다. 그냥 시에 몸을 맡기고 나니, 이제 시는 대답의 양식이다. 고개를 끄덕이며 나무의 귓속말을 듣는다. 나무는 어떻게 말을 익혔을까? 슬픔이 있어야 한다. 어둠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새들의 식사가 된 나무의 귓속말! 새의 울대를 들여다본 사람은 안다. 거기가 가장 밝다. 그렇기에 새의 노래는 모든 어둠 쪽으로 울려 퍼진다. 새의 부리가 시인의 펜이다. 여기 질문과 파문이 한가득 꿈틀거리는 노래책이 있다.
- 이정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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