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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갈증

[ 양장 ] 트리플-13이동
리뷰 총점9.2 리뷰 37건 | 판매지수 792
[단독] 시와 X 요조 〈노래 속의 대화〉 북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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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음과모음 <트리플> 시리즈 - 젊은 작가와의 시차 없는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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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22년 06월 20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188쪽 | 222g | 118*183*12mm
ISBN13 9788954448338
ISBN10 895444833X

이 상품의 태그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시차 없이 당도하는 불안에 대비하는
조용히 무너져가는 세계에 대한 상상


[자음과모음 트리플 시리즈]는 한국문학의 새로운 작가들을 시차 없이 접할 수 있는 기획이다. 그 열세 번째 작품으로 최미래 작가의 『녹색 갈증』이 출간되었다. 최미래 작가는 2019년 [실천문학]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떠오르는 신예다. 첫 책인 『녹색 갈증』은 코로나로 고립된 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여기의 시공간을 공유하며 현재 우리의 불안을 세심하게 포착한다. 「프롤로그」를 시작으로 해서 마지막 작품인 「뒷장으로부터」까지 하나의 궤적을 그리는 작품들은, “슬로모션으로 붕괴되고” “층층이 가라앉는” 세계를 지켜봐야 하는 사람의 불안과 그것에 대비하는 방식을 공감각적이고 입체감 있게 그려낸다.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뚜껑을 열면 판도라의 상자처럼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이 마구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알고 있지. 판도라는 그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고 있더라도 열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아주 작은 희망 하나를 보기 위해 일부러 절망을 만들어내곤 하니까.
--- p.31 「프롤로그」 중에서

오랜만에 꾼 꿈 때문일까. 나갈 준비를 하면서 소설을 쓰려고 애썼던 지난 시간이 떠올랐고 비참한 예감이 들었다. 윤조가 나오는 나의 소설은 분명히 끝을 맺었지만 윤조의 삶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을 것이고, 지독하게 살아남아서 어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 p.41 「설탕으로 만든 사람」 중에서

산에 오르고 싶다기보다 녹음이 짙은 숲속에 들어가 길을 잃고만 싶었다. 이를 어쩌면 좋지, 라는 마음을 가지고 오랫동안 해가 질 때까지 숲속을 헤매다가 외딴집 하나 발견해서 그곳에 잠시 머물고 싶었다. 이 마음은 결국 헤매는 데 중점이 있는 게 아니라 쉴 곳을 만나고 싶은 것에 가까운가. 그렇다면 참 시시하다. (……) 이해되지 않는 것들은 왜 모조리 다 슬픈 것인지.
--- p.73~74 「설탕으로 만든 사람」 중에서

화장실로 들어가 변기에 앉았다. 마려웠던 느낌에 비해 소변 양은 터무니없이 적었다. 나는 다 눈 후에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분명히 남아 있을 잔뇨를 기다렸다. 그동안 엄마와 언니 그리고 내게 비어 있는 무언가를 생각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결핍된 부분을 욕망하기 마련인데, 우리 세 사람이 욕망하는 건 다르게 보면 다르지만 또 비슷하게 보면 비슷한 것도 같았다.
--- p.97 「빈뇨 감각」 중에서

괜찮은 것과 별개로 나는 산에 가지 않아. 엄마는 산에 가서 마음의 정리, 그러니까 제대로 된 끝과 동시에 새로운 시작에 대한 가능성을 품고 싶은 걸까. 산에 가는 걸로는 부족해 엄마. 내가 해봤는데 실패했거든. 하지만 실제로 이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 p.107 「빈뇨 감각」 중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윤조가 누구인지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걱정했던 게 우스울 정도로, 엄마와 언니는 윤조를 이미 알고 있던 것처럼 대했다. 원래 함께 살고 있던 가족의 일원이니 이 집에 있는 게 당연하다는 듯이. 나 혼자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고 윤조를 힐끔거렸고 네 명이서 밥을 먹는 게 어색해 숟가락을 자주 떨어뜨렸다. (……) 보석함에서 기어 나온 게 윤조가 아니라 나인 것만 같았다.
--- p.115~116 「뒷장으로부터」 중에서

딱히 해줄 수 있는 건 없지만 손톱을 깎아줄 수는 있지 않을까. 윤조의 손톱을 깎아주는 사람이라는 수식은 길어서 꽤 마음에 들어. 어떤 사람의 손톱은 아주 아주 느리게 자랐다. 나는 그 속도를 이해해야 했다. 양말을 벗어볼까 하다가 공원에서 봤던 사람들처럼 뒤로 걸어보았다. 뒤로 걷기는 쉬웠다. 뒷걸음질 치는 건 내 특기니까. 뒤로. 더 뒤로.
--- p.144~145 「뒷장으로부터」 중에서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오직 ‘나’에 의해서만 만들어질 수 있는 세계,
그러나 닿을 수 없는 세계에 대한 선명한 갈증

“윤조가 나오는 나의 소설은 분명히 끝을 맺었지만
윤조의 삶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을 것이고
지독하게 살아남아서 어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이 소설집의 제목은 사회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이 말한 ‘녹색 갈증’과 연결되어 있다. “인간에게는 자연과 생명체에 이끌리는 경향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자연으로의 회귀본능은 자연스러운 증상이라는 그의 주장이다. 즉, ‘녹색 갈증’은 다른 형태의 생명체와 연결되고 싶어 하는 욕구라고 할 수 있다.”(해설, 소유정 문학평론가) 그런 의미에서 ‘녹색 갈증’은 최미래의 소설에서도 유효하지만, 단순히 ‘녹색 갈증’에 목말라하는 도시 생활자의 삶을 그려낸 것이 아닌 한층 더 입체적인 욕망으로 그려진다.

소설집에 등장하는 ‘녹색 갈증’을 느낀 이들이 주로 찾는 공간은 ‘산’이다. 하지만 여기서 ‘산’은 실제적 공간이라기보다 “연필을 굴리지 않아야 그려지는 그림”처럼 오직 상상으로만 닿을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연필을 굴리지 않아야 그려지는 그림이 있다는 건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 사실이다. 어떻게 그 감각을 설명할 수 있을까. (……) 일부러 애쓰지 않아도 그곳의 날씨는 자유자재로 바뀌었으며 처음 디뎌본 곳인데도 이미 예전에 와본 적 있는 것같이 익숙했다. 긴 시간 뒤에 찾아올 거라고 예상한 미래가 바로 눈앞에 당도한 것처럼. (「프롤로그」, 28쪽)

주인공인 ‘나’에게 산으로 가는 법을 알려준 ‘윤조’도 당연히 실존하는 인물이 아니다. ‘윤조’는 내가 쓴 소설 속 인물이며, 「프롤로그」의 마지막에서 ‘나’는 어떤 결말도 짓지 않은 소설 속에 ‘윤조’를 남겨둔 채 도망친다.

그 후로 ‘나’는 「설탕으로 만든 사람」에서 “한 편의 이야기가 아니라 어떤 마음 자체를 잃어”(41쪽)버린 상태가 되어 삭막한 도시에서의 삶을 살아간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어 직접 설탕으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을 빚는 공주가 나오는 그림책처럼 오로지 ‘나’는 소설 속 ‘윤조’를 통해서만 살아 있다는 느낌을 감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윤조’가 없는 세상에서 ‘나’는 심한 갈증을 느낀다. 「빈뇨 감각」에서 ‘나’는 목마름을 느끼고 실제로 물을 마시지만 갈증이 해소되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물을 많이 마셔 요의를 느끼지만, 문제는 요의를 해결한 뒤에도 끝나지 않는 잔뇨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소변을 참는 동안에도 나는 손가락을 멈추지 않았다. 밀려드는 파도처럼 문장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이것까지만 맞아야지. 이것까지만. 하지만 파도는 한 개, 두 개 나누어져 있다고 볼 수 없고 내가 그 끝을 선택할 수도 없었다. (「빈뇨 감각」, 98~99쪽)

‘나’의 요의는 밀려드는 파도처럼 끝도 없이 이어지는 문장으로 자연스럽게 치환되며 ‘윤조’와의 재회를 예고한다. 「뒷장으로부터」에서 ‘윤조’는 보석함을 스스로 열고 나와 엄마의 살가운 딸과 언니의 다정한 동생 역할을 수행한다. 그런 윤조를 보며 ‘나’는 “보석함에서 기어 나온 게 윤조가 아니라 나인 것만 같”(116쪽)은 기분에 휩싸이며, 윤조가 내가 쓴 소설의 등장인물이 아니라 윤조가 쓴 소설에 자신이 등장하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우지 못한다. “이건 기억해야 할 거야. 너도 그 이야기 속에 있다는 거”(「설탕으로 만든 사람」, 73쪽)라는 ‘나’의 헤어진 애인 ‘명’의 말처럼, 비로소 ‘나’는 ‘윤조’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최미래 작품에서 시차 없이 당도하는 불안에 대비하는 방식은 오로지 ‘상상(글쓰기)’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윤조가 나오는 나의 소설은 분명히 끝을 맺었지만 윤조의 삶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을 것이고, 지독하게 살아남아서 어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을 향한 바람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녹색 갈증’은 실존하는 어떤 존재를 향한 것이 아닌, “글쓰기를 통해 강력한 생명력을 부여받은 하나의 세계”로 확장된다. 그것은 “오직 ‘나’에 의해서만 만들어질 수 있는 세계”이며, 그러나 “닿을 수 없는 그 세계에 대한 열망이 지금 ‘나’에게는 가장 선명한 갈증”(해설, 소유정 문학평론가)인 것이다.

작가의 말

불안을 대비하는 상상. 그건 대부분 정도를 지나치지만 정도가 지나친 일들은 실제로도 종종 일어나기 때문에 몇 번은 유용하게 대비할 수 있었다. 몇 번의 대비를 위해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했다. 상상은 부정적일수록 일리 있게 느껴져 나를 손쉽게 사로잡았다. 최장영실은 한숨을 쉬고 하품을 하고 콧물을 흘리면서 자기가 상상 속 어딘가가 아니라, 지금 여기 있다는 걸 알린다. 그러면 나는 가만히 현실로 돌아온다.

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윤조와 함께 있을 때에만 ‘살아 있음’을 느꼈다는 ‘나’의 고백은 오직 글쓰기를 통해서만 실존을 감각했다는 말이기도 하므로. 요컨대 ‘나’에게 작동하는 녹색 갈증은 실존하는 생명체는 아니지만, 쓰는 이에 의해 강력한 생명력을 부여받은 하나의 세계에 대한 것으로 이어진다. 오직 ‘나’에 의해서만 만들어질 수 있는 세계, 그러나 닿을 수 없는 세계를 향한 열망이 지금 ‘나’에게는 가장 선명한 갈증일 테다.
- 소유정 (문학평론가)

회원리뷰 (37건) 리뷰 총점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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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갈증 l 최미래 소설 l 자음과 모음]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M* | 2022.08.03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녹색갈증 l 최미래 소설 l 자음과 모음]   ‘녹색갈증’이란 다른형태의 생명체와 연결되고 싶어 하는 욕구라고 한다. 에드워드 윌슨은 사람에게는 자연 그리고 생명체에 끌리는 경향이 내제되어 있기에 자연으로의 희귀 본능은 자연스러운 증상이라고 말했다.   최미래 작가의 <녹색갈증>은 위의 의미를 지독히 간파한 것 같다. 오묘하게 빠져드는 소설은 마치 독자가;
리뷰제목

[녹색갈증 l 최미래 소설 l 자음과 모음]

 

‘녹색갈증’이란 다른형태의 생명체와 연결되고 싶어 하는 욕구라고 한다. 에드워드 윌슨은 사람에게는 자연 그리고 생명체에 끌리는 경향이 내제되어 있기에 자연으로의 희귀 본능은 자연스러운 증상이라고 말했다.

 

최미래 작가의 <녹색갈증>은 위의 의미를 지독히 간파한 것 같다. 오묘하게 빠져드는 소설은 마치 독자가 책을 통해 녹생갈증의 욕구를 푸는 기분이었다. 소설 속 팬데믹이라는 비슷한 환경 속에서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미묘하고도 섬세한 감정과 감각을 일깨워 준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꼭 무슨 일이 벌어질 때가 됐다는 기분이 드는, 인간만이 가지는 직감들이 있다. 그런 순간들은 어떠한 말로 표현해도 그 본질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녀의 소설로부터 그런 순간들을 위로 받았다.

 

#강민정북큐레이터

#한국북큐레이터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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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리뷰 갈증은 어디에서 오는가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YES마니아 : 로얄 G*****g | 2022.07.24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녹색 갈증자음과모음의 트리플 시리즈 중 하나인 <녹색 갈증>트리플 시리즈는, 세 편의 소설이라는 뜻과 작가-작품-독자의 조화에 대한 추구를 뜻하기도 한다.세 편의 소설은, 각각의 이야기인 것 같지만 하나의 이야기다. 세 편의 소설이 곧 한 편의 소설이 된다.(마치 한강 작가님의 채식주의자처럼!)이 소설의 제목인 녹색 갈증은, 정말 말 그대로 ‘갈증’을 뜻하고 있다.(사실 제;
리뷰제목
녹색 갈증

자음과모음의 트리플 시리즈 중 하나인 <녹색 갈증>

트리플 시리즈는, 세 편의 소설이라는 뜻과 작가-작품-독자의 조화에 대한 추구를 뜻하기도 한다.
세 편의 소설은, 각각의 이야기인 것 같지만 하나의 이야기다. 세 편의 소설이 곧 한 편의 소설이 된다.
(마치 한강 작가님의 채식주의자처럼!)

이 소설의 제목인 녹색 갈증은, 정말 말 그대로 ‘갈증’을 뜻하고 있다.
(사실 제목만 놓고 봤을 때는, 어떤 소설인지 도저히 감히 오지 않았는데
책을 읽는 내내 마찬가지로 그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웠고..)

사실 소설은 이해하기 조금 난해하고, 어려웠다.
누군가에게 이 소설을 설명할 때 명확하게 어떤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라고
표현해야할지 막막할 것 같은, 그런 소설이었다.

소설 읽고 난 후, 도서 정보를 보니 이 소설집의 제목은
사회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이 말한 ‘녹색 갈증’과 연결되어 있다고 쓰여 있었다.

인간에게는 자연과 생명체에 이끌리는 경향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자연으로의 회귀본능은 자연스러운 증상이라는 그의 주장이다.

즉, 에드워드 월슨이 말한 녹색 갈증의 의미는
“다른 형태의 생명체와 연결되고 싶어하는 욕구”인데,
책을 덮고 나니 이 의미와 소설이 아주 긴밀하게 맞닿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소설의 주인공 ‘나’는 자신이 쓴 소설속의 인물인 ‘윤조’에 대해 생각한다.
소설의 [프롤로그]에서 ‘나’는 ‘윤조’가 보고 싶을 때마다 같은 꿈을 꾼다고 말한다.
‘나’는 자신이 소설 속에 가두어 둔 ‘윤조’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다 우연히 ‘나’는 ‘윤조’와 만나, 함께 그의 집으로 향한다.
(이 대목에서 나는 윤조가 실제 인물이고, 내가 실제 인물인 윤조를 소설 속에 등장시킨 것인지 의문이 들어
다소 이해하기 어려워 이야기 속을 헤매었던 것 같다..)

그 후, ‘나’는 [설탕으로 만든 사람]에서 ‘나’는 옛 연인 ‘명’과 마주한다.
명과의 짧은 재회 속에서도 ‘나’는 소설 속에 두고 온 ‘윤조’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현실 속에서 길을 잃었고, 소설 속의 ‘윤조’를 통해서만 살아있다는 느낌을 감각할 수 있었다.

??
설탕으로 만든 사람은 억지로 녹이려고 하지 말고 그대로 네 안에 살아 있게 둬.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것들을 내버려두면 알아서 살아가게 되는 법이라고 네가 그랬잖아.
_ p.062

명의 말을 듣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그런 말을 했었나.

아마, 설탕으로 만든 사람은 ‘윤조’를 뜻하기도 하는 것이 아닐까?
‘내’가 만든 소설은 끝이 났지만, 그 소설 안에서 ‘윤조’는 살아가고 있고
그로 인해 ‘나’도 살아있다는 느낌을 감각할 수 있음을.

-

잠시 재회했던 명이 떠나고, ‘나’는 본가로 돌아가 엄마,언니와 함께 지낸다.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지만 어쩐지 내내 알 수 없는 불편함을 느끼던 나는 그때마다 심한 갈증을 느낀다.

??
혼자 살 때는 물을 너무 안 먹어서 문제였는데
집에 온 뒤로는 물 때문에 계속 배가 부르고 소변이 자주 마려웠다.
_ p.087

‘나’와 언니, 그리고 엄마. 세 모녀는 닮았다.
자기 기분 속에 침참해버리고, 괴로움을 해소하지 않은 채 마음속에 키우고 키워
괴상한 방식으로 표출해버린다는 점이 닮았다.
그래서 세 모녀는 함께 지내는 동안에 서로를 그냥 내버려두었다.

너무 자주 울어버리고 마는 엄마도,
자신의 슬픔을 가리기 위해 비즈 액세사리를 만드는 것에 집중하는 언니도,
‘윤조’ 생각에만 빠져있는 나도, 서로를 그냥 내버려두었다.

‘나’는 빈뇨감에 시달렸고, ‘나’의 요의는 밀려드는 파도처럼 끝도 없이 밀려들었다.
‘나’는 결국 ‘윤조’와 재회했지만, 세 모녀와 함께 떠난 등산 길에 또 다시 그를 두고 온다.

-

사실 나는 소설 보다는, 소설 끝의 작가의 에세이가 더 좋았던 것 같다.

??
그때 내게는 어딜 가든 함께 다니는 도깨비가 있었다.
데리고 다녔다기보다 내 어깨 위에 살았다고 말하는 게 맞겠다.
도깨비는 피로나 우울감 따위를 은유적으로 돌려 말하는 종류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랑 비슷한 쪽에 가깝다.
하지만 사랑이든 우울이든 뭐든지 어느 한쪽으로 쏠려 있는 건 위험해.
나라는 인간의 무게중심을 잘 맞추기 위해 도깨비는 오른쪽 어깨와 왼쪽 어깨를 오가며 잠자리를 바꾸었다.
_ p.152

-

책을 다 읽고 나니 어쩐지 나의 ‘갈증’은 어디를 향해 있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갈증’을 어떻게 해결 하고 있을까, 나의 ‘갈증’의 원인은 무엇일까.
또, 내 안에 ‘윤조’처럼, 나를 살아 있다고 감각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었다.

소설 자체는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그래서인지 여러번 곱씹어 읽게 되었고
그래서 더 오랜 시간 ‘윤조’가 내 마음 속에 오래 남아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아, 그리고 다른 트리플 시리즈가 궁금해져서
장바구니에 담아 두었던 박서련 작가의 ‘호르몬이 그랬어’를 구매하게 되었다.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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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리뷰 녹색 갈증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세*지 | 2022.07.22 | 추천1 | 댓글0 리뷰제목
  누군가를 간절히 그리워하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프롤로그를 읽으면서 무슨 이야기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잊을 수 없는 사람, 윤조를 우연히 만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대화를 하고 윤조의 할머니 댁에 가서 추억을 더듬다 끝나는데 둘의 관계가 어떻게 될지 도무지 알 수 없기도 했고 분위기가 어딘지 몽롱해 제대로 읽고 있는 게 맞나 두어 번 읽어보기까지 했다. 뒤에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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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간절히 그리워하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프롤로그를 읽으면서 무슨 이야기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잊을 수 없는 사람, 윤조를 우연히 만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대화를 하고 윤조의 할머니 댁에 가서 추억을 더듬다 끝나는데 둘의 관계가 어떻게 될지 도무지 알 수 없기도 했고 분위기가 어딘지 몽롱해 제대로 읽고 있는 게 맞나 두어 번 읽어보기까지 했다. 뒤에 실린 단편으로 넘어가면서 앞 편과 이어지는 내용이라는 걸 파악했고 윤조가 주인공이 쓴 소설 속 인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자신이 만든 인물과 함께 할 때는 현실을 잊는 주인공. 현실에서 벗어나고픈 마음이 커서였을까. 자신과 비슷한 가족을 못 견뎌하는 모습에서는 차마 자신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는 마음을 읽었다.

 

<녹색 갈증>에는 소설과 에세이가 함께 실려 있는데 에세이도 어쩐지 소설 같다. 기승전결이 확실하지 않아 모호한 느낌이 드는 소설과 에세이가 취향에 맞지는 않았지만 '녹색 갈증'이라는 단어가 본래의 의미에서 어떻게 확장되어 쓰였는지 살펴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해설에 나와 있듯 에드워드 윌슨에 의해 정의된 녹색 갈증은 다른 형태의 생명체와 연결되고자 하는 욕구인데 이는 자연과 생명체에 이끌리는 인간의 본성을 잘 드러내는 단어인 듯하다. 모자란 부분을 채우고픈 욕망은 자꾸 상상 속 인물을 불러내고 존재하지 않는 공간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채워지지 않는 목마름을 느끼는 등장인물들이 산으로 또 산으로 향하는 모습은 어쩐지 기이하기도 하다. 타는 듯한 갈증을 느끼게 될 때 어딘가로 가야 한다면 어디가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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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 (3건) 한줄평 총점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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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또 다른 나의 존재, 윤조, 시공간을 넘나드는 전개 다소 난해한 소설도전 트리플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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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플래티넘 m****h | 2022.07.08
구매 평점5점
예전에 릿터에서 작가님 글을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무척 인상적이고 따뜻했어요 완독할게요!
2명이 이 한줄평을 추천합니다. 공감 2
YES마니아 : 로얄 디****산 | 2022.06.17
구매 평점5점
언제나 다정하지만 씩씩한 글을 쓰는 작가. 한 번도 반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2명이 이 한줄평을 추천합니다. 공감 2
YES마니아 : 플래티넘 나* | 2022.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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