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부부가 짧지 않은 시간을 유목민처럼 이곳저곳 떠돌며 사는 것이 아무래도 평범해 보이지는 않는지, 저희의 ‘여행’보다‘여행하는 삶’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여행은 어떤 계기로 시작한 건지, 경비는 어떻게 충당하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살 건지 같은 것들…
--- p.7 「프롤로그, 어쩌다 보니 8년째 여행중입니다」 중에서
서른을 앞두고 정말 하고 싶었던 것을 떠올려보았다. 그동안은 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이 생겨도 욕심내지 않았는데 이번만은 달랐다. 사람이 뭔가를 너무 원하면, 자기합리화를 하게 된다. 답을 이미 마음속에 정해놓고선 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냐며 내 선택이 타당함을 합리화시키는 것이다. 하고 싶은 것 좀 해도 되지 않을까? 그만큼 열심히 살았으면 조금은 욕심내도 괜찮지 않을까? 소박하고 평범한 하루하루가 이어지던 어느 날, 나는 긴 자기합리화 끝에 이 비현실적인 말을 남편에게 덜컥 해버리고 말았다. “우리… 여행 가자. 세계 여행.”
--- p.25 「우리 세계 여행 가자」 중에서
지금도 종종 마음이 조급해지거나 남들과 비교하는 마음이 들 때면 길 위에서 보낸 40일을 떠올린다. 800km도 걸었는데 무엇인들 못 하겠냐는 자신감은 우리를 언제나 단단하게 지탱해준다. 더 잘하고 싶고, 더 빨리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길 때마다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혀본다. 그게 뭐든 조금씩 하다 보면 차곡차곡 쌓일 테고,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끈기와 인내심을 갖고 끝까지 쌓아서 완성하는 것일 테니까. 한 걸음, 한 걸음이 쌓여 우리가 결국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 대성당 앞에 설 수 있었던 것처럼.
--- p.59 「조금 느리면 어때」 중에서
무려 11개국, 19개 도시. 2019년 하반기의 살인적인 일정이었다. 7월 한 달은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에서, 8월 한 달은 루마니아의 티미쇼아라Timisoara에서 보낸 뒤 9월부터 11월 중순까지 약 두 달간 발칸반도를 여행했다. 브라티슬라바에서 몰타로 가는 항공권을 이미 발권해버린 상황(저가 항공의 노예여…)이라 도시 간 버스를 타고 조금씩 이동하며 브라티슬라바로 향했다. 최근 몇 년의 여행 동안 가장 이동이 잦은 기간이었다. 발칸반도를 시계 반대 방향으로 크게 한 바퀴 돌았다. 그냥 지나가기엔 아쉬운 마음에 여기도 가볼까, 저기도 가볼까 하다가 초래한 결과였으니 다 내 욕심이었다.
--- p.104 「디지털노마드의 하루」 중에서
돈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할 때가 있었다. 돈 얘기를 하는 것은 뭐랄까, 좀 속물처럼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정확히는, 상대방이 나를 돈만 밝히는 속물처럼 볼 것 같았다. 그래서 일을 시작했던 초창기에는 그저 일이 들어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에, 돈에 대해서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진행할 때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제대로 된 보수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생겼고, 괜히 한다고 했나 후회할 때도 있었다. 보통 협업 요청 건은 이메일로 연락이 오는데, 그중의 절반 이상은 돈 얘기가 쏙 빠져있다. 일에 대한 모든 내용을 명확하고 간결하게 알려주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그렇지 않은 곳들이 생각보다 많다.
--- p.143 「밥 벌이의 고단함」 중에서
지금의 생활이 좋기만 하고 불안하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일을 즐겁게 하고 있지만, 그래도 가끔은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있을까 막막하고 두려울 때가 있다. 이래서 되겠어? 뭔가 더 열심히 해야 하는 것 아니야? 다른 사람들은 더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사람들이 더는 우리 콘텐츠를 찾지 않으면 어쩌지? 일감이 떨어지면 어쩔 거야? 초조한 마음에 자신을 채근하며 흔들릴 때도 있지만, 그럴 때마다 조금 멀리더 길게 본다. 언젠가는 나오게 될 울타리였어. 조금 일찍 나온 것 뿐이야. 그리고 지금까지 한 발 한 발 걸어왔던 길을 가만히 돌아본다. 잘 걸어왔잖아. 잘하고 있어. 앞으로도 잘할 수 있을 거야. 또 혹시 잘 안되면 어때? 계획해서 여기까지 온 게 아니었잖아. 그렇게 여전히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산다. 어떻게든 해나갈 수 있을 거라는 마음으로.
--- p.261 「가끔 불안할 때도 있지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