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를 ‘조선’이라고 몰래 불렀던 일제 강점기, 들로 산으로 뛰어다니며 놀던 개구쟁이 석이에게는 몸이 아픈 아버지와 힘없는 어머니, 시집간 누나, 스무 살 먹은 형, 그리고 늘 함께하는 삽살개 복슬이가 있다. 그러나 일본 사람들은 석이가 가진 소중한 것들을 하나씩 가져간다. 석이네 가족이 조상 대대로 가꿔온 논을 빼앗고, 석이 형을 전쟁터에 끌고 간다. 전국 방방곡곡의 삽살개를 다 잡아죽이라는 명령이 떨어지자 석이는 단 하나 남은 친구인 복슬이를 지키기 위해 뒷산 동굴에 숨기지만, 결국 복슬이는 일본군의 총에 맞아 죽고 만다. 티 없는 석이의 눈에 한 겹, 두 겹 그늘이 지고 석이가 형만큼 큰 날, 우리나라가 드디어 해방이 된다. 나라를 되찾고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던 형도 살아 돌아왔지만 모든 것은 변해 있다. 형은 전쟁터에서 한쪽 다리를 잃고 늘 곁을 지켜 주던 복슬이도 없다.
*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의 아픔을 담은 아름다운 이야기와 그림
삽살개 이야기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이 조선의 개도 일본의 개가 되어야 한다며 자기네 개와 비슷하게 생긴 진돗개는 남겨 두고 다르게 생긴 삽살개는 다 죽인 정책에서 소재를 얻어 쓴 동화이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은 우리 전통과 문화, 정신까지 없애기 위해 모든 것을 억압하고 빼앗아 갔다. 우리말 대신 일본말을 쓰게 하고 남자들은 전쟁터에 내보내거나 힘든 노동을 시키기 위해 강제로 데려갔으며, ‘일본군 위안부’라는 이름으로 여자들을 끌고 갔다. 우리 나라 고유의 개인 삽살개까지 모조리 잡아다 죽였는데, 삽살개의 털로 털신을 만들고 옷까지 해 입는 만행을 저질렀다. 우리 주위에서 삽살개를 쉽게 볼 수 없는 것도 삽살개가 그때 많이 죽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할아버지가 어린 손자들에게 말하듯 친근한 어투로 우리나라 토종 개인 삽살개가 사라지게 된 사연을 소개한다.
현실은 험하지만, 자연은 아름답다. 아픈 내용을 담은 글을 감싸주듯 수채화풍의 그림이 묘사한 자연은 정말 눈여겨볼 만하다. 은근한 분홍빛의 진달래, 하늘을 찌르듯 올라가는 옥수수, 도란도란 속삭이듯 발목을 간지럽히는 개울물, 누런 가을 들판과 바구니 가득한 붉은 감, 강아지풀, 접시꽃, 달맞이꽃, 할미꽃, 그리고 이름 모를 풀꽃들과 작은 새, 나비들이 책장을 가득 메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