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는 무슨. 노트북 놓고 가.'
C는 내 비행기 값과 숙박비를 댄다고 했고, Y는 내게 카톡으로 현금 50만 원을 송금해줬다. 카톡 만세.
2019년 연말에 일어난 일이다. Y의 남동생의 크룩스 슬리퍼를 빌려 신고, Y의 50만 원 중 환전한 200달러를 지갑에 넣은 나와 함께, 최대 풍속 200KM에 육박하는 태풍 ‘판폰’이 필리핀에 상륙했다.
--- 「비수기 라오스 행 왕복표 값」 중에서
우린, 드물게도 모여 있는, 그리고 흔하게도 일이 없는, 간혹 있는 단편영화제 수상작 연출자들이었다.
말인즉슨, 우리는, 명함과 사원증이 있는 문화예술계 종사자들이 핵심역량을 아웃소싱하기에 적당한, 또한 윗선에 가시적 성과를 증명하는 동시에, 함께 뭔가 만들어낸다는 성취감을 주면서도 우월감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파트너, 그러니까, 배고픈 영화과 졸업생이었던 게다.
그들이 발굴한(어쩌다 건너건너 알게 된), 아직 빛을 못 본, 아직은 배고프고 우울하고 조금은 다듬어지지 않은(팔리는 걸 시키는 대로 써본 적 없는), 하지만 업계에서 다달이 봉급을 받으며 버틴 각자의 경력만큼 쌓인 귀하디 귀한 지식과 진지한 조언으로 조금만 이끌어주면 딱 적당히 밥값을 할 것 같아 보이는, '같이 모여 있는 너희'는 그렇게 작업실 월세를 근근이 충당하며 버텼다.
--- 「을지로 3가 10번 출구」 중에서
선 채로 양말을 신고 청바지에 왼쪽 다리를 넣었다. 모양말을 신은 터라 바닥이 조금 미끄러워, 한 다리로 중심을 잡으며 다리를 쭉 뻗어 바지 안에 밀어 넣었다. 허리를 세우자마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아니, 소리가 들렸다. 사실 확실치 않다. 소리가 정말 났을까? 그럴 리가 없다. 내가 들은 소리는 이런 소리였으니까.
'푸욱!‘
'왕좌의 게임'의 킹슬레이어가 내 허리에 검을 찔러넣은 느낌. 존 스노우의 애매하고 거친 공격 말고, 킹슬레이어의 정확하고 간결한 일격. 순식간에 양다리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왼쪽 다리 절반만 청바지에 넣은 채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 「병원 매점에서 파는 흰 수건」 중에서
낡은 수건들을 버리는 것은 쉬웠다. 하지만 당연히, 그날 이후로 모든 일이 착착 진행된 것은 아니다. 사실 여러 가지가 한꺼번에 일어났고, 그때 겪고 접하고 생각한 것들의, '바로 그렇게 일어난 순서대로 쌓인 결과'로, 지금의 내가 정확하게 지금 이 모양 이 꼴이 되어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일 테다.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고, 생각보다 정리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정리해야 될 것은 물건이 전부가 아니었다.
--- 「리셋 같은 건 없다」 중에서
지금의 내가 마음에 들지 않으므로 그것을 '이 물건을 지닌 나'로 덮어보겠다는 발버둥. 그것이야말로 나를 가꾸어 줄 '취향'이라고 속이며 '몰개성의 쓰나미에 몸을 싣고 걔 중 가장 튀는 색의 파도'가 되어보겠노라 다짐하는 나.
‘아. 나는 계속 내가 마음에 안 드는 거구나.’
--- 「정신차려, 정신! 모멘트」 중에서
일관성을 유지하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물건을 버리거나 아끼는 물건을 누군가에게 주는 것이 반복되면 그걸 몸으로 체험하게 된다. 그 물건을 들여놓은 것도 나, 그 물건을 비우고 있는 것도 나다. 그때도 그때엔 지금이었고, 지금도 지금이고, 장차 그때가 지금이 될 게다. 순간만이 있다.
--- 「가는 데 순서 없고, 버리는 데 원칙 없다」 중에서
빌레로이엔보흐 유리잔에 소위 '매실 온더락스'를 해 마시면 굳이 음료수를 사놓을 필요가 없다. 그 전엔 단 한 번도 고향 집에서 보내온 매실 원액을 다 먹은 적이 없었다. 그러지 못했던 이유는 단순했다. 근사한 컵에 담아 마시지 않아서다. 만들지 않으면 결코 생기지 않는, '여유'를 만들어내지 않아서다. 아무 컵에나 아무렇게나 따라서 얼음과 물을 섞어 휘휘 저어 한 컵을 원샷하면 될 것을, 그 전엔 그럴 여유가 없다는 핑계로 안 먹었다. 그때가 지금보다 정말로 그럴 시간이 없었을까.
우리 어머니의 명언이 있다. '힘은 내면 난다.'
그 말이 여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여유는 내면 난다.‘
마음에 드는 것들에 둘러싸여 있으면 없던 것들이 생겨난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딱히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이 눈에 띄는데도 그대로 두면, 은연중에 체념과 울분이 쌓인다. 평소엔 그걸 잘 모른다.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을 버리기만 해도, 이를 확실히 알 수 있다.
--- 「잘 먹고 잘사는 법」 중에서
내 몸에 걸친 것이 '적재적소'일 것인가, '자기표현'일 것인가.
마치 헬스계의 영원한 화두, '자극이냐, 중량이냐?'와 비견될 만하다. 가치를 두는 기준을 적용해서 달리 표현해보자면, '남에게 영감을 주는 사람이 되자.'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사람이 되자.' 정도의 입장 차일까. '남에게' 가 아니라 '나에게' 방점을 찍으면, '주목을 받는 재미냐, 쓸데없는 시선을 받지 않
는 편안함이냐'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결국 '남'을 배제한 개념이 되진 못한다.
온전히 '나'만을 기준 삼아 다시 생각해보면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다. '몸에 편한가, 편하지 않은가.'
--- 「궁극의 옷이 뭐냐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