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찾는 해수욕장에서 자라는 갯메꽃 주변을 파보면 모래거저리를 만날 수 있다. 특히 봄에는 어른벌레가 얼마나 많은지 살살 파기만 해도 툭툭 튀어나와 까만 보석을 캐는 기분이다. 또 모래거저리는 대개 무리 지어 있기 때문에 앉은 자리에서 수십 마리도 볼 수 있다. 야행성이라 모래 속에 숨어 있다가 밤이 오면 모래 위를 어-슬-렁-어-슬-렁 걸어 다니며 먹잇감도 찾고 짝도 찾는다. 그러다 새벽이 되면 다시 모래 속으로 들어가 쉰다. 모래거저리를 건드리니, 깜짝 놀라 도망갈 법도 한데 도망은 안 가고 여섯 개 다리와 더듬이를 배 쪽으로 딱 오그린 채 꼼짝도 안 한다. 손으로 살짝 건드려도 미동도 없다. 대부분의 곤충들은 위험에 맞닥뜨리면 혼수상태에 빠져서 움직이지 않고 죽은 듯 가만히 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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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나무는 곤충들에게 중요한 밥이다. 하늘소 애벌레, 비단벌레 애벌레, 사슴벌레 애벌레, 거저리 애벌레 등 수많은 곤충들이 죽은 나무를 찾아와 썩은 나무 조직을 먹고 산다. 잠시 머무는 게 아니라 약 10개윌의 애벌레 시절 동안 나무 속에 틀어박혀 산다. 죽어 쓰러진 나무는 곤충들의 밥상이자 집이자 쉼터인 셈이다. 그들은 나무를 잘게 분해시켜 또 다른 식물의 거름으로도 되돌려준다. 요즘 공원, 도로 옆, 휴양림 등에서는 쓰러진 나무들을 말끔히 치운다. 나무를 삶터로 삼는 곤충들은 영문도 모른 채 어느 장작 숯불구이 식당에서, 어느 집의 화목 난로 속에서, 소각장에서 화장당하고 있다. 숲 곤충이 사라지면 죽은 나무를 누가 분해할까. 죽은 나무를 치우는 건 살상이다. 죽은 나무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작은 생태계가 깨지는 순간, 곤충은 사라지고 풀과 나무만 있는 침묵의 숲이 되는 건 시간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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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슬에 옷이 축축하게 젖을 무렵 재밌는 일이 벌어졌다. 반딧불이들이 잠시 깜박임을 멈춘다. 이삼 분 정도 지나자 나뭇잎에 앉아 있던 한 녀석이 빛을 내며 깜박깜박 날아오른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또 다른 녀석이 깜박깜박 빛을 내며 날아오르고, 이어서 또 다른 녀석이 깜박깜박하며 날아오르고 …….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여기저기서 강렬한 불빛을 깜박이며 불춤을 춘다. 수십 마리가 차례차례 불빛을 내니 마치 크리스마스트리에 점등하는 것 같다.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숨이 막힐 지경이다. 이는 ‘동조현상’이라고 하는데, 암컷을 효율적으로 유혹하기 위한 수컷들만의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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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이 욕심이 없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만, 그 이유는 결코 철학적이지 않고 단순하다. 조상 대대로 저마다 밥을 정해놓고 먹어왔기 때문이다. 식물을 먹는 곤충, 다른 곤충을 포식하는 곤 충, 버섯만 먹는 곤충, 썩은 나무만 먹는 곤충, 사체만 골라먹는 곤 충, 똥 만찬을 즐기는 곤충 등 종마다 먹잇감이 정해져 있어서 절대로 남의 식탁을 넘보지 않는다. 않는다. 예를 들면 어른 호랑나비는 꿀만 먹고, 솔나방 애벌레인 송충이는 솔잎만 먹고, 장수하늘소 애벌레 는 썩은 나무 조직만 먹고, 흑진주거저리는 버섯만 먹는다. 뇌 용량이 작기 때문인지 요령을 부릴 줄 모르고, 사기를 칠 줄도 모르 고 그저 주어진 현실에 만족하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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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컷 매미의 임무이자 의무는 짝짓기를 통해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는 것이다. 그래서 암컷을 유혹하려고 노래를 부르지만, 암컷이 반응하지 않는다. 살날은 고작 열흘뿐인데, 짝을 구하지 못한 수컷의 마음은 엄청나게 조급하다. 그런데 문명화가 진행될수록 전깃불이 도시의 밤을 낮처럼 밝힌다. 가로등은 해질 무렵부터 여명이 틀 때까지 켜져 있고, 건물에도 환한 불이 켜져 있다. 매미들은 비록 대낮처럼 밝진 않지만 제법 환한 도시의 밤 불빛에 적응한다. 그러니 짝을 찾지 못한 수컷은 쉬어야 할 밤을 낮으로 착각하고 암컷을 향한 세레나데를 부른다. 실제로 가로등이 없는 깊은 산골에선 밤에 매미가 울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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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작 엎드려 있는 대벌레를 살짝 건드리니, 깜짝 놀라 여섯 다 리에 힘을 주고 팔굽혀펴기 준비 자세처럼 몸을 일으켜 세운 뒤 좌우로 몸을 살살 흔든다. 마치 나뭇가지가 바람에 나부끼는 것 같다. 그러니 말벌이나 새 같은 천적들은 살아 있는 생명이 아니라 나뭇가지인 줄 알고 지나쳐버린다. 몸속에 독 물질도 없고, 천적과 맞서 싸울 무기도 없고, 단지 몸을 나뭇가지로 위장해 살 궁리를 하는 녀석이 참 지혜롭다. 또 대벌레는 천적에게 잡히면 대개 잡아먹히지만, 때로는 다리 하나를 뚝 떼어버리고 도망칠 때도 있다. 마치 도마뱀이 적을 만났을 때 자신의 꼬리를 잘라버리고 도망치는 것처럼. 잘린 다리는 다행히도 허물을 벗을 때 다시 돋아난다. 물론 돋아난 다리가 온전히 다 자라진 않지만, 그런대로 다리의 역할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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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난화가 평범한 곤충에게 미치는 가장 큰 영향은 식물의 개화시기다. 식물은 온도 변화에 그런대로 적응해 날짜에 상관없이 적정 온도가 되면 꽃을 핀다. 5~6월에 만발하는 찔레나무 꽃은 시기를 앞당겨 5월 초에 피어버린다. 쥐똥나무나 노린재나무의 꽃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곤충은 기후적응 속도가 늦어서 식물의 시간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꽃하늘소들은 대개 썩은 나무 속에서 열 달 넘게 살다가 찔레나무 꽃이 필 때쯤 어른벌레로 날개돋이를 해 꽃으로 날아온다. 어른벌레의 밥이 꽃가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꽃하늘소가 바깥세상에 나와 보니 꽃이 이미 지고 있다! 꽃하늘소가 대체먹이를 찾는 데 성공하지 못하면 어른벌레의 임무인 번식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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