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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만치 혼자서

저만치 혼자서

[ 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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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6월 02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264쪽 | 368g | 128*188*20mm
ISBN13 9788954686921
ISBN10 8954686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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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 한마디

[『강산무진』 이후 16년, 김훈 두번째 소설집] 단단한 문장의 힘이 돋보이는, 작가 김훈의 소설집. 그는 표제작 「저만치 혼자서」 등 총 일곱 편의 소설을 통해 흐르는 시간 앞에서 약해지고 허물어질지라도, 무수한 순간 두렵고 외로울지라도 그저 묵묵히 살아내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이렇게 삶은 글이 되고 글은 삶이 된다. -소설 MD 박형욱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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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억 년의 새벽마다 수평선 너머에서 해가 떠올라 빛과 어둠이 스미면서 갈라졌지만 바다에는 시간의 자취가 남아 있지 않았다. 바다의 시간은 상륙하지 않았다. 바다는 늘 처음이었고, 신생新生의 파도들이 다가오는 시간 속으로 출렁거렸다. 아침에, 고래의 대열은 빛이 퍼
지는 수평선 쪽으로 나아갔다. 고래들이 물위로 치솟을 때 대가리에서 아침햇살이 튕겼고, 곤두박질쳐서 잠길 때 꼬리지느러미에서 빛의 가루들이 흩어졌다.
--- p.9~10 「명태와 고래」 중에서

구두에서도 철호의 발냄새와 철호가 밟고 돌아다닌 땅의 흙냄새가 났다. 싱크대 배수관이 막혔거나 에어컨, 냉장고가 고장나서 수리공을 부를 때, 새로 산 세탁기를 배달시킬 때, 나는 여자 혼자 사는 집안으로 낯선 남자를 들이기가 무서워서 철호의 구두를 꺼내 현관에 놓고 집에 남자가 있는 것처럼 위장했다. 나는 성폭행범의 구두를 나 자신을 보호하는 위장물로 쓰고 있었다.
--- p.58 「손」 중에서

법원의 직인이 찍힌 문서를 읽으면서 이춘갑은 한 생애의 모든 일상이 소멸된 자리에서 갯벌처럼 드러나는 공터를 느꼈다.
이춘갑은 경남 해안의 여러 소읍과 포구를 옮겨다니며 자랐다. 이춘갑은 아버지의 생업이 무엇이었는지 뚜렷이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아버지는 밥이라는 천형을 복역하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것 같았고, 태어났을 때부터 무기징역을 받은 것 같았다.
--- p.106 「저녁 내기 장기」 중에서

나는 사람들 틈으로 뒷모습만 보고도 나의 전처, 월롱동을 알아볼 수 있었다. 어떤 특징이 그런 식별을 가능케 하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전처 월롱동은 확실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지나간 세월의 돌이킬 수 없는 갈등과 불화가 별것도 아니라는 듯이 앉아 있는 그 모습은 익숙한 만큼 낯설었다. 월롱동은 거스를 수 없는 그 시간의 무게를 모두 깔고 앉듯이 문상객들 틈에 앉아 있었다. 남의 뒷모습이 마음속에 새겨진 듯이 익숙하게 느껴지는 사태는 견디기 어려웠다.
--- p.142 「대장 내시경 검사」 중에서

임하사의 분대는 작업장의 잡초를 제거했고, 파낸 흙을 들것으로 옮겼다. 임하사는 들것을 들고 구덩이들 사이를 걸어가면서 뼛조각들을 들여다보았다. 뼈들은 헐거워 보였다. 작은 구멍들 사이에 봄볕이 오글거렸다. 뼈들은 오십 년 만의 햇볕을 힘들어하는 것 같았다.
--- p.209 「48GOP」 중에서

봄부터 초겨울까지, 수녀원 마당에서 장미는 피고 지기를 잇대었고, 지면서 더욱 피었다. 꽃 한 송이는 죽음의 반대쪽에서 피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꽃이 지는 것이 죽음은 아니었다.
--- p.229 「저만치 혼자서」 중에서

사한다는 것은 이미 저지른 죄업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고, 영혼을 그 죄업에서 건져내는 것입니다. 그것은 말 너머에서 이루어지는 은총일 것입니다. 가서, 알아들을 수 없는 손수녀님의 죄를 사하여주십시오. 하느님께서 장신부님의 편임을 믿습니다.
--- p.245 「저만치 혼자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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