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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태영 비서관이 전하는 노무현 대통령 이야기

노무현재단 기획 / 윤태영 | 책담 | 2014년 04월 23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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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4년 04월 23일
쪽수, 무게, 크기 304쪽 | 420g | 143*205*30mm
ISBN13 9791185494364
ISBN10 1185494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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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력과 집중력이 허락한다면, 내가 참석하는 모든 회의나 행사에 자유롭게 배석하도록 하게.”

대통령은 관찰자를 가까운 곳에 두고 싶어 했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여러 측면에서 효율적인 방식이었다. 기록자는 대통령의 생각을 그때그때 시의적절하게 다른 참모들에게 전달할 수 있었다. 대통령이 두 번 이야기하지 않아도 되었다. 또 그의 모든 말과 행동이 기록으로 남았다. 대통령의 말이나 행동에 관해 사실관계를 놓고 갑론을박할 일이 없었다. 무엇보다 관찰자가 있다는 것, 그것도 직접 보고 들은 내용을 장차 글로 표현할 관찰자가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은 스스로를 절제하고 동여매는 강력한 동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나의 입장에서는 한편으로는 특권이지만 한편으로는 고된 일상이기도 했다. 하루 세 끼를 대통령의 행사에 배석하여 해결한 적도 하루이틀이 아니었다. 욕심을 낸다면 개인 일정은 포기해야 했다. 휴일도 마찬가지였다. 쉬는 날에도 대통령의 생각이나 궁리는 계속되었고, 크고 작은 일정들이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기록은 퇴임 후로도 이어졌고, 서거하시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남았다. 수백 권에 달하는 휴대용 포켓 수첩, 1백 권에 달하는 업무 수첩, 1,400여 개의 한글파일이 생산되었다.

2009년 5월, 대통령의 갑작스런 서거로 기록은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기록을 정리하는 일도 덩달아 중단되었다. 의욕도 없었고 엄두도 나지 않았다. 힘겨운 시간들이었다. 대통령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책감에 틈틈이 정리를 계속하긴 했지만 만족스럽지 못했다. 건강도 받쳐 주지 않았다. 방대한 기록을 모두 훑어보는 것은 불가능했다. 우선 참여정부의 주요 흐름과 대통령의 리더십 스타일을 중심으로 내용을 정리했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정리된 내용들 가운데 우선 2013년 가을부터 노무현재단 홈페이지 ‘사람 사는 세상’을 통해 정치인 노무현의 캐릭터와 성향을 엿볼 수 있는 글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정치적 성향보다는 인간적인 면, 리더십 스타일 등을 주요 소재로 삼았다. 거기에 퇴임 시점부터 서거하기까지 봉하에서의 생활을 담은 기록을 덧붙여 책으로 엮게 되었다. 재임 시절 대통령이 직접 작성했던 “나의 구상”도 부록으로 붙였다.

일단 큰 숙제 가운데 하나를 해결한 느낌이다. 하나의 마무리이자 또 다른 시작인 셈이다. 앞으로도 그의 흔적을 되살리는 일은 계속될 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참여정부 관계자, 또 그를 사랑하고 아꼈던 지지자들과 함께 이 작업은 계속될 것이다. 그에 대한 기억과 기록을 재구성하여 그를 지금 이 순간 우리와 함께 호흡하고 있는 노무현으로 그려 내고 싶은 것이 나의 유일한 소망이다.

“내가 몇 달간 강연한 내용들 다 읽어 보게. 거기에 다 있네.”
그 말을 남기고 그는 건물을 나섰다. 나는 앞으로 홍보팀장으로서 헤쳐 나가야 할 길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에 사로 잡혔다.
불길한 예감은 어느 정도 적중했다. 노무현 고문은 글에 관해 엄격했다. 까다롭기도 했다. 자신의 이야기가 정확하게 전달되도록 하려는 노력이었다. 자신만의 생각과 철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언어도 있었다. 섣부른 비유와 예화는 가차 없이 쳐 냈다. 자신의 언어가 아니면 아무리 멋들어진 표현이라도 거부했다. 분명한 자기 세계와 자신의 색깔이 있었다.
홍보팀장 일은 쉽지 않았다. 노무현 고문과 호흡을 같이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 시절, 공식 연설문을 작성하는 일은 캠프의 최대 난제였다. 이병완 국가전략연구소 부소장 등 당내 역량 있는 사람들이 많이 동원되었다. 그들 또한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다. 연설문을 보는 후보의 기준이 엄격했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밴 습성이 문제였다. 그들은 후보의 연설이 아니라 자신의 연설을 쓰려는 경향이 있었다. 그로부터 괴리가 발생했다. 이 난제를 푸는 해법이 있었다.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난 후에 체득한 것이었다. 해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주요 연설 계기가 임박하면 대통령에게 ‘하실 말씀’을 사전에 물어보는 것이었다. 대통령은 언제나 물음에 대답했다. 거기에 답이 있었다.
(5장 답을 주는 정치인, 44, 46쪽)

“선걸음에는 그런 판단, 하지 않겠다고 했지?”
노무현 대통령이 제1부속실장인 나를 매서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네, 그랬습니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달리 변명할 말이 없었다. 그가 반문했다.
“그랬는데, 자네 왜 그러나?”
그는 나를 심하게 꾸짖었다. 만찬을 위해 대통령이 관저 복도를 지나 손님들이 기다리던 대식당으로 이동하던 중 일어난 일이었다. 간단한 보고와 함께 시급히 결정해야 할 일이 있었다. 나는 함께 걸으면서 의견을 물었다. 그는 대답 대신 반문을 했다. 아니, 반문 대신 호된 질책을 했다. 약간 찌푸린 인상을 뒤로 남긴 채 대통령은 만찬장으로 들어섰다. 나로서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대통령이 식사를 마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8장 오류를 줄이는 방법, 61-62쪽)

‘독대 금지’는 판단의 오류를 최소화하려는, 가장 대표적인 노력이었다. 독대가 전혀 없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기록을 위해서도, 오류 방지를 위해서도 그는 할 수 있는 한 독대의 상황을 만들지 않았다. 독대할 경우, 참모나 장관의 일방적인 정보에 의존하여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될 위험이 컸다. 부득이 그런 상황에 처하면 그는 다음 기회로 판단을 미루었다. 소수의 참모들만 있는 자리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린 경우에는, 더 많은 참모들이 모인 자리에서 한 번 더 확인과 검증을 거치곤 했다. 독대를 피하면 대통령의 오류도 최소화되지만, 보고자에 의해 대통령의 의중이 왜곡되어 전달되는 일도 최소화 되기 마련이었다.
수석?보좌관실을 대신하여 간단한 사안을 대통령에게 보고할 경우, 부속실은 관련 사항들을 철저하게 챙겨야 했다. 대통령의 반응 때문이었다. 한마디를 듣고 대통령이 결정을 내리는 경우는 결코 없었다. 그는 반드시 되물었다. 다분히 의도적이었다. 사소한 문제라도 두세 가지 반문을 통해 내용을 파악하려고 했다. 결국 부속실도 꼼꼼하게 내용을 파악해야 했다. 두세 가지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열가지 이상의 내용을 꿰뚫고 있어야 했다. 그것이 대통령이 일하는 방식이었다. 또 참모들에게 일을 시키는 방식이기도 했다.
(8장 오류를 줄이는 방법, 64-65쪽)

버스가 청와대 정문을 나서자 문용욱 부속실장이 나에게 말했다. “시내를 벗어나면 찾으실 겁니다. 그러면 앞좌석으로 가서 말씀을 들으세요.” 나는 고개를 끄덕인 후 뒤편 한갓진 좌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창밖 가을 풍광을 감상했다. 버스가 도심을 벗어날 즈음, 앞쪽 좌석에 앉아 있던 대통령이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뒤를 흘끗 돌아보았다. 문용욱 실장의 말대로 나를 찾는 것으로 보였다.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그 순간 대통령이 나에게 손짓을 했다. 그 자리에 그냥 앉아 있으라는 표시였다. 잠시 후 달리는 버스 안에서 휘청거리는 걸음을 옮겨 대통령이 내 옆자리에 다가와 앉았다. 그러고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주제는 ‘귀향 후 집필 계획’이었다. 30분 정도 이야기를 나눈 그는 다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앞쪽 자리로 돌아갔다.
얼핏 보면 하나도 특이할 것이 없는 장면이었다. 실제로 버스 안 사람들의 반응도 그랬다. 여사님을 비롯한 대통령의 가족들도 그랬고, 뒤편에 앉아 있던 부속실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대통령 노무현의 캐릭터를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그저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는 평범한 장면 가운데 하나일 뿐이었다. 그런데 이 장면이 나에게는 특별한 느낌으로 남았다. 아니, 시간이 흐를수록 인간 노무현을 상징하는 강렬한 장면으로 뚜렷해지고 있다.
버스로 이동하든, 버스 안에서 이동하든 그는 더 많은 사람이 편안하도록 자신의 권위를 기꺼이 포기했다. 타인의 불편 위에 자신의 권위를 세우려 하지 않았다. 허위에 가까운 권위 의식은 어쩌면 처음부터 아예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그렇게 낮은 사람이었다.
(11장 낮은 사람, 79, 83쪽)

2005년 5월 중순, 노무현 대통령은 러시아와 우즈베키스탄을 순방했다. 우즈베키스탄에는 스탈린 시절에 강제 이주된 고려인의 후손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그는 그들이 살아 온 힘겨운 세월과 고통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우즈베키스탄은 꼭 한번 방문하고 싶어 한 곳이었다.
영빈관 응접실에서 그는 고려인들을 맞이했다. 통역이 필요했다. 대부분 2세와 3세들이기 때문이었다. 이주 고려인 1세에 해당하는 고령의 할머니가 있었다. 할머니는 그들 1세가 낯선 땅에서 겪어야 했던 기나긴 고초와 고난의 시간에 대해 설명했다. 이야기를 듣던 그가 갑자기 손에 든 말씀 자료로 눈길을 떨어뜨렸다. 해야 할 무슨 말을 찾으려는 듯이 보였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고개를 숙인 채 메모 카드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시선 둘 곳을 찾지 못하는 대통령. 그는 한참 동안 고개를 숙인 채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작은 물방울 하나가 떨어져 메모 카드를 적시었다. 눈치를 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손수건을 꺼내 얼굴을 닦았다. 한참 후에야 고개를 들어 할머니를 응시했다. 그의 눈은 안타까움과 연민으로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인간 노무현의 눈물이었다.
(12장 인간에 대한 예의, 86-87쪽)

“어, 저건 꿩이잖아? 꿩이 이곳에 다 오네.”
반가운 손님이 찾아오기라도 한 듯, 그는 자리에서 훌쩍 일어나 마당이 보이는 창문 앞으로 바짝 다가섰다. 탄핵안이 가결되고 나서 2주일이 지난 3월 25일 오후, 관저 응접실에서였다.
“저것 보게! 진짜 꿩이야. 어떻게 여기까지 꿩이 왔을까?”
물끄러미 꿩을 바라보던 대통령은 불현듯 생각이 난 듯 관저 부속실로 통하는 인터폰을 눌렀다.
“마당에 꿩이 왔어. 다시 찾아올 수 있도록 먹을거리를 만들어 놓아 두면 좋겠는데.”
색다른 날짐승의 출현이 줄곧 담담하기만 했던 그의 표정을 일순간에 바꾸어 놓았다. 그 표정 속에는 유폐 아닌 유폐, 연금 아닌 연금으로 갇혀 버린 그의 안타까운 봄날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꿩이 결국 날아가 버렸는지 그는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 돌아와서는 다시 참모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래도 끝내 섭섭함을 떨치지 못했는지, 그는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도 몇 번씩이나 거듭하여 창문 바깥으로 시선을 돌리곤 했다. 관저에 갇혀 버린 대통령의 잃어버린 봄. 그 봄을 이루고 있는 풍경의 하나였다.
(18장 탄핵 전후, 135쪽)

남미 순방국 가운데 하나인 브라질. 확대 정상회담 당시 룰라 대통령은 브라질 측 각료들이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배려하고 있었다. 대통령은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이야기가 잘 통하는 사람이라는 느낌이었다. 그는 룰라 대통령의 환대에 감사의 뜻을 표하면서 “선물을 많이 받아 비행기가 뜰 수 있을지 걱정”이라는 말로 회담의 성과를 표현했다. 그날 저녁 만찬 석상에서 두 사람은 친근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룰라 대통령이 먼저 그에게 “임기가 끝나면 편안한 마음으로 브라질 관광을 오라”고 말을 건네 왔다. 그는 “룰라 대통령의 초청으로 오고 싶다”는 말로 화답했다. 룰라 대통령의 재선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에둘러 밝힌 것이었다. 그날 두 정상은 정치인으로서, 또 국정 운영의 최고 책임자로서 공통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애환들을 허심탄회하게 주고받았다. 대통령은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룰라 대통령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가슴이 찡해 왔다”며 남다른 느낌을 토로했다.
(19장 순방 외교의 현장, 150쪽)

“여러분, 라오스에서 파리까지 정말 수고가 많았습니다. 참 힘들었지요? 여러분 보기에는 어떤가요? 잘 된 것 같은가요? 표정으로 읽을게요. 그냥 최선을 다했다, 크게 차질은 없었던 것 같다, 생각했던 것만큼은 했다고 자평하고 싶습니다. 서울로 돌아가는 일만 남았는데… (잠깐 포즈를 취한 뒤) 여러분한테 좀 이렇게 미안한, 양해의 말씀을 하나 구하고 싶습니다. 뭐라고 하지? (약간 주저하면서) 양해를 구하고 싶습니다.
이 비행기가 서울로 바로 못 갑니다. 쿠웨이트에 들러서 여러분들이 쿠웨이트에서 좀 지체해 주시고, 저는 그동안에 여러분 중 몇 분과 아르빌을 다녀와야겠습니다. 그동안 공개하지 않고 여러 분한테 협력을 구해 비공개 리에 부대 배치가 완전히 끝났습니다. 그래서 장병들이 안착했기 때문에 연말을 기해 아무래도 제가 가서 한 번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기왕에 파병을 해서 우리 장병들이 수고를 하는데 그리하는 게 도움이 될 것 같아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쿠웨이트에 도착해서 우리 군용기로 갈아 타고 새벽에 아르빌에 도착합니다. 장병들과 아침을 같이 먹을 수 있습니다. 간단하게 장병들을 격려하는 프로그램을 하고 다시 여러분과 합류해 [서울로] 갑니다. 8일 도착한다고 기사들을 썼을 텐데… (웃음) 그 오보는 국민이 다 양해하고 받아 주시지 않겠습니까?”
(20장 자이툰 부대 방문, 157쪽)

“괜찮으신 건가요?”
그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피곤한 모습이었다.
“음. 괘앤찮다.”
그러면서 나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심상치 않아 보입니다. 힘들진 않으신가요?”
“힘들지는 않다. 발음이 뜻대로 되지 않아서 그렇지….”
그는 다시 담배를 길게 한 모금 내뱉었다.
“그냥 서울로 돌아가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아무래도 불안합니다.”
나는 경호실장 및 양?한방 주치의들과 상의한 내용을 보고했다.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서 가고시마 공항에 있는 공군1호기도 비상 대기시켜 놓았고, 또 가고시마 공항까지 가는 자동차 편도 확보해 두었다는 내용이었다. 문제는 판단이었다. 나는 대통령 스스로가 몸 상태를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괜찮다. 버틸 수 있다.”
그의 두 눈은 또렷해 보이지 않았다. 피로 탓인지 초점도 분명치 않아 보였다. 거기에 어눌한 말투가 겹치자 내 눈에는 대통령이 그냥 앉아 있는 것조차 힘겨워하는 것으로 보였다.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21장 대통령의 위기, 166-167쪽)

“공식 제안 시기는 국회에서 부결할 경우, 대통령이 사임하면 5-6월에 후임 선거와 취임이 이루어져서 그 다음 대통령 선거와 총선이 동시 선거가 되도록 맞출 수 있게 조정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개헌안이 부결되는 경우, 대통령이 사임을 함으로써 다음 대통령과 다음 국회의원의 임기가 엇비슷하게 끝날 수 있도록 하자는 지시였다. 이번 개헌 제안이 성사되지 못하면 다음번에라도 임기를 맞추어 주어 개헌이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취지였다. 문제는 ‘이지원’이라는 공식 계통의 문서에 그가 공식적으로 사임을 언급했다는 사실이었다. 여민1관의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난상 토론이 이어졌다. 이병완 실장이 최종 정리를 했다. 참모들은 개헌 제안을 추진하는 것으로 하되, 대통령의 임기 단축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데 의견 일치를 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방침을 총리까지 참석하는 정무팀의 보고를 통해 건의하여 최종 확정 짓기로 했다. 다음 날 회의석상에서 대통령이 심경을 이야기했다.
“나는 연연해할 것도 없고 후세의 평가에 전전긍긍할 생각도 없다. 어차피 역사라는 것은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다르게 평가되는 것이다. 세종대왕이 송시열한테 평가받을 수도 없는 것이고, 남인은 서인한테 평가받지 못하는 것이다. 그 점을 확고히 생각하고 가자.”
(23장 개헌 제안, 180쪽)

영남 땅, 경상도는 그의 고향이었지만, 그는 그곳에서 정치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했다. 언제나 배척받는 신세였다. 그곳에서 여러 번 선거를 치렀지만 그는 처음 한 차례만 당선의 영광을 안았다. 나머지 선거에서는 세 차례 모두 낙선했다. 낙선의 기록들이 쌓인 끝에 그는 전국적 인물이 되었고 결국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역설(逆說)이었다. 따지고 보면 낙선에 감사해야 했다. 거듭된 도전과 낙선이 ‘노사모’라는 팬클럽을 만들어 내었고 결국에는 ‘노풍’을 만들어 내는 견인차가 된 것이었다. 대통령 선거 승리의 큰 밑거름이 되었다. 역설과 모순이 그의 가슴에 응어리를 만들어 놓았다.
대통령으로 재임하는 5년 동안 그 응어리가 풀어질 것으로 기대했지만 헛된 바람이었다. 대통령이 되면 남다른 권력으로 그 역설과 모순을 풀어낼 수 있을 것으로 자신했다. 권력의 절반 아니 권력의 전부를 던져서라도 그 역설만큼은 제대로 되잡고 싶었다. 그래서 개헌을 제안했지만 거대한 역풍 앞에서 그는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영남 땅에서 당당히 인정받는 정치인, 여전히 그것은 한 맺힌 소망으로 남아 있었다. 고향 땅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당선되는 꿈, 그것은 대통령 당선보다 더 간절한 소망이었다. 다시 출마할 수는 없는 처지였지만, 그는 그 응어리를 풀 수 있는 토대를 만들기로 했다. 첫 번째 시도가 귀향이었다. 그래서 그는 지금 열차를 타고 고향으로 내려가는 것이었다.
(25장 귀향, 202-203쪽)

봉하에 내려온 방송사 취재진들이 퇴임한 대통령의 일상을 열심히 찍어 다큐멘터리로 내보냈다. 방송은 위력을 발휘했다. 그의 얼굴을 보기 위해 봉하 사저를 찾는 발길이 더욱 늘어났다. 마을은 북새통을 이루었다. 밀려드는 방문객들을 마을 사람들이 반겼다. 마을을 찾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어쨌든 좋은 일이었다. 방문객들을 상대로 한 장사도 시작되었다. 농사만 지으면서 조용히 살기를 원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난데없는 야단법석일 수도 있었다.
담장 바깥에서 들려오는 “나와 주세요!”라는 함성을 그는 외면하지 않았다. 원래부터 자그마한 일조차도 쉬이 무시하거나 외면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지도자로서는 보기 드문 품성이었다. 지도자답다고 할 수도 있었고, 지도자답지 않다고 할 수도 있었다. 가끔은 그냥 모르는 척 외면하고 넘어갔으면 하는 일도 그는 요모조모 따지곤 했다. 일 자체의 절대적 비중이나 중요도에 개의치 않았다. 그는 작은 일은 작은 일대로 큰 일은 큰 일대로 시간과 공력을 투자했다.
(26장 친구, 211-212쪽)

도를 넘어선 결례의 질문도 있었다. 정치적인 반대자가 악의를 품고 던지는 질문도 있었다. 그는 슬기롭게 비켜 갔다. 옆에서 지켜보는 참모들의 입장에서도 기분이 상했지만, 그는 잘 참아 내고 있었다. 대통령으로 지낸 지난 5년이 그를 많이 변화시킨 것으로 보였다. 사람이 자리를 만들고 자리는 다시 사람을 만드는 법이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대화를 하면 서로 수렴되어 가듯이, 사람과 자리도 마찬가지였다. 재임 중의 대통령은, 대통령이라는 가장 무거운 자리를 상대적으로 가볍게 만들어 놓았다.
낮은 권력을 추구했다. 권위가 떨어졌다는 비난도 많았지만 대통령은 퇴임하는 날까지도 권위를 추구하지 않았다. 기존의 권위주의에 익숙한 언론들은 대통령의 말과 행동에 대통령으로서의 품격이 없다고 비난을 퍼부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그렇게 아주 높은 곳에만 있었던 대통령이라는 자리와 이미지가, 이 봉하마을에서의 만남처럼 담장 너머 손을 내밀면 만날 수 있는 곳까지 낮아졌다.
(26장 친구, 212-213쪽)

“잘 오셨습니다. 아예 며칠 좀 쉬다가 가세요. 집은 며칠 비워도 아무 상관없습니다.”
강 회장은 대통령에게 조심스럽게 청했다.
“저희 부부와 운동이나 한번 하시지요. 준비시키겠습니다.”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렇게 하기 싫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렇게 할 수 없다는 뜻으로 보였다.
“강 회장이 지난번 여름휴가 때 이야기했던 골프장 인근의 집터를 한번 구경했으면 해서요.”
뜻밖의 이야기였다. 강 회장은 순간적으로 뜨거워지는 눈시울을 감출 수 없었다. 대통령의 그 말은 결국 봉하 사저의 힘겨운 생활에 대한 솔직한 표현에 다름 아니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생각해서 명분이 없다고 판단되는 일은 결코 거들떠보지 않는 것이 대통령의 성격이었다. 힘겨움 한가운데에 와 있는 그의 속내가 비로소 드러나고 있었다. 참모들이나 비서들 앞에서야 여전히 의연한 모습을 보이고 있을 터였지만, 그 속은 어쩌면 이미 숯덩이처럼 검게 타들어 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강 회장은 대통령을 알고 지내 오는 동안 비슷한 상황을 몇 차례 겪어 보았다. 재임 중 대선 자금 수사로 인해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도 그랬고, 임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인사 문제 때문에 당으로부터 집중적인 공격을 받아 상처가 날 때도 그랬다. 그래도 그때는 힘겨워도 퇴로가 있었다. 정말로 대통령 후보 자리에서 물러나거나, 아니면 싸움의 전선에서 물러나면 되는 힘겨움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지금 그에게는 퇴로가 없었다.
(30장 고난, 247-248쪽)

그리고 5월 23일 토요일 새벽. 침실과 붙어 있는 내실 공간의 북쪽 한 귀퉁이에 자리한 컴퓨터 앞에서 그는 글을 남기고 있었다. 창 바깥의 마당에는 홍매화의 잎이 어느새 무성해져 있었지만, 그 봄은 그에게 그것을 쳐다볼 겨를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마지막 남길 글을 바탕화면에 저장한 그는 내실을 나섰다. 문이 유난스레 큰 소리를 내며 닫혔다. 그는 경호팀에 인터폰을 했다.
검찰에 출두하던 날 이후 오랜만에 나서 보는 대문이었다.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던 경호관이 꾸벅 인사를 했다. 그는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담장 아래를 따라 듬성듬성 잡초가 자라나 있었다. 그는 잠시 웅크리고 앉아 풀을 뽑았다.
다시 일어선 그는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가 사랑했던 사람들, 그를 사랑했던 사람들, 그리고 그가 사랑했던 나라가 그의 발걸음을 지켜보며 슬픈 모습으로 남아 있었다.
---「32장 작별」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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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은 놀랍다. 사실(事實)이라는 작은 조각 그림이 어떻게 진실(眞實)이라는 큰 그림을 만들어 내는지 그 비약이 놀랍다. 대상과의 지근거리에서 어떻게 그처럼 담담한 시각을 견지할 수 있는지 그 절제가 놀랍다.

≪기록≫을 통하여 우리는 한 인간의 고뇌와 애정의 내면을 만나게 된다. 최종적으로 만나는 것은 한 인간의 정직한 ‘얼굴’이다. 그리고 얼굴은 ‘얼골’이며, 얼골은 ‘얼꼴’이며, 얼꼴은 글자 그대로 ‘영혼의 모습’이라는 사실이다.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

이 책은 노무현을 닮았습니다. 담백하고 정직합니다. 숨기거나 보태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노무현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기록이 역사”라고 말했습니다. 기록된 것만이 역사라고도 했습니다. 간혹 정무적인 문제로 구두 보고나 서면 보고의 필요성을 참모들이 얘기했을 때도 “기록에 남기기 두려운 일은 아예 하지 말라”고 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런 생각이 있었기에 윤태영 비서관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 주었고, 이 책도 세상에 나올 수 있었습니다.

벌써 5년입니다. 강산이 반은 바뀌었을 시간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사람’으로 노무현 대통령은 우리 곁에 있습니다. 그리움은 희망이 되기도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도전했던 가치, 고난과 좌절은 우리가 가야 할 희망과 미래의 다른 이름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을 기억하되, 그를 넘어서서 우리는 앞으로 가야 합니다.윤태영 비서관에게 참 고맙습니다. 막걸리 한 잔 사야겠습니다.
문재인, 국회의원,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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