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만으로도 눈부신 생이 홀로/검은 길바닥의 화염 정적 먹으며”(「줍지 못한 실크스카프―뱀)) 이진명의 시는, 그의 외모처럼, 노련하지만 아름다움이 명징하다.
그것은, 거대한 뱀을 내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럴 뿐 아니라, 내장하고 있음으로 더욱 그렇다. 그리고, 시력 30년 가까운 내가 고개를 주억거리게 된다. 그래 문학이란, 시란 바로 이런 것이다. 그게, 느닷없지도 않다.
“가는 목 가는 다리 갸름한 얼굴 가만한 몸매가 합쳐 퍼뜨리는/ 부드러운 평화”(「불안한 사슴 사진))는 ‘불안한 사슴 사진’을 보는 인간의 한 장면이지만, 「바위―숨은벽」에 이르면 뱀의 말이 뱀의 말인 채로 더 노련하고, 명징하다. 이것은, 설령 혼돈이나 착각이라고 하더라도, 명징함이 워낙 무거운 그것이다.
3부 ‘바위’ 연작은 죽음과 생활이 살을 섞는 진경을 보여주고 있거니와, 더 놀라운 은, “처음엔 숲 쪽으로 비켜 서 있어 잘 보이지 않았으나/다가갔더니 한 발짝씩 나를/저의 양철 구김 길 속으로 구부러뜨렸다/계속 구부러져 들어가던 나는/국제 뭐라는 것이 이렇게/조용하고 외딴 것인 줄 처음 알았다”(「국제연등선원))에서 보이던, 죽음이 자취를 감추는 그 자취가, 바야흐로 생활을 윤기나게 하는, 대미의 4부다.
“저 책장만 안 쓰러지면/집 안의 사람들도 쓰러지지 않는가”(「정돈된 집에서는))는 불안의 뼈대마저 아름답고, “괜찮다고 어서 먼저 내려가라고 애써 아픔 참던 언니가 아무래도 동생이 내민 등에 업혀야겠다고 몸을 일으켜 딸이 되었”다는 이야기(「자매는 어떻게 모녀가 되나))는 무지 슬프면서도 슬픔이 심오함의 테두리를 넘치지 않고, 오히려 슬픔의 제 정곡을 찔리는 절묘한 ‘이야기=형용’을 이룬다. 아, 이런 것이 문학, 특히 시구나!
김정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