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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 에세이 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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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 에세이 한 편

: 하루를 마무리하는 가장 행복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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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7년 01월 12일
쪽수, 무게, 크기 238쪽 | 398g | 148*210*20mm
ISBN13 9791186273258
ISBN10 1186273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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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현미
Dorothy
출근이 다른 사람들보다 빠르다. 7시까지는 사무실에 도착해야 하기 때문에 적어도 6시에는 집을 나선다. 7년째 이 생활을 반복하고 있다. 처음에는 짜증도 나고 피곤했지만, 그만큼 퇴근 시간이 빨라, 지금은 만족해하고 있다.
여행을 좋아해서 일 년에 한 번은 꼭 여행을 떠나는데,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을 때의 흥분과 행복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하지만 여행은 반드시 혼자 간다. 외로울 때도 있고 힘들기도 하지만, 그것이 여행의 묘미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누군가와 함께 가게 되면 먹을 것에서부터 입는 것, 심지어 움직이는 것까지 서로 의논하고, 동의를 구해야 하기 때문에 여행이 아닌 모험이 되기 때문이다.
가능한 한 책을 많이 읽으려고 한다. 특히 에세이와 시를 즐겨 읽는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나도 글을 써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안 친구들이 “넌 글 쓰는 재주는 없다”며, “혹시라도 책 낼 생각은 꿈도 꾸지 말라”고 했다. 그 얘기를 듣고, 언젠가는 반드시 내 이름으로 된 책을 내겠노라고 더욱 오기를 다졌다.
여름보다는 겨울을, 비보다는 눈을 더 좋아한다. 그래서 예전부터 삿포로에 한번 가보고 싶었지만, 실행으로 옮기지 못했다. 올겨울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삿포로행 비행기를 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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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년 시절은 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을 어머니의 상여(喪輿)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 내 첫사랑도 그 길 위에서 조약돌처럼 집었다가 조약돌처럼 잃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푸른 하늘빛에 호젓(혼자) 때 없이 그 길을 넘어 강가로 내려갔다가도 노을에 함북 자줏빛으로 젖어서 돌아오곤 했다.
---「길」중에서

밀려들었다 밀려 나가는 물결은 물가의 모래를 말없이 씻어낸다. 그 누구의 발자국인고? 저 물결에 씻겨 없어지네. 인생이란 결국 물가의 모래 위에 써 놓고 가는 허무한 기록인가. 하지만 그것은 바닷물에 씻기고 또 씻기는 동안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런 것을 우리는 좀 더 크게, 좀 더 길게 써 놓고 가려고 애쓰며 허덕이고 있지 않는가.
---「해변단상」중에서

가을이 오면 밝은 낮보다 캄캄한 명상의 밤이 귀엽다. 귀뚜라미 노래를 들을 때 창밖의 낙엽은 은은히 지고, 그 밤은 나에게 극히 엄숙한 그리고 극히 고적한 순간을 가져온다. 신묘한 이 음률을 나는 잘 안다. 낯익은 처녀와 같이 들을 수 있다면 이것이 분명 행복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분수에 넘는 허영이려니, 이번 가을에는 귀뚜라미가 부르는 노래나 홀로 근청(謹請, 삼가 청함)하며, 나는 건강한 밤을 맞아보리다.
---「나와 귀뚜라미」중에서

낙엽 타는 냄새같이 좋은 것이 있을까. 갓 볶아낸 커피 냄새가 난다. 잘 익은 개암 냄새가 난다. 갈퀴를 손에 들고는 어느 때까지든지 연기 속에 우뚝 서서 타서 흩어지는 낙엽의 산더미를 바라보며 향기로운 냄새를 맡고 있노라면 별안간 맹렬한 생활의 의욕을 느끼게 된다.
---「낙엽을 태우면서」중에서

눈 오는 날은 마음이 고와집니다. 먼 데 있는 사람이 그리워집니다. 아무라도 껴안고 싶게 다정해지는 눈 오는 날, 퍼붓는 눈 속에 저무는 거리를 혼자서 걸어가는 재미! 아아, 나는 어릴 때부터 얼마나 눈 쏟아지는 북극의 거리를 그리며 컸는지 모릅니다.
---「눈 오는 거리」중에서

눈이 내리는 밤은 성찬을 받는 밤이다. 눈이 제법 대지를 하얗게 덮었고, 신발 바닥이 땅 위에 잠깐 미끄럽다. 숱한 사람들이 나를 지나치고, 나 또한 그들을 지나치건만, 내 어인 일로 저 시베리아의 눈 오는 벌판을 혼자 걸어가고 있는 것만 같으냐. 가로등이 휘날리는 눈을 찬란하게 반사할 때마다 나는 목도리를 푹 쓴다.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느끼면서도 내 발길은 좀체 집으로 향하지 않는다.
---「설야산책」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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