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출간일 | 2013년 09월 0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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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96쪽 | 410g | 145*210*20mm |
ISBN13 | 9788954622332 |
ISBN10 | 895462233X |
출간일 | 2013년 09월 0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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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96쪽 | 410g | 145*210*20mm |
ISBN13 | 9788954622332 |
ISBN10 | 895462233X |
‘버릇처럼 숨처럼’, 오로지 소설로 존재하는 사람… 황순원문학상, 이효석문학상, 대산문학상 수상작가 구효서 신작 소설집 올해로 등단 26년째, 198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마디」로 작가생활을 시작한 구효서의 신작 소설집이 출간되었다. 삶이 깊어갈수록 소설세계 또한 다채로워진 대표적 전업작가. 리얼리즘에서 모더니즘, 신비주의와 낭만주의 등 다양한 문체와 알레고리로 독자를 꾸준히 매혹해온 그다. 『시계가 걸렸던 자리』 『저녁이 아름다운 집』을 잇는 여덟번째 소설집 『별명의 달인』은 앞선 두 소설집에서 천착한 탄생과 소멸의 문제에서 벗어나 삶 그 자체를 조망한다. 죽음에 대한 사유 끝에 따라붙기 마련인 허무의식이 이번 소설집 곳곳에 스민 것은 그러므로 놀라운 일이 아닐 터, 그것이 삶에 대한 포기나 체념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데 이 소설집의 빛나는 힘이 있다. 요컨대 삶은 유한하며 우리는 삶의 의미를 끝내 모를 것이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까닭에 끊임없이 재질문할 수 있다는 것이다. ‘끝’에 대해 ‘끝’까지 생각해본 이만이 가질 수 있는 성찰의 힘이다. |
바소 콘티누오 ‥‥‥‥‥‥『현대문학』 2011년 2월호 별명의 달인 ‥‥‥‥‥‥『세계의 문학』 2010년 겨울호 모란꽃 ‥‥‥‥‥‥『문학동네』 2008년 가을호 6431-워딩.hwp ‥‥‥‥‥‥『학산문학』 2012년 봄호 산딸나무가 있는 풍경 ‥‥‥‥‥‥『대산문화』 2012년 봄호 화양연화 ‥‥‥‥‥‥『문학나무』2011년 겨울호 저 좀 봐줘요 ‥‥‥‥‥‥『현대문학』 2012년 7월호 나뭇가지에 앉은 새 ‥‥‥‥‥‥『현대문학』 2009년 12월호 해설_고독의 권장 소영현(문학평론가) 작가의 말_토리노의 말 |
가까운 사이일수록 함부로 대한다. 그래서 가족과 친구에게 받은 상처는 회복되기 어렵다. 두고두고 마음 깊은 속에 자리 잡아 그것은 거대한 괴물처럼 자라기도 한다. 곁에 있어 소중한 줄 모르고 산다는 식상한 말로 대신할 수도 없다. 구효서의 『별명의 달인』은 이처럼 가장 가까운 이들의 이야기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우리 주변의 모습처럼 편안하고 한편으로는 생경하다.
각자의 방식으로 과거의 연인을 그리워하는 「화양연화」, 남편과 딸을 잃고 삶을 내려놓은 여자의 공허한 눈빛에서 절망을 읽는 「저 좀 봐줘요」, 갈망하는 삶을 찾아 고국을 떠난 누나의 목소리에서 어떤 불안을 감지하는 「나뭇가지에 앉은 새」, 상대의 특징을 꿰뚫어 별명의 달인이 된 친구라면 아내가 왜 떠났는지 이유를 알 것 같은 「별명의 달인」까지 구효서의 소설 속 인물은 모두 가장 가까운 이에 대해 잘 모른다. 안다고 착각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사이일수록 서로 닮았다는 걸 우리는 쉽게 인정하지 않는다.
보통의 부자 관계와는 다른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인 「바소 콘티누오」에서 음악을 향한 열정이 그렇다. 자기만의 방식대로 평생을 살아온 아버지와 막내아들. 자신의 결혼을 반대한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막내아들은 아버지를 모시고 같은 공간에서 그의 뜻을 거부하지 않고 살아간다. 음악에 대한 애정이 가장 완벽하게 닮은 부자의 모습은 나란히 걷는 연인처럼 보이기도 한다.
‘마주보기는 분명 아니지만 외면도 아니다. 마주보기보단 더한 마주보기라는 걸, 알려 하지 않았을 뿐이다. 완강히 마주보기를 꺼리는, 두 사람에게 작용하는 동일한 종류의 의지가 실은 모종의 연대거나 유대라는 걸. 그리움, 혹은 면구(面灸)의 유대.’ (「바소 콘티누오」, 25~26쪽)
아버지와 아들이 그러하듯 「모란꽃」에서는 어머니와 딸이 그렇다. 어린 시절 집에 있던 펄 벅의 소설 표지의 꽃에 대한 형제들의 기억을 확인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소설은 저마다의 삶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된다. 의미나 목적을 두지 않고 글쓰기를 하는 화자는 엄마의 중얼거림을 생각한다. 누군가의 답을 듣기 위한 말이 아니라 스스로를 위로하고 견디기 위한 말들이었다. 형제들의 기억 속에 표지가 모란꽃 아니더라도 그 책을 기억하며 그 시절을 공유할 수 있었다.
‘엄마는 쉴새없이 중얼거렸다. 숨쉬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시상 참 모를 것투성이여, 나가 왜 사는 중 알았으면 진즉 못 살았을 것이다…… 엄마의 엄청난 말들이 허공에 흩어졌다. 글로 쓰니까, 허공에 흩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쓸모 있는 내용도 아니고, 다시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들이었으나, 흩어져 사라지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모란꽃」, 80쪽)
‘그 속절없는 일에 애초부터 무슨 이유나 목적이, 있었던 건, 아니었질 않은가. 버릇처럼 숨처럼 그래온 것뿐이니까. 40년간 하염없이 이어져오기만 한 거였으니까. 그리고 이어져갈 거니까.’ (「모란꽃」, 112쪽)
그게 무엇이든 삶을 지탱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인가. 살아가야 할 이유를 놓치고 절망의 늪에서 그 존재를 발견할 수만 있다면 삶은 이전과는 다른 무엇이 될 것이다. 그런 이유를 붙이자면 암 투병 중 병원에서 사라진 형과 언어장애가 있는 동생의 이야기「6431-워딩.hwp」에서 동생에게 말(글)을 가르쳐준 형은 그런 존재였다. 형은 모두에게 사라진 존재지만 동생은 끊임없이 그와 소통하는 기이한 이야기.
‘나에겐 말과 글이 따로일 수 없다. 허공에서 흩어지되 무시로 부메랑처럼 되돌아와 거듭 뜻을 일깨우는 게 형의 말이라면, 내 말은 언제든 다시 들춰볼 수 있는 글이 된다.’ (「6431-워딩.hwp」, 142쪽)
가족과 함께 읽으면 하나의 추억을 소환해 대화를 나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숨쉬는 것처럼 편안하고 쉬운 일상은 어디에도 없지만 숨쉬는 것처럼 지속되는 일상에 대하여. 닮았지만 닮지 않은 이야기들, 알 것 같지만 어렵게 다가오는 이야기. 시간이 지나서야 자신과 똑같은 행동을 하는 가족에게서 나를 발견하는 가족의 이야기. 구효서는 똑같은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 하나 같을 수 없는 게 삶이라는 걸 말하는 듯하다.
구효서
『 별명 의 달인 』
바소 콘티누오
라즈니쉬를 찾아서...가 부재 쯤 되려나?
아님,내 친구 라즈니쉬의 집은 어디인가?
별명이 발생하는 아니 존재하게되는 역사를
그럴 듯하게..보여준다.
관념이 넘치면 맹신이 되기도 함을..
자신도 모르게 습관이 됨을...
뭐든지 알것같은 그는 이미 다 알아야하는 신적 존재.
인식이 그를 그렇게 만들어놓고 있었고.
그것이 통하는 것은 믿는 사람들에게만 통한다는 것을
종교가 어떻게 기원하게 되는가..알려준듯 하달까.
모란꽃
이 책의 모든 것들을 관통하는 한가지는 바로 믿는다.는
것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아닐까 싶다.
아무것도 아니라면 아닌것이 되고, 무게를 느끼게 되면
존재감을 가지는 그런...
보고 싶은것만 보는 사람들처럼.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하는 사람들의 뇌작용이 미치는
영향들처럼.
같은 것이지만 지난 날 느낀 무게는 이것이 아녔다.라고
느끼면 분명 같음에도 현재의 것을 부정하게 된다.
넌 별명만 잘 짓는게 아니었어.상대를 정확히 파악할 줄 알았지.그러기위해
넌 아주 고통스러워했어. 그랬던 만큼 상대를 누구보다 확실하게 짚어낼 수
있었던거야.별명은 거기서 나오는 거였지.공포와도 같은 네 두려움의 결과
였달까......
p.74
별명의 달인 중에서 ㅡㅡㅡㅡ
동생이라 불러줘서 나는 동생이 된 것 같았다.
동생이라 부르기 전 나는 동생이 아니었다.
.
.
관계와 유대라는 말도 형에게서 배웠다.
내가 보는 하늘은 두 배로 넓어졌다.
외로웠던 별들이 별자리로 이어졌다.
나도 진작에 형을 형이라 부를 것을......
.
없던 노울도 형이 노을이라 말하면 노을이 됐다.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p.125
6431-워딩.hwp ___중에서
없던 나무를 심자는데는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림 속엔 나무가 있었고, 방문하는 사람들은 마을
에서 그림의 풍경을 보려했다.
내 기억따위는 믿지 못 할것이 돼버렸다.
p.164
산딸나무가 있는 풍경 ㅡ중에서 ㅡㅡㅡㅡ
이번 책은, 내게 미치지 못하였다. 소설을 읽는 때도 시절과 관련이 있어야 하는 것인지, 답답한 하루하루만큼이나 막막한 느낌이었다. 소설이 재미있을 리가 있겠나 하는 그런 체념이 먼저 생겨서 그럴 수도 있었을 일이다.
나오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대체로 어둡고 우울하다. 우리가 산다는 게 이렇게 불합리하고 우울한 일인가 싶게, 현실과 맞춰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소설이었다. 내가 너를 이해한다고 해도 그것은 결국 너를 이해한다고 여기는 나를 이해한 것에 그칠 뿐이고, 또 네가 나를 이해한다고 해서 온전히 그 말을 믿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기억하는 것과 네가 기억하는 것이 이토록 차이가 나는데, 우리가 통한다고 말할 때의 온도는 같을 수가 없는 것이다. 가족 간에도 그러할진대 하물며 남남끼리는 얼마나 다를 것인가. 끄덕이는 만큼이나 솟아나는 원초적인 절망이라니.
구효서의 소설을 너무 오랜만에 읽었나 보다. 이 작가의 작품을 어떻게 좋아했던 것인지 그 배경조차 잊어버렸다. 이름만큼은 확실히 남아 있는데, 이번에는 제대로 읽어 내지 못해 아쉽다. 내가 변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