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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헤르츠 고래들

52헤르츠 고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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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5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298쪽 | 332g | 128*188*19mm
ISBN13 9791190187237
ISBN10 119018723X

카드 뉴스로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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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날씨라도 묻듯 가벼운 어조로 유흥업소에 나갔었느냐고 했다. 나는 유흥업소라는 말이 순간 낯설어 두 눈을 끔벅이다가 이내 말뜻을 알아차리고 반사적으로 남자의 콧대를 겨냥해 따귀를 때렸다. 찰싹, 하고 경쾌한 소리가 울렸다.
“이 남자가 미쳤나!”
--- 본문 중에서

“그런데 왜 야쿠자의 칼에 찔렸다고…….”
묻다 말고 불현듯 짚이는 데가 있었다. 그 개인병원이다. 상처 부위가 너무 아파 진통제와 항생제를 받으러 간 곳.
“이런 미친! 개인 정보를 그냥 흘렸단 말이야?”
그만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이건 소송감 아닌가?
“상처는 사실이야?”
무라나카가 놀란 듯 물었다. 그 얼빠진 얼굴을 째려보며 말했다.
“어차피 그쪽도 떠벌리고 다닐 거잖아. 아, 몰라. 야쿠자에게 쫓기는 유흥업소 여자든 성인물 배우든 좋을 대로 말해. 어떻게 생각하든 난 상관없으니까.”
--- p.11

무릎을 다시 끌어 모으고 눈을 감으려 했을 때 물을 튀기며 이쪽으로 천천히 다가오는 발소리를 들었다. 나도 모르게 방어 자세를 취하는데 새먼핑크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의 아이가 우산도 쓰지 않고 걸어왔다. 놀다가 갑자기 비가 와 집에 가는 길일까?
“얘, 여기 있다가 비가 잠잠해지면 가지?”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얼굴 생김새는 모르겠지만 어깨까지 기른 머리나 선이 가는 몸을 보아 중학생 정도 되는 여자아이 같다.
--- p.17

“안상, 안상.”
이럴 때 찾는 이름은 하나밖에 없다.
“도와줘, 안상.”
악물은 이 틈새로 쥐어짜듯 말하는데 비가 뚝 그쳤다. 놀라서 고개를 드니 눈앞에 청바지를 입은 다리가 홀연히 서있고, 위를 더 올려다보니 날아가 버린 내 우산을 쓴 여자아이가 있었다. 새먼핑크 티셔츠와 긴 머리칼이 낯설지 않은게 일전에 본 그 아이였다. 울고 있는 나를 보고 여자아이는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아이는 왜 내게 왔을까? 지난번에는 아무리 불러도 곁에 오지 않더니 왜 지금 이 타이밍에?
--- p.28

무표정한 가면을 쓴 것처럼 감정이 사라진 얼굴이 무섭다. 저 사람 말대로 하지 않으면 얻어맞는다. 하지만 발이 움직이지 않는다. 머리 한구석에서 엄마가 키코도 이리 와 보라고 불러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런 일은 일어날 리 없는데도. 봐, 엄마는 내 쪽은 쳐다보지도 않잖아.
의붓아버지가 못마땅한 듯 혀를 차며 내게로 온다. 도망쳐야 해. 하지만 발은 요지부동이다.
? 저기, 아버…….
? 말 들어.
찰싹. 뺨에서 소리가 나고 나는 그 충격으로 잠에서 깬다. 늘 겪는 일이다.
눈을 뜨자 친숙한 천장이 보였다. 눈을 여러 차례 깜박이고 한숨을 한 번 내쉬었다.
“……오랜만에 꿨네.”
--- p.45

“아…… 음, 그거 용케 찾았네. 내가 자주 듣는 거야.”
소년이 태블릿을 가리키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떤 생명체의 소리인지 모르는 것 같다. 널려던 수건을 바구니에 도로 넣고 소년의 옆에 앉았다.
어스레한 물속에서 기포가 천천히 올라가는 화면에 장중한 울림이 메아리치고 있었다. 크게 숨을 쉬는 것 같기도 하고 콧노래를 부르는 것 같기도 하다. 다정하게 부르는 듯 들리기도 하는 소리.
“이건 고래의 노랫소리야.”
소년의 눈썹이 미세하게 위로 올라갔다.
“놀랐지? 고래는 바닷속에서 마치 노래를 부르듯 친구들을 부른대.”
호오, 하고 감탄하는 숨을 내쉰 소년이 눈앞의 바다로 시선을 던졌다. 나도 따라 바다를 보았다.
“대단하지? 저렇게 드넓고 깊은 바닷속에서 친구들한테 소리가 전달된다니. 분명히 대화도 할 수 있을 거야. 영상 속 이 아이는 뭐라고 하고 있을까?”
소소한 말들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오늘 밤은 달이 아주 밝네. 여기 바다는 아름다워서 기분이 좋아. 오늘따라 네가 보고 싶어. 그런 대화가 바다 어딘가에서 오가면 좋겠다.
“물속에서 상대방의 목소리가 울리면 어떤 느낌일까? 난 상대방의 마음이 온몸을 감싸는 상상을 하곤 해.”
내게 보내는 마음을 온몸으로 받고 온몸으로 듣는다. 분명 굉장히 행복한 일이리라.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내게 보내는 마음이 느껴진다니 대단하지 않아? 하지만 그런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아이도…….”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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