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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 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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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 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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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4년 05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592쪽 | 724g | 147*210*35mm
ISBN13 9788984371415
ISBN10 8984371416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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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바네사는 섬뜩한 느낌이 들어 몸을 움찔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낯선 남자가 바로 뒤에 서 있었다. 두서너 걸음밖에 떨어지지 않은 거리였다.
남자가 다가올 때까지 왜 아무런 소리도 듣지 못했을까?
바네사는 벤치에서 벌떡 일어섰다.
남자는 날씨가 따뜻한데도 검정색 야구 모자를 이마까지 푹 눌러쓰고 있었다. 게다가 눈이 전혀 보이지 않는 시커먼 선글라스에 검정색 스카프로 입을 가리고 있어 얼굴에서 보이는 부분이라고는 코밖에 없었다. 검정색 트레이닝복 바지에 풀오버를 입었고, 손에는 장갑까지 착용하고 있어 보통사람의 행색과는 거리가 멀었다.
바네사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무슨 일…….”
가까스로 입을 떼는 순간 남자가 번개처럼 달려들었다. 동작이 어찌나 날래던지 반항하거나 도망칠 기회가 없었다. 축축한 천이 입을 가렸고, 역한 냄새가 밀려들었다. 기관지에서는 발작적인 기침이 터져 나왔다. 곧이어 구토가 치밀었고, 다음 순간 모든 감각이 완전히 마비되어 버리며 정신을 잃었다. ---p.17

바네사는 아직 살아 있을 가능성이 커.
마음속에서 누군가 그렇게 속삭였다.
그러니까 아직은 살인이 아니야. 여자를 풀어주면 정상을 참작해 의외로 관대한 처벌을 기대할 수도 있어.
하지만 납치감금 사실을 아예 숨기면?
그 경우 양심의 처벌을 받게 되겠지. 평생 고통스럽고 끔찍한 기억이 죽는 날까지 네 영혼을 괴롭힐 거야. 그렇지만 그 어떤 기억도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지기 마련이야. 죽을 때까지 감방에서 썩는 것보다는 차라리 입을 다무는 편이 나아. 아니야, 아니야. 절대로 그럴 수 없어. 만약 그랬다가는 미쳐버리고 말 거야.
넌 악마 같은 자식이야.
아니야, 난 악마가 아니야. 단지 재수가 없었을 뿐이야. 끔찍한 불운이었을 뿐이라고!
라이언은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울었다. 동굴 속에서 살기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치고 있을 바네사의 운명이 가엾어 울었다. 결국 자신이 아론 변호사에게 진실을 털어놓지 못하고 끝내 비겁한 삶을 선택하리란 걸 알기에 울었다.---p.42

절대 강간범이 아니야. 섹스에 흥미가 없는 강간범은 없을 테니까. 그
놈들은 성욕을 충족하거나 여자를 정복하면서 판타지를 느끼려는 놈
들이 아니었어. 내 느낌인지는 몰라도 놈들은 뭔가 임무를 수행하는
듯했어. 성폭행하는 순간에도 놈들의 마음가짐은 얼음장처럼 냉정해
보였거든. 그놈들은 마치 배 위에 컨테이너들을 선적하라는 임무를
부여 받은 크레인 기사처럼 성실하게 임무를 수행했어. 성폭행이 끝
나자 나를 목숨을 잃기 직전까지 두들겨 패는 태도도 얼마나 진지하
던지……. 그 모습은 마치…….”
데비가 의자에서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어쩌면 내가 만들어낸 상상일지도 몰라. 나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
는지 가물가물해질 때도 있으니까.”
“여형사에게도 그 이야기를 했어? 놈들로부터 받은 인상 말이야?”
“여형사도 내 이야기에 깊은 관심을 보였어.”
갑자기 으스스한 기분이 밀려오며 뭔가 떠올랐지만 라이언은 단지
자신의 지나친 상상일 뿐이라고 치부하며 고개를 저었다.---p.109

나는 가끔 매튜가 생각의 미로에 빠져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하긴
무려 3년 가까이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에 사로잡혀 살다보면 어느 누
구든 머릿속에서 온갖 생각들이 뒤엉키며 출구를 찾지 못하고 헤맬
가능성이 있었다. 나는 매튜가 언젠가 반드시 생각의 미로에서 빠져
나오게 되리라는 환상을 품지 않았다. 매튜에게는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니까. 바네사에 대한 생각을 접는다는 건 결코 그 자신이 용납할
수 없을 테니까. 내가 매튜와 균형 잡힌 관계를 지속해나가는 한편 미
래에 대해 기약하려면 먼저 바네사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밝혀내는
게 순서일 듯했다.
나는 일하는 틈틈이 인터넷에서 바네사 실종사건을 검색했다. 실망
스럽기 그지없는 내용밖에 없었다. 다양한 가능성들이 제기되었지만
죄다 사실무근으로 밝혀졌다.---p.125

“어쩌면 이미 총구를 겨누고 있을지도 모르죠.”
라이언이 작은 소리로 웅얼거렸다.
노라는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직 그들을 한 번도 대면한 적이 없다면서요?”
“데몬이 전화를 하거나 직접 내 앞에 나타난 적은 없지만 절대로 안심할 상황은 아니죠. 데비에게 가해진 성폭행과 엄마의 실종사건은 아마도 데몬과 깊은 관련이 있지 않나 생각해요. 나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 불과 며칠 사이에 끔찍한 사고를 당했어요. 과연 그 두 사건이 우연히 겹쳤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러니까 당신 말은 지금······?”
“데비의 집에 갔을 때부터 데몬 일당이 떠올랐지만 그저 운이 나빠 벌어진 사고로 치부하며 마음을 다독거렸어요. 이제 엄마에게도 몹쓸 일이 벌어졌어요. 엄마는 단 한 번도 부자인 적이 없었고, 단 한 번도 적을 만들고 살아온 적이 없어요. 게다가 예순이 넘은 여자를 납치해 어디에 쓰려고요?”
“당신은 이 모든 일들이 데몬의 소행이라 믿나요? 데몬이 경고메시지를 보낸 거라고?”---p.205

언젠가 가렛과 함께 파티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파티 참석자들대부분이 유행의 첨단을 걷는 젊은이들이었고, 그날 처음 만난 사람들이었다. 가렛은 보드카 혼합주를 코가 삐뚤어질 만큼 마셨다. 그는 주사가 심한 편으로 술에 취하면 자극적인 말로 상대방을 공격해 상처를 주는 습관이 있었다. 곤드레만드레 취한 상태에서도 그는 정확하게 상대의 급소를 찔러 상처를 입히고는 희희낙락했다. 수줍음을 많이 타 대화에 잘 섞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주로 그가 쳐놓은 올가미에 걸려들곤 했다.
가렛은 적당한 표적이 나타나지 않을 경우 종종 나를 제물로 삼았다. 그날 파티에서도 그는 사람들 앞에서 갑자기 나의 치명적인 실수에 대해 떠벌리기 시작했다.
“지나는 우울증이 도질 경우 절대 혼자 내버려두어서는 안 되는 여자랍니다. 괜히 지나를 잘못 건드렸다가는 큰일 나요. 하나, 둘, 셋을 셀 때까지 나무에 올라가지 못하는 남자도 지나의 가랑이 사이에 올라타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죠.” ---p.227

“자네에게 한 가지만 물어봐도 될까? 굳이 이런 질문을 해야만 하는
내 마음을 널리 이해해주길 바라네. 나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뭐라고
생각하나? 자네 직업이 뭐든, 통장에 돈이 얼마나 들어 있든 난 굳이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네. 자네 미래가 장밋빛이 될지 먹빛이 될지
에 대해서도 난 전혀 관심이 없어. 자네가 생을 잘 살아왔는지, 늘 지
혜롭게 행동하는지 판단하는 것도 내 관심사는 아니지. 다만 나는 자
네에게 돈을 빌려주었고, 그 돈을 받으려는 것뿐이야. 내가 왜 주제넘
게 자네의 시시콜콜한 사정까지 다 들어줘야 하지? 그런 짓이라면 나
는 정중히 사양하겠네.”
“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자네 생각에는 내가 언제쯤 돈을 돌려받을 수 있을 것 같나?”
라이언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목이 죄어오는 느낌이었다.
“지금은 돈이 한 푼도 없습니다.”---p.267

“너무 뻔뻔하고 이기적인 생각 아닌가요?”
“물론 비양심적이고 이기적인 생각이 분명하지만 라이언에게 최소
한의 회생 기회를 부여해주고 싶어요. 내 생각이 그다지 황당무계하
지만은 않잖아요. 만약 바네사가 동굴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생을 마
감했다면 우리는 당연히 경찰과 가족들에게 알려야겠죠. 만약 반대의
경우라면 바네사 스스로 몸을 숨긴 거라고 보는 게 타당하잖아요. 가
령 바네사는 남편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어 했고, 비로소 달아날 수 있
는 기회를 잡은 것일 테니까요. 만약 그 경우라면 바네사의 남편은 부
인의 운명에 대해 알 자격이 없다고 봐요.”
“우리에게는 그에게 그런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 판단할 권한이 없
어요. 라이언이 바네사를 납치하지 않았다면 지금 이런 일이 벌어지
지도 않았을 테니까요. 바네사가 살아서 복수하고 있다는 생각은 라
이언이 지어낸 망상일 수도 있어요. 라이언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면
알렉시아 실종사건은 어떻게 설명하죠?”
“알렉시아 실종사건은 모방범죄일 가능성이 높아요. 경찰의 수사
방향에 혼선을 줄 목적으로 누군가 모방범죄를 저질렀을 수도 있지
않겠어요?”
데비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p.401

노라는 공포에 질려 동굴에서 뛰어나온 이후 시간감각을 상실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을까? 천 년쯤 된 것 같기도 했고, 겨
우 30분쯤 흐른 것 같기도 했다. 동굴 안쪽에서 뭔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비명소리 같았지만 정확하지는 않았다. 곧이어 급한 발자
국 소리가 들리더니 데비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밖으로 달려 나왔다.
손전등은 아직 손에 들려져 있었지만 충전드라이버는 동굴 안에 두고
온 듯 보이지 않았다. 데비는 살아 있는 사람의 얼굴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안색이 파리했다. 마치 사람이 아니라 창백하고 푸르스름
한 밀랍인형 같았다.
---p.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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