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22년 09월 06일 |
---|---|
판형 |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 312쪽 | 404g | 128*187*30mm |
ISBN13 | 9791191859317 |
ISBN10 | 1191859312 |
발행일 | 2022년 09월 0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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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 312쪽 | 404g | 128*187*30mm |
ISBN13 | 9791191859317 |
ISBN10 | 1191859312 |
금요일들│집안에서도 발끝을 들고 걷는다 - 11 토요일들│내가 나의 타인이다 - 51 일요일들│아픈 몸이 꼽는 건 날짜가 아니라 요일이에요 - 93 월요일들│화를 따뜻하게 내는 사람이고 싶어 - 137 화요일들│사람은 사람에게 왜 그렇게까지 할까요? - 177 수요일들│가장 무구한 존재는 지워진 여자야 - 221 목요일들│눈을 뜨면 당신이 거기 있어라 - 261 작가의 말 - 307 |
최근 유튜브 영상에서 차량사고 영상이 올라옵니다. 몇 편을 보았더니 내가 좋아하는 영상으로 짐작해서 올라오는 것 같습니다만 사실 좋아하는 영상도 아니고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영상도 아닙니다. 오히려 보기에 불편합니다.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가. 가해자가 올리는 영상이 아니라 자칭 피해자들이 올리는 영상입니다.
나. 자칭 피해자라고 주장하지만 쉽게 동의하기가 어렵습니다.
다. 지나친 권리의식으로 타인을 정죄하는 모습에 동조하기가 어렵습니다.
라. 방어운전보다는 공격적인 운전으로 보입니다.
사고는 주로 제 차선을 달리던 차가 끼어드는 차량과 충돌하는 영상이 많습니다. 끼어드는 차량이 갑자기 뛰어들었다는 주장인데, 사실 차선을 바꾸는 차는 백미러로는 주행차량을 확인할 각도가 아닙니다. 고개를 돌려 진입하려는 차선을 확인하여야 하지만 운전이 미숙한 사람들이나 힐끗 돌아보는 시선으로는 저 멀리서 달려오는 차량을 보지 못하거나 그 차의 속도가 빨라 금방 다가올 것으로 생각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방어운전은 누가 불법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운전이 아닙니다. 사고가 나면 쌍방이 모두 피해를 입으니 누구의 잘못을 따지지 않고 예측되는 위험을 피하기 위한 운전조작을 말하는 것입니다. 과속을 하지 않으면 추돌을 피할 수 있거나, 최소한 끼어들 조짐이 느껴지면(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서행으로 조심을 하는 것이 방어운전인 것입니다. 저 운전자가 잘못했으니 나는 사고가 나도 잘못이 0%라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도 아니고, 인정을 받지도 못한다는 것은 운전자라면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럽니다. 왜?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글에 방어운전에 대한 얘기를 한 것은 김지승이 쓴 짐승일기에서 믿음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작가가 키우는 고양이 사샤의 보들보들 몽실몽실한 노루궁뎅이버섯 같은 발을 만지면 고양이는 “싫어” 하는 것처럼 발을 쏙 빼면서 사샤가 “넌 내가 거절하고 거부한다고 내게 해롭게 굴 존재는 아니구나”라고 생각을 했다고 믿습니다. 그러면서 “그 믿음이 문제다. 그게 나를 울고 싶게 한다. 노루궁뎅이버섯 같은 마음이 된다. 사납게 가시 돋친 마음이, 한쪽은 절벽이 된 마음이 자꾸 보송보송해진다.”라고 생각합니다. “믿음은 전적이거나 통합적인 것으로 여겼던 내게 사샤는 믿음의 부분적이고 불완전한 면면을 일깨운다. 그래서 우리 사이의 믿음은 딱딱하지 않고 보송보송하다.”라고 고백합니다.(59~60쪽)
자기를 향한 절대적인 믿음(난 합법적인 운전을 하고 있어!)으로 상대가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에 대한 믿음(저 차가 갑자기 차선을 변경할 수도 있지 않나?)을 거부하고 무조건 자기의 믿음이 지켜져야 한다는 완전성을 추구하는 운전자는 사샤의 발을 만지다가 사샤가 발을 쓰윽 거두면 무어라 반응을 할까 걱정됩니다. 공격성을 보이는 운전자가 실수를 하는 운전자보다는 훨씬 위험해 보입니다. 자신의 권리만, 자신의 주장만을 강요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작가는 사람의 믿음이 전적이거나 통합적인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고양이는 믿음이 부분적이고 불완전하다고 말랑말랑하게 말합니다. 이런 생각이 없는 대통령이나 직업병을 가진 검사들이 특히 유념하면 좋겠습니다. 조폭의 연장이 검사들의 법과 구분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신을 믿어 본 적은 없으나 종교를 믿어 본 적은 있는 듯하다. 어느 시점 이후부터 신은 한 번 믿어보고 싶지만 종교를 믿고 따르는 일은 쉽지 않겠구나 싶어졌다. 다시 시간이 흘러 이제는 신이든 종교든 믿고 따르는 것은 온통 인간의 마음이니 내가 인간을 믿을 수 있다면 신도 종교도 따를만 할 것이나, 내가 인간을 향한 믿음을 접는 순간 신도 종교도 모두 헛것이 되고 말겠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어쩌면 말장난이다.
“졸음을 참다가 잠이 들었다. 눈을 뜨니 밤 열한시가 넘어 있었다. 향초를 켜고, 노트북을 열었다. 깜빡, 커서를 보면서 손을 모았다. 어떤 기억이 기울었다. 손과 손이 서로를 더 꽉 붙들었다. 서로를 붙든 두 손, 그 꽉 쥠을 누구는 기도라고도 할 것이다.” (p.25)
말장난으로 치부한다고 하여 마음에 여유가 생기지는 않는다. 참사라는 말이 이리도 흔하게 소비되는 세상에 살고 있으니 어쩔 도리가 없다. 어느 쪽으로부터도 환영받기 힘든, 정쟁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애초에 없는 죽음임을 직감하였다. 그 어린 죽음과 그 젊은 죽음과 그 외로운 죽음과 그 함께 하는 죽음과 그 먼 죽음과 그 가까운 죽음이 여러모로 안타까왔을 따름이다.
“... 타인이 내게 궁금해하지 않은 것들을 나는 내게 궁금해하고 대답하며 산다. 그 문답이 쌓여서 나의 감각과 태도가 될 것이다. 내가 나의 타인이다. 그렇다, 라고 다짐하면 어쩐지 당장 무엇과도 사랑에 빠질 수 있을 것 같은데 늘 다행스레 혼자다. 혼자일 때만 나는 수월하게 사람인 것 같다.” (p.58)
오래전 세월호 참사가 있고 나서 나는 어린 연인들을 볼 때마다 마음 속으로 응원하였다. 얼른 사랑하여라, 더욱 사랑하여라, 원 없이 사랑하여라... 손을 맞잡아라, 부둥켜안아라, 입을 맞추어라... 나에게는 운이 따라, 초등학생에서 고등학생으로 성장하는 동안, 조카의 적지 않은 연애를 근거리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나는 조카의 연애를 향하여 마땅히 치어 업 하는 어른이 되었다.
“... 내년 조금씩 더 안팎으로 성체를 공고히 쌓아두고 듣고 싶은 말만 들으며 완강해질수록 불안해지는 삶. 나를 지키는 것이 나를 가두기도 하여서, 나라고 여기는 것이 나일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하기도 해서 어쩌면 일생 쌓고 허물고 쌓고 허물고일 수밖에 없을 텐데. 내가 아무것도 아니어도 괜찮아지고 싶다. 낯선 골목에서 자아 밖으로 탈주를 시도하며 문득 내게도 돌아가고 싶은 사람이 있나 자문한다. 돌아가도 나는 아름답지 못하겠지만.” (p.128)
이태원 참사가 있던 날 나는 이르게 잠들었다. 다음날 새벽 달리기 모임이 있어 일찍 일어나야 했다. 해가 뜨기 시작하는 강변북로와 88도로를 달렸지만 아무런 낌새도 차리지 못하였다. 달리기 위하여 환복을 하는 잠깐 사이에 몇 개의 숫자가 찍힌 뉴스를 본 것도 같다. 상황을 알아차린 것은 훈련이 모두 끝난 다음이었고, 아내와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라디오로 뉴스를 들었다. 집에 오자마자 조카에게 톡을 보냈다. 아 다행이다.
“아픈 몸이 아프지 않은 몸을 이해하고 있다. 통증 외에는 고요하다. 슬픔을 보이지 않는 일이 슬픔을 보지 않는 일과 만나 혼자가 된다. 자기 고통조차 혼자 두는, 고통의 진짜 이름을 모르는 우리의 안녕은 이제 누구에게 물어야 할까. 안녕하세요. 답하지 못한다. 오후에 수술실에 들어갈 옆 병상 여자의 목소리가 갈라진다. // 일기가 병상에서 끝나는 건 싫어요.” (p.220)
윤석열이 대통령인 이후 나는 93.1 메가헤르츠 클래식 방송만을 듣고 있다. 뉴스를 통해 그 실체를 뜯어보고 들여다보는 동안 내 마음에 들어차는 악한 그림자를 감당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악마화하기 위해서는 자기 마음의 선한 구석을 반대 급부로 제공해야 한다, 는 것이 내 생각이다. 악마화하지 않아도 모자란 구석이 차고 넘치는 정권임을 잊지 말았음 좋겠다.
김지승 / 짐승일기 / 난다 / 309쪽 /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