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그 사람은 코코아 씨라고 한다. 진짜 이름은 모른다. 내가 마음대로 그렇게 부를 뿐이다. 내가 일하는 ‘마블 카페’의 창가 구석 자리. 반년쯤 전부터 그녀는 혼자 와서 꼭 그곳에 앉는다. 주문은 언제나 똑같다.
“핫코코아 주세요.”
비가 그친 뒤의 물방울 같은 눈동자로 나를 올려다본다. 어깨까지 오는 밤색 머리칼을 흔들며.
--- p.8 「Brown/Tokyo」 중에서
목요일. 오후 3시가 지나, 안절부절못하고 있는데 언제나처럼 문이 열렸다. 하지만 코코아 씨는 평소와 달랐다. 녹초가 되어서 토트백을 멘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있다. 하필 그녀가 좋아하는 자리에는 먼저 온 손님이 있었다. (...) 나는 보고 말았다. 주르륵, 하고 그녀의 뺨을 타고 내리는 것을. (...) 카페 점원과 단골손님. 앞치마를 벗을 수 없는 내가 코코아 씨에게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
“비었습니다.”
들뜬 목소리로 코코아 씨에게 말하자, 그녀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얼굴을 들었다. 쓸데없는 짓을 했나 하고 잠시 움찔했지만, 어떻게든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 나는 용기를 쥐어짰다.
“늘 앉으시던 자리 말입니다. 좋아하는 자리에 앉는 것만으로 힘이 날 때가 있잖아요.”
코코아 씨는 큰 눈을 더 커다랗게 뜨고 방금 빈 자리를 깜짝 놀란 표정으로 돌아보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눈이 사르르 녹듯이 웃었다.
“고맙습니다.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 p.14 「Brown/Tokyo」 중에서
‘사귀어주세요’가 아니라 ‘결혼합시다’라니. 그래서 난 동정하는 줄 알고 못되게 말했어요. “당신 같은 밋밋한 사람하고 같이 살아도 재미없을 거예요. 나는 멋있는 남자를 좋아해요.” 그때는 마음이 어두울 때라 착한 신이치로 씨를 상처 입히고 싶었던 거예요. 하지만 신이치로 씨는 상처는커녕 언제나의 조심스러운 태도는 어디로 가고, 빙긋 이 웃으며 당당하게 이렇게 대답했어요.
“멋있어지겠습니다. 약속합니다. 지금은 밋밋해 보이겠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반드시 로맨스그레이의 멋진 남자가 되겠습니다.”
나는 입을 멍하니 벌리고 한동안 신이치로 씨의 웃는 얼굴을 바라보았어요. 그리고 상상했죠. 나이를 먹어서 할아버지가 된 신이치로 씨를. 나도 놀랄 정도로 쉽게 그려지더군요. 아, 이 사람은 정말로 로맨스그레이의 멋진 할아버지가 되겠구나. 나는 이 사람과 있으면 절대 불행해지지 않겠구나. 그건 상상을 가볍게 넘어서 확신이 됐습니다.
--- p.101 「Grey/Sydey」 중에서
“좋아하는 장소에 있는 것만으로 건강해지는 일도 있대. 어떤 사람이 그렇게 가르쳐주었어.”
그 문장을 읽고 비로소 깨달았다. 마코와의 약속. 4월의 벚꽃이다. 마코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 나는 바로 답장을 썼다.
“가을까지 꼭 병을 고쳐서 도쿄에 갈게. 마코와 함께 벚꽃을 볼 거야.”
그러나 나의 병은 점점 진행됐다. 연말에 한 정밀검사 결과, 큰 수술이 필요하다는 진단이 나왔다. 수술이 잘되면 평범한 사람처럼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리스크는 컸다. 의사는 성공 확률이 반반이라고 했다. 수술 받겠다면, 어쩌면 이제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각오를 해주세요, 라고.
몸서리칠 정도로 무서웠다. 하지만 가능성이 반이나 있다면 도전해보자고 생각했다. 수술해서 건강해지자. 나는 마코와 벚꽃을 보러 갈 거니까. 그렇게 약속했으니까.
--- p.170 「Purple/Sydey」 중에서
“핫코코아입니다. 뜨거우니 조심하세요.” 다쿠미를 향한 그 목소리와 미소. ‘뜨거우니 조심하세요’라고만 했더라면 친절한 점원으로 비쳤을 뿐이었겠죠. 하지만 그 목소리에는 사람에 대한 경의와 일에 대한 긍지가 배어나서, 나는 단숨에 마음을 사로잡혀버렸습니다. 아직 유치원생일 남자아이에게 ‘한 사람의 손님’으로 진지하게 대응하는 당신에게. 그리고 너무나 부드러운 ‘코코아’라는 발음에. 아, 진짜구나.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일률적인 매뉴얼대로 하는 게 아닌 당신의 진심. 당신이 부자의 자리에서 떠날 때 나도 불러서 주문했죠.
“핫코코아 주세요.”
당신을 만나고 처음 알았습니다. 세상에는 ‘첫눈에 반하기’만 있는 게 아니라 ‘첫소리에 반하기’도 있다는 걸. 나는 마음속으로 당신의 이름을 지었습니다.
‘코코아 씨’.
그 후 줄곧 마음속으로 당신을 그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나는 잔뜩 가라앉아서 당신의 코코아를 마시러 가게에 왔지만, 내가 좋아하는 자리는 비어 있지 않았습니다. 할 수 없이 다른 테이블에 앉아서 한동안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는데 당신이 갑자기 말을 걸어주었어요.
“늘 앉으시는 자리 말입니다. 좋아하는 자리에 앉는 것만으로 힘이 날 때도 있잖아요.”
저기요, 코코아 씨. 내가 그때 얼마나 놀라고 얼마나 기뻤는지, 그리고 얼마나 안도했는지, 아마 당신은 모를 거예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 당신은 언제나의 자리를 깨끗이 치워놓아서, 그곳은 마치 나를 위한 장소처럼 반짝반짝 빛났습니다.
그러니까 코코아 씨. 앞치마를 벗고 나를 만나주지 않겠습니까.
글이 너무 길어졌네요. 처음 쓰는 러브레터 슬슬 마무리 하고, 봉함하여 당신에게 건네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웃는 얼굴과 함께 한 마디 덧붙이려고 합니다. “뜨거우니, 조심하세요”라고.
--- p.182 「White/Tokyo」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