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 같은 친구이고 싶습니다

휴식 같은 친구이고 싶습니다
그대의 고단한 슬픔 앞에
풍경이 되고 싶습니다
걸러지지 않는 아픔의 진실이 있더라도
물러서지 않는 희망의 빛을 꾸려주고 싶습니다
그대가 꺼져가는 빛으로 괴로워할 때
서슴치 않는 눈물이고 싶습니다
머물고 싶은 순간이면
언제든 자리를 펴는 쉼터이듯
기대어 울 그대라면
낮은 숨결로 안아주고 싶습니다
아픈 상처의 덫을 내리지 못한 채
떠도는 그대의 고독이 그토록 큰 슬픔이었다면
그저 곁에 서서 어수룩한 세월이고 싶습니다
어둠 앞에 기도하는 이, 그대라는 이름
한결같은 마음으로 불러주고 싶습니다
우리 사이에 놓인 터울을 허물고
가슴 저린 진실로 다가서고 싶습니다
거울에 비친 그대의 천진스런 얼굴을
닮고 싶어함도 가슴은 알 것입니다

--- 본문 중에서



너는 알고 있니 친구야

너는 알고 있니 친구야
하늘에 파랑새 날던 날을 기억하니 친구야
그날은 너와 내가 말없이 고개 숙인 날이었다
마른 모과나무 가지 끝에 작은 잎새가
흐릿한 바람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못내 져버린 날이었지
어색한 너의 어깨가
나를 너무도 가슴 저미게 했고
그저 말없이 파랑새를 가슴에 담게 했다
흔한 미소 한 번 보이지 못하고 돌아선
아주 슬픈 날이었다
눈물 보이기 싫어 괜한 하늘만
한없이 바라보던 그런 날이었지

친구야 너는 아니

너 나 믿지,
정말로 그 작은 한마디를 듣고 싶어했던
소심한 나의 마음을
아직 나는 모른다
파랑새가 그토록 드넓은 하늘을 다 휘젓고
사라질 때까지
간직한 그 침묵의 의미를

다시 시작하자는 말
나는 쉽게 말을 할 수 있겠지만
미어지는 너의 가슴 나는 안다
너의 지문이 각인된 일터를 잃고
한 점 바람 앞에 나서는 너의 쓸쓸한 뒷모습에
아무 말 하지 못하고 돌아섰다
돌아오는 길
그저 높이높이 솟아오르는 타인의 새를 보며
끝내 화가 나 밤새 울어버렸단다

친구야
하늘은 나에게 있어 믿음이었단다
파랑새가 날던 순간에도 나는 그러했다
차라리 이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너의 곁에서 멍한 하늘을 보며
등 두드리고 싶지만 참고 있다
많이 후회되겠지만
하늘을 보다가도 우연히 파랑새를 본다면
그때 말하려 한다
난 너를 믿는다, 라고

무슨 일이 있더라도
친구야 그 침묵을 간직해야 한다
그리고 하늘로 사라진 파랑새의 슬픔도
땅 끝으로 져버린 모과나무 잎도
고개 숙이던 너와 나도
언젠간 모르는 사이 잊혀진다는 것을
술 한잔 사라,
너의 그 담담한 한마디에
웃을 용기를 갖는다
정말로 고맙다 친구야
변함없이 나의 곁에 침묵을 가지려마

<b>건축가 구승민의 수줍은 인생 고백</b><br/><br/><br/>그림 잘 그리는 건축가, 시 잘 쓰는 건축가, 노란색을 좋아하는 건축가 등등 많은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젊은 건축가 구승민의 시집이 나왔다. 수많은 수식어의 마지막 단어가 ‘건축가’인 것처럼 그는 건축가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다. 그가 지은 건축물은 마치 한 편의 시처럼, 한 권의 시집처럼 느껴진다. <br/><br/>여러 권의 시집, 드로잉북, 단편집이 출판된 작가 구승민은 담담하고 친근한 언어로 우리에게 “너는 알고 있니 친구야“라고 묻는다. 어려운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친구, 웃음을 또한 울음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친구, 술 한잔 함께 할 수 있는 친구 등등, 그는 우리에게 친구이고자 한다. <br/><br/>그의 수줍은 인생 고백은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나뉘어 있다. 각각의 계절에 어울리는 심상들이 그려진 시집 『너는 알고 있니 친구야』는 그의 고백처럼 담담하게 여백의 힘이 느껴진다.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말과 말 사이의 호흡과 정적으로도 우리는 많은 메시지를 얻는다. 여백으로부터 의미와 상상이 만들어내는 다른 차원의 세계에서 우리는 더욱 자유롭고, 더욱 즐겁다. 그의 시는 여백이 만들어내는 자유 공간 속에서 상상의 날개를 활짝 편다. <br/><br/>파란 하늘처럼 한없이 넓고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작가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듯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래서 더욱 믿음직스러운 그의 시는 파란 하늘의 한 점 구름 같다. 그의 시는 바람과 어울려 이리저리 떠다닌다. 단비를 내린다. 메마른 사랑에 내린 비는 새싹을 틔우고 새삶을 마련한다. 그렇게 피어난 아름다운 이야기 꽃이 도처에 만발한다. 향기를 바람에 날리운다. 그 향기 속에서 작가는 이야기와 이야기를 모아 지도를 만든다. 삶을 담는 공간을 설계하듯, 그의 지도는 여전히 그려지고 있다. 시집 『너는 알고 있니 친구야』는 그가 그리는 지도의 한 부분이다. <br/><br/>우리의 친구는 어떠한가? 작가 구승민은 자신의 시집 『너는 알고 있니 친구야』를 통해 나와 만나는, 우리의 친구와 만나는 여유와 사색을 함께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보물섬의 주인공이 보물지도를 들고 보물섬을 찾아가듯, 작가 구승민의 지도를 들고, 아름다운 삶의 꽃이 만발한 꽃동산을 찾아가보자. 4월의 화사한 봄날. 지도만 보아도 꽃향기가 나지 않는가. 지도만 보아도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는가, 친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