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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갈증

녹색 갈증

[ 양장 ] 트리플-13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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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6월 20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188쪽 | 222g | 118*183*12mm
ISBN13 9788954448338
ISBN10 895444833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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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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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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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껑을 열면 판도라의 상자처럼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이 마구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알고 있지. 판도라는 그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고 있더라도 열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아주 작은 희망 하나를 보기 위해 일부러 절망을 만들어내곤 하니까.
--- p.31 「프롤로그」 중에서

오랜만에 꾼 꿈 때문일까. 나갈 준비를 하면서 소설을 쓰려고 애썼던 지난 시간이 떠올랐고 비참한 예감이 들었다. 윤조가 나오는 나의 소설은 분명히 끝을 맺었지만 윤조의 삶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을 것이고, 지독하게 살아남아서 어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 p.41 「설탕으로 만든 사람」 중에서

산에 오르고 싶다기보다 녹음이 짙은 숲속에 들어가 길을 잃고만 싶었다. 이를 어쩌면 좋지, 라는 마음을 가지고 오랫동안 해가 질 때까지 숲속을 헤매다가 외딴집 하나 발견해서 그곳에 잠시 머물고 싶었다. 이 마음은 결국 헤매는 데 중점이 있는 게 아니라 쉴 곳을 만나고 싶은 것에 가까운가. 그렇다면 참 시시하다. (……) 이해되지 않는 것들은 왜 모조리 다 슬픈 것인지.
--- p.73~74 「설탕으로 만든 사람」 중에서

화장실로 들어가 변기에 앉았다. 마려웠던 느낌에 비해 소변 양은 터무니없이 적었다. 나는 다 눈 후에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분명히 남아 있을 잔뇨를 기다렸다. 그동안 엄마와 언니 그리고 내게 비어 있는 무언가를 생각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결핍된 부분을 욕망하기 마련인데, 우리 세 사람이 욕망하는 건 다르게 보면 다르지만 또 비슷하게 보면 비슷한 것도 같았다.
--- p.97 「빈뇨 감각」 중에서

괜찮은 것과 별개로 나는 산에 가지 않아. 엄마는 산에 가서 마음의 정리, 그러니까 제대로 된 끝과 동시에 새로운 시작에 대한 가능성을 품고 싶은 걸까. 산에 가는 걸로는 부족해 엄마. 내가 해봤는데 실패했거든. 하지만 실제로 이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 p.107 「빈뇨 감각」 중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윤조가 누구인지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걱정했던 게 우스울 정도로, 엄마와 언니는 윤조를 이미 알고 있던 것처럼 대했다. 원래 함께 살고 있던 가족의 일원이니 이 집에 있는 게 당연하다는 듯이. 나 혼자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고 윤조를 힐끔거렸고 네 명이서 밥을 먹는 게 어색해 숟가락을 자주 떨어뜨렸다. (……) 보석함에서 기어 나온 게 윤조가 아니라 나인 것만 같았다.
--- p.115~116 「뒷장으로부터」 중에서

딱히 해줄 수 있는 건 없지만 손톱을 깎아줄 수는 있지 않을까. 윤조의 손톱을 깎아주는 사람이라는 수식은 길어서 꽤 마음에 들어. 어떤 사람의 손톱은 아주 아주 느리게 자랐다. 나는 그 속도를 이해해야 했다. 양말을 벗어볼까 하다가 공원에서 봤던 사람들처럼 뒤로 걸어보았다. 뒤로 걷기는 쉬웠다. 뒷걸음질 치는 건 내 특기니까. 뒤로. 더 뒤로.
--- p.144~145 「뒷장으로부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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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조와 함께 있을 때에만 ‘살아 있음’을 느꼈다는 ‘나’의 고백은 오직 글쓰기를 통해서만 실존을 감각했다는 말이기도 하므로. 요컨대 ‘나’에게 작동하는 녹색 갈증은 실존하는 생명체는 아니지만, 쓰는 이에 의해 강력한 생명력을 부여받은 하나의 세계에 대한 것으로 이어진다. 오직 ‘나’에 의해서만 만들어질 수 있는 세계, 그러나 닿을 수 없는 세계를 향한 열망이 지금 ‘나’에게는 가장 선명한 갈증일 테다.
- 소유정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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