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미슈토는 타이가 부족의 아이지만, 서구 사회의 교육을 받고 생활 방식을 누리면서 산다. 엄마는 계부인 험과 결혼한 후 교회를 다니며 서구 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언니는 백인 남자 친구를 사귄다. 오미슈토는 보트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며, 타이가 부족 출신의 아마 아주머니와 친하게 지낸다. 아마는 폭풍이 치고 난 다음날 표범을 한 마리 죽이고, 경찰에 잡힌다. 경찰에 잡힌 아마 아주머니가 서구 사회와 인디언 부족 사회에서 각각 재판을 받고, 이 과정에서 오미슈토는 타이가 부족과 자신이 살아온 서구 사회의 사이에서 갈등하고, 스스로 삶의 방식을 선택한다.
미국 내 소수자문학의 대표주자, 린다 호건이 들려주는
아메리칸 인디언의 이야기!
저자 린다 호건은 아메리칸 인디언으로 치카소 부족 출신의 작가이자 현재 콜로라도 대학의 교수이다. 저자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서 현대 미국 사회에서 잊혀지고 있는 아메리칸 인디언의 세계관,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소중함을 보여주기 위해서 노력한다. 작가 자신이 야생동물을 자연으로 돌려보내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단체인 ‘Wildlife rehabilitation'의 봉사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이러한 일련의 행동을 통해서 그녀가 자신의 작품에서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진정성을 갖는다.
그리고 저자는 현재 미국 내 ??소수자문학??의 대표주자로서 아메리칸 인디언의 정체성과 미국 사회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백인들과의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하고, 그 속에서 아메리칸 인디언으로서의 자신과 더 나은 방향으로의 해결점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이번 작품 《파워》에서도 아메리칸 인디언들이 들려주는 자연에 대한 메시지, 영혼에 대한 그들의 시각뿐만 아니라 주인공 소녀가 겪는 서구 사회와 아메리칸 인디언 사회와의 갈등까지 녹여내어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자연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생각하게 한다. 주인공 소녀는 이러한 문제의식과 사고의 한가운데로 독자를 이끌고 있으며, 그를 따라서 주인공의 성장과 더불어 읽는 이의 내적 성장을 도와주고 있기도 하다. 책의 말미에는 《파워》를 읽고 생각할 수 있는 문제, 토론에 사용될 수 있는 질문들을 제시하여 독자들은 저자가 여기서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을 한 번 더 곱씹어 볼 수 있다.
하지만 작품에서 문제의식만을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시인이기도 한 저자의 주변에 대한 섬세한 묘사와 현재형과 단답형으로 끝나는 함축적인 문장에서 작품 전체의 주제와 더불어 문학적 묘미까지 느낄 수 있다.
지켜보는 자, 오미슈토가 겪는 두 세계 속에서의 갈등과 선택!
주인공 오미슈토는 아메리칸 인디언인 타이가 부족 출신이고, 이름은 타이가 부족의 말로 ‘지켜보는 자’라는 뜻이다. 이러한 뜻에 걸맞게 오미슈토는 자신의 상황, 자신의 멘토라고 할 수 있는 아마 아주머니가 처한 상황 등을 관찰자의 입장에서 바라본다. 오미슈토의 엄마는 오미슈토가 어릴 때 생부의 폭력으로부터 타이가 부족 사람들이 구해주지만, 부족 사회에 남지 않고 백인 사회로 대표되는 서구 사회에 들어가기 위해 부족에서 나온다. 계부인 험을 만나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타이가 부족으로서의 정체성과 신앙을 버린 엄마는 자신의 자녀를 자신과 함께 서구 사회에 편입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오미슈토의 언니는 데이브라는 백인 남자 친구를 사귀면서 서구 사회에 편입하지만, 오미슈토는 숲에 혼자 사는 아마 아주머니와의 관계를 지속하고, 엄마는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다.
“엄마는 숲에서 아마와 함께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지 말라고 했다. 아마는 여태까지 교회 안에 발을 딛고 서 본 적이 없어서 틀림없이 지옥에 갈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엄마도 마음이 분열되어 있다. 엄마는 아마 이튼이 늙은 부족 여성처럼 옛 풍습들을 옳다고 믿는다고 생각한다. 엄마는 이튼의 그런 믿음은 죄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백인으로 받아들여지도록 애쓰고 있는 엄마는 내가 자신보다 아마를 더 사랑하게 될까봐 두려워한다.” - 본문 중에서
오미슈토는 서구 사회의 교육을 받고, 서구식 생활을 하면서 자랐지만 교회를 나가지 않고 타이가 부족의 신앙을 버리지 않았다. 다만 오미슈토의 내면에서는 이 두 세계가 모두 존재했지만 두 세계를 모두 온전히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오미슈토는 자신의 이름 그대로 두 세계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표범을 통해 오미슈토를 영혼의 세계로 이끄는 아마!
폭풍이 치고 난 다음날 아마는 오미슈토를 데리고 표범을 뒤쫓는다. 표범은 타이가 부족에게 있어서는 조상이자 치유자로서 대변되는 신성한 동물이다. 굶주리고 병약한 표범을 한 마리 죽이는 모습을 본 오미슈토는 아마와 함께 법정에 서게 되고 이 과정에서 내적 갈등을 겪는다. 표범이 단지 사라져가는 희귀 생물로서 보호 대상인 백인 사회와 조상이자 치유자로서의 표범을 보호하고 있었던 아메리칸 인디언 사회 사이의 세계관은 관찰자로서의 오미슈토를 그 갈등 속으로 불러들이면서 오미슈토 자신을 관찰하게 한다. 이 모든 과정의 중심에서는 아마가 있었고, 오미슈토 역시 마음속으로 아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아마는 표범을 쳐다보고는 운다. 그녀가 왜 우는지 안다. 한때 표범들은 아름다웠으며 크고 강한 힘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제 표범은 꼭 그녀 같다. 가난해서, 가격이 더 싸기 때문에 남자 아이들의 낡은 신발을 신고 있는 여자 같다. 표범은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며 계부 험에게서 벗어나려고 애쓰는 나와도 같다. 그것은 또한 상처를 입은 땅과 같다. 나는 이것이 바로 우리들, 여기 있는 우리들 셋이 처해 있는 상황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작아졌고 위태로운 상태다.” - 본문 중에서
아마는 백인 사회에서는 희귀 동물인 표범을 죽인 정신이상자로 징역을 피하지만, 표범을 부족의 연장자에게 통보하고 죽이지 않은 죄로 인해 타이가 부족 사회로부터도 추방당한다. 오미슈토는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자신 안에 표범, 아마 아주머니, 영혼의 움직임을 느끼고, 타이가 부족의 믿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이러한 내면의 성찰을 통해서 오미슈토는 타이가 부족 사회로 들어가 그들의 정신을 계승한다.
“이 순간에 나는 나 이상의 존재가 된다. 나는 그들이다. 나는 늙은 부족 사람들이다. 나는 대지다. 나는 아마와 표범이다. 이것이 모두 나다. 나는 더 이상 미래 혹은 과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몹시 고통스워한다. 나는 앉아 있으며 움직일 수 없다.” - 본문 중에서
아메리칸 인디언 소녀가 겪는 자연과 영혼의 울림, 파워!
오미슈토는 타이가 부족 사회의 가치관을 따르기로 마음먹고 부족의 우두머리인 제니 소토의 새 깃털로 만든 흰 부채를 들고 춤을 추는 의식에 참여하면서 이 이야기는 끝난다. 이 의식은 백인 사회에서 바라보는 자연과 아메리칸 인디언 사회가 바라보는 자연이 다른 것을 함축적으로 나타내고, 주인공 오미슈토가 더 이상 관찰자가 아닌 아메리칸 인디언 사회로 들어가는 것을 보여줌과 동시에 아마도 계승하지 못한 가치관을 계승하는 것을 상징한다. 아메리칸 인디언이 바라보는 자연 속에는 영혼이 들어있고 그 영혼과 인간은 둘로 나뉜 것이 아닌 서로 어우러져 하나가 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오미슈토, 우리 중 한 사람이 태어났을 때 바람이 우리에게 들어와서 일생 동안 우리를 들이마신다. 우리의 첫 웃음과 말들을 통해서, 우리가 걷고 요리하며 나무를 심는 동안 내내 우리를 들이마신다. 죽을 때 그것은 떠난다. 나머지 공기와 바람의 일원으로 돌아간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