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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카르테 0,1,2,3 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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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카르테 0,1,2,3 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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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05월 02일
쪽수, 무게, 크기 1512쪽 | 1502g | 128*188*80mm

중고도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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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   zzom1   평점4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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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이 지역을 지탱해왔고 모든 일에 잘 단련된 능력 있는 병원이야. 너를 불합격시킬 정도로 바보 같은 실수는 안 할 거야.”
친구의 말에 이치토는 미소조차 짓지 않고 대꾸했다.
“어느 쪽이든, 이대로만 가게 된다면 나는 혼조병원, 지로는 시나노대학의 외과, 그리고 너는 도쿄로. 완벽하게 모두가 뿔뿔이 흩어지게 되는 거야. 특별하게 시게 씨와의 이별을 슬퍼해야 할 의리 같은 것도 없어.” --- p.52

“어떻게든 의사 수를 늘려주지 않으면 얼마 못 버틴다.”
“사무 쪽에서 대규모로 의사를 모집하기 위해 꽤나 힘쓰고 있다던데, 반응이 영 신통치 않은가 보네요. ‘이런 촌구석에 있는 더럽게 바쁘기만 한 병원 따위에 좋다고 올 특이한 놈이 있을 리 있겠어?’라면서…… 이누이 선생님도 말하시더라고요.” --- p.117

“인간에게는 말이야. ‘신의 카르테’라는 것이 있어.”
갑작스러운 그의 말에 이치토는 얼굴을 들어 올렸다.
“네?”
농담이라고 생각했지만 왕너구리 선생님은 어디까지나 진지하기만 했다.
“신이 각각의 인간에게 적어놓은 카르테가 있어. 우리 의사는 신이 적은 카르테 위에 덧쓰고 있는 존재일 뿐이라는 거야.” --- p.230

“신슈에 와서 신기한 사람과 만나게 되었대.”
“응?”
“예전에는 산에 오면 산에게 질 것 같은 기분이 들던 적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 사람이 자기가 돌아오는 것을 기다려주고 있기 때문에 어떤 눈보라 속에서도 반드시 이기고 돌아가게 되었다고 말하더라. 너무 멋진 얘기지.”
“뭐야. 가타시마 씨, 남자친구 있는 거야?”
“뭐야라니? 실망한 듯이. 부인 앞에서.”
--- p.290
“어이, 또 대박 당직을 섰다면서?”
난데없이 거침없는 큰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파 위에서 고개만 돌려보니 짐승처럼 시커먼 거구의 사나이가 뭘 착각했는지 백의를 걸치고 서 있다.
나는 몹시 두려워서 일단 작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죄송하지만 여기는 병원 의국으로 관계자 이외에는 출입금지 구역입니다. 특히 피부가 너무 까맣고 덩치가 큰 남자를 보고 환자분들이 놀라면 몹시 위험하므로…….”
“바보 같은 소리 한다.”
스나야마 지로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 p.20

‘온타케소(御嶽?).’
커다랗고 오래된 입간판을 매단, 지은 지 20년이 지난 유령 저택 같은 2층짜리 목조 가옥이다.
원래는 여관으로 경영하던 건물인데, 지금은 각각의 방을 다른 사람에게 빌려줘 하숙으로 이용하고 있다. 1층, 2층에 방이 꽤 많고, 긴 복도가 각 방을 연결하는 웅장하고 호화로운 설계인 것을 보아 한때는 꽤 호황을 누렸을 것이다. 지금은 그 빛나는 역사가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모양새만큼은 훌륭한 현관 옆에는 멋진 매화 고목이 가지를 펼치고 있는데, 전혀 손질되지 않은 가지들이 처마나 기와에 엉겨 붙어 거의 드넓은 숲 속 유적과도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 p.43

“그 핏기 없는 안색으로 회진하면 오히려 환자 상태가 나빠져. 병동 환자 40명 정도는 가끔 내가 정리해도 돼. 수술 후 관리 쪽은 내가 스나야마에게 부탁해두겠네. 어떻게 된 건지 젊은 간호사에게 미쳐서 제정신이 아닌 것 같지만, 외과의로서 솜씨는 나쁘지 않은 남자야. 걱정할 것 없네. 자네는 빨리 집에 가서 잠이나 자게나.”
말씀 하나하나가 합당하기 그지없다. 이럴 때는 억지로 무리하지 말고 그 말을 고맙게 받아들이는 게 좋다. 애당초 머릿속에서는 3일치 피로와 어제 마신 술의 잔재가 손을 마주 잡고 불쾌한 춤을 추고 있다 --- p.74

“일단 목숨은 건졌군. 고마워, 지로.”
“그럴 거 없어. 피차일반이지. 그나저나 이거 어떻게 할 거야?”
“생각해봐야지.”
“생각한들 치료법이 있어?”
“치료법을 생각하는 게 아니야.” 나는 사진 속의 암세포 덩어리를 노려보면서 말을 이어갔다. “본인에게 어떻게 이야기할지 생각하는 거야.”
나는 의사이다.
의사는 치료만 하는 게 아니다. --- p.104~105

약물이나 항생제 등을 이용해 끊어지는 목숨을 연장한다는 것은 사실 오만한 일이다. 원래 수명은 인간의 지혜를 벗어난 영역이다. 처음부터 운명은 정해져 있다. 흙에 묻힌 정해진 운명을 파내어 빛을 비추고 좀 더 나은 임종을 만들어간다. 의사란 그런 존재가 아닐까.
--- p.181
“이지(理智)에 치우치면 모가 난다. 감정에 말려들면 낙오하게 된다.”
“고집을 부리면 외로워진다. 아무튼 인간 세상은 살기 어렵다……. 잘 기억하고 있네?”
“한 수 둘 때마다 『풀베개』를 첫 구절부터 들려주었지. 잊으려고 한들 잊어버릴 수 있나. 다만 우리 때 장기부가 없어졌다는 게 유감스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애초에 학부 생활을 열심히 안 하는 사람들만 긁어모아서 만든 것 같은 동아리였지. 실제로 활동했던 멤버는 너와 나 정도였으니까.” --- p.45

이 사건은 지로가 말한 ‘장기부 삼각관계 사건’이라는 이름으로 위아래 두 학년에 걸쳐 유명세를 탔다. 하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삼각관계라고 불릴 정도의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신의 축복을 받은 커플 옆에서 신통치 않은 문학청년이 짝사랑을 했을 뿐이라는 것이 문학청년의 유일한 항변이었다. --- p.106

의국 소파에서 왕너구리 선생님과 늙은 여우 선생님이 장기를 두고 있다.
한밤중에 의국으로 돌아온 나는 그런 보기 드문 광경을 목격하고 걸음을 멈추었다.
낡은 장기판을 사이에 두고 훤칠한 풍채의 왕너구리 선생님과 비쩍 마른 늙은 여우 선생님이 마주 보고 있는 모습은 꽤나 기이한 풍경이다. 마치 염라대왕과 사신이 저승의 업무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는 듯하다. --- p.185

온타케소에 불이 켜져 있다.
새벽 2시이다.
고요한 주택가의 집들이 모두 잠들어 있는 가운데 폐가같은 온타케소에만 불이 켜져 있는 풍경은, 허접한 괴담 영화의 한 장면 같다. 게다가 출입구로 들어서자 시끌벅적한 목소리까지 들려왔다.
온타케소 1층에는 6평짜리 큰 다다미방이 있다. 여관으로 운영되던 시절에는 식당으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지금은 주민들의 공동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는데, 판자를 댄 바닥 위에 고타쓰가 하나 놓여 있는 것이 전부이다.
복도에서 장지문을 열어 그 방을 들여다보니 고타쓰를 에워싸고 둘러앉은 아내와 남작과 야쿠스기 군의 모습이 보였다.
“이치 씨, 지금 왔어요?”
가장 먼저 밝은 목소리를 건넨 사람은 말할 것도 없이 나의 아내이다. 그 한마디가 가슴속 깊이 스며들면서 자연스레 안도의 한숨이 새어나왔다. --- p.249~250

“진심이야?”
“진심입니다. 그래서 검사과의 협조를 받고자 찾아왔습니다.”
홀랑 벗어진 머리를 벅벅 긁으면서 기사장이 나를 쳐다보았다. 그 손이 패널 위에 멈춰져 있다.
“괴짜 구리하라라더니, 정말이네. 제정신인 것 같지가 않아.”
--- p.352~353
“그래도 오늘은 해피 버스데이잖아요? 특별하게 드린 거예요.”
나는 또다시 허를 찔려서 얼굴을 들었다.
도자이는 얇은 입술로 부드럽게 미소 짓고 있었다.
“선생님, 드디어 20대를 졸업했네.”
“……졸업 시험도 안 치렀는데 맘대로 내쫓아버리니까 뭔가 섭섭하기 짝이 없다.”
“그렇게 미움 받을 소리를 나불대다 보면 본인도 모르게 마흔 살이 되어 있을 거예요.” --- p.81

“학사님은 자신에게 맞는 길을 가다 보면 결국 비범한 장소에 다다를 수 있음을 증명해낸 살아 있는 표본이라고 했슴다.”
쿵 하고 가슴을 때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상처받고 이곳을 떠난 친구를 그렇게 해석하고 있는 남작의 시선과 다정함이 내 마음속 어딘가에서 공명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야쿠스기 군의 걸음도 의미 있다는 뜻이겠지. 예를 들면 화려한 꿈이나 희망이 없다고 해도 일단 행동 그 자체만으로 의미를 가지니까.” --- p.165~166

“여자가 비밀인 척하면서 말을 안 해주면 억지로라도 들으려고 하는 노력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남자가 할 일이에요.”
“모순으로 꽉 들어찬 요구 같습니다만…….”
내가 얼굴을 찡그리자 탄식과 함께 큰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선생님은 그렇게 소설을 읽고도 여자 마음을 아예 모르네요.”
이상하게 요즘 꽤나 많이 듣는 말이다.
적어도 나쓰메 소세키 소설을 통달하고 있다고 해서, 여자의 마음까지 통달하게 된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도 없다. 기껏 여자라는 생명체가 지극히 난해한 생명체라는 것만 알게 되었을 뿐. --- p.187

시마우치 노인은 걱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살아가기 위해서 어떻게 할 것인가가 아닌, 살아야 할지 죽어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었던 것이다. 수술하는 편이 살릴 수 있는 것인지, 하지 않는 편이 살릴 수 있는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던 나의 생각 속에서 노인은 처음부터 울타리 밖에 있었던 것이다.
“단지 마음에 걸리는 건 손주뿐입니다.”
--- p.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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