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22년 10월 12일 |
---|---|
판형 |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 280쪽 | 482g | 138*210*22mm |
ISBN13 | 9791190136860 |
ISBN10 | 1190136864 |
발행일 | 2022년 10월 1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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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 280쪽 | 482g | 138*210*22mm |
ISBN13 | 9791190136860 |
ISBN10 | 1190136864 |
사명과 삶의 의미 시대상 어두운 청년 시절 초상 대가의 시절 인문주의의 위대성과 한계 위대한 경쟁자 어디에도 예속되지 않기 위한 투쟁 위대한 논쟁 종말 에라스무스의 유산 옮긴이의 말 |
국가를 실리적으로 경영하라, 철저한 전문 외교관 마키아벨리 vs 평화주의적 인류애 중시자 에라스무스
에라스무스가 인류애를 후대 사람들에게 남기고 세상을 떠나려는 순간, 마키아벨리의 악명 높은 [군주론]이 출간된다.
모든 군주와 국가의 권력 의지, 힘의 의지를 최상위 목표로 승격시킨 마키아벨리, 그에게 정치는 도덕과 관계 없는, 철저히 독자적인 학문이다.
이에 반해 에라스무스에게 정치란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토마스 아퀴나스를 잇는 윤리적인 것이다.
따라서 군주와 국가 지도자는 신의 종이어야 하고 도덕 이념의 대표자여야 한다.
힘의 원칙을 찬미하는 마키아벨리의 사상은 이후 유럽 모든 민족의 열정적인 '대립'을 이끌어 냈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마키아벨리식 군주와 국가 지도자는 인류와 인류애 사상에 몰입할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감상을 완전히 배제하고 인간의 약점과 심리적 긴장을 철저하게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에라스무스의 사상은 무엇인가?
인간을 더 사랑하고 더 정신적이 되어야 하며 더 이해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바로 인류의 가장 숭고한 과제이다.
모든 종교와 신화가 갖고 있는 '인류의 교화'라는 원초적 꿈, 공정한 이성이 승리하는 희망에 가득한 꿈,
이런 꿈을 꾸는자, 그가 에라스무스라고 저자 슈테판 츠바이크는 말한다.
중세 최고의 지성으로 꼽히는 데시데리우스 에라스무스 로테로다무스
그가 누구인지 모르고 이 책을 읽는 것은 어렵기 이전에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권위적이고 부패에 빠진 중세 로마 카톨릭 교회를 신랄하게 비판한 [우신 예찬] 썼다는 것 외에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나의 얕은 지식으로 그의 사상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
고향도 없고 가족도 없는, 진공의 공간에서 태어나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친 에라스무스
에라스무스 로테로다무스, 이는 부모가 지어준 이름이 아니라 자신이 만든 필명이다.
출생 연도 1446년도 확실한 것이 아니며 정식 혼인 관계에서 태어나지 않은 사생아이다.
네델란드에서 태어났지만 평생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프랑스와 영국 등 여러 나라에서 활동했다.
신앙심이 강해서가 아니라 단지 도서관이 있다는 이유로 수도권에 들어가 서품을 받고 사제가 된다.
하지만 그는 사제로 기억되기 바라지 않은 것 같다. 교황으로부터 신부복을 입지 않아도 된다는 특별 면제를 받아냈고
수도원을 나온 뒤에는 상관의 간청과 경고에도 불구하고 수도원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는 어느 것에도, 누구에게도 구속되려 하지 않았다. 심지어 자기 본성의 강요로부터도 자유로워지고자 했고 누구에게도 예속되지 않으려고 했다.
궁정에도 대학에도 수도원에도 의무감을 느끼지 않고 자기 정신의 자유를 지켰다.
사제가 되었으나 교황과 수도원에 아무 의무감을 느끼지 않고 불타는 신앙심도 없었다는 그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겉으로 드러나는 모든 갈등을 혐오하고, 권력과 권력자에 대한 불필요한 저항을 기피했다. 그들과 타협하기보다 그저 자신의 독립이 중요했다.
수도원의 침실은 건강에 해롭고 삭막하게 회칠한 벽은 얼음처럼 차서 거의 변소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달걀과 고기에서는 썩은 냄새가 나고 포도주는 시어 빠졌다.
에라스무스, 그는 청년 시절을 수도원에 수감되어 보낸 '죄수'였다. 그는 호시탐탐 '탈출'을 꿈꿨고 성공했다.
중세 최고의 지성 에라스무스와 그의 사상을 한번에 이해하는 것은 무리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루터와의 첨예한 대립보다 인간 에라스무스의 인생을 먼저 알고 싶었다.
수도원에서 나와 자유로운 여행자로 또 최고의 학자로 살았지만 가난은 끊임없이 그를 괴롭혔다. 철저한 신분주의 시대에 가난한 학자가 후원자를 얻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했을까?
때로는 아첨하고 때로는 비굴해야 했다.
뛰어난 전기 작가로 알려진 저자 슈테판 츠바이크는 에라스무스를 통해 자신을 보았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나치가 자신의 책을
금서로 지정하자 그는 영국으로 망명한다. 망명 직전 펴낸 책이 바로 [에라스무스 평전]이다.
평화를 사랑하고 인류애를 그 무엇보다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에라스무스를 통해 혼돈과 광란의 시대를 고발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그후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자유의지와 맑은 정신으로 먼저 세상에 이별을 고한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부인과 함께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에라스무스는 인류를 사랑한 평화주의적 인문학자이면서 동시에 용기 있게 시대에 맞서지 못한 나약한 지식인이라는
이중적 평가를 동시에 받고 있는 것 같다. 루터와 모든 면에서 비교되는 에라스무스.
비단 학문적 성과와 정신적인 면뿐 아니라 신체적인 조건에서도 루터와 그는 상반된다.
츠바이크는 에라스무스가 평생 잃지 않았던 삶의 자세, 곧 중립의 자세를 유지하기를 원했다고 한다.
정신과 이념에서는 승리했으나 현실에서는 패배자로 남은 에라스무스.
그는 이상에 빠진 나약한 관념주의자인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적 사상에 더 가까운 나는 어느 한 편에 결코 붙지 않는 중립적인 에라스무스의 자세와
1차, 2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해야 했던 저자의 태도가 매우 안타깝다.
저자는 에라스무스를 '최초의 의식 있는 세계주의자이자 유럽인'이라고 불렀다. 이 책을 번역한 정민영 교수의 말로 마무리를 할까 한다.
"우리의 주변은 정치를 비롯한 각 분야에서 극한 대립과 분열, 갈등에 싸여 있다. 일방적인 자기주장과 증오만 난무할 뿐인 우리 사회의
모습은 천박함 그 자체로 보인다. 에라스무스의 시선으로 보자면 우리는 여전히 '광신의 격류'를 견뎌 내야 하는 시대다. 올바른 판단과
존중의 정신, 인내의 노력이 필요한 때다." (274~275쪽)
해당 도서는 원더박스 출판사로부터 도서협찬을 받았습니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읽을 책들이 너무 많고, 연계되어서 읽고 싶은 책들도 줄을 짓게 된다. 이 책 역시 세계고전문학을 읽으면서 종교에 대한 본질적인 궁금증이 생기면서 호기심이 갖게 된 책이다. 많은 고전작품 속에는 종교에 대한 믿음이 광기로 변하는 과정 속 인물들의 모습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 모습을 마주하면서 왜 이럴수 밖에 없는지에 대한 물음을 갖기 시작했다. 작품 속에서나 현실에서나 극단으로 나뉘어진 사회와 공동체의 모습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왜 에라스무스인가. <에라스무스 평전>의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는 이 책을 통해 어떤 메세지를 전하고 싶었을까. 종교개혁의 시작에는 루터가 있고 그 외에도 많은 사상가들이 있다. 나는 저자가 에라스무스의 전기를 쓰고자 한 이유가 궁금했다. (읽기 전에는!)
슈테판 츠바이크가 왜 에라스무스를 선택했는지, 책의 초반부터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에라스무스가 선택했던 방식과 태도, 그가 살아낸 그의 삶 자체가 그것에 대한 답처럼 느껴졌다.
저자는 에라스무스의 삶을 책에 옮겨놓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이 책이 첫 출간된 1934년은 히틀러가 모든 권력을 장악하고 있을 시기였고, 그 시기에 저자에게 "나치라는 독선적 광신자들의 움직임은 결코 용인될 수 없는 것"이었다. 츠바이크는 "에라스무스의 모습을 빌려 자신의 사상적 입장과 신념을 밝히고 있는 것"이라는 역자의 말이 책 속에서 고스란히 전해졌다.
에라스무스는 종교 개혁을 불러온 르네상스 시대에 세계주의자이자 근대자유주의의 선구자로 손꼽힌 인물이다. 『우신예찬』을 통해 성직자와 교회의 타락을 풍자했고, 초기 크리스트교의 단순성과 소박성으로 되돌아갈 것을 주장한 인문주의자이다.
에라스무스의 생에서는 '진정한 자유의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 자유는 개인의 자유에 머무르지 않고, 빛을 발하여 온 세상에 퍼졌다. 그가 원했던 것은 "화합"과 "평화"였고, 그것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정신이 니체, 볼테르 하이테까지 영향을 미쳤다.
그는 "자신을 계속 묶어 놓을 만한 모든 것을 거부"했지만 그의 개인적인 삶이 자유로웠을까.
에라스무스의 삶에는 "중립의 태도"가 빠질 수 없고, 그것이 그의 한계라고도 말하는 츠바이크, 그것이 "평화주의의 선구자인지, 우유부단한 기회주의자"인지 생각해볼 지점이다.
츠바이크는 에라무스의 업적과 함께 그의 한계까지도 모두 서술해놓았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흥미로운 지점이기도 했다.
우리가 맞닥뜨린 현실의 어떤 지점과도 맞물린다. 우리는 늘 그런 중립의 위치에서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중립을 지키는 침묵이 떠오른다.
평소에 작가의 작품이 우선인 나는 평전을 즐겨 읽지 않는다. <에라스무스 평전>을 읽은건 너무 잘한 것 같지만??
르네상스 시대, 종교개혁에 인물의 전기를 통해 종교개혁에 대한 역사적 배경 뿐 아니라 대조적인 인물, 루터를 등장시켜서 그들의 심리와 사상 묘사, 이어 군주론까지 아주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츠바이크의 다른 평전과 에라스무스의 《우신예찬》도 읽어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