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뚝뚝한 얼굴로 아무 말 없이 숟가락만 오가는 식탁에서는 숨이 막혀옵니다. 뭣 모르고 발을 담갔다가, 잘해보려고 용을 쓰고, 그러다 익숙해질 만하면 지치고 힘겨워지고, 세월이 좀더 흐르면 마지못해 들어가게 되는 부엌, 이제는 아예 돌아앉고 싶은 공간이 되었다는 부엌. 이런 게 부엌의 현주소여야만 할까요?
칭찬을 들으면 그 칭찬만으로도 두 달을 살 수 있다고 했습니다. 대화가 오가고 칭찬이 오가고 삶의 뿌리가 되는 공간, 살맛나는 공간으로 우리의 부엌을 리모델링해보시지 않으렵니까? 이젠 부엌이 단지 여자만의, 어머니만의 소외된 공간이 아니었으면 합니다. 부엌에서 가족 모두가 사랑을 잉태하고 생산하는, 훌륭하고 멋진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언제나, 늘, 부엌을 열려 있습니다. 우리, 언제 만날까요?
―「들어가면서: 덜거덕 덜거덕 행복을 꿈꾸는 부엌」중에서(본문 17~18쪽)
거의 식사 준비를 다 하고 밥을 풀 때였어. 시어머니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햅쌀밥을 정성스럽게 푸시면서 “이건 네 시아버지 것. 이건 네 신랑 것” 하시면서 정확한 순서를 내게 친절하게 일러주시는 거야. 마치 당신 아닌 내가 밥을 풀 경우가 생기더라도 이 순서 그대로 정성스럽게 퍼야 한다는 걸 전수해주시는 것처럼 말이야. 그건 단순히 밥을 푸는 게 아니었어. 밥 푸는 순서 그대로 그 당사자들을 공경해야 한다는 그런 의미가 담겨 있었다니까.
그때 순서가 이랬어. 시아버지, 남편, 큰시동생, 작은시동생, 시누 남편, 시누 아들, 시누, 시누 딸, 며느리인 나, 마지막으로 시어머니. 시아버지는 가장이면서 연장자니까 당연히 가장 먼저, 가계의 혈통을 이어야 할 장남이 다음, 그 다음은 아들들, 사위는 같은 성씨는 아니지만 백년손님이고 남자니까 그 다음, 딸이야 시집을 갔어도 김씨니까 그 다음, 시누의 아이들도 남자애가 우선이니까 외손주가 먼저, 그 다음이 외손녀였다니까. …
― 「누구 밥을 먼저 퍼야 하나요?」중에서(본문 22~23쪽)
응? 근데 이게 뭐야?
남편이나 애들이나 모두 열심히 잘 먹고 있는 것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갈치 토막들은 가운뎃부분만 쏙쏙 발라져 있고 나머지 부분들, 그러니까 좀더 세심한 젓가락질이 필요한 부분들은 그대로 버려둔 채 또다시 새로운 토막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이었다. 이미 접시 위에는 그렇게 먹고 버려진 갈치 토막들이 가운뎃부분만 뻥 뚫린 채 남아
이것들이! 보자보자 하니까 지금 뭔 짓들이야? 지들만 입인가? 아니, 새끼들은 아직 어리니까 그렇다 쳐! 저 인간이 나를 뭐로 아는 거야? 성한 것 한번 먹어보란 소리 안 하더만. 이젠 아예 나를 찌꺼기 처리하는 인간으로 취급하네!
남편이 저런 식이면 혹시나 아이들도? 언젠가 들었던 뉘 집 자식이 나중에 커서도 제 어미는 생선 대가리만 좋아한다고 얘기하더라는 말이 우스갯소리가 아닐 수도 있었다. … 나는 또다시 갈치 접시를 향해 들이밀던 남편의 젓가락을 순간적으로 확 밀쳐버렸다. 그러고는 어리둥절해 있는 남편을 향해 지금까지 참고 있던 말을 야멸차게 쏘아붙였다.
“야! 나도 좀 먹고 살자! 네 입만 입이고 내 입은 아가린 줄 알아?”
― 「내가 구운 갈치에 흥분하는 이유」중에서(본문 121~125쪽)
신혼엔 아침이면 감미로운 음악으로 아침을 열어주는 남자, 작은 식탁에 앉아 서로에게 눈을 맞추며 이야기를 들어주는 남자, 같은 무늬의 잠옷을 입고 팔베개를 해주는 남자가 있었다. 결혼 10년이 된 지금은 아침이면 아톰처럼 뻗친 머리로 일어나 신문을 들고 화장실로 가 ‘쏴아아아 뿌지직’ 소리를 내는 남자, 식탁에 앉아 눈을 맞추기는 고사하고 여자가 반찬을 다 꺼내기도 전에 자기 밥만 먹고 먼저 일어나버리는 남자가 있을 뿐이다.
여자도 마찬가지다. 사랑스러워 어찌 할 줄 모르던 그 남자의 어여쁜 여자가 아닌 지 오래다. 우아함을 잊은 지 오래고, 학교 때 힘겹게 배운 지식들은 별반 써먹을 곳이 없고, 아이들에게 꽥꽥 소리나 지르고 남편한테 악다구니를 퍼부어댄다. 잠이 들 때면 고운 잠옷에서 ‘추리닝’으로, 어디 그뿐인가? 입고 잔 ‘추리닝’을 다음날 평상복으로 연거푸 입기도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설렘이 있어야 할 자리에 편안함이 자리잡는 건 당연지사.
― 「아톰과 ‘추리닝’으로 살련다」중에서(본문 225~226쪽)
이른 아침, 이 세 명의 적들을 일으켜 세워 세상 속으로 밀어내는 일이 어디 만만한 일이겠는가! 적어도 그들보다 30분은 먼저 일어나 먹을거리를 차려서 갖다 바치고, 그것도 모자라 양말이며 옷가지 챙기고, 이것저것 뒤치다꺼리하며 아침부터 전쟁을 치른다. 전쟁이 지나간 자리는 어디 만만한가? 여기저기 널린 팬티며 수건들이며 지린내 나는 변기며 산더미같이 쌓인 설거지 감들이며… 이것뿐이랴! 다들 퇴청하는 저녁 시간이면 봉다리 봉다리 사 날라서 지지고 볶고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저녁상을 차려내야 한다. 김 여사는 이렇게 5천 4백 7십여 일을 살아왔다. 그녀의 상차림의 역사는 15년, 5천 4백 7십여 일이다. 이 날들 동안 하루 두 끼의 밥을 차렸다면 1만 9백 5십 번의 상을 차린 것이다. 이 두 번의 식사 준비에 걸리는 시간이 세 시간 정도라면 3만 2천 8백 5십 시간을 밥하면서 보냈다는 계산이 나온다.
― 「김 여사가 사는 법」중에서(본문 237~2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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