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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돌보는 시간

고양이를 돌보는 시간

백지영 | 알렙 | 2022년 05월 14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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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5월 14일
쪽수, 무게, 크기 252쪽 | 382g | 144*210*15mm
ISBN13 9791189333522
ISBN10 118933352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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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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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엔 학부모 상담이 예정돼 있었다. 그 사실을 알면 문 여사는 흔쾌히 참석할 것이다. 학교에 오기 위해 그녀는 팩을 하고 마사지를 할 것이다. (……) 하지만 그녀가 간 곳이 라스베이거스라면 그녀는 쉽게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 나는 우선 방을 얻고 문 여사를 기다릴 계획이다. 젊음의 묘약을 위한 여정에서 돌아올 그녀, 나의 엄마, 아니 언니를 위해.
--- 「언니를 위하여」 중에서

꼭 하루 만에 초원마트 앞에 선 종구는 몸이 천근 같았다. 수술을 마치고 나온 노랑머리가 아이를 잃은 걸 알곤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울고불고 난리를 치는 바람에 곁을 떠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비가 내린 다음이라 밤하늘이 몹시 맑았다. 그 하늘 밑에 불 꺼진 초원마트의 간판을 바라보다가 종구는 갑자기 충호 놈이 흥얼대던 노래가 떠올랐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백 년 살고 싶어.”
--- 「저 푸른 초원 위」 중에서

“우와! 노란 리본이다!”
그때까지도 그저 텔레비전에서나 보던 풍경이었다. 광장엔 여전히 노란 리본이 가득했다. 그리고 천막 속의 사람들도 여전했다. 하나같이 아직도 슬픔을 떨치지 못한 얼굴이었다. 아니 시간이 갈수록 더해진 슬픔과 분노와 좌절이 켜켜이 쌓인 얼굴. 나는 아이의 손을 잡곤 걸음을 빨리 했다. 아이는 천막 속 사람들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제야 아이의 머리에 노란 리본이 눈에 들어왔다. 왜 하필 그걸 달아줬을까. 후회가 밀려들었다.
--- 「노란 리본」 중에서

표백제를 들이부은 듯 머릿속이 온토 하얬다. 갑자기 우리들 모두 형편없는 집안의 일원이 된 것 같았다. 아빠가 자동차 부품 공장에 다니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엄마가 그 나이까지 일을 다니는 것도 오빠가 철학과를 나온 것도 내가 전문대를 나온 것도 모두 마음에 안 든다고 했다. 집안이 마음에 안 든다는 말은 한동안 메아리가 돼 동굴 속처럼 집안을 울렸다. (……) 그래도 내겐 더없이 자랑스러운 가족이고 집안이었다. 그런데 누군가에겐 그렇게 형편없는 집안일 수도 있는 모양이다.
--- 「고양이를 돌보는 시간」 중에서

“우리 영아 결혼 날짜도 잡혔는데 수분 엄마 때문에 큰일이네.”
엄마는 이제 이런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다녔다. 복터의 위상에 더 이상 흡집을 내기 싫은 걸까. 아니 어쩌면 엄마는 두려운 건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정말 우리 집엔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나는 엄마에게 그것이 무엇인지 묻지 못했다. 모든 진실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으니까.
--- 「바람 부는 날」 중에서

어디서 날아오는 걸까. 어느 순간부터 꽉 막힌 도로에 벚꽃이 비가 되어 날리고 잇었다. (……) 나는 꽃비가 내리는 하늘을 다시 올려다봤다. 그 하늘 위엔 역시 높다란 크레인이 솟구쳐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아버지가 있었다. 일생에서 가장 큰 용기를 냈을 아버지가, 봄날의 햇살처럼 눈부시게.
--- 「그 봄날의 당신」 중에서

나는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담배 한 보루를 샀다. 이제 금연이고 뭐고 때려 치우고 담배 한 보루를 모조리 피워재낄 생각이었다. 하지만 손가락 사이에 끼어 있는 담배에 여전히 불을 붙이지 못한 채였다.
나는 담배를 손에 든 채 밖으로 나갔다. (……) 손가락 사이에서 고개를 까닥이던 그것은 한심한 듯 나를 빤히 올려다봤다. 여전히 불을 붙이지 못한 담배였다.
--- 「금연」 중에서

“이리 오셔서 케이크 좀 드려 보세요.”
나는 엄마의 생일 케이크를 동네 어른들과 나눠 먹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케이크 상자를 보는 눈들이 갑자기 싸늘해졌다. 순간 아차 싶었다. 우리 동네 어른들은 절대 용식이의 빵은 먹지 않았다.
(……)
“그 바보 같은 놈이 사랑이랍시고 거들먹거리더니……”
속보에 이어 누군가 하는 혼잣말이 들렸고, 가게 안의 어른들은 저마다 알 수 없는 눈빛을 주고받으며 웃음을 흘렸다.
--- 「온달이 빵」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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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영의 문장들 역시 존재의 벽을 부수고 선택할 수 있는 특별한 방법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평범한 문장들과 익숙한 서사를 택하면서도 우리가 잘 보지 못하는 소유와 그에 연결된 차별과 소외의 문제를 문장 안에 섬세하게 심어 놓고 있다. 그녀의 인물들은 타인의 시선 안에서 규정된 수동적 자아의 주인이기도 하고, 역으로 자신의 편견 아래 타인의 가능성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사회적 시선의 무리이기도 하다. 백지영의 인물들 안에서 우리 모두의 모습을 만나게 하는 것. 그것이 백지영의 소설이 만들어 내는 윤리의 자리다.
- 김영임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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