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암이 손에 든 부러진 창에 기공력을 가하자 창이 푸르게 빛나면서 검기가 일그러진 형태로 창끝에 맺혔다. 현암은 파산신검의 검초를 발휘하여 장호법을 몰아 붙였다. 장호법은 몹시 놀랐다. 요즘 세상에 전설로만 내려오는 검기를, 그것도 칼이 아닌 부러진 창조각에 휘둘 수 있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비록 밀교의 고수인 장호법이었지만 등에 식은 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장호법 혼자의 연극으로는 아마 모든 승려들을 속이기 힘들었겠지만 현암의 창에서 검기가 솟아오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몇몇 상급 승려들의 입에서 경탄의 소리가 터져 나왔다.
--- p.53
햇살같은 빛줄기가 사방에 뻗치고 지하실을 가로막았던 벽들이 와르르 무너지면서 넓은 지하실 전체에 엄청난 충돌파가 퍼져 나갔다.세 퇴마사의 합력은 그대로 그림에 작열하여 엄청난 불길을 사방에 뿌리며 그대로 지하실의 벽들을 차례로 부수고 최후로 흙과 축대를 부수며너 밖으로 튀어나갔다. 축대의 바깥쪽이 마치 폭탄이 작열하듯 터져 나가며 현암의 눈앞에는 마지막으로 웃는듯 하던 현웅화백의 얼굴과... 일그러진 그림속의 악령... 박신부... 준후... 그리고 승희... 머얼리 현아의 얼굴마저도 한데 섞여 빙글빙글 돌아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는 어두워졌다...
--- p.
퇴마록을 두고 괴기소설이나 심령소설이라는 사람도 있고, 무협지 같다는 의견도 많다. 또는 심리적인 글이라는 말도 있고, 휴머니즘 소설이라는 소리도 들어보았다. 사실 그 말들은 다 맞을지 모른다. <중략> 우선은 무엇보다도 '재미'를 추구했다는 사실을 솔직히 밝힌다. 재미없는 책은 나 스스로도 보기 싫어하니까.
--- 머리말 중에서
콧노래를 억지로 흥얼거리며 좋게 생각하려 해도, 아쉬움 대문이지 두려움 때문인지, 아니면 이제 외롭게 싸워가야 할 자신의 신세가 처량해서인지 자꾸 눈시울이 시큰해졌다. 이제 새해가 되었고, 한 살을 더 먹었는데...... 나잇살이나 먹어 가지고 참 억수로 많이도 운다고 박신부는 씁쓸히 미소를 지었다. 씁쓸히......
--- p.194
멀고 먼 다른 세계나 까마득한 고대, 또는 미래가 배경도 아니다. 세상을 송두리째 망하게 하거나 산을 흔들고 바다를 가르는 경천동지할 과장도 넣을 생각은 없다.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이 시대, 이 장소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 지은이서문 중에서
놀랄 만큼 총명하고 아는 것도 재주도 많았지만, 아이는 역시 아이였다. 준후는 얼굴을 재와 눈물로 범벅을 만들면서 흐느끼고 있었다. 현암도 아홉 살밖에 안된 아이가 겪어야 했던 지독한 선택과, 그 슬퍼하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메어지는 듯했다. 다시 박신부가 입을 열었다.
'네가 도와 줄 일이 많단다 어찌 보면 모두가 숙명인지도 모르지. <감결>에 나왔다는 네 명의 큰 손님, 다 정해진 일이었는지도 몰라.'
박신부는 <해동감결>에 나왔다는 네 명의 큰 손님에 대한 생각을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아무려면 어떤가. 다만 사람들을 위하고 오늘과 같은 일이 다시 생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수만 있다면 그만인걸. 뒤에서 머뭇거리던 현암이 준후를 안고서 걸음을 옮기던 박신부 앞에 섰다.
'자네도......같이 갈 텐가?'
현암이 씩 웃었다. 싸늘한 첫인상과 어울리지 않게 시원한 웃음이었다.
--- p.77-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