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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도서

이 한장의 명반

: 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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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02년 03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1560쪽 | 1568g | 158*232*70mm
ISBN13 9788932309033
ISBN10 8932309035

중고도서 소개

사용 흔적 약간 있으나, 대체적으로 손상 없는 상품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1988년 출간된 이래 수많은 클래식 애호가들의 나침반이 되어온 음반 가이드 『이 한장의 명반』이 새로운 표지로 바뀌어 나왔다. "클래식 음반에 대한 사전적인 기능과 실용성을 충족시키며 아울러 음악사까지 부감(俯瞰)하여 명곡 명한을 한눈에 살피려" 했다는 집필 의도대로 단순히 명레코딩 소개를 넘어 음악가의 작품 세계와 일생에 대한 소개, 곡 해설, 연주와 녹음 뒷이야기 등을 깊이 있게 실었다.

'우리가 음악을 들을때 통로가 되는 것은 각자가 가진 음악에 대한 지식과 개인적인 추억이므로 가장 훌륭한 오디오는 기계가 아니라 끊임없이 음악에 대해 알려하고 탐구하는 청자(聽者)'라는 저자의 말을 곱씹어 볼 때, 이 책은 그 탐구의 과정에 딱 알맞는 충실한 가이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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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잘스의「무반주 첼로 조곡」 발견
1889년 어느 날, 카탈루냐의 수도 바르셀로나(스페인)의 한 악기점 으슥한 구석에서 먼지를 흠뻑 뒤집어쓴 채 200년 동안이나 잠자고 있던「무반주 첼로 조곡」의 악보가 발견되었다. 그것은 멘델스존이 발굴 초연한「마태 수난곡」에 버금가는 위대한 발견이었다. 이 음악사상의 놀라운 '신대륙 발견자'는 당시 13세의 소년 파블로 카잘스였다. 카잘스는 그 후 12년 동안의 집념 어린 연구와 피나는 각고 긑에 비로소 첫 공개 연주를 할 수 있었다. 당시의 일을 카잘스 자신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것은 내 생애의 한 시기를 이룩하는 사건이었다. 아버지는 1주일에 한 번 나를 만나러 왔다(당시 카잘스는 바르셀로나 시립 음악학교에 재학 중이었다.ㅡ필자). 그 무렵 나는 이미 보통 크기의 첼로를 지니고 있었다. '카훼 토스트'(카잘스는 바르셀로나에 온 지 9개월 후 그라시아 교외의 이곳에 트리오으 멤버로 고용됨ㅡ필자)에서 매주 한 번씩 울리는 고전 음악회의 독주용 악보를 찾으려고 아버지와 함게 바르셀로나의 악기점을 뒤지고 다녔다. 어느 날ㅡ그 때 내 나이는 13세였다ㅡ우연히 한 악기점에서 바하의「6개의 무반주 첼로 조곡」을 발견했다. 말할 수 없이 매혹적인 신비가「6개의 무반주 첼로 조곡」이라는 악보 속에 깃들어 있었다. 나는 그 때까지 어느 누구에게도 이 곡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었고ㅡ나도 선생님도ㅡ그런 것이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이 발견은 하늘이 내 생애에 베푼 커다란 게시라고 할 만한 사건이었다. 나는 곧 이 발견의 특별한 의미를 깨달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 보물을 건드려 보기도 하고 살며시 쓰다듬어 보기도 했다. 그 후 조곡에 열중하여 공부하기 시작했으나 …… 청중 앞에서 연주해도 되겠다는 결심이 서기가지는 12년 동안 연구를 계속해야만 했다.
(중략)

카잘스는 96세로 죽는 날까지 평생 매일같이 일과처럼「무반주 첼로 조곡」을 연습했다. 그가 얼마나 신중했나 하는 점은 이 곡집 악보를 발견한 후, 연주 불가능한 부분을 수정 보완해 가며 40년간에 걸쳐 체험과 연구를 거듭하고 나서 이윽고 레코드 녹음을 시작했다(1936~1939년)는 사실로도 알 수 있다. 그 녹음(SP)이 바로 전성기의 그의 생동하는 역사적 명연주를 들을 수 있는 이 레코드(EMI/Angel)이다.

카잘스는「무반주 첼로 조곡」의 발굴 소개와 그 해석의 전형 또는 전통을 이룩하는 위대한 업적을 아무의 도움도 빌리지 않고 혼자 힘으로 해냈다. 오늘날 모든「무반주 첼로 조곡」연주의 정점에 높이 솟아 있는 카잘스의 연주는 그 생명력과 기술적 완벽성, 내부적인 통일의 높이와 깊이, 논리성과 즉흥성의 혼연 일체 등에서 비길 자가 없다.
--- pp.84~86
언제인가 레코드점에서 고객과 점원 사이의 기묘한 시비를 목격한 일이 있다.
“도대체 이따위 레코드를 돈 받고 팔아? 당장 물러 주시오.”
탕 하고 진열대 위에 내던지는 LP를 보니 후르트뱅글러 지휘의 차이코브스키 교향곡 제6번, 흔히「비창」이라고 하는 음반(DG)이었다. 영문을 몰라 하얗게 질린 레코드점의 아가씨가,
“아니 왜 그러세요? 어디 심한 흠집이라도 있어요?”
하고 묻자, 고객은 더욱 기승을 부리며,
“아니 무슨 놈의 레코드에 사람 기침 소리, 새 울음 소리 따위가 들어 있느냔 말이야!”
곁에서 듣고 있던 나는 실소를 금할 수가 없었다. 실황 녹음이라는 것을 아예 모르는, 아니 애초 이해를 못 하는 사람이었다. 웬만한 애호가라면 일부러라도 실황 녹음반을 구하려고 애쓰는 터인데, 아마 그는 초보자였던 모양이다.

레코드 음악 애호가 중에, 실황 연주를 전혀 가 본 일이 없는 사람에게서 이런 현상을 종종 발견한다. 교향곡 같은 음량으로 듣던 실내악을 막상 연주회에 가서 들어 보고 실망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더구나 녹음 기술의 경이적인 발달로 요즘 웬만한 오디오는 다 놀라운 소리를 울려 주고 있으니까.

그런 사람일수록 오디오와 소리에 더 집착한다. 왕년의 그 어떤 명연주라 하더라도 '디지틀'이니 'PCM'이니 하는 생생한 녹음 앞에서는 맥을 못 춘다. 모노럴 시대의 저 숱한 명연들, 스테레오 초기의 EMI, DECCA의 그 현란한 오페라곡이 다 그들에게는 한낱 유랑 극단의 처량한 나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몇 달 전, 모임이 있어 어떤 분의 몇천만 원짜리 오디오가 놓인 집의 음악을들어러 간 일이 있다. 방 그득히 놓인 영미국의 명기들(기종을 일일이 밝힐 수는 없지만)은 정말 그 자체가 하나의 훌륭한 예술품이었다. 그러나 곧 나는 실망했다. 그 집에 소장된 레코드의 초라함이여! 무조건 음질위주의 음반들이었다. 디지틀, 텔라크, 마크 레빈슨 등 초특급 음질 반(盤)뿐이었다. '모노'나 초기 스테레오 반 따위는 눈을 씻고 보아도 없었고 따라서 작곡가나 지휘자는 아랑곳하지도 않았다. 양복 입고 짚신 신은 모습이 내 앞에 훅 끼쳐 왔다. 그만큼 오디오에 돈을 들였으면 마땅히 레코드 수집에도 정성을 기울여야 하지 않겠는가!

이 엄청난 기계로 베냐미노 질리의, 유씨 뵤를링의, 샬리아핀이나 엘리자베트 슈만의 따뜻한 목소리를 들으면 얼마나 좋을까? 디누 리파띠의「월쯔」나 기제킹의「무언가」를 왜 마다할까? '모노럴 녹음'에는 우리가 잃어버린 따뜻하고 애틋한 옛날의 그윽한 향취가 얼마나 많이 서려 있는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흘러간 날의 갖가지 추억이 가슴 뭉클하게 다가오는 그 소중한 시간을 왜 외면할까?

거듭 말하거니와 우리 레코드 음악 애호가의 인사는 “무슨 오디오를 갖고 계십니까?”가 아니고 “무슨 음악을 들으십니까?”가 되어야 한다.
--- pp.6~7
드뷔씨(Clsude Achille Debussy, 1862~1918)의 작품 중 대중적인 인기가 제일 많은 곡이「목신으 오후 전주곡」이다. 1894년 12월 22일, 빠리의 국립 음악협회 초연 때에 대단한 호응을 얻어 앙코르까지 받았다. 그의 작품이 초연에서 호평을 받은 일은 평생 동안에 이 경우뿐이었다. 그는 하루아침에 '인상주의 음악'의 창시자가 되었다. 그가 새로운 음악 기법을 창안하게 된 계기는 화가 세잔느, 모네, 르노와르, 고갱 등의 화풍이 끼친 강한 영향 때문이었다. 드뷔씨는 자연이 간직한 갖가지 잡음을, 그 여러 소리의 빛과 그림자를 찾아내어 음으로 묘사했다. 그러기 위해 독특한 음계와 화음과 관현악법을 써야만 했다.

상징파 시인 말라르메(Stephane Mallarme, 1842~1898)의 집에서는 화요일마다 정기적으로 예술가의 모임이 있었다. 젊은 시절 드뷔씨는 이곳에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는 유일한 음악가였다. 그가 연주하는 피아노를 즐겨 듣는 시인ㆍ화가들과의 교우 속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말라르메의 시「목신의 오후」를 알게 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중략)

인상주의 음악의 선구적 작품「목신의 오후 전주곡」
드뷔씨는 말라르메의 시에 대한 인상을 음악화했다. 결코 표제 음악식으로 묘사하지 않고 그 시에서 받은 인상을, 드뷔씨가 받아들인 정신적인 반사(反射)만을 교묘하게 그려 낸 점에 특색이 있다. 그는 멍하니 초점이 모호한 하모니와 조각조각 흩어진 리듬형의 암시, 멜로디보다도 악기의 음색 변화를 미묘하게 그려내는 등 부드러운 관현악을 써서 자유로운 환상 속에 음시화(音詩化)했다.

곡은 훌루트의 반음계적인 독주로 시작하여 하프와 호른이 화답하다가 매끄러운 현의 반주를 받으며 훌루트가 다시 되풀이한다. 이윽고 오보에의 그리움이 서린 가락이 계속되고 목신의 마음은 몽환적인 상태에서 벗어나 차츰 뜨거운 정열을 부풀려 나간다. 목관과 하프의 활약으로부터 현의 일제 합주가 팽팽한 기분을 북돋우는 중간부에 이르러 비로소 멜로디가 뚜렷한 형태를 가다듬으며 아름다운 뷔너스에 대한 관능적인 욕망을 목관, 현 그리고 바이올린 독주로 표현한다. 어느덧 처음의 훌루트 독주가 돌아온다. 이렇듯 아련한 분위기 속에 표현하는 것이 드뷔씨 특유의 미묘한 음의 세계이다. 곡 속의 나른한 여름날 오후의 원시적인 관능의 고양(高揚)과 뒤이은 공허한 기분을 그리는 수법은 지금까지 어떤 작곡가도 시도하지 못했던 짙은 낭만적 서정의 향기를 풍긴다.
(중략)

토스카니니 만년의 기념비적인 명연주
「목신의 오후 전주곡」은 앙세르메를 비롯한 뮌슈, 마르띠농, 끌뤼땅스등 불란서계 지휘자의 음반이 즐비하게 많다. 각기 개성이 뚜렷한 명연주이지만, 여기서는 토스카니니의 디스크를 추천한다. 토스카니니보다 다섯 살 위인 드뷔씨는 생전에 자기 곡의 최고 연주자로 그를 꼽았다고 한다. 토스카니니가 86세 때(1953년)의 NBC 방송 실황 녹음인 이 연주는 윤곽이 선명하고 명석하여 단 한 군데의 애매한 점도 없는 완벽한 구도를 지닌다. 다른 지휘자에 비해 너무 명쾌하므로 드뷔씨적인 면이 부족하다고 불평할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회화성(繪畵性)이나 독특한 향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미묘하게 변화하는 음악의 색채감과 다이내믹스(강약법)가 드뷔씨의 문양을 보다 분명하게 살려 내고 있다. 또 NBC 교향악단의 탁월한 앙상블은 더 이상 치밀하고 오묘할 수가 없다. 토스카니니 만년의 연주이지만 그의 나이가 전혀 의식되지 않는 역사적 명반이다.
--- pp.739~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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