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를 일으킨 ‘경제 19단’ 정주영
“일백 살이 뭐냐. 백이십 살, 이백 살까지 살 거다.”
“일백 살까지 사시라”고 장수를 기원할 때마다 말년의 정주영은 그렇게 대꾸하곤 했다.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1년 3월 21일에 8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으니, 그가 작고(作故)한 지도 어느덧 5년이 되었다.
‘경제 19단’의 신화적인 이야기
정주영은 살아서부터 ‘경제 19단’ ‘경제 대통령’으로 불렸으며, 그가 기업을 운영하면서 남긴 수많은 이야기는 지금도 여전히 사람들 사이에서 신화처럼 회자되고 있다. 두메산골에서 농사지으며 살았던 이야기, 가난한 농촌생활이 싫어 맨손으로 서울에 입성하게 된 동기, 그리고 불굴의 신념으로 한국경제의 신화를 창조했던 이야기들은 다시 들어도 언제나 가슴을 뛰게 한다.
그가 살아온 신화적인 이야기는 정주영이라는 한 개인의 역사인 동시에, 가난 속에서 한국경제를 일으켜 세운 우리 부모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또한 한반도를 넘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세계적인 이야기이기도 한다.
정주영은 늘 사람들에게 ‘자신감’과 ‘신념’과 ‘불굴의 노력’을 가질 것을 강조했다. 100% 노력을 다하면 무슨 일이든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마음가짐만을 강조한 것이 아니었다. 실천과 함께하는 것이었다.
경부고속도로나 울산조선소 건설, 주베일 항만 공사에서 보여준 그의 담대한 추진력과 결단력은 그가 왜 ‘경제 19단’인가를 보여주는 신화적인 이야기이다. 정주영의 최측근이었던 김영덕 박사는 그에 대해서 이렇게 표현한 바 있다.
“9단의 거장들이 한 집 한 집을 위해 수를 쓰지만, 19단으로서의 그는 담대하고 모험적인 묘수를 주저하지 않는다.”
자본가가 아니라 부유한 노동자
고(故) 정주영 회장은 현대그룹을 창업해 한국 경제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수행한 인물이다. 현대를 세계 속에서도 손꼽히는 기업으로 키워낸 불세출의 경영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어떻게 현대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만들어냈던 것일까. 정주영이라는 인물의 기업가정신을 살펴봄으로써 우리는 그 답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건강과 생활철학, 사업에의 열정, 리더십, 신용 등 모든 면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였다. 항상 앞에서 진두지휘하면서도 조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데에 뛰어난 리더십을 발휘했다.
특히 그의 모험정신은 현대와 한국 경제의 고속성장을 가능케 한 핵심요소였다. 그는 현재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늘 변화의 중심에 서 있었다. 남보다 먼저 생각하고, 결정은 단호히 내렸으며, 그후에는 신속하게 움직였다. 그야말로 결단은 칼처럼, 행동은 화살처럼 실천한 것이다. 그의 사업 확장은 매번 주변의 반대에 부딪쳤다. 해외 건설 시장에 진출할 때도, 국내 최초의 자동차를 개발할 때도, 조선소를 건립할 때도, 금강산 관광사업을 시작할 때도 모두들 우려의 눈길을 보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뒤에 그 사업들은 모두 탁월한 선택이었던 것으로 판명이 났다.
이 모든 것의 밑바탕이 되었던 것은 신용이었다. 그는 쌀가게 점원으로 일을 하다가 신용 하나로 주인이 되었으며, 현대자동차를 설립할 때도 신용을 담보로 돈을 빌렸다. 여기까지야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치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고령교복구공사를 보면 그가 신용을 얼마나 중요시했는지 알 수 있다.
당시의 공사는 적자투성이였다. 공사를 끝내면 당장 빚더미에 올라앉을 판이었다. 웬만한 기업인이라도 그 정도의 적자를 감수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정주영은 그 엄청난 손해를 감수하고 공사를 완료해 주위로부터 신망을 얻었다. 현대건설이 탄탄대로에 올라선 것은 역설적이게도 그 공사 이후였던 것이다.
정주영은 자신을 가리켜 ‘자본가가 아니라 부유한 노동자’라고 표현했다. 그것은 아주 정확한 말이다. 그는 책상 앞에서 지시만 하는 사장이 아니라, 현장으로 뛰어다니며 땀 흘려 일하는 일꾼이었다. 사막이든 혹한이든 가리지 않고 현장을 누볐다. 그렇게 일하는 사람이 성공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그것이 이상한 일일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정주영의 주요 어록
성공에 대한 열망
“나를 주체할 수 없는 모험으로 이끈 것은 ‘성공에 대한 강렬한 열망’과 함께 ‘신세계에 대한 동경’이었다. 나는 자력으로 크고 싶었다. 그리고 그렇게 커 왔다.”
신용의 중요성
“나는 신용 하나로 주인으로부터 쌀가게를 물려받았고, 믿을만한 청년이라는 신용 하나로 사업자금을 얻어 현대를 일으켰다.”
끝없는 도전 정신
“두려워 말라, 움츠리지 말라. 건설이란 평시(平時)에는 평화를 건설하는 것이고, 전시(戰時)에는 전쟁에 따른 복구공사를 하는 것이다. 전쟁과 평화 어디에서나 우리가 나아갈 길이 있다.”
비용 절감
“현대건설은 국가와 더불어 발전한다. 기업가로서 조금이라도 국가예산을 절약해주는 것이 나라의 발전을 위해 그만큼 기여하는 것이고, 또한 기업의 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경제에는 경제 논리로
“박 대통령께서는 가끔 나를 밤늦게 불러 당신의 서재로 안내하곤 했다. 그의 책상에는 고속도로 관련 서적이 가득 쌓여 있었다. 거기서 손수 구상한 인터체인지를 그려 보이기도 했다. 경부고속도로공사는 100% 경제논리에 입각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울산조선소 건설
“대한민국,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던 그 시대, 아무것도 할 줄 모른다는 그 시대… 먼 옛날 얘기지만, 여기는 바닷물이 밀려오면 철썩거리는 그냥 보통 바닷가였지요. 거기가 이렇게 됐습니다. 수많은 고비가 있었지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의지 하나로 극복했던 것입니다.”
실패는 없다
“일단 뜻을 가지고 시작한 일은 반드시 끝장을 봐야 한다는 것이 나의 철칙이며 자존심이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이 생겨도 내 사전에 중도포기란 없다.”
진정한 기업가정신
“종교에서의 기적은 있어도 경제에서의 기적은 없다.”
세계화 정신
“우리 경제가 선진국 수준에 도달하려면 세계시장에 뛰어들어 부(富)를 가진 나라와의 거래로 부를 끌어들여야지, 좁은 나라에서 우리 가난한 사람들끼리의 거래로는 가난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없다.”
나눔 경영
“사람이 먼저 건강해야 가정과 사회, 국가가 건강해진다. 무수히 많은 건강하고 유능한 사람들이 모여 창조한 현대의 재산을 사회에 돌려주는 것은 현대가 있게 한 사회에의 보답이요, 현대의 책임이다.”
노사관계
“여러분, 우리는 세계 제일의 조선소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이만한 발전을 이루는 데 여러분들의 희생과 공이 너무나 컸습니다. 우리들은 세계 제일의 조선소를 만들었듯, 저는 여러분께 세계 제일의 노사관계를 만들겠다고 선언합니다.” - 울산의 파업 현장에서
권력에 시달린 뒤
“나는 사람에게는 전쟁 이상의 어려운 고난은 없다고 생각하면서 산다. 전쟁만큼의 고난은 아니지만, 대통령이라고는 전혀 자격 없는 사람들이 권력을 손아귀에 쥐어서는 권력의 칼날 아래 기업을 좌지우지하면서 겪은 고난과 고통도 쉽지는 않았다.”
꿈의 프로젝트 - 아파트 반값 공약
“아파트 반값 공급은 잘못된 제도만 고치면 아주 쉬운 문제다. 실은 반값보다도 더 낮은 가격에 공급할 수도 있지만 유권자들이 너무 황당하다고 외면할지 몰라 그냥 반값이라고 오히려 올려 발표한 것일 뿐이다.”
결단은 칼처럼, 행동은 화살처럼
“기업이란 돈과 시간을 좇는 것이므로 즉각적인 결정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다소 무리한 결정이라 하더라도 성공률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나는 주저 없이 행동할 것이다. 이런저런 핑계로 우물쭈물하다가는 결국 완전한 실패로 귀결될 뿐이다.”
시간이 곧 생명이다
“남들이 1년에 해내는 일을 우리는 9개월에 해 낼 수 있어야 한다. 공기를 줄이면 그만큼 금리나 임금부담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남들이 100억에 해내는 공사를 우리는 그보다 훨씬 싸게 할 수가 있다. 그것이 곧 우리의 경쟁력이자 성공요인이었던 것이다.”
부자 철학
“부자가 되는 길은 등산과 같은 것입니다. 높은 산을 올라갈 때 산꼭대기만 쳐다보면서 그것을 목표로 허겁 오르다가는 얼마 못 가서 돌부리에 채이거나 부딪치거나 해서 주저앉고 말 것입니다. 발밑과 주위를 살피면서 주의 깊고 차분하게 호흡을 조정하면서 꾸준히 오르다 보면 어느새 정상에 도달해 있을 것입니다.”
인생철학
“학력이나 지위가 높다고 해서 훌륭한 사람이 아닙니다. 얼마나 올바른 생각을 가지고 사느냐,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성공학
“방법을 찾으면 길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방법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방법을 찾으려는 생각을 안 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절약 정신
“가난은 나라도 구제(救濟)해주지 못한다. 가난이란 자기 자신만이 구제할 수 있는 거다. 자기 자신이 가난을 벗기 위해 열심히 절약하면 누구나 다 부자가 될 수 있다. 그러니 어렵더라도 절약하면서 살아라.”
그도 가장이었다
“나는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 역시 가족이 아프거나 가족을 잃으면 가장 아프고 눈물이 나곤 했지요. 나는 그들의 평범한 형님이자 평범한 아버지였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