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할아버지들(아빠의 아빠와 엄마의 아빠)은 남동생을 예뻐하셨다. 과자를 한 봉지만 사 들고 오셔서 남동생에게만 주신다거나 야구경기를 보러 가실 때도 남동생의 손만 붙잡아 외출하시곤 하셨다.
나의 할머니들(아빠의 엄마와 엄마의 엄마) 역시 남동생을 예뻐하셨다. 언제나 남동생을 끼고 계셨으며(어쩌면 나보다 애교가 더 많아서였을까?) 함께 잘못을 저질러도 남자아이는 원래 그렇다 하셨고 내게는 가시나가(아마도 나를 ‘가시나’라 처음 부르신 분이 외할머니셨을 듯) 왜 이리 드세냐고 역정을 내셨다.
그렇게 나의 할아버지들과 할머니들은 남동생을 ‘대놓고’ 편애하셨다. 아, 외할머니는 조금 다르셨는데, 우리 둘 모두에게 엄격하셨다.
그분들에게 서운함이 없다면 거짓이겠지만(아직까지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일테니), 그분들의 사고방식으로는 어쩔 수 없으셨겠지..애써 이해하려 한적도 있다. 그러지 않으면 계속해서 마음 한구석에 그분들에 대한 기억이 ‘서운함’과 등식이 되어버릴테니 말이다.
나의 이해하려는 마음에 힘을 준 분이 계셨으니, 나의 외할머니가, 내게 ‘가시나’라는 호칭을 가장 처음 사용하셨던, 바로 그 분이다. 어릴적 그렇게나 무서웠던 외할머니와의 관계가 변화된 건 내가 대학생이 된 이후였다. 한동안 우리 집에 머무셨던 할머니와 나는 의외로 마음이 잘 맞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언젠가는 함께 맥주를 홀짝이며 수다를 떨기도 했다.
할머니는 그 시대 많은 여성이 그러했듯이 가부장적인 남편과 자녀들(할머니는 여섯 명의 아이를 기르셨다)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했으며, 거기에 경상도 특유의 무뚝뚝함(그 속에 담긴 마음을 가려버릴 만큼)이 몸이 배인 분이셨다. 당신의 마음 같지 않은 상황에 목소리도 커질 수 밖에 없으셨을텐데, 심지어 원래 목소리가 카랑카랑하시니 처음 듣는 사람은 놀랄 밖에(처음 ‘가시나’라는 말을 듣고 울음을 터뜨렸던 것처럼).
자라면서 나는 할머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런 적이 없다고 확신한다. ‘사랑한다’는 할머니의 소박한 어휘 사전에 등재되지 못한 낯선 단어였다. p.5
할머니에게 배운 사랑을 한 줄로 요약한다면 그것은 ‘사람이 주는 평화’일 것이다. 그 사랑은 평화였다..(중략)..그분은 나를 위해 애쓰고 고생하지 않았다. 그저 그분의 작은 평화 속에 나라는 존재를 온전히 끌어안으셨다. p.5
나의 할머니 역시 내게 ‘사랑한다’는 말을 해주신 적이 없다. 그저 때때로 말없이 내 손을 잡고 등을 쓸어주셨을 뿐이다. 그런데 나는 그럴적마다 자꾸만 마음이 울컥였다.
몇해전 병원에 계신 할머니를 마지막으로 뵈었을 때(그게 마지막일 줄은 꿈에도 몰랐던) 여느때처럼 손을 잡고 등을 쓸어주시며 “우리 손녀인데, 이렇게 날 보러왔네” 자랑하듯 말씀하시던 그 모습은 아직도 나를 훌쩍이게 한다.
할머니가 내게 주신 사랑은 ‘위로’였다. 엄마가 나를 앞에 두고 속상해할때면(아마도 내가 뭔가 잘못을 했을텐데 그게 무엇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냥 두라고, 그러면 다 알아서 해나간다고, 잘 할꺼라고 나 대신 그리 답을 해주시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할머니한테 떳떳해지기 위해서라도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곤 했으니, 어쩌면 할머니는 우리 엄마보다 나를 더 잘 다루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할머니는 내 기억의 시초부터 오늘까지 늘 그런 식으로 존재했다. 그분은 내 눈앞에 얼굴을 들이밀거나 큰소리를 내지 않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목소리로 나를 둘러싸고, 괜찮다고, 예쁘다고, 다시 한번 괜찮다고 말했다. p.26
저자의 할머니와 달리 나의 할머니에 대한 첫인상은 ‘무섭다’ 또는 ‘목소리가 크시다’ 였지만, 그분 역시 항상 괜찮다고, 잘 할꺼라고 끊임없는 응원을 보내주셨다. 그래서인지, 책 속의 할머니와는 참 다른 표현방식을 지닌 분인데도 책을 읽으며 계속해서 나의 할머니를 떠올렸다. 그렇게 저자에게도 내게도 할머니는 조용히, 미처 깨닫지도 못하게 마음 어딘가에 스며있다가 필요한 순간, 순간 응원을 전한다. 아주 조용히, 안온한 느낌으로.
할머니가 물려주신 대부분의 것들이 이런 식이었다. 그것은 너무나 일상적이고 조용하고 작아서 나는 그것의 중요한 의미들을 거의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것은 너무나 풍성하고 흔해서 도무지 감사할 일들이라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내면에 중요한 안정감의 기반이 되었고 나는 숲의 습기를 흠뻑 머금고 자라는 초록 이끼처럼 그 안에 살았으며 중요한 것들을 배운 줄도 모르고 배웠다. p.48
며칠이 지나면 할머니를 떠나보낸지 꼭 3년이 되는 날이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으며, 글을 쓰며 자꾸만 마음이 일렁인다. 이런 나를 보신다면, 할머니는 예전에 그러셨듯이 내 손을 꼭 잡고 등을 쓸어주실 것 같다. “아이고, 가시나야, 괜찮다. 괜찮아. 잘 될기다. 그저 잘 지내라.” 이런 투박한 말씀과 함께.

FROM. YES24 eBook
*기억에 남는 문장
아이를 사랑하기 위해 무언가 힘써 좋은 것을 해줄 필요가 없었다. 사랑을 주기 위해서는 그저 평범한 일상이면 족했다. 가장 중요한 사랑은 아이의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었다. p.6
*어디 아이만 그럴까, 어른에게도 가장 중요한 사랑은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일게다.
살면서 그 이전이나 이후에도 나는 무수히 많은 잘못을 저질렀고 그만큼 많은 야단을 맞았다. 하지만 내가 가장 깊이 뉘우친 순간들은 분명 고함치고 화내고 모욕하거나 박탈하고 처벌하는 방식은 아니었다. 나를 효과적으로 야단쳤던 사람들은 아주 조용하게 마음의 평정을 유지했으며, 짧게 훈계하는 가운데 나의 감정선을 긍정적으로 노크했다. p.34
나는 할머니가 된다고 한 것, 안 된다고 한 것이 이후의 결과나 할머니의 기분에 따라 변하는 것을 한 번도 경험하지 않았다. 예전엔 안 됐던 것이 이번에는 되는 일도 없었다. 할머니에게 되는 것은 한결같이 되고 안 되는 것은 늘 안 되었다. 심지어 돌아가신 지 30년이 흐른 지금도 할머니에게 무언가를 묻는다면 그분이 된다고 할지 안 된다고 할지 헷갈림 없이 맞힐 수 있을 것 같다. p.42
혹시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관용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믿음은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도해볼 수 있다는 자신감의 씨앗이 되었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매우 중요한 창의력의 씨앗이기도 했다.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하고, 다른 질문을 던지고, 반대하는 목소리에 굴하지 않고 나의 주장을 내세울 수 있는 용기의 근원이었다. p.43
젊은이가 낯선 세계에 용감하게 도전하는 것은 비극이나 위험이 전혀 아니며 이 세상을 더욱 풍성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축복이다. p.54
그날 이후로 나는 내가 게으른 것이 아니라 아프다는 것을 이해했다. 말하자면 나는 부러진 다리로 축구를 하려고 애를 써왔던 셈이다. 다리가 부러진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훈련이 아니라 휴식이다. p.56
할머니가 특별히 눈이 밝아서 나의 고통스러운 순간들을 낱낱이 목격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그저 긴 인생을 먼저 살아가신 현명한 한 어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통째로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니 내 눈앞의 너 또한 힘든 순간이 있었을 것을 미루어 아셨을 것이고 각자의 길 앞에 놓인 장애물을 건너뛰기 위해 발버둥친 너의 보이지 않는 노력들이 장하다고 말씀하셨을 것이다. p.61
우리 인생에서 만나는 좋고 나쁜 일이라는 게 대략 심산한 범주에 있을 때가 많고, 또는 심하게 너울 지는 격랑을 만나더라도 내 마음은 어쨋거나 침착함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 좋은 일은 활짝 웃고 힘든 일은 한숨 한번 쉬어 넘기는 할머니의 무심한 반응은 보이지 않게 나에게 스며들어 웬만한 일에는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도록 내 마음을 추수르는 기술을 가지게 되었다. p.70
살면서 무척 헷갈리는 것들 중 하나가 무관심과 무심이다..(중략)..무심함은 그 중간 어디쯤의 기분 좋은 영역에 속한다. 그랬구나, 하는 정도의 반응일 것이다. 나에게 일어난 일을 들어주고, 고개를 끄덕여주는 것이다. 내가 더 말한다면 기꺼이 들어줄 것이고, 내가 입을 다문다면 캐묻지 않을 것이다. 사실 그것으로 충분하다. p.70
지지와 격려는 눈에 보이지 않을 때 진정으로 힘이 된다. 그런 것이 있는지도 모르고 받을 때 진짜 산소가 되어 그의 폐로 스며들고 근육에 힘이 된다. 지지와 격려가 귀에 들리고 눈에 보이기 시작하면 그것은 서서히 긍정적인 힘을 잃고 부담이 되어간다. p.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