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장메뉴
주요메뉴


닫기
사이즈 비교
소득공제
미리보기 사이즈비교 카드뉴스 공유하기

생명해류

: 진화의 최전선 갈라파고스에서 발견한 생명의 경이

리뷰 총점9.5 리뷰 12건 | 판매지수 384
베스트
생명과학 top100 5주
1 2 3 4 5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9월 06일
쪽수, 무게, 크기 296쪽 | 502g | 148*210*18mm
ISBN13 9791167372079
ISBN10 1167372077

카드 뉴스로 보는 책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들어가며_ 갈라파고스에 가고 싶다
렌즈의 초점
‘시작’을 위한 후일담
여정
등장인물

출발

침보라소산
마벨호의 출항
로고스 vs. 피시스

플로레아나섬

생명의 시작
수원지
scene #1 땅거북의 적
갈라파고스 제도의 생성과정
판구조론의 등장
안산암과 현무암
scene #2 플로레아나섬의 거주 흔적
파도를 읽다 - 웨트 랜딩의 요령

이사벨라섬, 푼타 모레노

진화의 최전선
조지의 부엌
마벨호에서의 식사

이사벨라섬, 우르비나만

갈라파고스의 시간축
땅거북의 등딱지
‘천연 뗏목’ 가설과 선택의 자유
레온 도르미도

이사벨라섬, 타구스곶

적도를 통과하다
만능 일꾼 훌리오

산티아고섬

동적평형 바위
scene #3 바위 위의 부비새
scene #4 하이브리드 이구아나
갈라파고스 생물들의 호기심

갈라파고스에서 만난 생물들

갈라파고스땅거북 | 갈라파고스바다이구아나 | 갈라파고스육지이구아나
용암도마뱀 | 갈라파고스바다사자 | 갈라파고스물개
갈라파고스가마우지 | 갈라파고스펭귄 | 군함조 | 부비새
갈라파고스북부흉내지빠귀 | 다윈핀치 | 갈라파고스푸른바다거북 | 갈라파고스붉은게
제왕나비 | 나방 | 걸프표범나비
갈라파고스큰메뚜기 | 매잠자리 | 다윈호박벌 | 날개잠자리
스칼레시아 | 팔로산토 | 선인장나무 | 용암선인장 | 기둥선인장

저자 소개 (3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1835년 가을, 갈라파고스 여행 당시 스물여섯이었던 다윈의 머릿속에는 아직 ‘진화론’의 씨앗조차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그의 저서 《비글호 항해기》에 나오는 갈라파고스에 대한 기록은 고작 10쪽 정도이며, 섬에서 본 동식물의 관찰 기록과 섬의 지질학적인 특징을 기술한 데 불과하다. 다윈의 대표작인 《종의 기원》, 이른바 ‘진화론’이 저술된 것은 그로부터 20년 후의 일이다. 다윈의 사상은 훗날 서서히 성숙해갔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갈라파고스에서 진화론에 관한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것은 그저 신화일 뿐이다. […] 1835년 가을, 젊은 다윈은 분명히 이 갈라파고스섬에 도착하여 그곳에서 전개되는 놀라운 생명의 모습을 목격했다. 이는 손이 닿지 않은 자연이라 할 만했고 생명의 본모습이라 할 만했을 것이다.

나는 이것을 ‘피시스physis’라 부르고자 한다. 그리스어로 본래의 자연을 뜻하는 피시스 말이다. 피시스의 상대어는 논리, 언어, 사상을 의미하는 ‘로고스logos’이다. 피시스 대 로고스의 문제 역시 이 여행의 중심 테마이다. 다른 장에서도 생각해볼 예정이지만 다윈이 맨 먼저 목격한 것은 피시스였음에 틀림없다. 이것이 로고스화된 결과가 진화론이다. 그렇기에 나는 다윈이 처음 갈라파고스를 접했던 원점으로 돌아가 그가 보았던 피시스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그가 사색을 통해 찾아낸 로고스가 필연적으로 도출되는지 증명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 pp.22~23

다윈이 탔던 비글호는 영국을 출항하여 대서양을 남하, 남아메리카의 브라질 연안에 잠시 들르면서 남단의 마젤란해협을 돌아 태평양으로 나와 북상하면서 갈라파고스 제도를 목표로 항해를 했다. 그들이 맨 처음 도착한 곳은 제도 동부에 위치한 산크리스토발섬. 1835년 9월 15일의 일이었다. 거기서부터 다윈은 플로레아나섬, 이사벨라섬, 볼리바르해협을 빠져나가 적도를 넘어 산티아고섬을 방문했고 머물렀다. 산티아고섬을 마지막으로 갈라파고스 제도를 뒤로하고 다음 탐험지인 타히티로 향했다. 다윈의 여로를 재현함에 있어 그 모든 여정을 배로 소화하는 것은 역시나 불가능했기 때문에 우리는 하늘길로 갈라파고스 제도의 거점인 산타크루스섬에 들어가(여기에 공항이 있다), 거기서 마벨호를타고 다윈과 같은 항로, 즉 플로레아나섬, 이사벨라섬, 볼리바르해협을 빠져나가 적도를 넘어 산티아고섬을 일주하기로 했다. 그다음, 다윈의 첫 기항지, 산크리스토발섬을 방문한다.
--- pp.70~71

맨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누워 있는 커다란 바다사자였다. 녀석의 새끼인지 작은 바다사자와 딱 붙어 자고 있다. 우리가 다가가도 전혀 움직일 기색이 없다. 그다음 눈에 들어온 것은 바다이구아나였다. 자세히 보니 여기에도 저기에도 있다. 바다이구아나는 공룡의 직계자손이라 해도 좋을 만큼 당당한 풍모를 자랑한다. 감격스러웠다. 고질라 같은 무서운 얼굴. 어두운 눈. 크게 찢어진 입. 날카로운 이빨. 간혹 보이는 입속은 새빨갛다. 비늘로 덮인 딱딱하고 검은 몸은 큰 개체의 경우 1미터가 넘는다. 그리고 특징적인 것은 ‘갈기’다. 머리 뒤부터 등을 지나 꼬리 끝까지, 톱처럼 생긴 볏이 이어져 있다. 이들은 땅에 네 발을 단단히 딛고 머리를 우뚝 치켜들고 있다. 하지만 거의 미동도 하지 않는다. 마치 동상처럼. 실제로 이 항구에는 촌락의 발전에 공헌한 인물의 동상이 있었는데, 어떻게 저렇게 높은 곳까지 올라갔는지 높이 1미터 정도 되는 동상의 기단 위에도 여러 마리가 꼼짝 않고 앉아 있었다. 이구아나들도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 pp.118~119

갈라파고스 제도 역시 판의 씨름으로 탄생했다. 하지만 이 씨름의 형태는 일본열도와는 달랐다. 판을 만들어내는 암반의 경계가 남쪽과 북쪽에서 충돌하고 이것이 서로 힘겨루기를 하여 솟아오른 곳, 갈라파고스 제도는 그 위에 얹혀 있는 것이다. 두 장의 판은 각각 북쪽이 코코스판, 남쪽이 나스카판이라 불린다. 경계선상에는 지하로부터 마그마를 뿜어 올리는 해저화산, 즉 열점이 생성되었다. 이런 화산이 뿜어내는 암석은 석영질이 적은, 한층 검은색을 띠는 현무암이 된다. 갈라파고스 제도를 뒤덮은 암석이 바로 이것이다. 현재의 갈라파고스 제도의 배치를 보면 고대, 즉 지금으로부터 약 500만 년 전 무렵에 판의 경계면에 늘어선 3개의 화산에서 열점이 생긴 것 같다.

3개의 화산은 활발히 용암을 뿜어 올려 고도를 높이고 결국은 해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것이 현재의 산크리스토발섬, 에스파뇰라섬, 플로레아나섬이다. 갈라파고스 제도 가운데 가장 오래된, 지금으로서는 토양과 숲이 가장 잘 형성되어 있고 물도 있는 섬들이다. 화산 폭발은 간헐적이다. 최초의 폭발 이후, 활동은 잠시 휴지기였다. 이때 형성된 3개의 섬은 나스카판 위에 얹힌 채로 나스카판의 이동과 함께 움직인다. 나스카판은 대륙을 향해 남동 방향으로 천천히 이동해간다. 속도는 1년에 5센티미터 정도. 섬은 컨베이어 벨트를 탄 것처럼 이 방향으로 움직인다. 그리고 다시 100만 년 정도의 간격을 두고 열점에서는 다음 화산활동이 일어나고 새로운 열도가 생긴다. 이것이 지금의 이사벨라섬 남부, 산타크루스섬 등의 섬을 형성했다. 이 섬들도 앞선 섬들을 따르듯 판 위를 남동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또 다음 분화가 일어난다. 이것이 페르난디나섬, 이사벨라섬 북부 등을 형성했다.
--- pp.136~138

우리는 마벨호 선미의 갑판에서 고무보트로 갈아타고 섬을 향해 전진했다. 고무보트에는 소형 프로펠러 엔진과 키가 장착되어 있는데 부선장 구아포가 솜씨 좋게 운전했다. 섬 상륙 지점은 좁은 만인데 그곳만 작은 해변이었다. 해변까지 50미터 정도 남은 지점에서 구아포 부선장은 엔진을 껐다. 우리가 탄 고무보트는 파도에 흔들리며 올라갔다 내려앉았다 했다. 한동안 시간이 흘렀다. 구아포 부선장은 가만히 난바다 쪽을 보고 있다. 바다 위에 떠 있는 마벨호가 조그맣게 보인다.

“파도를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통역사 미치 씨가 이렇게 알려주었다. 그렇다, 구아포 부선장은 파도를 읽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고무보트를 모래사장 가장 깊숙한 곳까지 데려다줄, 커다란 파도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동안에도 파도가 여러 차례 보트 아래를 지나 해변을 덮쳐 부채 모양으로 퍼지면서 모래를 검게 물들이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빠진다. 내 눈에는 난바다에서 오는 파도 중 어떤 파도가 좋은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구아포 부선장이 엔진을 켰다. 부릉 부릉 부릉. 보트가 진동한다. 기다리던 커다란 파도가 저쪽에서 오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높이 들어올려졌다가 그 상태로 단번에 해변으로 돌진했다. 고무보트 앞쪽에 타고 있던 미치 씨가 밧줄을 잡고 물이 찰랑이는 모래사장으로 뛰어내려 단단히 힘을 주고 버텼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고무보트는 다시 밀려 나가는 파도에 휩쓸려 먼바다로 되돌아갈 것이다.

“지금이에요. 빨리요!”

우리도 짐이나 옷이 젖지 않도록 짊어지거나 걷어 올리며 재빨리 보트에서 뛰어내렸다. 물은 무릎 정도 깊이였다. 우리는 수중용 신발을 신고, 바지를 걷어 올렸기 때문에 옷은 젖지 않았다. 발바닥에 모래밭이 느껴진다. 찰박찰박 바닷물을 밟으며 서둘러 파도가 미치지 못하는 곳까지 뛰었다. 결과는 꽤 좋았다. 여러 번 되풀이하다 보니 운동신경이 빵점인 나도 이 정도는 잘할 수 있게 되었다.
--- pp.149~150

오리온자리의 허리띠는 바로 알아봤는데 다른 별자리는 모르겠다. 그렇다, 이곳은 남반구다. 어딘가에 남십자성이 보일 것이다.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면서 점점 별이 많아졌다. 별은 눈 가장자리로 보는 게 더 선명하다. 망막 주변부에 명암에 민감한 시각세포가 많기 때문이다. 하늘 가운데에 은하수가 천천히 흐르고 있다. 이곳에는 별이 빛나는 하늘과 나밖에 없다. 이런 식으로 시간을 보낸 것이 대체 얼마 만인가. 어쩌면 소년 시절 이후로 한 번도 없지 않았을까?

도시에서 생활하다 보면 자질구레한 일에 쫓기고, 잡무에 시달리고, 그러다가 하루가 저문다. 온종일 모니터 앞에 붙어 앉아, 타다닥 타다닥 키보드를 친다. 바람을 느끼는 일도, 하늘을 올려다보는 일도 없다. 침대에 들어가서도 스마트폰을 스크롤하고 있다. 여기에 인터넷 와이파이 같은 건 없다. 휴대전화의 전파도 터지지 않는다. 가상의 차원으로부터 철저히 떨어져 있다. 그날 하루의 살아 있는 체험만이 존재한다. 보고, 걷고, 헤엄치고, 먹고, 배설하고, 잔다. 이것만으로도 벅차다.

이렇게 지내다 보니 신기하게도 인터넷 뉴스나 업무 메일 같은 게 전혀 궁금하지 않다. 그런 거 아무렴 어때. 연예인 아무개가 불륜을 저질렀다거나 약물 복용으로 체포되었다는 뉴스에도 흥미가 없어진다. 동시에 자신의 초조함이나 집착으로부터도 해방된다. 즉, 나를 구속하고 있던 온갖 로고스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다. 별이 쏟아질 것 같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피시스의 실상을 느꼈다.

살아 있는 것은 모두 때가 되면 태어나고,
계절이 바뀌면 변하고, 그때가 오면 떠난다.
떠남으로써 다음에 오는 것에 장소를 내어준다.
왜냐하면 나 역시 누군가가 양보한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생과 사. 이는 이타적인 것.
유한성. 이는 상보적인 것.
이것이 생명 본래의 모습.
갈라파고스의 모든 생명은 이 원칙에 따라 지금을 살고 있다.
지금만을 살고 있다.
--- pp.162~163

갈라파고스 연구자들은 ‘천연 뗏목’ 가설을 주장한다. 그건 이런 기적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선조인 땅거북은 지금의 갈라파고스땅거북만큼 크지는 않았다. 등딱지 크기가 고작 30센티미터 정도인 땅거북이었다. 이런 땅거북은 지금도 남아메리카 대륙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다. 대륙에 사는 암컷 땅거북은 부드러운 흙을 파고 거기에 몇 개의 알을 낳았다. 큰비와 큰 폭풍이 몰아치던 어느 날 밤의 일이었다. 남아메리카 대륙의 태평양을 바라보는 해변 근처에 구멍을 파고 알을 낳았는데, 흙더미가 무너지는 바람에 구멍 속 알은 흙과 함께 바다로 흘러가고 말았다. 폭풍은 여느 때보다 거세 인근의 나무를 뿌리째 뽑거나, 큰 나무의 가지를 나뭇잎째 부러뜨리거나, 식물 넝쿨과 담쟁이, 그밖에 해변에 쓸려온 이런저런 쓰레기와 마른 해조 등을 모조리 바다로 쓸어버렸다.

파도와 바람에 부대끼는 사이, 해조와 넝쿨이 나뭇가지를 휘감았고, 거기에 통나무와 가지가 얽히면서 천연 뗏목이 만들어졌다. 이 뗏목 한가운데에 땅거북 알이 마치 바구니에 담긴 듯 잘 끼였다. 거북 알은 부화까지 2, 3개월이 걸린다. 껍질이 깨지지만 않으면 새끼는 알 속의 양분과 수분으로 성장한다. 바닷물이 들어갈 일도 없다. 알은 물에 뜬다. 나뭇잎과 풀이 쿠션 역할을 해주었다. 남아메리카 대륙의 바닷가에서는 갈라파고스 제도 방향으로 끊임없이 남적도 해류가 흐르고 있다. 천연 뗏목은 부서지지 않고, 무사히 이 해류를 탔다. 만약 날씨가 좋아 바다가 얌전하다면 해류는 2시간 만에 1,000킬로미터의 바다를 흘러, 뗏목을 갈라파고스 제도까지 운반할 수 있다.

반대편의 태평양 저편에서는 적도잠류가 흘러온다. 이 두 해류는 마침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부딪힌다. 그러므로 천연 뗏목은 양방의 해류에 시달리며 갈라파고스 제도의 어느 섬 해안으로 떠밀려왔다. 땅거북의 알 가운데 몇 개는 도중에 바다의 제물이 되었지만 다른 몇 개는 다행히 무사했다. 아무튼 불가사의한 우연이 겹치면서 땅거북의 선조인 땅거북이 갈라파고스 제도에 도달했다. 최초에 도달한 섬이 어디였는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지만 대륙에 가장 가까운 산크리스토발(채텀)섬이 아니었을까. 이 섬은 갈라파고스 제도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섬이다. 때문에 식물이 가장 무성한 섬이기도 하다. 수원도 있다. 땅거북은 초식이다. 이파리, 작은 야생 사과, 선인장꽃 등 뭐든 먹고 천천히 소화시켜 영양을 섭취한다. 다행히 갈라파고스 제도에는 땅거북의 천적이 거의 없었다.
--- pp.206~207

“렛츠 고!”
나는 바다로 뛰어들었다(고 해야 하나, 거의 바다에 몸을 던져 넣었다). 물은 생각보다 차가웠고, 물에 떨어지자마자 높은 파도가 내 몸을 집어삼켰다. 죽을힘을 다해 팔다리를 휘저어 해수면 밖으로 머리를 내놓고 강사를 찾았다. 그는 수 미터 앞에서 헤엄치고 있었다. 손가락으로 바위 방향을 가리켰다. 저쪽으로 가라는 사인이다. 해수면에서 올려다보는 바위는 더 거대하고, 압도적인 질량으로 내 머리 위를 뒤덮고 있었다. 

바위와 바위 사이 바다의 회랑은 깊은 푸른색이었다. 폭은 10미터, 아니 20미터는 됐을 것이다. 길이는 50미터 정도. 아니 더 길었을지도 모른다. 해수면 위로 머리만 내놓고 있으니 완전히 거리 감각이 둔해졌다. 개미가 거대한 미로에 던져지면 분명 이런 기분일 것이다. 양쪽 입구에서 높은 파도가 끊임없이 들이쳐 회랑 가운데서 맞부딪히고, 양쪽의 가파른 벼랑에 부딪혀 물보라를 일으켰다. 나는 나뭇잎처럼 이리저리 휩쓸렸다. 아무튼 끝까지 헤엄쳐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

회랑 안쪽으로 들어가니 한층 더 수온이 내려간 듯했다. 아마 그늘이라 그런지도 모른다. 전문 강사가 아래를 보라고 손가락으로 사인을 주었다. 고글 유리 너머로 물속을 바라보았다. 놀라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암벽이, 바다 아래로 쭉 뻗어 있었다. 물은 투명해서 저 아래 깊은 곳까지 깨끗하게 보였다. 그래도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다. 수백, 수천 가지 형형색색의 물고기들이 각자 무리를 지어 놀고 있었다. 저쪽은 노랗고 둥근 물고기가, 이쪽은 파랗고 길쭉한 물고기가, 저 너머는 오렌지색의 반짝이는 물고기가 헤엄을 치고 있었다. 그보다도 깊은 층에서 정말 커다란 가오리가 천천히 헤엄쳐 왔다.

한 평 정도나 되는 검고 매끈한 가오리의 등에는 예쁘고 하얀 물방울들이 흩어져 있었다. 넋을 놓고 보고 있자니 가오리는 가느다란 꼬리 궤적을 남기고 시야 저편으로 홀연히 사라졌다. 그러자 이번에는 오른쪽에서 등딱지에 금빛 별 모양을 업은 바다거북이 앞을 가로질러 간다. 바다거북은 때때로 바위 표면에 붙은 해조류를 먹는 모양이다. 모든 생물이 완전히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었다. 낙원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인간의 존재와는 관계없이 생명은 각자의 온전한 삶을 살고 있다.
--- pp.215~216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환경오염과 기상이변, 걷잡을 수 없는 생물 대멸종의 시대…
생명의 최전선으로 떠난 후쿠오카 신이치의 갈라파고스 프로젝트


대륙의 종에 비해 유달리 거대한 몸집의 땅거북, 삐죽삐죽한 갈기에 찢어진 시뻘건 입이 흡사 외계생명체와도 같은 이구아나, 날개가 퇴화되었지만 큰 문어도 통째로 집어삼키는 사냥 실력을 자랑하는 가마우지, 다른 생물들이 자신을 먹지 못하게 하려고 한껏 위로 자라 오른 나무선인장…. 갈라파고스는 이처럼 다른 곳에서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고유한 생물종 그리고 이들이 이루어낸 독자적인 생태계로 유명하다. 또한 갈라파고스는 20대 젊은 청년이었던 찰스 다윈이 영국 함선 비글호를 타고 도착해 진화론의 단초를 얻은 곳으로도 의의가 있다.

스스로를 생물학자이자 박물학자(naturalist)로 규정하는 저자 후쿠오카 신이치는 학자로서 그리고 잠자리를 좇는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평생 품어온 갈라파고스에 대한 동경을 아낌없이 드러낸다. 그는 분자생물학자로서 생명을 나누고 쪼개어 분자, 원자의 단위까지 파고들어 보아도 결코 알아낼 수 없었던 생명의 본질은 갈라파고스와 같은 자연의 실상과 마주함으로써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코로나-19를 비롯해 여러 환경문제로 ‘생명’의 본질에 대한 인식이 인류 문명이 나아갈 방향을 가늠하는 데 있어 중요한 테마인 바, 갈라파고스 여행이 생명을 알고 이를 인식하는 데 중요한 부분이라고 설명한다.

최초의 생명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무에서 유를 창조한 생명의 본질은 곧 이타성


갈라파고스 제도는 남아메리카 에콰도르에서도 약 1,000킬로미터 떨어진 남태평양에 위치한 절해고도이다. 총 123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이루어진 이 제도는 지각판의 충돌로 발생한 화산에서 용암이 흘러내려 굳은 딱딱한 돌 외에는 한 줌의 흙조차 지니고 있지 못한 땅이었다. 여기에서 질문은 시작된다. 생명의 불모지와도 같았던 이곳에서 어떻게 지금과 같이 독특하고도 풍성한 생태계가 탄생할 수 있었을까?

후쿠오카 신이치는 그 해답을 생명의 ‘이타성’에서 찾는다. 끓어오르던 용암이 겨우 식어내린 최초의 바위섬에는 극소량의 빗물과 공기 중 습도, 태양광선만으로도 생명을 이어갈 수 있는 강인한 식물, 즉 용암선인장 씨앗 정도가 겨우 뿌리내릴 수 있었다. 갈매기 똥에 섞여 이 섬에 들어온 선인장의 씨앗은 발아해 물을 저장하고, 광합성을 하고, 열매를 맺고, 유기물을 합성해 이것을 대지에 떨어뜨렸다.

이때 이 식물은 자신에게 필요한 만큼만의 양분만 합성하는 것이 아닌, 언제나 조금 더 많이 활동하여 다른 생명을 길러낼 수 있는 토대를 만들었다. 즉 이타적인 행동을 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용암선인장은 ‘다윈의관목’과 같은 키 작은 관목류가 곳곳에 뿌리를 내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고. 관목류는 또 다른 식물상이 살아갈 수 있는 토대를 만들었다. 이런 식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양한 식물상이 갈라파고스에 존재하게 되어 비로소 곤충과 동물들이 도래해 변천과 진화를 거듭할 수 있는 터전이 지구상에 출현하게 된 것이다.

생명해류가 젖줄처럼 휘감아 흐르는 땅, 갈라파고스
우연에 우연의 거듭으로 시작된 생명 탄생의 기적


갈라파고스를 대표하는 생물 갈라파고스땅거북의 선조는 남아메리카 대륙에서 옛날부터 살고 있던, 30센티미터 안팎의 땅거북이다. 하지만 헤엄을 치지 못한다. 그런데 땅거북이 어떻게 갈라파고스로 가서 지금과 같은 거대한 개체로 진화한 걸까? 이에 갈라파고스 연구자들은 ‘천연 뗏목’ 가설을 주장한다. 대륙에 살던 암컷 땅거북이 부드러운 흙 속에 알을 낳았다. 마침 큰비와 폭풍이 몰아쳤고 그 폭풍우가 알이 놓여 있던 흙더미를 무너뜨려 통째로 집어삼켰다.

여느 때보다 거센 폭풍은 나무의 큰 가지와 함께 이런저런 식물 넝쿨과 마른 해조류까지 휘감아 통째로 휩쓸어 갔는데 이것이 천연 뗏목의 역할을 해 땅거북의 알을 바구니처럼 잘 품고 갈라파고스에 도착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남아메리카 대륙의 바닷가에는 갈라파고스 제도 방향으로는 흐르는 남적도 해류가 있는데, 날씨만 무난하다면 이 해류는 2시간 만에 1,000킬로미터의 거리를 돌파할 수 있다. 또한 이 남적도 해류는 갈라파고스 부근에서 반대편에서 흘러들어오는 적도잠류와 만나 갈라파고스 제도의 각 섬으로 흘러 들어간다. 이 불가사의한 우연에 우연이 겹쳐 갈라파고스에 도달한 땅거북은 기존에 존재하던 선인장이나 관목 이파리 등을 닥치는 대로 먹으며 천적의 위협이 없는 천혜의 낙원에서 거대하게 몸집을 불린 것이다.

도시 생활에서 완전히 벗어나 마주한 있는 그대로의 자연
110여 장의 생생한 도판과 함께 떠나는 생명 탐사기


저자 후쿠오카 신이치는 책 전반에 걸쳐 갈라파고스로 떠난 5박 6일의 항해 내내 자신이 마주한 있는 그대로의 자연, 즉 생명의 본모습을 소개하는 데 주력한다. 그는 이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그리스어에서 따온 말인 ‘피시스(physis)’로, 그리고 이와 상대되는 개념을 논리, 언어 사상을 의미하는 ‘로고스(logos)’로 지칭한다. 다윈이 갈라파고스에서 가장 먼저 목격한 자연과 생명현상은 피시스이고, 이것이 로고스화된 결과가 바로 진화론이다.

하늘 한 번 올려다볼 겨를 없이 키보드를 타다닥타다닥 두드리는 데 열중하다가 하루를 마무리하는 식의 도시인들의 삶은 로고스로 가득하다. 갈라파고스 항해는 이러한 현대인의 삶에서 완전히 벗어나, 휴대폰도 각종 복잡한 뉴스와도 완전히 멀어져 먹고, 자고, 배설하며 그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벅찬, 피시스가 충만한 생활에 익숙해지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이를테면 물 사용이 지극히 제한적인 선박에서 환경오염이 되지 않는 방식으로 화장실을 사용하는 문제라든지, 배에서 육지로 내릴 때 이미 건설된 잔교를 이용하는 것(드라이 랜딩)이 아닌, 파도의 흐름에 맞춰 맨발로 뛰어내리느라 하체가 다 젖기도 하는 웨트 랜딩법 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저자는 갈라파고스 제도 곳곳에서 만난 다양하고 기묘한 생물체들에 대한 친절한 묘사를 통해 독자를 피시스로서의 자연으로 안내하고 있다. 특히 갈라파고스 제도 중 가장 오래된 섬이자 가장 많은 생물상의 터전이기도 한 레온 도르미도(키커록)에서 스노클링을 하며 만난 해양생물을 묘사한 부분은 피시스와 마주했을 때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자유와 진정한 쾌감을 전달하는 데 있어 이 책의 백미를 이룬다. 깎아지른 듯 솟아오른 두 개의 거대 암석 사이로 아찔할 정도로 깊은 바다가 좁은 회랑처럼 뻗어 있는 레온 도르미도는 수영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생명의 위협이 느껴질 정도로 위험한 장소다.

하지만 수백, 수천 가지 형형색색의 물고기, 하얗고 예쁜 물방울들이 등에 흩뿌려진 가오리, 해조류를 뜯어 먹으며 노니는 바다거북 등 인간의 존재를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 모든 생명이 완전히 자유롭게 움직이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는 천혜의 낙원, 그 자체다. 이에 저자는 갈라파고스란 흔히 말하듯 고립되고 세계와 단절된 채 형성된 자기들만의 생태계를 말하는 것이 아닌, 생명의 진정한 모습을 일깨워주는 장소, 진화의 최전선, 생명 본래의 행동을 보여주는 거대한 극장과도 같다고 찬탄한다.

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1835년 가을 다윈은 한 달 남짓 갈라파고스에 머물며 《비글호 항해기》에 10쪽짜리 기행문을 남겼다. 그러한 다윈의 흔적을 따라 떠난 여행으로 책을 쓰다니 후쿠오카 신이치 교수는 정말 탁월한 이야기꾼이다. 나도 여러 해 전 어느 방송국의 기획 덕에 갈 기회가 있었건만 아쉽게 시간을 내지 못했다. 하지만 언젠가 반드시 갈 것이다. 생명이 어떻게 탄생하고 진화했는지 궁금한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진화의 최전선 갈라파고스를 순례해야 한다. 저자는 다윈을 따라 섬 네 곳만 들렀지만 갈라파고스제도에는 이름이 붙여진 섬만 123개나 있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우리 함께 ‘생명해류’를 따라 ‘진화 성지순례’를 떠나자. 땅거북, 이구아나, 가마우지, 부비새가 도망도 가지 않고 마치 투명인간을 보듯 우리를 맞이할 것이다.
-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

회원리뷰 (12건) 리뷰 총점9.5

혜택 및 유의사항?
구매 파워문화리뷰 갈라파고스에 가다!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YES마니아 : 골드 스타블로거 : 수퍼스타 e*a | 2023.03.04 | 추천11 | 댓글0 리뷰제목
나는 후쿠오카 신이치의 팬이다. 내 책장 한 켠의 그의 책들이 줄줄이 꽂힌 것을 보면 누구라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가끔씩 그의 책이 번역되어 나왔는지 궁금해서 검색해 볼 때가 있을 정도다. 그러니 그의 책이 나왔다는 걸 확인하자마자 내용도 확인하지 않고 주문하고 읽게 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제목이 『생명해류』. 무얼 의미하는 제목인지;
리뷰제목

나는 후쿠오카 신이치의 팬이다. 내 책장 한 켠의 그의 책들이 줄줄이 꽂힌 것을 보면 누구라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가끔씩 그의 책이 번역되어 나왔는지 궁금해서 검색해 볼 때가 있을 정도다. 그러니 그의 책이 나왔다는 걸 확인하자마자 내용도 확인하지 않고 주문하고 읽게 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제목이 생명해류. 무얼 의미하는 제목인지부터 궁금했다. 표지의 진화의 최전선 갈라파고스에서 발견한 생명의 경이라는 부제목이 이 책의 정체를 거의 파악할 수 있도록 하지만, 그래도 궁금한 건 그걸 후쿠오카 신이치는 어떻게 풀어갈까? 아니 그보다도 분자생물학자인 후쿠오카 신이치가 왜? 갈라파고스? 그런 의문부터 들었다.

 

본격적인 내용에 들어가기에 앞서 들어가며에서 그 사정을 길게 소개하고 있다. 그가 갈라파고스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며, 그곳에 갈 수 있게 된 상황이며, 거기에 곁들어지는 이야기들(어떻게 작가의 대열에 들어서게 되었는지, NHK의 방송을 하게 된 사정, 일본 출판계의 이모저모 등등)들어가며에서 쓰고 있다. 본격적인 이야기 전에 하는 이야기치고는 좀 길고(전체 책 두께에 비해), 또 뼈대에서 벗어낫다 돌아오기를 몇 차례 반복하고는 있지만 흥미를 끄는 이야기들이다. 그렇게 이러저러한 사정을 통해 후쿠오카 신이치는 어렸을 적부터 동경해 마지않던(그만 동경하는 것은 아니다) 갈라파고스에 가게 된다. 그것도 단훈한 여행객이 아니라 다윈의 발자취를 거의따라서. 다행스럽게도 코로나 19 팬데믹이 본격화되기 바로 직전에!

 

본격적인 내용은 갈라파고스에서의 56일의 이야기다. 갈라파고스에서 본 것, 겪은 이야기들이다. 갈라파고스의 역사도 있다. 어떻게 서구 열강의 손아귀에 들어가지 않고 에콰도르의 영토가 되었는지, 다윈이 이곳을 찾았을 때의 상황이라든가 등등. 갈라파고스의 생물들이 어떻게 이 절해고도에서 살아갔는지에 대한 추측과 함께 이 동물들이 전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놀라운 광경들에 감탄한다. ! 나도 갈라파고스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절로 든다.

 

그런데 좀 실망이다. 갈라파고스의 지질과 생물에 관해 깊숙이 들어가지 못하고, 겉만 더듬는 느낌이다. 생명에 관해 깊은 통찰처럼 보이는 얘기도 이미 다른 책에서 했던 얘기고, 그것이 여기서 어떻게 이어지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연관시키지 못하고 있다. 그저 감탄하고, 신기해하고, 반성하고... 이런 게 이어진다. 음식에 대한(정확히는 56일의 음식을 완벽하게 준비한 요리사에 대한) 칭찬과 변기 시설에 대한 아주 자세한 분석 등등이 생명해류라는 제목과 어떤 관련을 맺는지 조금 아연하기도 하다(필요 없다는 게 아니라 너무 길고 자세하다. 마치 이게 주()인 것처럼). 후쿠오카 신이치에게 기대했던 것이 이 정도였단 말인가 

 

다만 후쿠오카 신이치를 통해 확실하게 확인한 것은 흔히 말하는 갈라파고스화라는 표현이 의미하는 것과는 달리 갈라파고스가 생명 진화의 현장이고, 지금도 엄연히 발전하고 있는 곳, 즉 막다른 길이라기보다는 최첨단인 곳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그건 이미 그랜트 부부의 연구 등을 통해서 깨닫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댓글 0 11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11
지금도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진화의 최전선 갈라파고스 탐사기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스타블로거 : 골드스타 벤*****북 | 2022.12.12 | 추천2 | 댓글0 리뷰제목
남미 북서부에 자리한 에콰도르에서 1000 km 떨어진 갈라파고스 제도(諸島). 해저화산의 폭발로 태평양에 갑자기 나타난 신천지(265 페이지)인 이 섬들은 1535년 남미 잉카로 파견되었으나 알 수 없는 이유로 표착(漂着)한 스페인의 전도사 프라이 토마스 데 베를랑가에 의해 발견되었다. 300년간 잊힌 섬이었던 갈라파고스가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다윈에 의해서다.   판구조론;
리뷰제목

남미 북서부에 자리한 에콰도르에서 1000 km 떨어진 갈라파고스 제도(諸島). 해저화산의 폭발로 태평양에 갑자기 나타난 신천지(265 페이지)인 이 섬들은 1535년 남미 잉카로 파견되었으나 알 수 없는 이유로 표착(漂着)한 스페인의 전도사 프라이 토마스 데 베를랑가에 의해 발견되었다. 300년간 잊힌 섬이었던 갈라파고스가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다윈에 의해서다.

 

판구조론으로 형성을 설명(134 페이지)할 수 있는 갈라파고스 제도는 다윈이 진화론의 영감을 얻은 곳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저자는 “다윈의 고향이라 불리는 갈라파고스는 사실은 가장 다윈적이지 않은 곳”이라고 말한다.(209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이름이 있는 섬이 총 123개이고 주요 섬만 해도 13개나 되며 크고 작은 다양한 섬과 암초들이 산재하는 군도(9 페이지)인 갈라파고스의 생태계가 기묘하게 보이는 것은 그곳이 한없이 자유롭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작위의 변이와 자연도태의 압력만으로 진화를 설명할 수 있는 다윈주의와는 상당히 다르다. 다윈은 30세 무렵 유전형질(본능적 형질)과 획득형질(개체가 학습에 의해 얻은 형질로 그 한 대에 국한되는 형질)을 명확하게 구별했다. 이런 혜안은 진화론적 고찰로 이어졌다.(258 페이지) 독립 직후의 에콰도르가 영유권을 선언한 것은 1832년이었고 스물 여섯의 다윈이 비글호에 동선(同船)해 갈라파고스에 닿은 것은 1835년이었다.

 

에콰도르가 점령을 선언하기 전까지 갈라파고스는 해적선이나 포경선의 정박지였다.(225 페이지) 땅거북이란 의미의 갈라파고스 제도가 형성된 것은 구대륙에 비하면 최근인 수백만년전이다.(202 페이지) 1830년 콜롬비아로부터 독립한 에콰도르는 정치범, 파산자, 부랑아 등을 절해의 불모지인 갈라파고스에 이민단으로 보냈다. 무역상 비야밀의 아이디어에 의해서였다.

 

후쿠오카 신이치의‘생명해류’는 아사히 출판사의 제의를 받고 다윈이 들르지 않았던 산타크루스섬을 기점으로 여행을 시작해 플로레아나섬 - 이사벨라섬 - 볼리바르 해협 - 산티아고섬으로 이루어진 다윈의 여행 코스를 그대로 따른 뒤 쓴 관찰 및 탐사 기록이다. 다윈이 처음 갈라파고스를 접했던 원점으로 돌아가 그가 보았던 피시스(생명의 본 모습, 본래의 자연)를 확인하고 싶었던(24 페이지) 후쿠오카에게 아사히 출판사의 제안은 너무도 큰 선물이었다.

 

저자는 피시스의 전체상은 로고스의 틀 밖으로 밀려나기 쉽다고 말한다. 로고스는 인간의 뇌가 세상을 잘라내어 선분을 긋고 논리를 추출하여 편의대로 구축한 정돈된 인공물이다.(102 페이지) 저자는 자신이 홀로 갈라파고스에 간다면 자비(自費)와 노력으로 어떻게든 꿈을 이룰 수 있겠지만 그러면 아무리 노력해도 관광여행 이상은 될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저자의 핵심 주제는 동적 평형이다. 이는 다양한 것들이 유입되고 그것들이 한때 ‘나’의 몸을 형성하지만 지체 없이 흘러나가는, 흐름 속에 존재하는 생명을 표현하는 말이다. 저자는 절해의 고도는 저 먼바다 한가운데에 고립된 땅처럼 보이지만 끊임없이 생명을 받아들이고 키워낸다고 말한다.(176 페이지)

 

저자는 네이처 가이드에게 바위의 이름을 물어 그가 단지 지역 이름을 대자 ”맘대로“ 갈라파고스 생명의 자유자재로움을 상징하는 동적평형 바위라 명명하기도 했다.(246 페이지) 동적평형이란 말은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지구의 판을 통해 설명할 수 있는 개념이다. ”갈라파고스 제도는 지구의 동적평형 위에서 위태로운 균형을 잡으려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지리학적으로도, 생물학적으로도 움직임의 한복판에 있다.“(139 페이지)

 

동적 평형과 함께 거론할 수 있는 저자의 개념이 이타성이다.(71 페이지) 이 개념으로 대단히 넓은 마음의 소유자인 식물, 미생물을 설명할 수 있다. 그들은 자신에게 필요한 만큼만 영양분을 만들거나 자신이 생산한 암모니아를 독점하지 않고 언제나 조금 더 많이 활동하여 그것을 다른 생명에게 나누어준다. ”여유가 있는 곳에 이타성이 생기고 이타성이 생기면 그때 비로소 공생이 시작된다. 이타성은 돌고 돌아 자신에게 돌아온다.“(204, 205 페이지)

 

당연히 일정에는 많은 사람이 함께 했다. 여행 일기의 필자인 후쿠오카 신이치 박사, 마벨호의 선장 에두아르도 코셸료, 마벨호 부선장 프란시스코 산틸란, 만능 일꾼인 마벨호 선원 훌리오 모레타, 현지 가이드 오스왈드 차피, 마벨호의 요리사 조지 아빌레스, 통역사 도리이 이치요시, 야생 전문 사진작가 아베 유스케 등이다.

 

대부분이 국립공원인 갈라파고스는 자연보호 차원에 따라 들어갈 수 있는 곳과 들어갈 수 없는 곳이 엄밀히 정해져 있다. 아무리 전세를 낸 배라고 해도 반드시 현지 가이드가 동행해야 하며 가이드의 관리를 받으며 관찰하거나 행동해야 한다.(81 페이지) 갈라파고스의 자연물은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섬 밖으로의 반출은 엄금이며 섬에서 섬으로의 이동도 금지되어 있다. 신발이나 바지에 붙은 모래는 깨끗이 털어내야 하고 샘플도 현미경 관찰이나 촬영 후에는 모두 제자리에 돌려놓아야 한다.

 

화산 열도로 생성된 갈라파고스 제도 대부분은 용암지대이고 적은 강수량이나마 용암의 벌어진 틈으로 흘러들어가기 때문에 담수가 고여 있는 곳이 거의 없다. 물론 하천도 없고 연못도 없다. 물이 고여 있는 곳은 바닷물 또는 바닷물이 증발해서 생긴 염호(鹽湖)다. 이 때문에 인간은 오랫동안 갈라파고스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었다.

 

갈라파고스는 해저 화산 분화로 생긴 용암 섬이지만 섬마다 모습은 전혀 다르다. 섬의 나이에 따라 차이가 생긴 것이다. 저자는 지구의 판들을 땅거북의 등껍질 같다고 표현했다. 갈라파고스의 땅거북은 멸종했다가 유네스코의 노력에 힘입어 복원되었다. 그들은 1년 동안 물이나 먹이를 주지 않아도 알아서 살 정도로 생명력이 강하다.

 

문제는 남획된 이유다. 고기가 맛있고 체내에 대사수(代謝水)가 있어 유사시 담수의 공급원이었기 때문이다. 바다가 너무도 넓어 땅거북이나 이구아나 같은 파충류의 천국이었던 갈라파고스의 땅거북들은 이주민들이 데리고 온 염소, 돼지 때문에 또 한 번 수난을 당했다. 염소는 땅거북들의 먹이인 풀을 먹었고 돼지는 땅거북들의 알을 먹었다.

 

저자는 갈라파고스는 생명 진화의 현장이고 지금도 엄연히 발전하고 있는 곳, 막다른 길이 아니라 최첨단인 곳이라 설명한다.(201, 202 페이지)‘생명해류’의 장점 중 하나는 불확실 하던 다윈 진화론을 명확하게 짚은 데 있다. 저자에 의하면 다윈주의는 오로지 생식세포의 유전자에 우연히 생긴 돌연변이가 세대에서 세대로 유전되는데 그 안에서 생존에 유용한 것만이 자연선택 된다는 것이다.(167 페이지)

 

저자는 흙을 상세하게 설명한다. 그에 의하면 흙은 사실 모래 알갱이가 아니라 미생물이 만들어내는 유기물 입자다. 그러므로 흙은 살아 있다. 미생물은 공기 중의 질소를 암모니아로 변환시킬 수 있다. 암모니아는 아미노산의 재료이고 아미노산은 단백질의 재료이다.(203 페이지)

 

미스테리는 대륙에서 1000km 떨어진 갈라파고스에 어떻게 헤엄도 치지 못하는 땅거북이 옮겨갔을까, 이다. 천연 뗏목 가설이 주목된다. 갈라파고스 제도의 해역은 풍부한 수산자원을 품고 있다. 그곳으로 한류가 흘러들어온다. 한류가 흘러들어오는 까닭에 더욱 풍성한 바다가 된디. 얼핏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유가 있다. 태평양 쪽에서 갈라파고스 제도로 오는 적도잠류는 차갑기 때문에 수심이 깊은 부분으로 흘러들어간다. 이것이 갈라파고스 제도의 해저에 있는 해분(海盆)에 부딪혀 상승으로 솟구친다.

 

이 때문에 바다 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대량의 유기물의 염류가 표층으로 끌어올려진다. 이것이 표층부에 서식하는 플랑크톤이나 해조류의 중요한 영양소가 된다. 플랑크톤이나 해조류는 어패류와 해양생물의 식량이 된다. 어패류는 새, 바다사자, 물개들의 적절한 양식이 된다.(226 페이지)

 

저자는 에콰도르가 갈라파고스 제도를 영유하게 됨으로써 그곳을 구미 제국으로부터 지켜내 자연환경과 생태계의 보고(寶庫)로 만들 수 있었다고 말한다. 다윈이 동선(同船)한 비글호는 자연 조사와 해도 측량을 기치로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군함이다.(116 페이지) 에콰도르가 갈라파고스를 점령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영국이 그곳을 자국 영토화했을 것이다.

 

탐욕스러운 구미 열강은 갈라파고스가 거의 미개한 땅이라는 이유로 학술연구라는 미명 아래 조사단을 잇따라 파견했다.(144 페이지) 저자는 생태적 지위를 이렇게 설명한다. 그것은 개체가 스스로 생존을 찾는 장소이자 번식을 위한 공간이라고.(267 페이지) 갈라파고스는 넉넉한 생태적 지위를 갖는 곳이다. ‘생명해류’는 인문적 마인드와 생명 사랑으로 빛나는 분자생물학자인 저자가 ”혼신을 다해“(51 페이지) 쓴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역작이다.

댓글 0 2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2
생명해류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d****i | 2022.09.30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다윈이 쓴 <종의 기원>으로 유명한 갈라파고스 섬, 생태계에 관심이 크지 않고 더군다나 인간과 유사한 유전자이지만 한 끗 차이로 원숭이와 인간으로 나뉘었다는 진화설을 믿을 수가 있는 것인가란 의문이 들었기에 하나님의 천지창조도 믿지 않지만 진화설 또한 미심쩍음이 있어 그저 그렇구나 하는 정도로 치부하였는데 얼마 전 갈라파고스 섬을 취재한 다큐를 보며 '진화의 최전선;
리뷰제목

다윈이 쓴 <종의 기원>으로 유명한 갈라파고스 섬, 생태계에 관심이 크지 않고 더군다나 인간과 유사한 유전자이지만 한 끗 차이로 원숭이와 인간으로 나뉘었다는 진화설을 믿을 수가 있는 것인가란 의문이 들었기에 하나님의 천지창조도 믿지 않지만 진화설 또한 미심쩍음이 있어 그저 그렇구나 하는 정도로 치부하였는데 얼마 전 갈라파고스 섬을 취재한 다큐를 보며 '진화의 최전선 갈라파고스에서 발견한 생명의 경이'라는 문장에 흥미가 동하였다.

<생명해류>는 일본에서 저명한 분자생물학자인 '후쿠오카 신이치' 교수가 어릴 적부터 꿈에 그리던 갈라파고스 섬을 밟으며 생물의 진화를 더듬어가는 기록을 정리한 책이다. 사실 제목만 보고 진화의 거대한 운명과도 같은 일대기를 목도하는 것인가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재미있게도 일생의 숙원이었던 갈라파고스 섬으로의 한 발이 불발됐던 상황들과 방송과 출판계 쪽의 현황을 보여주는 글들이 꽤 많은 장수를 차지하고 있어 '내가 진화에 대한 책을 읽고 있는 것인가?'라는 회의가 들 때쯤 본격적으로 갈라파고스 섬으로의 기록을 보여준다.

다윈의 책으로 유명한 갈라파고스 섬은 그 한섬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근방에 여러 섬들이 존재하고 실제로 다윈 또한 그 섬들을 거치며 생물을 조사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다윈=종의 기원=갈라파고스'라는 강렬함은 갈라파고스 섬을 비롯한 여러 섬을 돌아본 후 진화설을 정리하며 20여 년이란 오랜 기간을 걸쳐 집필한 책으로 후대에 또는 다윈 본인 자신이 기록에 대한 통한의 아쉬움을 표하기도 하였지만 어쨌거나 그 유명한 가설은 인류 역사상 실로 대단하다 할 수 있는 발견이므로 어렵거나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긴 하지만 대단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라는 직업과 평소 관련 서적을 여럿 출간한 이력에서 연상되는 것과 달리 자신을 굉장히 내향적이고 타인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해 곤란했던 일화들이 여럿 있었다고 털어놓았지만 이 분의 글을 읽다 보면 학자임은 맞지만 예능 쪽과도 어울리는 인상이 강해 중간중간 삼천포로 빠지는 듯한 구성이 자주 눈에 띄지만 왠지 그마저도 신선하고 즐겁게 다가와져서 꽤나 독특한 사람으로 기억될 듯하다.

댓글 0 이 리뷰가 도움이 되었나요? 공감 0

한줄평 (1건) 한줄평 총점 10.0

혜택 및 유의사항 ?
구매 평점5점
후쿠오카 신이치, 진화의 최전선 갈라파고스에서 생명을 느끼다.
이 한줄평이 도움이 되었나요? 공감 0
YES마니아 : 골드 e*a | 2023.03.03
  •  쿠폰은 결제 시 적용해 주세요.
1   15,300
뒤로 앞으로 맨위로 aniAlar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