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우주 영웅’ 탄생의 신화, 그 이면에 숨은 이야기
1957년 11월 3일, 구소련 서남부(현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에서는 우주선 ‘스푸트니크 2호’의 발사를 위한 준비가 한창이었다. 로켓의 맨 꼭대기에 실릴 508kg의 캡슐 안에는 작은 개 ‘라이카’가 탑승하고 있었다. 오전 5시 29분, 라이카를 태운 스푸트니크 2호는 빠르게 상공을 향해 날아올랐고, 곧이어 영국 BBC와 미국 유명 언론을 통해 전 세계 사람들에게 지구 생명체가 최초로 우주 비행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이른바 ‘동물 우주영웅’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그보다 1개월 전, 소비에트 연방은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하여 세상을 놀라게 했다. 미·소 냉전이 정점에 이른 시기, 소련은 자국의 기술력을 과시하며 세계를 무대로 한 미국과의 체스 게임에서 중요한 한 수를 둔 것이다. 소련의 서기장 흐루쇼프는 이 눈부신 성공 직후에 바로 ‘10월 혁명’ 40주년(서양력으로 11월 7일)에 맞춰 한 번 더 큰 성공을 이루겠다는 야심을 현실화했고, 소련의 우주 과학자들은 고작 한 달이라는 너무나 짧은 시간에 ‘스푸트니크 2호’를 연이어 발사해야만 했다. 그 결과, 유일한 탑승자 라이카의 임무는 편도 여행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지구로 돌아오지 못했다.
책의 말미에 인용된 올레그 가젠코의 말처럼, 스푸트니크 2호의 과학적 가치는 극히 미미했다. 그로부터 5년 후, 1961년 4월 유리 가가린을 태운 최초의 유인 우주 비행의 성공에도 기여한 게 거의 없다. 처음엔 대단해 보였던 선전 효과조차도 우주에서 죽음을 맞이한 라이카를 향한 격렬한 반응으로 인해 금세 퇴색되고 말았다. 당시의 공식 발표는 라이카가 궤도에서 4일간 생존했다고 밝혔지만, 사실 라이카는 우주 캡슐 내부의 과열과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5시간도 안 돼서 사망하고 말았다.
“우리는 동물들을 말 못 하는 아기처럼 다룬다.”
-작은 개가 지나온 길고 긴 여정, 그리고 역사적 순간에 숨겨진 인류의 진실
작가 닉 아바지스는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로 빛을 보게 된 자료들을 철저히 조사하여 모든 역사적 진실들을 치밀하게 엮고, 자신의 상상력을 한껏 발휘하여 신화적인 힘마저 느껴지는 강렬한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또한 라이카를 둘러싸고 주요 캐릭터들이 이루는 삼각관계는 우리 마음에 즉시 와 닿는 완벽한 정서를 표현해 낸다.
“동물들과 일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고통의 근원과도 같다. 우리는 동물들을 말 못 하는 아기처럼 다룬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미안한 마음이 커져 간다. 우리는 그 임무로부터 개의 죽음을 정당화할 만큼 많은 것을 알아내지는 못했다.” -올레그 가젠코, 1998
실제로 라이카의 훈련을 맡았던 올레그 가젠코 박사는 훗날 라이카를 회상하며 위와 같이 말했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과학자 드미트리가 양심선언을 한 덕분에, 이제는 많은 이들이 라이카의 비극적인 운명을 알고 있다. 그러나 작가 아바지스는 작품 속에서 라이카를 단순히 동정 어린 시선으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이 작은 개가 지나쳐 온 길고 긴 여정을 아주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을 뿐이지만, 그 이야기가 전해 주는 먹먹함은 우리 가슴 깊숙이 다가와 어떤 전율마저 느끼게 한다.
그래픽노블 작가 닉 아바지스는 라이카를 우리 곁으로 다시 소환하여 역사의 중요한 순간에 숨겨진 인류의 진실을 조명한다. 결국 일촉즉발의 쿠바 핵미사일 위기까지 초래하고 말았던 미·소 냉전이 종식된 후에도 또 다른 정치적 야망들이 과학의 진전이라는 미명 아래 이른바 ‘우주 굴기’를 줄기차게 실행하고 있으며, 인간의 이기심으로 인해 여전히 수많은 동물들이 과학 실험의 현장에서 희생되고 있음을 돌아보게 한다.
그래픽노블에 주어지는 최고의 영예인 ‘아이스너상’을 수상한 이 작품 『라이카』를 통해 우리는 ‘운명’과 ‘믿음’이라는 부서지기 쉬운 아름다움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이 이야기는 많은 독자들의 마음에 고스란히 가닿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