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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여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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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여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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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1년 11월 23일
쪽수, 무게, 크기 286쪽 | 400g | 145*210*20mm
ISBN13 9788954616638
ISBN10 8954616631

중고도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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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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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팔 년 동안 써놓은 작품들을 모아 읽으며 내가 새삼스럽게 알게 된 것은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 서로 연결되어 있는지도 모르는 채 우리는 서로의 인생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따금 나를 행복하게 했던 나의 문장들도 사실은 나 혼자 쓴 게 아니라 나와 연결되어 있는 나의 동시대인들로부터 선물받은 것이기도 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이 우울하고 고독한 시대에도 문학이 있다는 것에 나는 아직도 설렌다.
인간이 저지르는 숱한 오류와 뜻밖의 강인함과 숨어 있는 아름다움을 향한 말 걸기이기도 한 나의 작품들이 가능하면 슬픔에 빠진 사람들 곁에 오랫동안 놓여 있기를 바란다.---작가의 말 중에서

「세상 끝의 신발」
나는 누군가와 친해지고 싶어지면 그 사람 신발에 발을 몰래 넣어보고 싶다. 소녀 시절엔 내 또래 여자아이들의 운동화 속에, 처녀 시절엔 그 남자들의 구두 속에 내 발을 몰래 넣어보았을 것이다. 여자든 남자든 젊은이거나 나이든 이거나 가리지 않았다. 그동안 나와 친밀하게 지냈거나 지금 그렇게 지내고 있는 사람들은 그들도 모르게 이미 내가 그들의 신발에 내 발을 가만 집어넣어봤다는 것을 알는지.---p.26

「그가 지금 풀숲에서」
아내를 세 번 만나고 그가 청혼했을 때 아내는 그 자리에서 고개를 숙인 채 “네” 그랬다. 그로서는 너무나 뜻밖의 대답이었다. 거절당하지는 않을 것 같았으니 청혼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보겠다거나 상의해보겠다라는 말도 없이, 아니 잠시 머뭇거리는 기척도 없이 결혼하자는 말에 여자가 바로 네, 하고 나올 줄은 그는 짐작도 못 했다. 손을 잡기도 전이고 영화를 보기도 전이고 약속시간에 늦어보기도 전이니 당연히 술을 같이 마셔보거나 기차를 함께 타보기도 전이었다. 여자가 어떤 영화배우를 좋아하는지, 여자가 싫어하는 음식은 무엇인지, 여자가 좋아하는 짐승은 무엇인지 알기도 전이었다. 그런 것들을 알기도 전에 결혼을 했는데 그는 아직도 아내가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지 무슨 냄새에 이끌리는지를 알지 못했다. 어둠 속 새의 눈을 응시하고 있는 그의 눈이 흔들렸다. 여태 그 누구도, 어머니마저도 무슨 일에 그렇게 단번에 네, 해주었던 적이 없었다는 것을 그는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그 자신 또한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단번에 네, 하고 대답했던 적이 없었다는 것도.---pp.112~113

「숨어 있는 눈」
귀머거리 고양이들과 지내다보니 이따금 소리를 전혀 듣지 못하는 귀들을 생각하게 돼요. 어쩌면 A가 길거리의 고양이들을 집으로 들이기 시작한 건 귀머거리 고양이들이 많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소리를 듣지 못하는 귀들을 생각하고 있으면 너무 막막하고 곧 안절부절못하게 됩니다. 적막이 마음 안에 쌓이고 쌓여 비명을 지르고 싶어져요. 어느 때는 귓구멍을 손으로 막고 가만히 있어볼 때도 있죠. 그런데 소리를 듣지 못하는 고양이들은 움직이는 것이나 흔들리는 것에는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더군요. 바람결에 무엇인가 흔들리면 혼절하도록 그 움직임을 따라다녀요. (…) A를 다시 보게 되면 말해주고 싶어요. 저 귀머거리 고양이들이 소리를 못 듣는 대신 움직임에 민감한 것에 대해 말이에요. 매사가 그런 이치라면 좋겠어요. 한구석이 모자란 대신 다른 구석이 풍성하다면 살아 있는 것들의 균형은 저절로 이루어질 텐데.---pp.214~215

「모르는 여인들」
나는 늘 어제보다는 오늘이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60년대보다는 70년대가 나았고 80년대보다는 90년대가 나았고, 그리고 지금이 낫다고. 개인적으로도 이십대보다는 삼십대가 좋았고 삼십대보다는 사십대가 된 지금이 나쁘지 않다. 이유는 단 하나다. 연애감정에서 멀어졌다는 것. 그토록 막연하고 불안하고 죽을 것 같은 고통스런 감정들이 모두 다 연애감정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었으련만 마음이 연애감정에서 멀어지자 자유로워졌다. 쓸쓸한 자유. 그 자유가 나쁘지 않다. 연애감정에서 멀어지고 나는 전공과는 상관없이 북 디자이너가 되었다. 일상에 집중했고, 어머니 생일을 챙기기 시작했다. 주변 남자들의 진실과 위선을 과장 없이 바라볼 수 있었으며, 나보다 젊은 여자들이 부러움 없이 아름답게 보였으며, 사람들하고 제법 스스럼없이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어딘가로 도망치고 싶은 욕구에 시달리지 않게 되었고, 여행지에서 전화통을 붙잡고 있는 대신 책을 읽을 수 있었으며 옛날 일을 떠올려도 웃을 수 있었다. 내게는 영원히 찾아올 것 같지 않았던 평화가 거기 있었다. 다시 한 사람을 향한 격정 속에 빠져서 매 순간을 휘둘리고 싶지 않다. 한 사람을 욕심내는 일은 격정만 주는 게 아니라 절망을 함께 준다. 그래서 가차없이 그 사람에게 상처를 입혀버리기도 한다. 그 격정과 절망 속에 다시 나를 밀어넣고 싶지 않았다. ---pp.231~232

서른이 되기 전에 나는 서른이 지난 사람들은 무슨 재미로 살까? 생각했다. 그렇다고 채와 함께 지냈던 이십대가 즐겁기만 했다는 얘긴 아니다. 나는 채가 내 곁에 있었던 이십대를 사랑하지 않는다. 행복하다고 여겼던 적이 별로 없다. 매일매일이 막연했고 불안했고 때로는 절망스러웠다. 그래서 채를 거기에 두고 도망쳤던 것일까. 아침에 눈을 뜨기 싫어 밤에 아예 잠을 자지 않은 날도 많았다.---p.254

스무 살 적의 남자친구를 마흔에 갑자기 만나서 그의 아내와 아주머니가 주고받은 노트 속에 남긴 글을 읽게 될 줄은 몰랐다. 군복이 아니라 슈트 차림의 그로부터 암에 걸린 아내가 한사코 도망치려 하는데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말을 그와 함께 다녔던 학교에서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이것이 인생일까? 그것이 사랑일지도 모른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p.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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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여인들』이 함축하는 것은 우리의 삶이 극단적인 고립 속에서 경화(硬化)되는 것을 막고, 사람들 사이의 관계의 그물로 짜여지도록 하기 위해 필요한 인간적 조건들이다. 타인의 낯섦과 연약함과 누추함을 보듬고 그것과의 관계맺음을 향해 나아가며 서로 함께 존재함으로 세계의 구성방식을 조금씩 바꿔놓기. 그러니까, 그것은 사랑이며 또한 인생이다.
권희철 (문학평론가)
지독한 세속적 일상 속에서 신화적인 체험을 길어올리는 미학적 시선은 여전히 신경숙 문학의 힘이다.
정여울 (문학평론가)
신경숙의 소설은 사회에서 가장 멀리 있고도 특수한 지점(개인)에서 출발하지만 그 때문에 일반적인 자리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인간과 사회에 가장 가깝고도 단독적인 문제를 드러내게 된다. 그녀 소설의 보편성은 개인들의 차이를 최대화하면서도 절대화하지 않는 데 있다.
김남혁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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