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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잠과는 무관하게
중고도서

나의 잠과는 무관하게

강성은 | 창비 | 2021년 11월 15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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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11월 15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172쪽 | 272g | 128*194*16mm
ISBN13 9788936438623
ISBN10 893643862X

중고도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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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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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깨울까 하다가 미정은 침대에 걸터앉아 생각에 잠겼다. 진서는 무얼 더 기억하고 있을까. 내가 잊어버리고 잃어버린 것들은 또 얼마나 될까. 아이가 계속해서 자란다는 사실이 무서워졌다. 문득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보았는데 나무 위에서 누가 이쪽을 보고 있었다. 홀린 듯 미정이 다가가 창밖을 보니 나무 위에 진서와 토토가 앉아 있었다. 미정은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진서를 향해 손을 뻗자 유리가 미정의 손을 막았다.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p.27~28, 「나무 위에 있어요」

나는 냉장고가 사라진 적도 있어.
냉장고?
9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사라진 게 아니라 누가 훔쳐간 거 아닐까?
(…)
이상한 일이네.
난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
5가 얘기하자 1과 7도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럴 줄 알았어.
9는 시무룩한 표정이었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대꾸했다.--- p.51~52, 「사라진다는 것」

아침에 눈을 떠보니 방의 위치가 조금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벽에 붙어 있는 줄 알았는데 몸이 그대로 벽이 되었더라고요. 처음엔 놀라 어어어, 했죠. 당황스러워서 이럴 땐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비명이라도 질러야 되는지, 도와주세요,가 나을지 살려주세요,가 나을지 생각하다가 둘 다 외쳤는데 아무도 나타나지 않아서 헬프 미,라고도 외쳐봤지만 역시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어요. 그도 그럴 것이 옥탑방에 혼자 살아서 아무도 제 소리를 들을 수 없거든요. 어쩌면 벽이 되었기 때문에 내 목소리가 밖에 들리지 않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꿈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시간이 지나면 꿈에서 깨거나 다시 인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그런데 시간이 지독히도 느리게 지나가더군요. 이게 꿈이라면 너무 길고 지루해서 죽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 p.68~69, 「겨울 오후 빛」

저 원래 아무 데서나 잠드는 사람 아니에요.
보리씨는 좀 억울한 표정이었다.
미래씨의 목소리가 저에겐 수면제인 거죠. 얼굴을 보는 것만으론 아니에요. 전화하다가도 잠드니까. 과학적으로는 규명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분명 주파수나 초음파 비슷한, 현재의 우리로서는 알 수 없는 뭔가가 있는 게 틀림없어요.
그러니까 제 목소리가 수면제라구요.
네, 맞아요.
나는 웃음이 나왔지만 애써 참으며 말했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보리씨가 저를 만나기 전엔 한번도 이런 일이 없었다는 거죠?
네, 잠이 오는 건 미래씨 때문이에요.
보리씨, 잠이 온다는 말 재미있지 않아요? 내가 자고 싶다고 맘대로 자는 게 아니고 잠이 나한테 와야 잘 수 있다는 거잖아요.
그렇네요. 잠이 올 수도 있고 갈 수도 있다는 말이네요.--- p.100~101, 「잠수교가 잠기는 날에는」

옆자리의 사람은 알 수 없는 낮은 소리로 몇마디 잠꼬대를 했다. 무서운 꿈이라도 꾸는지 몸을 뒤척이며 짧은 신음소리도 냈다. 무서운 꿈속에서 그를 구해주어야 할까. 흔들어 깨울까. 여자가 망설이는 사이 모자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곤히 잠든 사람의 얼굴.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의 감은 눈과 코와 입과 뺨은 여기가 아닌 먼 곳에 있는 것처럼 멀어 보였다. 여자는 떨어진 모자를 주워 자신의 얼굴에 덮었다. 아주 깊은 잠을, 아주 오랜 잠을 잘 것이다.
--- p.153~154, 「나의 잠과는 무관하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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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언제나 현재를 지속하는 힘 혹은 믿음과 그것을 의심하는 마음의 사이에서 겨우 쓰이고 읽힌다. 이야기는 현실과 비현실을 구분하는 게 아니라 그것이 다르지 않음을 증명하는 새로운 자리를 열어 보여주고, 믿음과 의심이 대립하는 게 아니라 하나가 다른 하나를 극복함으로써만 가능한 힘이라는 것을 일러준다. 강성은의 이야기는 이야기의 이러함을 새삼스럽게 확인하게 해준다. 별것 아닌 듯한 말들 가운데 누군가의 삶을 통째로 흔들어놓는 말들이 끼어들어 있을 수 있다는 것, 그 말은 누군가의 불면을 통해 쓰이고 다른 누군가의 깊은 잠과 꿈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 또한 말이다. 언젠가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 세계의 내가 울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내가 대신 울고 있기 때문이라고. 이 이야기들이 우리를 어떤 위안과 안심과 깊은 잠의 세계로 안내한다면 그것은 강성은의 이야기가 어떤 불안과 슬픔과 불면의 밤에 거듭 쓰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 김나영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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