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대밭과 흑두루미를 지켜낸 지역 시민들
생태 도시, 지속가능한 정원을 꿈꾸다
순천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순천만국가정원과 순천만 생태습지는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지역 관광지가 아니다. 순천만의 갈대밭과 흑두루미 등 다양한 동식물을 보호하기 위해 시민들이 오랜 시간 습지 보존 활동을 펼친 결과이다. 하지만 저자는 그토록 자랑스러워한 국가정원에서도 철마다 버려지는 꽃들을 보며 진정한 생태적 가치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된다.
진정한 생태란 무엇인지 도시 안에서도 생태적으로 살 수 있는지 궁금했던 청년은 자기 안의 질문을 품고 순천을 떠나 공부를 시작한다. 국내외를 넘나들며 생태마을과 숲으로 복원된 도시(아날로그 포레스트리)를 탐방하고 지속가능한 농사 방식(퍼머컬쳐)을 배운 것이다. 그리고 여러 배움 끝에 다시 순천으로 돌아온다. 생태적 가치를 결과가 아닌 과정으로서, 삶에서 지속적으로 이어갈 수 있는 장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에게 맞는 지역을 찾기 어렵다면 내가 사는 곳을 더 멋지게 만들면 어떨까’라는 마음으로 저자는 공동체 텃밭, 생태 캠프, 쓰레기 없는 축제 등을 기획했고 순천을 넘어 타 지역의 큰 관심을 받았다.
오래된 마을을 밝히는 마법 같은 순간들
담벼락과 골목, 사람과 도시 사이 정원이 피어난다
정원이라고 하면 흔히 꽃과 나무가 무성한 이미지를 떠올린다. 하지만 순천 저전동 곳곳에 만들어진 정원을 들여다보면 그런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단순히 외관을 꾸미고 녹지를 늘리기 위해 만든 공간이 아닌, 마을의 어려움을 해소하고 주민들의 소망을 수렴해 만든 ‘마을정원’이기 때문이다. 활기를 잃어가는 지역 사회가 그러하듯 순천의 저전동 역시 학생과 주민 수의 감소, 텅 빈 가게들, 위험한 보행 도로와 골목길, 서먹한 이웃 관계 등의 문제가 존재했다. 순천시 도시재생 저전동 현장지원센터의 사무국장이 된 저자는 이런 구도심의 문제를 생태적이고도 지속가능한 마을정원으로 해결하고자 한다.
저자와 주민들은 텅빈 학교 운동장을 활용해 ‘생태놀이터정원’으로 만들고, 빗물이 넘치는 도로에 ‘빗물가로정원’을 조성한다. 동네잔치를 할 수 있을 만큼 널따란 ‘먹거리정원’도 마련하고, 자투리 공간에서도 식물을 만날 수 있는 ‘세모정원’과 ‘띠정원’을 일궜다. 가장 큰 변화는 골목 담벼락을 낮추고 개인 정원을 ‘이웃사촌정원’으로 개방하면서 폐쇄적으로 느껴졌던 동네 골목 구석구석을 환하게 변모시킨 일이다. 이제 그들은 정원을 함께 보살피는 힘으로 식물 도둑을 막아내고 동네의 문제를 함께 해결한다. 마을정원사들의 자발적인 노력 덕분에 저전동은 갈수록 잎과 꽃이 가득한 마을이 되었다. 3년간의 활동을 마치고 이제는 저전동 주민의 한 사람이 된 저자는 자신의 정원을 더 아름답게 가꾸고 마을정원의 힘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꿈을 꾸고 있다.
어딘가에는 @ 있다
다섯 출판사의 지역 인문 시리즈
강원 고성의 온다프레스, 충북 옥천의 포도밭출판사, 대전의 이유출판, 전남 순천의 열매하나, 경남 통영의 남해의봄날. 단단하고 색깔있는 책들을 선보여 온 지역의 다섯 출판사가 2년 넘게 함께 기획하고 제작하여 동시에 〈어딘가에는 @ 있다〉 시리즈를 펴낸다. 처음 듣는 지명, 낯선 사람, 생소한 사물들, 그리고 서울이나 대도시가 아닌 곳에서 자신의 생활과 일을 아름답게 가꾸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작지만 가볍지 않고 단단하게, 다양한 색깔로 지역의 독특한 문화와 삶의 기록을 올컬러의 인문 시리즈로 담아냈다. 전체 시리즈의 북디자인은 타이포그래퍼로 유명한 안삼열 그래픽 디자이너의 작품이다.
잔잔하고 풋풋한 이야기 속의 야무진 집념
이동행 작가는 본래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공부했지만 대학 시절의 대부분을 게임 그래픽을 배우는 데에 매진했다. 하지만 어느 정도 그래픽 툴을 자유롭게 다룰 수 있게 된 뒤로는 자신의 작업물이 실제의 삶에서 쓰이지 못하고 가상의 공간에서만 쓰임새가 있다는 사실이 아쉬웠다. 그는 모니터 바깥으로 끄집어내어 손으로 직접 만질 수 있는 실물의 무엇인가를 만들고 싶다는 강한 열망을 느꼈다.
결혼 전 지금의 아내와 함께 시작한 일은 역시나 그래픽 분야였다. 다만 그는 조금씩 그래픽 이외의 여러 가능성의 영역을 살펴보기 시작했고, 그러던 어느 날 주물로 만들어진 대형 인쇄기 앞에서 한 사람의 장인이 수작업으로 인쇄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바로 그들 작가 부부가 레터프레스라는 ‘오래되었지만 새로운’ 영역에 발을 디딘 순간이다.
이쯤 되면 이야기의 흐름상 이들 부부가 업무 면에서나 이주·정착 면에서 여러 성취를 이뤄내는 전개가 예상되겠지만, 실제 이야기는 그저 그들의 풋풋함과 솔직함을 보여주는 좌충우돌의 에피소드들로 채워진다. 그 이야기들의 바탕에는 자신의 성취가 그저 ‘우연’에서 비롯된 것일 뿐이라는 작가의 생각이 담겨 있다. 이 숨김없는 고백이 이 책의 가장 큰 백미이자 매력 아닐까 싶다.
레터프레스라는 인쇄를 시작하게 된 이유야 여러 가지겠지만 그 이유들은 시간이 지난 뒤에 붙여진 의식적인 의미 부여일 뿐이다. 솔직히 말해 그 당시 우리를 이끌었던 것은 ‘우연’이었다. 어떤 대단한 뜻이 있어서 레터프레스라는 업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아내와 나는 한 가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우리의 삶이 어떠한 과정 속에 놓여 있음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 과정이 무수한 실패의 연속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22면)
드물디 드문 기술을 익혀서, 멀디 먼 태백으로 향하다
레터프레스(letterpress)란 레터 즉 금속활자로 한 글자씩 본을 떠 만든 인쇄용 판[活版]으로 글자를 찍어내는 일을 통칭한다. 1960, 70년대까지만 해도 활판인쇄는 거의 모든 인쇄물에 활발히 쓰였지만 80년대에 들어 디지털 출판 기술이 발달하면서 급속도로 사양세에 접어들었다. 이렇다 보니 2020년대에 활판인쇄를 통해 이윤을 창출하는 곳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 레터프레스 전문가들 또한 희귀하다.
레터프레스는 작업 중에 1밀리미터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무척 세심한 일이다. 이 같은 고도의 작업을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은 그들이 이 일을 익히기까지는 오랜 노력과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일단 그들은 활판인쇄의 가장 초급 기기인 에볼루션이라는 키트를 구입해서 그림을 찍어보지만 그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그들이 활판인쇄의 노하우를 쌓게 된 것은 본인들이 무작정 직접 종이를 칼로 재단해보고, 그 뒤로 을지로의 종이 재단집들의 문을 두드리면서, 또한 실질적인 인쇄기인 아다나를 구하러 골동품상을 찾는 일들이 쌓여가면서부터다. 하나같이 어처구니없고 무모해 보이는 일들을 치르면서 그들은 활판인쇄의 개념을 두루 터득해간다. 여기에 본래 오랫동안 그림을 그려오면서 탄탄한 기본기를 갖추고 있던 스케치가 더해지면서 완성도 높은 작품들을 선보일 수 있었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평범한 두 사람은 이처럼 ‘우연’에 이끌려 레터프레스에 입문했고 강원도 산속 마을로 이주해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전통적인 직업 관념에 크게 얽매이지 않는다고, 또한 자신들이 이 업을 택한 이유가 단지 ‘우연’일 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이 책을 모두 읽고 난 이 들이라면 이들이 ‘천직을 구했다’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리도 험한 일을 노래를 흥얼거리며 해낼 수 있으랴. ‘어느한장면’ 이동행, 이문영 작가 부부의 삶이 다른 이들 에게도 작은 감흥과 생각거리를 주리라 믿는다.
이주여성들은 차별과 편견을 일상적으로 겪는다. 무례한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묻는다. 그들이 떠나온 본국이 얼마나 가난한지, 본가는 얼마나 가난한지, 얼마 받고 시집왔는지, 그래서 본가에 얼마씩 송금하는지... 아무렇지 않게 묻는다. 이름을 부르지 않고 굳이 ‘베트남’, ‘월남’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처음 본 사이임에도 서슴없이 반말을 한다. 집에서는 모국어를 못 쓰게 한다. 모국어 사용을 금지당한 이주여성들은 자식에게도 자신의 모국어를 가르치지 못한다. 아이는 갈수록 한국말이 유창해지지만 이주여성은 한국말 익히기가 쉽지 않고, 결국 아이와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없는 단절이 생긴다. 아이는 점차 엄마에게 거리감을 느낀다.
상당수 이주여성들은 과중한 노동에 시달린다. 집안일을 도맡는 것은 기본이고, 끊임없이 임금노동을 한다. 이들이 버는 돈은 시어머니나 남편 통장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자는 시간 빼고 대부분 시간을 노동하는 데 쓰지만 이들은 가진 것이 없다. 그럼에도 ‘본가에 그래서 얼마씩 송금하냐’는 무례한 말을 듣고 ‘돈 벌려고 몸 팔아 결혼했다’는 참기 힘든 모욕의 말을 듣는다. 한국 며느리들이 친정에 용돈 보내면 죄가 아닌데, 이주여성들은 친정에 아껴 모은 돈을 조금이라도 부치면 도둑 소리를 듣는다.
다문화센터라는 곳이 있다. 얼핏 보면 이주여성을 지원하는 곳 같지만, 자세히 보면 그렇지가 않다. ‘다문화가족’ 지원의 내용은 이주여성을 한국 가정에 동화시키는 과정이다. 한국 가정은 그대로이고, 이주여성만 자신의 정체성을 버리고 한국 가정의 ‘법’에 순응하게끔 한다. 이주여성은 현재의 다문화센터 운영이나 다문화가족 정책 등이 자신들을 배제하고 소외시키는 방향으로 이뤄진다고 문제제기한다. 한쪽(이주여성)은 자기 문화를 버리고, 한쪽(한국가정)의 문화만 법처럼 따르는 게 어떻게 ‘다문화’인가.
지방선거 유세가 한창이던 때의 일이다. 이주여성들은 선거 후보자들에게 이주민 관련 공약을 요구하기 위해 관련한 인사들을 불러 모아 기자회견 및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다른 지역의 활동 사례 및 참고할 만한 조례 내용 등을 조사 정리하여 선거 입후보자들에게 전달했고 더불어 ‘이주여성 및 이주민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고발했다. 뜨거운 현장이었다. 하지만 관심을 가지고 자리에 참석한 후보자들의 발언에서도 편견은 심각하게 드러난다. 이주여성의 출산율이 6%나 되기 때문에 이들의 존재가 중요하다느니, 이들의 아이들 덕분에 지역의 작은학교들이 학생 수를 채우고 있으니 더욱 신경 써야 한다느니 등등. 이주여성을 누군가의 부인, 며느리, 엄마로서만 인정하고 이주여성의 존재 자체는 무시하는 인식은 끔찍할 만큼 굳건하다.
가정폭력을 당해서 경찰에 신고해도 도착한 경찰은 한국말이 통하는 남편 말만 듣고 돌아간다. 폭행을 당한 이주여성이 겁이 질려 서툰 한국말로 상황을 설명하려 해봐도, 경찰은 “좋게 좋게 푸세요. 아니, 남편이 감옥 가면 좋겠어요?” 같은 말을 하며 서둘러 떠나려 할 뿐이다. 이상의 내용들을 모든 이주여성들이 모두 겪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저 중 하나의 상황도 겪은 적 없는 이주여성은 찾기 힘든 실정이다. 차별과 편견과 혐오로 엮인 그물망이 그만큼 촘촘하다.
여기, 차별과 편견과 혐오 같은 폭력에 더 이상은 당하지 않기로 결심한 이주여성들이 있다. 스스로 자신의 인권을 말하고, 혐오에 맞서겠다고 외치는 이들이 있다. 더는 친구를 잃지 않기로 다짐한 이들이 있다. 옥천군에 사는 이주여성들의 이야기다. 이들은 ‘나’로 살아가기를 희망한다. 누군가의 부인, 누군가의 며느리, 누군가의 엄마일 때만 ‘존재 가치’를 인정받았던 이주여성들은 이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겠다고 외친다. 그러기 위해 이들은 어려움을 겪는 이주여성들을 찾아내고 다가가고 손을 잡았다. 옥천군결혼이주여성협의회라는 단체를 만들어 서로를 지탱하는 이들, 편견과 핍박에 맞서 싸우며 서로 보살피는 옥천 이주여성들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음식 여행
발로 뛰어 가며 듣고, 일일이 재고 세어 보며
낱낱이 파헤친 충무김밥 스토리
통영의 대표 음식으로 손꼽히며 전국적으로 알려진 충무김밥이지만 그 유명세에 비해 충무김밥에 대한 기록은 적은 편이다. 충무김밥의 역사는 적어도 여객선이 활발히 운항하던 1950년대 충무항에서부터 시작되었으리라 추정하지만 이를 향토사적으로 정리한 기록은 찾기가 어렵다. 이에 저자는 충무김밥의 원조를 찾기 위해 옛 시절을 기억하는 어르신들은 물론 오래된 충무김밥집 사장 등 많은 인물들을 만나 직접 발로 뛰며 충무김밥 스토리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또한 현재 충무김밥 맛을 결정 짓는 요소를 찾기 위해 섞박지 맛을 좌우하는 무 자르는 각도를 재고, 김밥 한 개에 들어간 밥알의 평균 개수와 크기를 재는 등 다양한 관점으로 충무김밥에 접근한다. 이 과정에서 그가 발견한 것은 충무김밥의 황금비율이 아니라 긴 세월 경험의 공유와 계승으로 이어진 충무김밥집 할매, 아지매들의 ‘손맛’이며 어르신들의 지나온 세월 속에 녹아든 충무김밥의 추억이다. 현재의 충무김밥은 바로 이들의 경험과 기억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원조’가 마케팅의 수단으로 통용되는 시대,
진정한 원조란 무엇인가
지역마다 유명한 맛집 거리에 들어가 보면 수많은 가게들이 손님을 이끌기 위한 홍보 수단으로 간판에 ‘원조’를 내건 것을 종종 목격한다. 무언가를 처음 시작한 이나 사물을 뜻하는 ‘원조’, 그렇다면 원조를 내세우는 이들 사이에서 어떻게 단 하나의 원조를 특정해 낼 수 있을까? 원조 충무김밥을 찾는 과정에서도 수많은 원조 간판을 발견했고, 저마다 원조로서의 자부심 어린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러나 단 하나의 원조 논쟁을 떠나, 시대와 상황에 따라 충무김밥의 원형도, 재료도 바뀌었을지언정, 현재까지도 그 맥을 이어간 이들의 시작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김밥을 이고 지고 팔며 어려운 시절을 함께 난 통영의 할매, 아지매들이 있다. 음식 문화는 시대와 환경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며 그 변화의 과정에서 만나는 면면의 사람들, 통영의 풍경, 추억과 문화야말로 오늘날의 충무김밥을 있게 한 진짜 주역일 것이다.
**〈어딘가에는 @ 있다〉 시리즈
처음 듣는 지명, 낯선 사람, 생소한 사물들, 그리고 서울이나 수도권, 대도시가 아닌 곳에서 자신의 생활과 일을 아름답게 가꾸는 사람들이 전하는 지역의 목소리. 작지만 가볍지 않고 단단하게, 다양한 색깔로 지역의 독특한 문화와 삶의 기록을 서울에서 살다가 지역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 다섯 출판사 강원 고성의 온다프레스, 충북 옥천의 포도밭출판사, 대전의 이유출판, 전남 순천의 열매하나, 그리고 경남 통영의 남해의봄날이 함께 담아냈다.
철공소 거리의 산 역사가 된 장인들
송기룡 장인은 늘 뜨거운 불 앞에서 일한다. 1950년 원동에 설립된 대전 최초의 공업사 ‘남선기공’에서 미싱 다리를 만드는 조공부터 시작해 한평생 주물 일을 해왔다. 한국전쟁 직후부터 최고의 호황을 누린 88올림픽 전후, 고단했던 IMF 시기 등 한국 현대사를 모두 겪어낸 원동의 살아있는 역사와도 같다. 윤창호 장인은 홀어머니 고생을 덜어드리고자 14살 때부터 철공 일을 시작했다. 퇴근 후 동료들과 막걸리를 마시며 왁자하게 회포를 풀던 과거를 그리워하면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을 익히고 도전한다. 고객에게 필요한 제품을 만들기 위한 노력 끝에 성창갈고리라는 히트상품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홍경석 장인은 철공업 35년 차로 창조길의 막내다. 프레스, 시보리, 선반 등 다양한 기계로 갖가지 제품을 쓱싹 스케치하고 뚝딱 만들어내는 전천후 장인이다. 80년대 후반에 철공 일을 시작해 한 공장에 10명씩 기계를 돌리던 미니 공단의 호황기를 또렷이 기억한다. 그 시절에 비하면 너무나도 한산해진 철공소 거리지만 오늘도 어김없이 자리를 지킨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대전의 다른 모습
요즘의 레트로 열풍은 과거로 향한 이 시대의 욕망을 보여준다. 70~80년대의 고성장 시대. 활기차게 돌아가는 기계들로 상징되는 그 시절의 흔적은 21세기가 되어 자취를 감춘 듯하지만, 자세히 보면 도심 곳곳에 여전히 존재한다. 이 책은 과학과 교통 도시로 알려진 대전을 다른 시각에서 살피며 원동 철공소 거리가 IMF 이전까지 우리나라 금속 제조업의 메카로 명성을 떨친 곳임을 기억하게 해준다. 화려했던 시기를 보내고 이젠 텅 빈 듯 한적해진 거리 풍경은 우리를 향수에 젖게 만든다.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현대사의 질곡처럼, 호황기를 누리던 원동 철공소 거리엔 기계에 손이 잘리거나 갈비뼈가 부러지고, 학교 가는 친구들을 바라보며 일터로 향하고 망치로 얻어맞으며 일을 배워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언젠가부터 시대의 뒤안길이 된 그곳에서 장인들은 여전히 용광로의 뜨거운 쇳물처럼 살아가고 있다. 그들의 삶 또한 우리가 기억해야 할 대전의 모습이다.
〈어딘가에는 @ 있다〉 시리즈 소개
강원 고성의 온다프레스, 충북 옥천의 포도밭출판사, 대전의 이유출판, 전남 순천의 열매하나, 경남 통영의 남해의봄날. 단단하고 색깔있는 책들을 선보여 온 지역의 다섯 출판사가 2년 넘게 함께 기획하고 제작하여 동시에 〈어딘가에는 @ 있다〉 시리즈를 펴냈다. 처음 듣는 지명, 낯선 사람, 생소한 사물들, 그리고 서울이나 대도시가 아닌 곳에서 자신의 생활과 일을 아름답게 가꾸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작지만 가볍지 않고 단단하게, 다양한 색깔로 지역의 독특한 문화와 삶의 기록을 올컬러의 인문 시리즈로 담아냈다. 전체 시리즈의 북디자인은 안삼열체로 유명한 안삼열 디자이너의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