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꿈꾸는 실험, 그리고 삶
어린 시절 안산에서 살 때, 가장 좋은 놀이터는 아파트 단지 앞 개천이었다.
봄에는 꽃구경을, 여름이 올 때 즈음이면 토끼풀을 한 아름 꺾어다 꽃다발이며 화관을 만들었다. 한여름이면 물놀이 타임 이었다. 동네방네 친구들이 각종 튜브를 모두 들고나와 물장 구를 쳤다. 가을이 되면 도시락을 싸서 소풍을 가고, 겨울엔 꽝 꽝 언 실개천에서 젓가락을 덧댄 썰매를 쌩쌩 달렸다.
돈은 필요 없었다. 전기도 전화도 필요 없었다. 필요한 건 놀 고자 하는 의지뿐이었다. 그래서 서울에 이사를 오고 나서 크 게 당황했던 것 같다.
서울에는 개천이 없었다. 뛰어놀 공터가 있더라도, 그곳에 서 함께 놀 친구가 없었다. 몇 안 되는 친구들은 대부분 학원에 다녔다. 어딘가 가자, 하면 분식점이나 만화방 같은 돈을 써야 만 하는 곳이었다. 돈을 쓰지 않으면 친구를 사귀는 게 불가능 하다는 도시의 규칙을 이때 처음 배웠다.
나이가 들고 난 후로는 돈뿐만 아니라 각종 전자기기도 필 요해졌다. 삐삐가 없으면, 컴퓨터가 없으면, 핸드폰이 없으면, 친구들을 만나는 일이 어려워졌다. 스마트폰이 없으면, 텔레비 전을 보지 않으면,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나는 그런 유행을 헐 떡이며 따라갔다. 언젠가부터 나도 그런 일이 당연하다고 여 겼다. 그렇게 익숙해졌는가 싶었는데 갑자기 펑, 터져버렸다.
아, 다 싫어.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섬이 있다고 한다. 내게 그 섬의 다 른 이름은 적당한 거리다. 한 시간이 멀다하고 울려대는 전화 에 허덕이다가 나는 섬을 잃어버렸다. 이래선 안 되겠다는 생 각에 귀촌을 했다.
시시때때로 의도적인 잠수를 탔다.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6
서 이불속에 들어가 작은 어둠을 만들고 책과 만화를 보며, 개 와 집 앞 개천으로 산책을 갔다.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처럼. 아날로그의 삶을 살자 삐걱대던 일상이 조금씩 정상으 로 돌아왔다.
게슴츠레 눈을 뜨고 보면, 타인과의 사이에 안개 낀 무엇이 보였다.
섬이었다.
적당한 거리란 이름의 섬.
작가 최하나가 벌인 독특한 실험에는 이런 내 모습이 있었 다.
작가 최하나는 영리하고 부지런하다.
잠수를 타면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서 조용히 지내는 나와 달리 활동적이다. 무엇이든 만든다. 사람을 모아 파티를 한다. 가고 싶은 곳은 어떻게든 간다. 108배를 올린 다음 날 새벽 산 행까지 감행했다는 이야기를 봤을 때엔 어떻게 저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감탄했다. 나라면 둘 다 안 한다고 하고 개별행동을 했을 텐데.
그게 최하나다. 최하나는 무엇이든 꿋꿋하게 해낸다. 그것을 새로운 기록으로 그려낸다. 다행이다. 그렇게 끈기가 있어 서, 덕분에 내가 이 책을 읽을 수 있어서, 조금은 자기반성을 하며 아주 조금은 부지런히 살아볼까, 고민을 하게 되어서 말 이다.
작가는 이 책을 적은 후로도 다양한 실험을 계속할 것 같다. 그때마다 작가는 자신의 오감으로 느낀 것을 기록으로 남기겠 지. 그걸 또 새로운 책으로 남기겠지.
나는 그 책을 기다리며 『어떤, 실험』을 들고 개천으로 나갈 셈이다. 실개천이 졸졸 흐르는 것을 보며 쭈그리고 앉아 느긋 하게 이 책을 한 번 더 읽어보는 것으로 작가의 새로운 실험을 응원할 셈이다.
힘내라, 최하나!
- 조영주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