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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맛

여름의 맛

리뷰 총점9.1 리뷰 9건 | 판매지수 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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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3년 10월 04일
쪽수, 무게, 크기 368쪽 | 450g | 130*200*30mm
ISBN13 9788932024493
ISBN10 8932024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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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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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 추억의 음식으로 백 명이 짜장면을 꼽는다 해도 그 이유가 백 가지로 다 다를 거라고 생각했다. 짜장면에 관한 추억은 지극히 사소하고 개인적인 기쁨일 테니까. 맛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깨달은 게 있다면 맛은 맛이기 이전에 한 개인의 추억이라는 사실이었다. 김은 끝내 공개할 수 없다는 요리집 주방장의 비법을 캐묻지 않았다. 알고 보니 비밀은 바로 조미료였습니다, 식의 조롱이 아니었다. 레시피보다 음식에 깃든 한 개인의 추억을 재현하는 데 공을 들였다.
--- p. 59

나는 풍경을 응시했다. 이제 간판의 계집아이가 나든 아니 든 상관없었다. 세잔의 생트 빅투아르 산이 세잔을 보듯 나의 간판이 나를 보고 있었다. 한 시인은 자신의 산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세잔이 그 풍경을 받아들일 눈을 가지는 데에는 그때까지의 유럽 미술사의 모든 시간 플러스 알파가 필요했다고. 그 알파란 세잔이 시대보다도 앞질러 달렸던 바로 그만큼의 시간이 아니겠느냐고.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간판을 볼 수 있기까지 나에게도 나만의 알파의 시간이 흘러갔다는 생각이 든다.
---- pp.102~03

김은 곧 이곳을 떠나 다른 연구소로 옮기게 될 것이다. 함박스테이크가 햄버그스테이그가 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는 모든 단어들을 순화시키느라 남은 생을 바칠 것이다. 그녀가 가끔 혼자 중얼거리고 숨통을 틔우는 그 단어들을 하나하나 다 바꾸려 들 것이다. 식모가 가정부로 차장이 안내양으로 바뀌는 순간 덩달아 사라졌던 것들이 떠올랐다. 누군가 말했다. 한 개인의 사회적 자아는 그 개인의 언어에 깊은 자국을 낸다고. 똑똑한 김이 모를 리 없었다.
--- pp. 168~69

퍼레이드가 끝나고 분장실로 돌아와보니 나뿐 아니라 모든 여자 단원들이 다 한바탕 운 것 같았다. 빗물에 번진 마스카라가 눈 밑을 검게 물들여놓았다. 짙은 화장 위로 빗물이 흘러 뺨에 여러 줄의 골이 패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는 서로 상대방의 얼굴을 보며 웃어댔다. 좀처럼 웃음이 멈춰지지 않았다. 너무 웃어 눈물이 쏙 빠졌다. ……혹시 그때 나 정말 울었던 건 아닐까?
--- p. 185

엄마는 달랑 돼지 두 마리만 몰고 이곳에 들어왔다. 그 시절 젊은 엄마의 모습을 떠올릴 때면 막연히 읍의 교회에서 나눠주던 엽서가 생각난다. 엽서에는 키보다 긴 지팡이를 짚은 예수님이 서 있다. 그 주변에는 털실 뭉치 같은 양들이 서 있거나 앉아 있다. 예수님이 길 잃은 한 마리의 양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해준 것은 여름성경학교의 선생이었다. 나는 ‘기다린다’라는 말이 좋았다.
--- pp. 203~04

봉고는 사람들 눈에 띄지 않도록 미끄러지듯 골목 안으로 들어왔다. 가로등 불빛이 미치지 않는 어둠 속에서 먹이를 노리는 맹수처럼 숨어 있었다. 급작스레 쌀쌀해진 날씨에 여느 날보다 빨리 인적이 끊겼다. 가로등과 가로등 사이 빛이 닿지 않는 곳은 제 발이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두웠다. 자칫 탈 뻔한 봉고차. 만약 그때 그 봉고를 탔더라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 까. 그날로부터 16년이 흘렀다.
--- p. 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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