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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긴 잠이여
하라 료 저 / 권일영 | 비채 | 2013년 10월 04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9.0 리뷰 60건 | 판매지수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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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3년 10월 04일
쪽수, 무게, 크기 584쪽 | 617g | 134*191*35mm
ISBN13 9791185014340
ISBN10 1185014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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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끝나갈 무렵, 한밤중이 다 되어서야 거의 사백 일 만에 도쿄로 돌아왔다. 빗속을 아홉 시간 이상 쉬지 않고 달린 블루버드를 니시신주쿠에 있는 사무실 주차장에 세우고, 편히 죽지 못한 시체처럼 뻣뻣한 몸으로 차에서 내렸다. 비는 도심에 가까워지면서부터 이슬비로 바뀌었다. 살풍경한 주차장 주변 풍경은 아무런 변화 없이 그대로였다. 애초 한 달 정도로 예상하고 이곳을 떠난 것이 마치 어제 일처럼 느껴졌다. 나는 뻐근한 등을 두드리며 뒷좌석에서 이런저런 물건을 넣어둔 작은 여행용가방과 낡은 검은색 숄더백을 꺼냈다.

이슬비 내리는 밤의 귀환이지만 이 도시는 그런 감상에 젖기에 너무나도 비열했다. 잠가놓지 않는 우편함에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한 사람이 겨우 지나다니는 좁고 낡은 건물 계단을 무거운 발걸음으로 올라가 한낮에도 결코 햇빛이 들지 않는 2층 복도 안쪽 사무실에 이르자, 일 년 이상 떠나 있던 생업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몸을 휩쌌다. 출입문에 페인트로 써놓은 ‘와타나베 탐정사무소’라는 글자의 색이 문득 바랜 느낌이 들었다. 아마 예전부터 그랬지만 그간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열쇠를 꽂고 막 손잡이를 돌리려는데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기다리는 손님을 위해 문 옆에 마련해둔 나무 벤치 너머 어둠 속에서 희미한 소리가 들린 것이다. 두 손에 들고 있던 여행용가방과 숄더백을 바닥에 떨어뜨리듯 내려놓았다.
“누구요!” 내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어둠 속에서 두툼한 종이를 비비는 듯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섞여 힘없는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저항을 포기한 작은 동물이 내는 소리 같았다. 얼른 사무실 문을 열고 손을 뻗어 조명 스위치를 찾았다. 오래 비워두었지만 전기요금이나 전화요금, 임대료는 꼬박꼬박 냈다. 스위치를 올리자 어두컴컴한 복도가 밝아졌다. 벤치 너머 벽 옆에 노숙자로 보이는 사내가 앉아 있었다. “이제 오시나……?” 사내는 겸연쩍은 듯 말했다. 조명 때문에 눈이 부신지 손을 들어 불빛을 가렸다. 꾀죄죄하고 두툼한 갈색 오버코트 차림이었고, 때 묻은 검은 모자챙 아래로 뻗친 머리카락과 오십대 중반쯤 되는 얼굴이 드러났다. 모르는 남자였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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