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쩐지 멍때리는 상수가 째려보는 것 같다면 지금 당신은 누군가의 시선이 불쾌하다고 느끼고 있을 수도 있다. 멍때리는 상수가 고민이 있는 것 같다면 지금 나에게 풀지 못한 숙제가 있을지도 모른다. 멍때리는 상수가 졸려 보인다면 지금 많이 졸린 것일 테고, 상수가 탈출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면 당장 여행 계획을 짜야 할지도 모른다. 매일 듣던 음악이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면, 출근길에 항상 걸려 있는 광고판 속 아이돌의 표정이 오늘따라 특별하게 느껴진다면, 늘 똑같은 톤으로 업무 지시하는 부장님의 목소리가 유난히 거슬린다면 그건 그 상대방의 문제이기보다는 나의 문제일 수 있다.
---「2. 상수에게서 내 마음이 보인다면」중에서
개와 고양이가 다른 생활 속에서 자라서 다른 성향을 만들었듯이 나를 불편하게 만든 그 사람의 삶은 하나부터 열까지 나와 다르다. 다른 성격의 부모님이 있었고, 사는 지역도 달랐다. 여고를 나왔는지 남고를 나왔는지, 첫사랑은 어땠는지, 그때 어떻게 헤어졌는지…. 하나도 같지 않기에 우리는 다른 상처를 안고 다른 감정으로 살아간다. 서로 다른 모습을 볼 때 본능적으로 방어하려고 하고, 비슷한 사람을 보면 편안함을 느끼는 것이다. 상수가 어쩌다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츄르를 편식하게 됐는지 나로선 알 방법이 없다. 궁금하지만 뭐, 물어볼 수도 없고 물어본다고 대답해주지도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존중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 상수가 나와 사는 동안 행복했으면 한다. 단지 그것뿐이다.
---「3. 누군가의 맥락을 궁금해하는 것」중에서
내 껌딱지 상수가 모두의 냥이 되었을 때, 카페 개업을 후회한 적도 있다. 인정하기 싫어서 그럴 수밖에 없었던 나를 합리화했다. 출근하려고 문을 열면 빛보다 빠르게 카페로 달려가는 상수의 모습에 기분이 좋다가도 급격하게 우울해지기도 했다. 고양이가 인간의 마음을 이리 휘두를 수 있는지 어이가 없다. 상수는 여전히 나를 좋아한다고, 애써 그렇게 믿어본다. 그래도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가끔 출장이 잦을 땐 일주일 내내 상수를 못 본 적도 있다. 상수가 카페냥이 아니었다면, 하루 종일 아무도 만나지 못하고 문만 쳐다보면서 기다렸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벌써 마음이 아프다. 사실 우리 카페가 연중무휴인 이유도 상수의 영향이 크다.
---「5. 누구의 것도 아닌 '그냥' 상수」중에서
상대방의 마음이 닫혀 있는 상태에서 말은커녕 손짓, 몸짓, 발짓까지 동원해도 오해만 쌓이는 경우가 있다. 오히려 상수의 마음을 잘 아는 손님들은 다가가기보다 다가오길 기다린다. 그런 손님들 옆엔 어느 순간 상수가 먼저 와서 앉아 있다. 우리는 그런 경우 ‘계 타셨다.’고 말한다. 집사도 부러운 순간이다. 실제로 상수와 불통하는 손님이 종종 있다. 고양이는 귀가 쫑긋하면 불안하다는 것이고, 꼬리가 커지면 위협을 표하는 것이다. 조금만 공부하면 알 수 있는 표현들이지만 처음 고양이를 마주한 손님들에게는 어려운 일일 것이다. 가끔 있는 일이긴 하지만, 상수를 마냥 귀엽게만 여기고 다가갔다 물리기도 한다. 귀찮아서 도망가는 상수의 뒷모습을 보며 아쉬워하시는 손님에게는 관계 개선을 위해 조용히 츄르를 드린다.
---「6. 우리 준비되면 다시 만나요」중에서
상수는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 어떤 것을 먹을 때 나를 떠올릴까? 어엿한 부암동 셀럽인 상수는 츄르 말고도 맛있고 다양한 간식을 주는 손님들이 많다. 더 이상 간식으로는 상수의 관심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도 내가 힘들 때 엄마의 음식을 떠올렸던 것처럼, 상수가 츄르를 먹을 때는 나를 생각해줄 거라 믿고 싶다. 행복한 묘생을 위해 화장실을 치워주는 누나, 대신 쥐를 잡아주는 누나, 캣타워 만들어주는 누나, 아픈 건 없는지 챙겨주고 병원에 데려다주는 누나. 상수가 스트레스받지 않게 언제나 신경 쓰고 있다는 것만 알아주면 된다.
---「11. 음식이 감정에 미치는 영향」중에서
동시에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고양이는 대소변 잘 가리죠?”이다. 그런 질문을 받으면 생각이 많아진다. 어디선가 반려동물을 키울 때 진짜 걱정해야 할 건, 대소변을 가릴 수 있을까도, 털이 얼마나 많이 빠질까도 아니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실제로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맞을 때 진짜 신경 쓰이고 불안한 건 아플 때 아프다고 말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상수가 딱 한 마디만 할 수 있다면… “나 아파.”였으면 좋겠다.
---「14. 함께 하는 시간의 농도」중에서
고양이는 ‘요물’이다. ‘요물’의 사전적 의미는 요망스러운 것, 간사하고 간악한 사람을 말한다. 그런데 사실 ‘요물’은 다른 의미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여물’의 제주도 방언인 ‘요물’이다. (…) 갈라지지 말라고 섞는 흙에 넣는 짚, 요물. 그런 의미라면 상수는 너무나 ‘요물’이다. 상수를 만나기 전 나는 우울한 날들이 많았다. 그냥 많이 지쳐 있었다. 같은 일을 너무 오래 했더니, 내 마음이 갈라지려고 했다. 그때 나를 원래대로 돌아오게 만든 건 상수의 역할이 크다.
---「15. 나의 '요물' 고양이」중에서
상수의 카페 탈출을 미연에 방지하려면, 상수를 카페에 두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상수는 카페를 너무 좋아한다. 그래서 우선 할 수 있는 걸 하기로 했다. 카페 입구에 이중문을 설치하고, 혹시라도 복도에 나갔을 때 외부 출입구로 나가지 않게 또 하나의 문을 설치했다. 그러고 나니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 불안이라는 큰 덩어리를 쪼개는 기분이었다. 불안을 없앨 수 없다면, 불안 따위가 내 일상과 마음을 송두리째 삼켜버리지 않도록 할 수 있는 일이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일단 상수의 저세상급 귀여움을 만끽하며, 세상은 모르겠고 내 마음부터 구해보는 건 어떨까.
---「18. 팬데믹을 이기는 고양이 백신」중에서
내가 아는 감정의 단어가 적으면 아는 단어 안에서 표현할 수밖에 없다. 아는 단어가 ‘화’밖에 없으면 조금만 부정적인 느낌이 들어도 쉽게 화를 낼 수밖에 없다. 감정은 이름을 불러줘야 떠나간다. 우울도 슬픔도 화남도 안타까움도 안 느끼려고 하지 말고 정확히 이름을 불러주면 된다. (…) 상수에게도 감정을 직접 써보라고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변덕쟁이 상수는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을까. 내가 고양이가 아닌 이상 상수의 감정을 온전히 읽어내기는 어렵다. 하지만 적어도 출근해서 빨리 문을 열어줄 때, 좋아하는 츄르를 챙겨줄 때, 좋아하는 빈백을 앉기 좋게 다져줄 때, 초록색 지렁이 장난감으로 놀아줄 때 상수는 행복해한다. 매일 그 ‘별 거 없는 행복’을 챙겨주는 집사가 되고 싶다.
---「21. 별 거 없는 행복」중에서
놀라 쓰러질 만큼 엄청나게 대단한 일만 박수받을 축하는 아니다. 어쩌면 우리는 누군가 피식하고 웃을까 봐 작지만 소소하게 행복할 수 있었던 일도 무심코 넘어가는 건 아닐까. 꾸준함과 평범함이 나의 무기가 됐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건 평범함 속의 깨알 같은 발견이다. 대단하지 않아도 나름 보통의 순간을 매일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평범하지만 당연한 순간은 더 많이 기억되어야 한다. 아무 날도 아닌 날의 편지, 아무 날도 아닌 날의 선물, 아무 날도 아닌 날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그런 당연한 날들 속에 피어난 꽃 같다. 보통의 일상은 모두가 꽃이다.
---「22. 함께 살아가는 방법」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