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속담에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선무당은 어설프게 아는 사람입니다. 어설픈 지식으로 뭘 아는 척 법석을 떨다가 멀쩡한 생사람을 죽이기까지 하는 사람입니다. 성경을 가르치거나 설교하거나 서로 나누는 사람들 중에는 수많은 선무당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과도한 열정과 확신은 때론 자기도 죽이고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며, 그나마 가진 귀한 기독교 신앙을 혼란에 빠뜨려 믿음의 대열에서 떨어져 나가게 하곤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성경을 주먹구구식으로 알고 제멋대로 해석하니 성경의 품격을 크게 떨어뜨리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의 품격을 떨어뜨리면 하나님의 품격은 덩달아 떨어지고 맙니다. 하나님의 품격이 떨어지면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겠다고 열심히 교회를 다니는 크리스천의 품격도 절로 떨어지지 않겠습니까? 남의 얘기 하듯 한담하는 필자를 관대히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실 저도 성경을 연구하고 가르치고 설교하는 사람이지만 이따금 선무당같이 얄팍하고 꾀죄죄한 지식으로 성경을 통달한 사람처럼 행세했으니까요.
성경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이 누구인가를 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인가를 알아야 인간은 자신이 누구이며 이 세계와 역사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진화생물학자이자 영향력 있는 작가인 영국의 리차드 도킨스(Richard Dawkins)는 종교와 신을 부정하는 학자입니다. 그는 “과학을 통해 우주와 세상을 이해하는 인간인 우리는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과학에 대해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것은 과장된 말입니다. 과학도 중요하지만 먼저 그 과학의 원천이고 배후자인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때문에 인간은 겸손한 자세로 이렇게 질문해야 온당합니다. “성경을 통해 우주와 세상을 이해하는 인간인 우리는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왜 이렇게 질문하지 않으면 안 될까요? 성경은 우리의 삶을 설명해주는 참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과 인간과 세계에 대해 가장 믿을 만하고 가장 확실한 설명을 제시해주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은 우리들이 이 세계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가르쳐 줍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너무나 가볍게 성경을 대했습니다. 사실 성경만큼 어려운 책은 없습니다. 역사, 철학, 문화, 문학 등 받쳐주는 지식이 없으면 성경이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지를 알 수 없습니다. ‘은혜’로만 성경을 알면 곤란합니다. 차가운 지성과 뜨거운 가슴으로 성경을 알아야 합니다. 어설픈 성경 지식으로 난해한 문제를 들고 온 사두개인들에게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므로 오해하고 있는 것 아니냐?” 하시며 “너희가 크게 오해하였도다”라고 개탄하신 예수님의 질책은 필시 우리들 그리스도인들에게 지성과 영성을 동시에 가질 것을 촉구하는 말씀임이 분명합니다.
필자는 성경을 연구하고 가르치면서 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무기력하게 사는지 고민했습니다. 대한민국의 그리스도인들은 은혜는 넘치는데 인격의 변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말씀이 우리의 삶속에서 능력이 되지 못한 이유도 있지만 우리 속에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역사의 현장에 뛰어들어 인간과 함께 역사를 써나가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역사 속에서 자신을 계시하신 하나님이 누구인가를 아는 데서부터 출발합니다. 성경은 영감 받은 위대한 신앙의 선진들이 하나님이 역사 속에서 행동하시고 말씀하신 것들을 가감 없이 기록한 거룩한 문서들의 모음집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읽고 있는 이 성경은 신학책이면서 동시에 역사책입니다.
이에 필자는 구약성경이 실제 역사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부터 밝히려고 하였습니다. 인간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선택하셨고 다윗 왕국을 만드셨으며 선지자들을 통해 자신의 뜻을 나타내셨고 예수 그리스도로 성육신하셨습니다. 필자의 이러한 신학적 사색과 성찰은 이 책의 곳곳에 배어 있으므로 본서는 독자들에게 성경을 보는 종합적인 안목과 통찰을 풍성하게 제공해줄 것입니다. 본서는 문란하기 짝이 없는 성경의 역사와 신학을 바로잡아 땅에 떨어진 성경의 권위를 제자리에 돌려놓으며, 구겨지고 훼손된 하나님 상(像)을 회복하려는 데 철두철미하게 초점이 맞추어진 책입니다. 본서는 또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닮은 우리들 인간의 품격, 특히 은혜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인 그리스도인들의 품격이 무엇인지를 소상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이 책은 시간을 두고 순차적으로 발간될 신구약 7권의 시리즈 중 첫 번째 책입니다. 독자 여러분은 이 책들을 통해 성경에 대한 시선과 사고의 지평이 넓혀져 광활한 성경의 세계를 만끽하게 될 것입니다. 본서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본서는 성경신학을 바탕에 깔고 주해와 해석을 곁들인 방대한 개론서입니다. 오경 연구는 구약은 물론 신약에 이르기까지 모든 연구의 출발이자 기초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신학계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분야입니다. 그런데 최근 연구들 중에서 구약성경 전체를 주해와 해석, 성경신학 등에 의해 한눈에 파악하도록 하는 개론서의 발간은 국내 신학계에서는 필자가 처음으로 시도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독자들은 종합적인 개론서인 이 책에서 역사와 신학, 설교와 성경공부, 학위 논문과 강연 등에 필요한 많은 실제적인 정보들과 풍부한 영적 가치들을 얻을 수 있습니다.
둘째, 본서는 학자들의 다양한 신학사상들을 균형감 있게 취급한 신학서입니다. 20-21세기 국내외 유명 신학자들의 신학사상과 견해들을 비교·평가하면서 사안별로 필자의 견해를 가미한 이 책은 교조주의적인 보수주의 학자들로부터 극단적인 자유주의 비평학자들의 견해들에 이르기까지 신학의 폭넓은 스펙트럼을 고르게 제시, 독자들이 신학사상의 보수와 자유의 경계를 종횡무진 오가며 성경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셋째, 본서는 성경의 권위와 성경 중심의 해석 원리를 취하고 있습니다. 성경 본문을 해석함에 있어 성경의 권위를 최우선적으로 하였으며, 성경 본문의 해석과 본문을 둘러싼 여러 이슈들에 대한 가치 판단을 함에 있어서도 철저히 성경 중심의 해석 원리를 취하고 있습니다. 역사에 대한 구속사적 의미와 그 성취 여부에 시종일관 관심을 정초하면서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복음주의적·신학적 입장을 견지하려고 하였습니다.
넷째, 본서는 기존의 어렵고 딱딱한 신학서적과는 달리 쉽고 재미있는 스토리텔링 스타일의 개론서입니다. 필자는 역사, 철학, 지리, 문화 등 성경을 받쳐주는 다채로운 정보들을 동원하면서 자유롭고 여유로우면서도 시대감각에 맞는 치열한 작가 정신으로 글을 쓰려고 하였습니다. 독자들은 여느 신학서적에서는 좀처럼 경험할 수 없는 풍부한 문학성에 매료되며 신나는 성경의 세계에 흠뻑 빠져들게 될 것입니다.
다섯째, 본서는 문맥의 상황에 어울리도록 문장의 단어들을 구사할 때 몇 가지 특정 어휘들은 고정관념에 구애되지 않고 비교적 자유롭게 표현했다는 것을 알려드립니다. 이를테면, 그리스도인/크리스천, 야웨/여호와, 성경/성서, 성경신학/성서신학, 예언자/선지자, 애굽/이집트 등이 그러한 표현들입니다. 또한 본서는 개역개정 성경을 사용하였습니다. 한편으로 본서는 학문적인 가치를 높일 목적으로 신학자들의 견해들을 인용하는 경우에는 그 출처를 분명히 하기 위해 각주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다음으로 본서의 구성과 목차에 대해 말씀드리면, 이 책은 모두 3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본체인 모세 오경(제2부)을 가운데 두고 그 앞에 오경의 체계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오경 입문 편(제1부)을 배치하였고, 읽기에 딱딱한 학문적인 구약신학 편(제3부)은 뒷부분에 배치해 이참에 독자들에게 구약성경에 대한 총체적인 안목을 넓히도록 해놨습니다. 모세가 기록한 다섯 권의 책들(창세기-출애굽기-레위기-민수기-신명기)은 히브리 성경과 기독교 성경에 고착된 정경 배열의 순서를 따랐습니다. 본서는 또한 독자들의 독서 효율과 학문적 편의를 위해 다섯 권의 책들의 목차를 곰살스럽게 가급적 일률화하도록 하였습니다. 창세기로 예를 들어, 짧은 도입과 개관을 서술한 후, 제1장 창세기의 명칭과 기능, 제2장 창세기의 저자, 제3장 창세기의 저작 연대와 배경, 제4장 창세기의 핵심 단어, 구절, 장, 제5장 창세기의 구조와 문학, 제6장 창세기의 내용, 제7장 창세기의 신학적 주제 순입니다. 출애굽기나 신명기의 경우에는 위와 같은 공통 목차를 따르되 순서가 약간은 다르게 짜여 있습니다. 신명기로 예를 들어, 목차 중간에 신명기와 고대 근동의 조약문서(제4장), 신명기의 중요한 쟁점들(제5장), 최종 형태의 신명기-본문의 의미와 해석(제6장), 신명기 법전(제9장)이 추가되어 모두 11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좋은 개론서를 만들려고 최선을 다했지만 집필을 완료해놓고 생각해보니 미천한 지식으로 괜스레 이 고고한 분야에 겁 없이 뛰어 들었나 해서 문득 부끄러운 마음이 들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본서가 성경과 교회를 사랑하는 독자들의 뜨거운 관심과 호응을 받는다면 그것으로 필자의 무모함은 가려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모쪼록 이 책이 목회 일선에서 수고하는 목회자, 설교자, 선교사는 물론 신학도와 성경교사, 그리고 성경을 더욱 깊이 알고 싶어 하는 평신도들에게 학문적·신앙적 도움이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필자는 이 책을 집필하면서 전통 보수주의 신앙과 신학 위에 서있다는 게 얼마나 축복인가를 여러 번 실감했습니다. 금보다 귀한 신앙을 유산으로 물려주신 아버지 고 김종천 장로님과, 100세를 장수하시며 아들을 위해 지금도 눈물로 기도해주시는 어머니 김순주 권사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늘 곁에서 있어주며 내조해준 아내와 사랑하는 자녀들과 손자들, 그리고 기도와 격려로 지원을 아끼지 않은 우리 밝은세상교회의 모든 교인들과 동료 목사님들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이 책은 몇 분의 아낌없는 헌신과 지원이 없었더라면 세상에 나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평소 필자를 위해 기도하는 최성광 목사님(한소망교회), 이종명 목사님(성화새생명교회)과 큰형님인 김융 장로님(공인회계사), 그리고 금란지교의 벗인 조병춘 장로(조병춘안과 병원장)와 서거석 총장(전 전북대총장 겸 대교협회장), 요안나와 수산나 같은 김혜정 권사님과 권희재 권사님,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 같은 오명석 형제와 이현리 자매, 조카 문상석 집사(변호사) 등이 그러한 분들입니다. 부족한 사람을 늘 곁에서 챙겨주고 격려해주시는 동역자 여러분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 축복하고 싶습니다. 또한 엄청난 분량을 한 권의 권위 있고 훌륭한 책으로 만들어주신 킹덤북스(Kingdom Books) 대표 윤상문 목사님을 비롯한 임직원 여러분에게도 감사를 드립니다. 이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 드립니다.
2017년 11월 10일
신정동 연구실에서 김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