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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바람의 시간
중고도서

스페인, 바람의 시간

: 숨 쉬기조차 권태로울 때 나는 스페인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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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10월 23일
쪽수, 무게, 크기 384쪽 | 638g | 150*210*30mm
ISBN13 9788965702795
ISBN10 8965702798

중고도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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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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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보다 이별이 어렵고 결혼보다 이혼이 어렵다지만 나는 때때로 이별과 이혼을 생각했다. 태어나는 것보다 죽는 것이 백배는 힘들다지만 나는 매일 죽고 싶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더 열심히 살고 싶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라고 믿었다.
그 순간에도 누구는 희망을 안고 사무실 문을 열고, 누구는 힘들어 사무실 문을 닫고, 어디선가 아기는 태어나고 누군가는 죽어가고 있었다. 매 순간 내 마음은 이상을 쫓는 돈키호테와 돈과 권력을 쫓는 산초 사이를 버겁게 오가며 방황하고 있었다. 위대한 이상으로 무장하고 돌진하지만 결국은 수많은 상처를 안고 허탈하게 돌아오는 돈키호테였다. _p.27

스페인에서는 나이를 묻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었다. 나의 전직 또한 묻는 사람이 없었다. 그들은 나의 현재를 사랑하고 지금 이 순간을 존중해주었다. 그 사람의 형태와 이미지는 바로 그 순간의 삶이 결정했다. 스페인에서 나이 때문에 고독한 적은 없었다. 그 순간 몰입하고 있는 열정만이 나를 규정하는 나이였다. 매순간 분출하는 한숨과 아쉬움과 만족과 고독과 열정만이 내 인생의 나이를 결정했다.
비슷한 표정으로 열을 지어 달리고 있는 마드리드의 거리 풍경. 길을 따라서 병풍처럼 줄지어 있는 중세 흔적의 건물들은 100년 전 고전주의 얼굴이지만 그 속에는 현실과 미래가 담겨 있었다. 성벽처럼 육중한 벽면에 자로 잰 듯 반듯하게 난 사각형 창문들은 비슷한 마감 재료를 두르고 있지만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은 각자 다른 꿈을 꾸고 있었다. 별반 다르지 않은 그 표정 속에 다름이 존재하고 있었다. _p. 118

서울의 줄을 놓아버리고 마드리드에 뛰어들 때까지는 희극이었고, 마드리드의 생활은 비극이었지만 끝나고 나니 다시 희극이었다. 서울로 돌아올 때는 희극이었지만 현재 서울 생활은 비극과 희극이 널뛰기하고 있다. 감정적인 추락도 마찬가지다. 추락할 때 두렵지만 추락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매순간 희망을 건져 올리는 유일한 지렛대는 약점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장점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마흔넷의 화려한 외출에서 얻은 가장 아름다운 추억은 숨이 막혀 질식할 것 같은 순간에 참는 것보다 골프공처럼 튀고 싶은 방향으로 날아가는 것이다. 희비의 쌍곡선을 그리며 날아갈지라도 날아보니 알 수 있었다.
막힌 감정이 봇물 터지듯 시원하게 흘렀다. 삶에 동맥경화가 오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때 추락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때로는 동아줄을 놓아버리고 세월에 삶을 맡겨버리는 것도 필요하다. _p.141

과거는 흘러간 시간의 허물이다. 어제까지 내가 무엇을 했느냐보다 오늘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마흔다섯에 맞이한 마드리드 건축 대학에서의 삶은 가슴 뛰는 전율이자 내 인생의 혁명이었다. 마지막 청춘의 마중물이었다. 아내와 사랑의 눈길을 주고받던 지난 감정은 벌써 빛바래졌지만 마드리드의 청춘은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살아 있다. 시간이 만들어놓은 나이의 가면을 벗겨준 마드리드의 청춘이 고독한 내 인생을 파랗게 색칠해주었다. _p.154

낡은 집을 보수하거나 중세 고건축물을 복원하는 것이 나의 전공이었다. 중세의 끄트머리가 내 품에 안겼다. 후배가 직접 페인트칠하고 전구까지 달아놓은 거실의 풍경은 70년대 아파트 풍경처럼 낯설었다.
계단과 문은 세월의 풍파에 오그라들고 비틀어져 제대로 이가 맞지 않았다. 오랜 시간의 깊은 추억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마치 중세의 이름 모를 공간에 안겨 있는 것처럼 어색한 낭만이 좁은 다락방을 채우고 있었다. 난방도 되지 않고 더운물도 나오지 않는 화장실은 중세의 시간을 품고 있었다. 천장에 부기가 달려서 볼일을 다보고 나서는 줄을 당겨야 했다. 와당탕탕! 물줄기가 굽이치며 내려가는 소리가 마치 작은 폭포수가 떨어지는 것 같았다. _p.163

혼자서 하는 여행은 고독하고 귀찮은 일이다. 여행 일정을 짜는 것부터 장소를 선정하는 것까지 모두 혼자 알아서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좋은 점은 나의 마음을 사로잡는 장소와 공간에서 충분하게 시간을 즐길 수 있는 것이고, 나쁜 점은 피할 수 없는 위험을 혼자 감내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보고 느끼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만지고 호흡하고 체험하며 그들의 문화를 두드려보는 것은 여행의 거친 속살을 직접 만지는 일이다. 혼자서 하는 여행은 일방적인 나의 관점을 허락하지 않는다. 철저하게 그들의 문화와 풍습 속으로의 동참이자 참여하는 체험이다.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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