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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는 채로, 여기까지

알 수 없는 채로, 여기까지

레나 | 낮은산 | 2022년 07월 07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9.7 리뷰 3건 | 판매지수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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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7월 07일
쪽수, 무게, 크기 272쪽 | 344g | 128*188*20mm
ISBN13 9791155251553
ISBN10 1155251555

이 상품의 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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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MD 한마디

[우연이 빚은 만남의 순간들] 사진작가 레나가 세계 각지에서 만난 우연들이 특별함으로 번졌던 온기의 시간들을 기록했다. 또한 세상을 떠난 여성 예술가들을 좇는 여정을 통해 그녀들과 교감하는 순간도 선사한다. 곳곳의 흑백 사진들에선 레나만의 따뜻함과 절제미도 볼 수 있는 에세이. - 이나영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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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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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는 수십 개, 수만 개의 다양한 얼굴이 있다. 나 자신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다. 유대인이자 무슬림이자 러시아인이면서 분쟁 지역에서 살아가는 크로아티아 여권을 가진 소녀가 자기가 있을 곳을 찾아냈듯이, 고급 관리라는 과거를 버리고 변화하는 정세에 맞춰서 자신의 삶을 새롭게 꾸린 드라군처럼, 그런 용기가 나에게도 있을까 고민하던 바로 그때, 하나코의 말은 숨구멍을 뚫어 주었다.
--- p.47

아마도 나는 계속해서 ‘매끈하고 정갈한 것’을 동경할 것이다. 그런 동경과, 어딘가 엉성하고 군데군데 올이 빠진 듯한 내 삶을 같이 가져가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조금 거칠어도, 깨끗하지 않아도 괜찮다.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 p.57

언젠가 팬데믹이 지났을 때, 우리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부디 각자가 만들어 낸 소중하고 아름다운 장면들을 기억하며 작은 미움조차 거둬들일 수 있기를 바란다. 어두운 터널을 지날 때 필요한 것은 총이 아니라 빛이다. 우리를 터널 밖으로 인도하는 것은 결국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낸 작디작은 불빛들이다.
--- p.86

우리는 우연에 의해 태어나고 그 생이 다해 죽는다. 당신을 만난 것도 긴 우연의 일부였을 뿐이다. 그렇지만, 우리의 시간을 반짝이게 만들어 준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함께 나누었던 이야기, 함께 흘렸던 눈물, 함께 웃고 떠들며 보냈던 밤들이었다. H도 보았을까. 이토록 무서우리만치 반짝이는 별의 무리를. 그래서 언젠가 같이 히말라야에 가자는 얘기를 꺼냈던 걸까. 이제 나는 영원히 그 답을 모른다.
--- p.121

누구나 저마다의 무게를 견디고 살아간다. 그러나 비에이의 나무들이 가지마다 눈을 얹고도 버틸 수 있었던 건 바람이 한 번씩 눈의 무게를 덜어 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그 밤의 눈길을 무사히 걸을 수 있었던 것도 누군가가 눈이 얼기 전 미리 치워 두었기 때문이었다. 오갈 데 없던 나에게 따뜻한 밥을 내어 주었던 문방구 언니, 낯선 내게 걸어서는 결코 갈 수 없던 숲을 데려가 준 사치코, 추위에 얼어붙은 손님에게 따뜻한 차를 내어준 작은 식당의 아주머니. 그런 이들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길을 되돌아본다.
--- p.153

아시안이라는 정체성, 여자라는 정체성 때문에 나는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었다. 더 예민하게 반응한 덕분에 소수자들, 가려지는 것들에 시선을 둘 수 있었다. 나에게 베풀어진 친절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었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 p.199

“감자가 시간이 지나면서 어떻게 변하는지를 지켜보았죠. 오래된 감자는 정말로 아름답답니다. 이런 기분을 느껴야 할 거예요. 고통스러워하지 마세요. 감자가 되어 보세요.”
--- p.216

인생이란 원래 구불구불한 것(in-and-out)이니까 단편적인 것만으로 어떤 이의 인생을, 한 인물의 성격을 파악할 수는 없다고. 나에게 자유란 집을 나오는 것이었지만, 에밀리에게 진정한 자유란 가장 마음이 편한 장소에서 혼자 고요히 머무는 시간이었는지 모른다. 그런 자유를 누리기에 하워스는 충분한 장소다.
--- p.234

런던 북서쪽에 있던 내 작은 방과 아침저녁으로 건너던 템즈강, 일요일이면 산책 겸 들르던 런던 시내의 도서관들, 그리고 열심히도 걸어 다녔던 옥스퍼드 스트리트와 채링크로스, 웨스트엔드. 런던의 거리들은 내가 겪었던 일들을 ‘원래 그런 것’이라고 체념하지 않게 만들어 주었다. 수많은 이들이 그동안 많은 길들을 걸었고 그 덕분에 조금씩이나마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 p.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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