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세라는 개념 덕에 우리는 인문학을 21세기의 매력적인 학문으로 다시 개념화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언어와 이미지는 개인들의 행동 방식과 공공 정책에 변화를 일으키고 대중을 일깨우는 데 생산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역사, 예술, 문학, 종교, 철학, 윤리와 정의로 예시되는) 인문학 담론은 향후 50년에서 100년간 그리고 그 너머로 이어질 시대에 우리가 마주치게 될 중대한 선택지들에 관한 새로우면서도 설득력 있는 인식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서문」중에서
기후변화에 관한 과학적 논란과 논쟁은 인문학 쪽에서 이 문제에 개입할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윤리학자, 작가, 시인, 예술가, 신학자 등 인문주의자들은 지구적 기후변화와 그것이 여러 인종, 계급, 젠더에 미칠 영향에 관한 사회적 담론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하고 있다. 자연이란 무엇인가, 지구온난화 시대에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향후 인류는 어떤 식으로 기술을 사용해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게 될까? 과학자도, 인문주의자도, 미래를 위해 가능한 선택지들을 밝혀내는 기후변화 논쟁에 얼마든지 참여할 수 있다.
---「프롤로그」중에서
프리고진의 비평형 열역학은 하나의 계가 붕괴할 때 더 높은 수준의 조직이 무질서로부터 자발적으로 출현할 가능성을 열어준다. 그의 이론은 닫혀 있기보다는 열려 있는 사회계와 생태계에 적용되며, 생물학적 진화와 사회적 진화의 역사를 설명하는 데 도움을 준다. 생물의 영역에서 과거의 구조가 붕괴하는 경우, 자그마한 투입분이 새로운 효소나 세포 구조의 생산으로 이어지는 자기 강화적 반환력을 유발할 수도(그러나 꼭 유발하는 것은 아님) 있다. 사회의 영역에서는 혁명적 변화가 일어날 수도 있다. 즉, 어느 한 사회가 과거와는 다른 사회적 또는 경제적 형태를 중심으로 조직을 재편하는 대규모의 사회적 또는 경제적 혁명이 일어날 수 있다.
---「1장 역사」중에서
몇몇 일러스트 작품은 당시 철도 건설과 유지·보수 작업에 투입된 중노동과 어마어마한 노동 시간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이 이미지들은 인류세라는 시대 속 육체노동의 면모를 가감 없이 드러낸다. 이 경우 인류세는 남자의 시대, 아니면 더 부정적인 용어로 말해 가부장세Patriarchalocene, 수컷세Androcene, 노예세Slavocene라고 해석해야 적절할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여성들과 흑인들이 미국 철도 산업에서 기관차 엔지니어와 임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2장 예술」중에서
린 화이트는 이렇게 주장한다. “특히 서구에서 그런 성격이 짙은데, 기독교는 세계에 출현한 종교들 가운데 가장 인간 중심적인 성격의 종교이다. (…) 고대의 이교, 아시아의 종교들과 절대적으로 대비되는 기독교는 (…) 인간/자연 이원론을 확립했을 뿐 아니라, 자신들이 정한 타당한 목적을 위해 인간이 자연을 착취하는 행위가 신의 의지라고도 주장했다.”2 기독교는 인간이 자연과 나/당신I/Thou 관계를 맺는다는 비기독교적 사상에 도전했는데, 이 관계 속에서는 움직이는 것이든 아니든 모든 존재자가 살아 있었다.
---「4장 종교」중에서
플라톤은 지식이 클라우드 속에 저장될 수 있다는 점에 흥분할 뿐만 아니라, 모든 지식을 찾아내는 일이 어떤 식으로 가능한지 알고 싶어 한다. 엔지니어 마커스는 사용자가 제기하는 질문에 응하는 검색 엔진이 무수한 결과를 찾아낸 후 관리 가능한 순서로 정렬해 낸다고 설명한다. 모든 지식을 구글이 집적하고 있다고, 마커스는 자랑스럽다는 듯 말한다. 플라톤 그 자신도 알고 있겠지만 지식이란 좋은 것이라고.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플라톤은 고개를 푹 숙이고는 매우 부드러운 어조로 속삭인다. “그건 정보죠, 지식이 아니라.”
---「5장 철학」중에서
필요와 의지는 다른 것이며 따라서 윤리는 생산적인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필수 요소일 수밖에 없다. 기후 협상 테이블의 주요한 논점은 전부 윤리적인 사안이다. 다시 말해 협상 테이블 위에 놓인 난제들 각각의 실마리를 풀려면 윤리적 원칙들과 사유가 필요하다. 피해에 대한 책임 소재, 합리적 감축 목표, 탄소배출권 거래량의 할당, 각국의 재정 부담, 책임량의 정도, 새로운 테크놀로지에 대한 평가, 절차상의 공정성 같은 난제들 말이다. 기후 윤리와 관련된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기존의 윤리 이론들을 평가하는 동시에 새로운 이론들을 제안해야 한다.
---「6장 윤리와 정의」중에서
인문학은 기후변화 충격 완화를 돕고 그 충격에 대응하는 방식의 생태적 관리 전략에 통찰력을 제공하고 있다. 인문학의 주요 분야들, 즉 예술, 문학, 종교, 철학, 윤리와 정의 사이에는 중대한 연결고리와 상호 중첩되는 이슈들이 있고, 이것들은 21세기와 그 너머의 시기에 인류가 마주할 환경 문제의 해결을 위한 프레임을 구축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에필로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