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싶었다.
그녀들의 ‘성공’이 주인공이 아니라, 성공한 ‘그녀들’이 주인공인 이야기를. 지금보다 더 행복해지고 싶어 하는 여자들, 간절히 행복을 원하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북한산 자락에서 1년 동안 그녀들의 이야기를 쓰면서 행복의 척도는 얼마나 많은 것을 가졌는지가 아니라 지금 내 곁에 누가 있는지, 함께하는 사람과 얼마나 공감하며 살고 있는지라는 것을 새삼 절감하게 되었다.
특별한 날 축하주로 마시는 샴페인도 어떤 이들에게는 평범한 일상이다. 일상이 되어버린 샴페인에서도 과연 그 상큼함과 짜릿함이 여전할까? 샴페인이 아니면 참을 수 없고, 샴페인의 즐거움은 이미 잃어버린 상태……. 그건 결코 행복이 아닐 것이다.
―〈작가의 말〉중에서
서진은 가끔 묻고 싶었다. 당신 행복해? 이렇게 사는 게 좋아? 누군들 이런 삶을 원했겠는가. 한규는 아직도 가끔 원망이 가득 담긴 눈으로 아내를 쏘아본다.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든 것은 바로 너라는 무언의 비난이었다.
때로 서진도 후회가 되었다. 화해할 수 있는 방법은 없나, 고민도 했다. 그러나 무언가를 시도하기에는 단절의 시간이 너무 길었고, 그녀는 돌아갈 방법을 알지 못했다.
서진은 욕조 안에서 자기의 몸을 끌어안았다. 섹스가 그립지는 않았지만 터치가 그리웠다. 누군가의 따뜻한 체온이, 다정한 살갗의 느낌이 필요했다. 그걸 스스로 버린 것은 자신이었지만 이토록 사무치는 외로움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때 그녀는, 어렸었다.---〈1. 뉴욕〉중에서 pp.36~37
뜻밖의 손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규 소유의 집이긴 했지만 연락도 없이 이렇게 먼저 들어와 있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혜리는 그에게 열쇠가 있는 줄도 몰랐다. 한규는 피우던 담배를 끄고 혜리에게 곧장 다가와 그녀의 가방을 받아 내려두고 재킷을 벗겼다. 남자의 손길.혜리는 오늘밤이 디데이라는 것을 한순간에 이해했다.
“왜 더 일찍 오지 않았나요?”
한규는 혜리의 턱을 쥐고 그녀의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나는 늘 기다리고 있었는데.”
한규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도 일지 않았다.
“성공하려는 여자는 관심 없어.”
혜리가 흔들림 없이 그의 시선을 받아냈다.
“난 이미 성공한 여자가 좋아. 넌 이제 겨우 성공했잖아.”
한규가 혜리를 안아들고 침대로 갔다.
“당신을 오래 잡아두려면 계속 성공해야겠네요?”
“잘 아는군.”
혜리는 침대에 눕혀졌다.
“이제 걱정할 필요 없어. 앞으로는 늘 성공만 하게 해줄 테니까.”---〈6. 뮤지컬〉중에서 p.163
그대, 어리석었으나 아름다웠지. 그저 사랑하는 감정과 마음만으로 내 앞에 서서 세상과 싸우겠노라 선언했었지. 왜 안 돼요? 사랑하는데? 사랑하면 되잖아요……. 그래, 그러면 될 것을, 사랑하면 될 것을 나는 왜 그리 도망쳤던 것일까. 그대 앞에서 도망쳐, 사랑을 외면하여 얻은 것이 무어라고. 나는 그대를 잃었고, 허울뿐인 남편을 잃었고, 직업을 잃었고, 명예를 잃었고, 신뢰를 잃었고, 탕녀로 손가락질 받고 있는데.
무서워서, 생이 무너질 것이 두려워서 그토록 헤어지길 원하였으나, 이제 이렇게 절대로 만날 수 없는 사람이 되어 그저 사진 속에서만 웃고 있는 그대. 아무리 매달려도 잡을 수 없는 사람. 무릎 꿇고 애원해도 만날 수 없는 사람. 삼천배를 올리고 천일기도를 해도 두 번 다시 만져볼 수 없는 손…….
죽음은 이런 것이었다. 아무리 보고 싶어도 다시는 볼 수 없는 것. 그것이 바로 죽음이었다.
그대, 잘 가라. 부디 나를 용서하지 말기를.
눈물은 그칠 줄을 몰랐다.
해가 지고 있었다.
---〈9. 살인자〉중에서 pp.258~2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