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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6년 07월 22일
쪽수, 무게, 크기 544쪽 | 600g | 147*210*35mm
ISBN13 9788984372962
ISBN10 898437296X

중고도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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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다고?”
지나치게 놀란 티를 낼 경우 그웬에게 상처가 될지도 모르지만 그야말로 쇼킹한 소식이라 미처 감정을 조절하기가 어려웠다.
전형적인 시골 처녀, 외딴 농장에서 은둔자처럼 살아가고 있는 여자, 시간이 멈춰 선 듯 언제나 변함없이 촌스러운 여자, 누군가 기적처럼 나타나 청혼하러 오기 전에는 평생 혼자 살 수밖에 없을 듯했던 전형적인 19세기 스타일 여자 그웬 베켓이 결혼한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미안! 난 네가 결혼할 생각이 아예 없는 줄 알았어.”
레슬리는 그렇게 변명했지만 그 말은 거짓이었다. 그동안 그웬이 평소 탐독하는 연애소설에서처럼 멋진 왕지님 같은 남자가 나타나 꿈같은 사랑이 실현되기를 꿈꿔 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 내 자신도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렇게 됐어. 솔직히 남자를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접은 상태였었지. 결혼식은 12월 초쯤에 할 생각이야.”
“축하해! 넌 내가 얼마나 기쁜지 모를 거야. 도대체 너에게 행운을 안겨준 남자가 누구야?”
--- pp.37~38

채드 베켓, 그웬의 부친은 늘 그랬듯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있었다. 좀처럼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데이브 탠너와 딸의 약혼에 대해 그가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 역시 절대로 속마음을 표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설령 딸과 둘이서만 있는 자리이고, 주변에 사람이 없다고 하더라도 달라질 건 없었다. 그는 딸이 원하는 일을 가로막은 적이 없었다. 설령 결혼을 말리는 게 딸에게 도움이 된다고 해도 나서지 않을 사람이었다.피오나 반즈, 싸움닭 기질이 농후하고 베켓 부녀를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나서는 사람이었다. 베켓농장 사람들에게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계속 채드 베켓 옆에 앉아 질긴 고기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주고 있었다. 콜린은 매년 여름 베켓농장에서 여름휴가를 보냈기 때문에 피오나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았다. 피오나는 수시로 베켓농장에 들러 채드와 함께 마당에서 햇볕을 쬐기도 하고, 초원으로 함께 산책을 나가기도 했다. 두 사람이 자주 벌이는 입씨름은 마치 수십 년 동안 함께 산 부부처럼 서로에 대한 신뢰가 바탕이 된 일종의 의사소통 방식이었다. 피오나와 채드는 오랜 친구 사이였다. 그들의 우정이 언제 시작되었고, 또 얼마나 오래 지속되었는지 아무도 몰랐다.
--- p.77

어떤 여자가 내 앞에서 걸음을 멈추더니 내게로 상체를 기울였다. 엄마보다 약간 나이가 많아 보였고, 세련되고 다정한 얼굴이었다. 그 여자가 나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이름이 뭐니?”
그녀는 내가 미처 대답도 하기 전에 옷깃에 붙은 식별표를 보고 스스로 이름을 알아냈다.
“아, 피오나 스웨일즈구나. 1929년 7월 29일 생이면 열한 살이겠네?”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나 긴장했던지 목소리가 밖으로 새나오지 않았다.
그녀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엠마 베켓이라고 해.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농장에 살고 있어. 라디오에서 아이들을 시골로 내려 보낸다는 뉴스를 들었지. 나도 돕고 싶은 마음에 나왔단다. 나랑 같이 우리 집에 가지 않을래?”
나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친절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어 다행이었다.
나는 그때까지 농장이라는 곳에 가본 적이 없었다.
엠마 베켓이 브라이언을 쳐다보았다.
“이 아이는 네 남동생이니?”
그때까지 계속 양말을 만지작거리고 있던 브라이언이 도움을 청하듯 급히 내 팔을 붙잡았다.
“내 동생이 아니라 옆집에 살던 아이에요. 그제 밤에 이 아이가 살던 아파트가 독일군의 폭격을 당했어요. 그때 이 아이의 부모와 형제들이 다 죽었다고 들었어요.”
엠마 베켓은 강한 충격을 받은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혀를 끌끌 찼다.
--- pp.116~117

나는 브라이언과 남매로 오해 받는 게 죽기보다 싫었고, 마음속으로 그를 늘 ‘꼬맹이 바보’라고 불렀다. 물론 엠마 아줌마가 있는 자리에서는 절대로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호칭이었다.
나를 몹시 매정한 아이라고 비난할 사람이 많을지도 모르겠다. 불쌍한 아이를 수시로 따돌렸으니 그런 말을 들어도 할 말은 없었다. 다만 1940년과 1941년 사이에 내가 처해 있던 상황을 고려한다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그 당시 나는 놀기 좋아하는 아이였고, 연애소설을 즐기며 열다섯 살짜리 소년을 향해 혼란스러운 사랑을 키워가던 사춘기소녀였다. 갑자기 런던을 떠나 요크셔의 농장에서 살게 된 소녀, 아빠는 죽고 엄마와는 생이별한 소녀, 독일군의 공습 때 내가 살던 아파트가 무너진 모습을 본 소녀……. 지금 생각해도 어린 소녀 혼자 감당하기에는 벅찬 일들이었다.
당시에는 너무 어려 내가 처한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했고, 나에 대한 브라이언의 억척스런 집착에 부담을 느꼈다. 나는 말을 제대로 못하는데다 가족을 모두 잃은 브라이언을 보듬어줄 수 있을 만큼의 포용력을 갖추고 있지 못했다. 내게 브라이언은 떼어내야만 하는 혹이었다. 내가 브라이언과 남매로 오인받는 것에 대해 과격하고 거칠게 반응했던 이유였다. 당시 내 나이를 고려하자면 지나치게 비정상적인 반응은 아니었다.
--- pp.182~183

어떤 사람이나 밖으로 드러나는 면모가 전부는 아니니까.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을 잠재적 살인자로 볼 수는 없지 않은가?
레슬리는 문득 알몬드 경감이 자신을 어떤 사람으로 이해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절망과 고독에 시달리는 여자, 직업적으로는 성공했지만 가정적으로는 실패한 여자, 남자들과 인생에 실망한 여자, 약물 중독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 엄마 때문에 힘겨운 유년기를 보낸 여자, 엄마 역할을 대신해주었던 할머니를 잃은 여자…….
누구나 눈이 확 뒤집힐 만큼 분노할 경우 나이 든 할머니쯤 쉽게 때려죽일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느낌으로 기억하는 엄마는 마음이 따뜻하고 유쾌한 분이었다. 언제나 나를 품에 안아주었고, 밤에는 꼭 껴안고 잠이 들었다.
할머니의 말에 따르자면 엄마는 자주 남자를 갈아치웠다. 지금도 엄마가 집으로 데려왔던 남자들 중 서너 명을 희미하게나마 기억하고 있었다. 엄마가 섹스를 하기 위해 나를 침대로 오지 못하게 했던 것도 기억났다. 그럴 때면 나는 거실 구석에서 훌쩍이며 울다가 혼자 잠들어야 했다. 엄마와 관련해 나를 가장 슬프게 만드는 기억이었다.
--- p.225

“단순한 아이디어 말고, 당신이 실행으로 옮길 수 있는 추진력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해요?”
“제 능력을 의심하는 겁니까?”
“저는 아직 당신에 대해 잘 모르지만 단순한 아이디어와 실천은 전혀 별개의 문제일 수도 있으니까요. 지금껏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으면서 거창한 계획부터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솔직히 미심쩍은 생각이 들긴 해요. 당신은 성공을 거두지 못한 이유가 열악한 환경 때문이었다고 생각하죠? 정말 성공을 거둔 사람 중에 당신처럼 말하는 사람을 본 적 있어요? 그들 역시 대부분 빈손으로 시작해 성공을 이루었어요.”
데이브는 아무런 표정변화가 없었다. 그녀의 말에 화가 났는지 여부도 알 수 없었다.
“당신은 굉장히 직설적인 사람이군요. 당신은 혹시 그웬에게 어떤 선택권이 있을지 생각해본 적 있어요? 그웬은 현재 아버지 몫으로 나오는 연금을 받아 근근이 살아가고 있어요. 오래지 않아 아버지가 별세할 경우 그웬은 하루아침에 수입이 사라지게 됩니다. 일 년에 두어 번 농장을 찾는 브랭클리 부부한테서 받는 돈만 가지고는 살아갈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때가 되면 농장을 정리하고 다른 길을 찾아봐야죠.”
--- p.286

“스탠이 망원경으로 에이미 밀즈를 관찰했다는 건 어떻게 알게 되었죠?”
“며칠 전, 스탠이 직접 망원경으로 에이미 밀즈를 관찰했다고 말했어요. 망원경으로 보면 가드너 부인의 집이 얼마나 잘 보이는지 저에게 직접 보여주기까지 했어요. 가드너 부인이 딸에게 책을 읽어주고 있을 때인데 정말이지 명확하게 보이더군요.”
“스탠이 당신에게 에이미 밀즈를 은밀히 관찰했다는 말을 왜 했을까요?”
“저도 그 이유를 모르겠어요. 스탠은 지난 몇 달 동안 에이미 밀즈를 관찰했다며 자랑삼아 털어놓았죠. 본인 입으로 ‘내가 살해당한 그 여자에 대해 잘 알아.’라고 말하더니 망원경을 여기로 가져왔어요. 내심 저는 기절할 만큼 놀랐는데 스탠은 성능 좋은 망원경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느라 여념이 없었어요. 심지어 에이미 밀즈의 속옷 색깔까지 안다고 자랑했죠. 결국 욕실까지 들여다봤다는 뜻이잖아요.”
“정말이지 이상한 일이네요.”
--- p.321

밤이 되면서 하늘에서 별이 총총 빛났다. 우리는 바닷가 바위 위에서 처음으로 사랑을 나누었다. 하늘에서는 별이 반짝이고 있었고, 해변에서는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난 항상 채드의 연인이 되고 싶었고, 몇 년 간의 이별 끝에 비로소 소망을 이루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바닥에 깔린 돌들이 자꾸만 등을 찔러댔고, 해초에서는 악취가 났고, 밤바다에서 불어오는 찬바람 탓에 몸이 얼어붙을 만큼 추웠지만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 나는 마치 꿈을 꾸는 느낌이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놀라운 순간이기도 했다. 그때 난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채드와 다시는 헤어지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사랑을 나눈 다음 우리는 바위에 앉아 담배를 피웠다. 나는 담배를 처음 피워본다고 말하지 않았다. 어리게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채드는 아무 말 없이 한참 동안 내 허리에 팔을 두르고 있었다.
--- p.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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