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의 중요성은 완벽한 보존 상태와 아주 오래된 나이에 있다. 이러한 특징들 때문에 루시는 호미니드 화석 발견의 역사에서 한획을 긋는 특별한 존재다. 루시는 쉽게 기술할 수 있으며, 나중에 보겠지만 인류학의 많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그런데 과연 루시의 정체는 무엇인가.
이 책의 나머지 부분은 이 질문의 해답을 제시하기 위해 쓴 것이다. 루시가 특별한 존재이긴 하지만 다른 화석들과의 연관 관계를 고려하지 않으면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다. 전 세계에서 수천 명의 전문가가 100여 년 동안 힘들게 노력해서 만든 호미니드의 진화와 과학 논리의 틀에 맞지 않는다면, 루시는 아무 의미가 없다. 그들의 화석 발견과 직관을 통해, 그리고 식물학, 핵물리학, 세포생물학 분야에서 개발된 지식과 기술의 활용을 통해, 인류가 유인원에서 진화해온 과정을 점점 더 분명하고 세밀하게 그려낼 수 있게 되었다. 특히 1980년대에 들어와 그 전체 이야기가 그럴듯한 논리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물론 그 이야기는 1867년에 찰스 다윈이, 교회가 주장하는 것처럼 사람이 기원전 4004년에 창조된 것이 아니라, 유인원으로부터 진화했다고 주장하지 않았다면 시작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물론 다윈도 호미니드 이야기에서 나타날 일부 반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더구나 우리가 어떤 종류의 유인원으로부터 유래했는지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사실 이 점에 대해서는 지금의 우리도 확신하지 못하지만 말이다. --- p.46
루시는 믿기 힘들 만큼 놀라운 발견이었다. 그것 말고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었다. 온 캠프가 축제 분위기에 들떴다. 루시에 관한 것은 모든 게 놀라웠다. 인류학 천막의 탁자에 전체 골격 중 절반에 가까운 뼈를 올려놓고 각 부분을 제자리에 갖다놓자, 거기에 모인 과학자들은 눈앞에 생생한 증거가 나타난 것을 보고도 차마 믿을 수 없었다.
전체 골격을 맞춰놓은 루시 자체도 놀라운 존재였다. 키가 105센티미터 정도밖에 안 되고 뇌도 작았지만, 직립보행을 한 게 분명했다. 턱은 그동안 발견된 다른 아래턱뼈들이 둥근 모양인 것과 달리 V자 모양이고, 어떤 아래턱뼈보다도 작았다. 더구나 첫 번째 작은어금니에는 교두가 단 하나밖에 없었다. 교두가 하나뿐인 것은 더 원시적인 상태를 나타내고, 두 개인 것은 인류에 더 가깝다는 걸 나타내므로, 나는 루시가 큰 턱을 가진 종류와는 다르다고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다. 그 화석들을 조사하는 동안 아스포가 발견한 턱뼈는 리키 가족이 말한 것처럼 호모 계통에서 상당히 초기의 종에 속한 것처럼 보였다. 루시는 그보다도 더 전에 존재한 것(어쩌면 아주 초기의 오스트랄로피테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뼈가 적을 때는 얼마든지 대담한 추측을 하고, 그러한 추측에 대해 아무도 확실한 반론을 제기할 수 없다. 그렇지만 뼈가 많이 수집되면, 처음에 했던 추측 중에 근거를 잃는 것들이 생긴다. 정보의 양이 많아질수록 그 뼈가 무엇인지, 또는 어떤 일을 했는지 추측할 수 있는 여지가 줄어든다. 대신 어떤 추측은 근거가 확실해진다. 더 나은 증거가 나타남에 따라 처음에는 기대 섞인 추측에 불과했던 것이 점차 논리적으로 가능성이 있는 가설로 떠오르는 것이다. 아주 드물게 일련의 뼈들이 확실한 증거를 제공하는 경우도 있다. --- p.283
대형 맹금류는 호미니드보다 빨리 진화하는 것으로 미루어, 300만 년 전 아파르의 호숫가와 강변, 숲에는 지금 그곳에 사는 올빼미와 비슷하게 생긴 조상들이 살고 있었을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화이트와 내가 부드러운 발포 패드에 펼쳐놓은 뼈들은 한때 혈액과 신경 종말이 붙은 채 살아 움직였을 것이고, 그 눈과 귀는 이 올빼미들의 울음소리와 야간 비행에 신경을 곤두세웠을 것이다. 고인류학에는 이처럼 갑자기 먼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는 것들이 가득 넘친다. 화석은 비록 암석처럼 보이고 느껴지지만 나름의 생명이 고동치고 있다. 또한 인류의 조상이 경험했던 만족과 두려움, 분노와 고통 등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먼 과거의 감정과 느낌을 떠올린다. 하지만 우리 자신의 감정과 느낌처럼 뇌 속에서 여과되며 아주 희미해지는 바람에 오래전에 잃어버린 그 지각을 다시 경험할 방법이 없다. 먼 옛날에 살았던 호미니드의 혀끝으로 느낀 세상의 맛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도저히 그 답을 알아낼 가망이 없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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