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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도망자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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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7월 27일
쪽수, 무게, 크기 364쪽 | 420g | 135*195*30mm
ISBN13 9791138412063
ISBN10 11384120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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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말리고 있는데 바지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다. 쇼타는 휴대전화를 꺼내 문자를 확인했다.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어.’ 아야카의 문자였다. ‘지금?’ 하고 쇼타가 답장을 보냈다. 바로 아야카에게 문자가 왔다. ‘지금 당장 날 보러 오지 않으면 헤어질 거야.’ 아야카의 집은 고노스에 있다. 막차도 이미 끊겼다. 게다가 세면실 창문 너머로 빗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쇼타는 휴대전화 화면을 보며 고민했다. 차로 30분쯤 가면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녀가 시키는 대로 ‘당장 갈게’ 하고 답장을 보내는 것도 왠지 내키지 않았다. 답장을 하지 않고 잠시 불안하게 한 다음, 갑자기 집으로 찾아가 놀라게 해주기로 했다.
--- pp.13-14

차 안에 나나의 울음소리가 울렸다. 처음에는 신경 쓰지 않았지만, 평상시와 다른 소리로 울고 있었다. 왜 그럴까 싶어 조수석을 쳐다보며 이동 장에 왼손을 뻗은 순간, 엄청난 충격이 일어 앞 유리를 봤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세찬 빗방울이 부딪히는 가운데, 뭔가에 올라탄 듯한 감촉이 핸들을 쥔 손에 전해지고 빗소리를 지우는 듯한 ‘끄아악’ 하는 기괴한 소리가 귀에 울렸다. 순간 브레이크에 발을 옮기려 했지만, 백미러에 비친 붉은 빛이 눈에 들어와 그대로 액셀을 밟았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절규가 몇 초 만에 들리지 않게 되고, 그 대신 심장이 쿵쾅대는 소리가 들렸다. 차내 온도가 단숨에 10도쯤 내려간 듯한 냉기를 등으로 느끼며 다음 적색 신호등이 나타날 때까지 계속 액셀을 밟았다.
--- p.15

개찰구를 지나 역을 나오자 눈앞에 파출소가 보여 쇼타는 저도 모르게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이대로 자수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사람을 죽이고 말았다. 그것이 변하지 않는 현실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상, 이대로 양심의 가책을 견딜 수 있을 리가 없다. 아니. 술을 마신 상태로 운전해서 사람을 치어 죽이고 달아났다. 붙잡히면 상당한 중죄로 다스려질 것이다. 수년간 교도소에 갇히고, 사회에 나온 뒤에도 사람들에게 범죄자라는 뒷손가락질을 받고 평생을 살아야 할 것이다. 내 인생은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뿐만이 아니다. 부모님과 누나도 범죄자의 가족으로서 떳떳지 못한 삶을 강요받게 된다. 항상 TV에서 엄격한 발언을 하는 아버지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지탄받을 것이다. 그리고 결혼을 앞둔 누나는 파혼을 당할지도 모른다. 그렇다 해도. 파출소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마음을 어떻게든 거부하려 애썼다. 그리고…… 아야카는 어떻게 생각할까. 만약 자신이 보낸 문자 때문에 남자 친구가 운전을 하다 사고를 냈다는 것을 알면 그녀도 자책감에 사로잡힐지도 모른다. 그렇다. 이 일은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붙잡혀서는 안 된다.
--- pp.37-38

“아버지, 알아보시겠어요? 마사키예요.”
그 말을 듣고서야 눈앞에 있는 사람이 아들임을 깨달았다. 그 옆에 있는 사람은 필시 딸인 구미일 것이다. 고개를 천천히 돌리자 침대 곁에 처음 보는 기구가 놓여 있었다.
“여기는……?”
그렇게 묻자 마사키가 얼굴을 가까이 가져왔다.
“병원이에요. 인플루엔자에 걸려서 이틀 전에 입원하셨어요.”
“그렇구나……. 네 어머니는?”
두 사람이 서로 얼굴을 마주했다.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기미코는 어디 있느냐?”
불안한 마음에 다시 묻자 두 사람이 이으로 시선을 되돌렸다. “아버지……” 하고 구미가 손을 잡아주었다.
“상황이 이런데 말씀드려야 할지 많이 고민했는데요…….”
마사키가 이을 바라보며 머뭇거렸다.
“대체 무슨 일이냐?”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그 말뜻을 이해하지 못해 마사키의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사흘 전 밤중에 차에 치이셔서……. 아버지가 퇴원하실 때까지 장례를 치르지 않고 기다리고 싶지만 시신이 워낙 심하게 손상되어서…… 장례를 최대한 빨리 치르는 게 좋겠다고 하더군요…….”
차에 치여서…… 시신이 심하게 손상되어서…….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장례는 저희가 잘 치를 테니 아버지는 여기서 어머니 명복을 빌어주세요.”
“어, 어째서…… 기미코가 밤중에…….”
쥐어짜듯 말하자 이을 보고 있던 마사키가 시선을 피했다.
“아버지가 고열을 앓으셔서 편의점에 얼음을 사러 갔다가 돌아오시는 길에…….”
그 말에 심장이 격하게 요동쳤다. 내 탓이라는 걸까.
“범인은 아직 잡히지 않았지만 경찰이 반드시 잡아줄 겁니다. 그러니…….”
마사키가 그렇게 말하며 손으로 눈물을 닦았다. 내 손을 잡은 구미의 손도 떨리고 있다. 두 사람에게서 시선을 거두어 천장을 쳐다보았다. 후미코뿐만 아니라 기미코까지 빼앗아갔다는 건가. 게다가 이제는 얼굴을 볼 수조차 없다니. 너무 가혹하다…….
--- pp.40-42

“마가키가 경찰에 체포되었대.”
그 말뜻을 바로 알아듣지는 못했다. 경찰? 체포?
“뺑소니 사건을 일으켜서 체포되었어. 어젯밤부터 뉴스에 나오던데.”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사야마 씨도 그런 농담을 하네요.”
“농담 아니야!”
사야마가 소리치더니 책상 위에 있던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조작해서 이으로 내밀었다. 수상쩍어하며 사야마에게 다가가 휴대전화를 받아 화면을 보았다. 포털 사이트에 ‘음주 운전 뺑소니 혐의, 게이호쿠대생 체포, 사이타마’라는 제목의 기사가 떠 있었다. 화면을 스크롤했다.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호흡이 거칠어졌다. (…)
“그날 밤에 구보도 껴서 마가키랑 술을 마셨는데, 녀석은 꽤 취한 상태였어……. 도대체 운전은 왜 한 거야. 바보 같은 녀석…….”
그 말에 아야카는 휴대전화 화면에서 사야마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사야마가 씁쓸한 표정으로 이을 바라보았다. 21일 오전 1시경, 아게오시 스가야 도로를 주행……. 그 문자를 보낸 직후였다.
--- pp.62-63

“재판에서는 사람인 줄 몰랐다고 하던데, 사실이라고 생각하느냐?”
그렇게 묻자, 마사키가 눈을 뜨고 이으로 고개를 돌렸다.
“당연히 거짓말이죠. 재판에서도 그렇게 판단하더군요.”
그의 진술을 듣고 또 들었지만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어머니 목숨을 빼앗아놓고 고작 4년 10개월의 징역은 저도 납득이 되지 않아요. 하지만 무슨 짓을 해도 어머니는 돌아오지 않아요. 여기서 일단 매듭을 짓는 수밖에 없어요.”
“매듭?”
후미히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아버지, 나고야로 오세요. 여기서 혼자 생활하시는 건 힘들잖아요.”
“무슨 소리냐. 나는 여기 있을 거다.”
“나고야에서 때마다 들여다보러 오기도 힘들고, 구미도 이제 딸의 입시로 바빠질 테니 자주 못 와요.”
“안 와도 된다. 나 혼자서도 괜찮아.”
“그럴 수는 없어요. 어머니도 분명 아버지를 걱정하고 계실 거예요.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저희도 후회…….”
“해야 할 일이 있다.”
가로막듯이 말하자, 마사키가 놀란 듯이 몸을 뒤로 뺐다. 말투가 너무 셌던 모양이다.
“해야 할 일이라는 게 뭔데요? 나고야에 가면 못 하시는 일이에요?”
마가키 쇼타를 만나야 한다. 그때까지는 그에게 내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해 재판을 방청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가 사회에 나올 무렵이면 나는 89세가 된다. 그때까지 살 수 있을까. 아니, 살아야 한다.
--- pp.118-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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