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화용론 연구의 거시적 관점에 대한 것이다. 이때 '거시적 관점'이란 언어 자체의 내부적 규칙이나 원리만으로 최소한도의 발화 맥락 속에서의 언어 사용을 연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언어를 사용하는 화자와 청자 (또는 저자와 독자)의 선택과 이해 과정에 영향을 주는 상호주관적이고 역동적인 사회적, 제도적, 사상적, 문화적 요인들을 아우르는 연구 시각을 말한다. 즉 이 책에서는 '자립적인 문법의 틀에 갇힌 언어학'이 아니라 '문법에 바탕을 두되 문법을 뛰어넘는 의사소통의 언어학'을 지향하는 거시화용론(macropragmatics)이란 과연 무엇이고, 그것이 왜 필요하며, 그 연구 방법과 주요 논점은 무엇인지에 대해 미시화용론(micropragmatics)과의 대비를 통해 실제 수집한 다양한 사례들을 중심으로 이론과 실제를 병행하여 서술하고자 한다. 우선 거시화용론과 미시화용론의 차이에 대해 주목하면, 화용적 해석에서 시간을 논할 때 미시화용적 시간은 상대적으로 순간적이라고 볼 수 있는 '발화 시간(time of utterance)'이지만, 거시화용적 시간은 Verschueren(1999)이나 Koselleck(2004)이 말하는 '역사적 시간(historical time)'이 기본 단위가 된다. 또한 개인적 차원의 단편적 '생각(idea)'이 미시화용적 관점의 주된 요소라면, 생각의 조직화된 집합체(organized collection)로서 '공론'이나 '사상(ideology)'은 거시화용적 관점의 주된 요소가 된다. 아울러 미시적 관점에서 화용적 행위의 주체는 기본적으로 '개인(individual)'이지만, 거시적 관점에서의 화용적 행위의 주체는 특정 문화나 역사, 직업, 교육, 제도, 규범, 의식 등을 공유하는, 소규모 또는 대규모의 집단으로서, '잘 정의된 개인들의 집합(well-defined set or group of people)'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미시화용적 관점은 사적이며 주관적인 판단을 하는 개인에 의한 언어 사용과 그 개인의 일상적 맥락(day-to-day context)에서의 언어 표현에 우선적인 관심을 갖는 반면, 거시화용적 관점은 자연스럽게 탈개인화되고 상호주관적인 존재로서의 개인과 개인들 사이에서의 의사소통 및 개인과 집단, 집단과 집단, 문화와 문화 사이의 의사소통에 관심을 갖게 된다. 중요한 것은 언어 사용에서의 미시적 과정과 거시적 과정은 언어 사용의 맥락과 목표 및 관심 방향이 다르지만 서로 완전히 분리된 것은 아니며 끊임없이 상호작용한다는 점이다. 이 책에서는 미시적 언어 사용을 기술하기 위해 사용된 개념이나 원리가 거시적 언어 사용에서 어떻게 확장되거나 보완되어야 하는지, 미시화용론과 거시화용론의 설명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에 대해 초점을 맞춘다. 요약하자면 화용론 연구의 거시적 관점, 줄여서 거시화용론(macropragmatics)이란 언어적 의사소통의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대맥락에서의 인간 언어 사용이 갖는 상호인간적(interpersonal)이거나 집단적(collective)인 특성과 목적을 밝히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이는 문법과의 관계하에 소맥락에서의 개인내부적(intrapersonal), 인지심리적 언어 사용에 초점을 맞추는 화용론 연구의 미시적 관점, 즉 미시화용론(micropragmatics)과 대비되는 연구 자세이다. 다음 절에서는 이를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 우선 화용론 연구의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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