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내가 소속된 그룹 내에서 내 역할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기 위해 위키백과에서 ‘집단역학group dynamics’에 대해 검색해보았고, 거기서 내 진짜 자화상을 발견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한 집단이 대개 알파, 베타, 감마, 오메가 그리고 대적자로 구성된다고 하는데, 나는 알파, 즉 우두머리 타입은 분명 아니다. 알파의 똘마니나 상담자쯤 되는 베타도 내 타입이 아니고, 단순 가담자인 감마와도 거리가 멀다. 난 대적자도 아니다. 대적자는 대개 걔네들의 공격 대상이 되곤 하는데, 난 그렇진 않으니까. 난 오메가 타입이다. 오메가는 한마디로 설명하기 힘든, 복잡다단한 캐릭터다. 위키백과에서도 알파나 베타나 감마보다 훨씬 더 많은 지면을 오메가를 설명하는 데 할애한다. 흠, A그룹 멤버들의 짧은 대화 하나를 들어보면 집단 안에서 오메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대충 감이 잡힐 듯하다.
--- p.18 '1장 관계와 역할' 중에서
만약 똑같은 내용의 대화를 현실에서 한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예컨대 톰이라는 남자아이가 자신의 이상형인 여자아이에게 말을 걸기로 결심했다고 치자. 그런데 그 여자아이 뒤에는 여덟 명의 보디가드가 서 있다. 그 여자아이가 ‘보호자들’ 없이 혼자서 교실 밖으로 나가는 일은 절대 없다.
톰: 저기……, 난 톰이라고 해.
보디가드 1: 그래서 어쩌라고?
이상형 여자아이: (묵묵부답. 주변 여자아이들의 시선이 신경 쓰여서 그런 걸 수도 있고, 〈트와일라잇〉이 뭔지도 모를 것처럼 생긴 톰을 상대하기 싫은 걸 수도 있다.)
톰: (보디가드들 쪽을 바라보며) 페넬로페랑 단둘이 좀 얘길 나누고 싶은데……?
보디가드 8: 얘가 그러기 싫다잖아! 내 말이 맞지, 페넬로페?
페넬로페: (보디가드들의 눈치를 보며) 응, 맞아. 우리 딴 데 가서 놀자.
이래서 페이스북이 더 편하다. 그뿐 아니라 페이스북에서는 이상형 여자아이에 대한 주요 정보를 수집할 수도 있다. 그 아이가 어떤 친구들이랑 친하고, 어떤 음악을 들으며, 어떤 영화를 좋아하고, 어디 어디를 가봤고, 걔가 올린 사진에 누가 ‘좋아요’를 눌렀는지, 그 아이는 어떤 사진들에 ‘좋아요’를 눌렀는지를 알 수 있다.
--- p.39 '2장 SNS' 중에서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여자아이들은 다 알면서 일부러 남자아이들을 자극하는 걸까, 아니면 정말로 아무런 생각이 없는 걸까? 두 가설 모두 그다지 믿음이 가지 않는다. 어쨌든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또 한 가지는 여자아이들이 들고 다니는 ‘포르노 백’이다. 포르노 백은 그러니까……, 반라의 남자 사진이 인쇄되어 있는 쇼핑백인데, 모델의 손은 대개 남성의 상징 위에 고이 놓여 있다. 아니, 그니까 내 말은, 멋진 남자의 반나체 누드가 싫다는 게 아니다. 내 말은 그냥……, 그러니까 만약 남학생들이 반라의 여체가 인쇄된 쇼핑백을 들고 돌아다니면 어떻게 될까? 분명 변태로 낙인찍힐 것이다!
--- p.61 '3장 외모와 패션' 중에서
아직도 게임이 잠재적으로 외톨이와 범죄자, 무차별 난사극의 주인공을 양산한다고 믿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곰곰이 생각해보시라.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우리 반 남자아이들 대부분은 지금쯤 어딘가에서 죄 없는 행인들을 향해 총질을 해대고 있어야 한다. 적어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주먹질 몇 번쯤은 했어야 한다. 근데 그렇지 않다. 모두들 정상적으로 잘 살고 있다. 게다가 또 한 가지 의문점이 든다. 게임이 그렇게 유해하다면 영화는? 폭력적인 소설이나 만화는? 그것들도 모두 잠재적 범죄자를 양산하는 온상이 아닐까?!
--- p.99 '5장 컴퓨터 게임' 중에서
또 다른 문제는 야동을 너무 많이 보면 머리에 벌레가 생긴다느니, 머리에 똥만 가득차서 정말 아름다운 것들에 대해 무감각해진다느니 등등의 ‘썰’에 관한 건데, 다행스럽게도 그 똥들도 우리가 흔히 아는 그 똥처럼 자연스럽고 신속하게 배설된다! 그러고 나면 야동을 본 사람 머릿속에도 손을 마주잡는 것만으로도 느낄 수 있는 따스한 마음 같은 게 들어갈 공간이 생긴다. 아래위로 겹쳐진 채 무얼 하는 게 아니라 나란히 서서 그저 걷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생기는 것이다. 당장 나만 해도 그렇다. 내 이상형 소녀와 차 한잔을 마시며 얘길 나눈다는 상상만으로도, 걔가 날 향해 미소 짓는 모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아니, 그 사람이 같은 하늘 아래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내 가슴은 이미 터질 듯 부풀어 오르고 내 몸이 구름 위를 붕붕 떠다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 p.109 '6장 섹스와 포르노' 중에서
아, 근데, 정말이지, 자그마치 십 년이다, 십 년! 그 십 년 동안 얼마나 많은 걸 달달 외워야 했던가! 어차피 시간 지나면 다 까먹을 거, 대체 어디에 쓰려고 그렇게 죽기 살기로 외웠을까? 어쩌면 학교의 교육 목표가 결국 우리가 살아가면서 해야 하는 많은 일들이 따분하기 짝이 없고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걸 미리 깨닫게 해주는 것은 아닐까? 그게 아니면 대체 그 어려운 수학 공식들을 왜 외워야 한단 말인가? 어차피 수학을 좋아하는 녀석은 두 놈밖에 없는데! 나머지 침묵하는 대다수는 그 공식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나중에 분명 써먹지도 않을 텐데!
--- p.130-131 '7장 학교와 공부의 의미' 중에서
친구들 앞에서 제발 “아이고, 귀여운 내 새끼” 같은 말 좀 하지 마세요! 대체 그게 뭐예요? 그냥 이름으로 불러주시면 안 돼요? 그 귀여운 엄마 새끼가 어느덧 열다섯 살이 되었고, 다리에 털도 숭숭 나 있다고요. 이제 더 이상 사탕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던 네다섯 살짜리 아이가 아니라고요! 진짜로 엄마는 친구들이랑 같이 있는데 꼭 두 팔을 활짝 벌리고 다가와선 온갖 주제에 대해 말씀을 하신다. 실제 얼마 동안인진 몰라도 우리가 느끼기엔 최소 세 시간은 되는 것 같다. 제발 부탁이니 그런 수다는 내 친구들 말고 엄마 친구분들과 함께 떨어주세요!
--- p.163-164 '9장 부모님과의 갈등' 중에서
사실 처음엔 뭐 그저 그런 책이겠거니 싶어서 관심도 없었다. 근데 표지에 새겨진 ‘사춘기’라는 단어를 보는 순간, 갑자기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게 책 제목이었다. 제목 아래쪽에는 제목보다는 조금 작지만 여전히 ‘진하게’ 폰트로 ‘자녀 교육이 힘든 부모를 위한 지침서’라고 적혀 있었고, 그 아래쪽엔 더 작은 글씨로 ‘질풍노도의 시기를 가볍게 헤쳐나가는 방법’이라고 적혀 있었다. 예스퍼 율Jesper Juul이라는 사람이 쓴 책이었는데, 표지 한가운데에는 진짜 못생긴 컨버스 척 테일러 한 켤레가 어둠 속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왠지 모르게 그 그림이 악 중의 악, 악 그 자체를 상징하는 것 같았다. 참고로 척 테일러는 청소년들이 많이 신는 운동화 중 하나다. 그걸 보는 순간, 난 심기가 불편했다. 왜 우리 엄마 아빠가 이런 책을 읽어야 하지? 나랑 동생을 감당하기 힘들었던 걸까? 왠지 모를 배신감도 들었다. 아니, 대체 왜 그러시냔 말이다. 나랑 관련해서 문제가 있으면 나랑 직접 얘기하는 게 맞잖아? 책 따위에서 무슨 정답을 찾겠다는 건지, 나로선 정말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책을 살 때, 엄마 아빠는 분명 책 안에 자기들 마음대로 날 어떻게 해볼 비법이 들어 있다고 믿었겠지? 그 책을 읽고 나면 지금 당신들 앞에 닥친 문제를 무사히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셨겠지?!
--- p.178-179 '10장 교육 방식' 중에서
사춘기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신의 단점과 결점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자기 자신 및 자기가 좋아하는 이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법도 훈련해야 한다. 너무 쉽게 절망하거나 포기해선 안 된다. 언제나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서 조금씩 성장해야 한다. 게다가 사춘기가 끝난다고 해서 인생의 모든 문제가 싹 사라지는 게 아니다. 인생의 매 단계마다 우리가 극복해야 할 난관이 도사리고 있다. 취직만 해도 그렇다. 한 번 입사하면 최소 몇 년을 다니게 될 직장을 선택하는 일이 어찌 사춘기를 극복하는 것보다 쉽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래도 괜찮다.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이면서 새로운 난관을 극복할 힘도 생길 테니까.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위기를 극복할 것인지에 관한 답은 그렇게 열심히 살다 보면 언젠가 깨닫게 될 것이다. 뭐, 시간이 지나면 그렇게 될 거라는 말이다.
--- p.198 '11장 사춘기의 감정 변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