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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스페셜 1
중고도서

역사 스페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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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0년 07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286쪽 | 315g | 188*257*20mm
ISBN13 9788986361377
ISBN10 898636137X

중고도서 소개

최상 새 상품같이 깨끗한 상품
  •  판매자 :   평택헌책방   평점4점
  •  특이사항 : 밑줄, 메모 없는 깨끗한 책입니다. 2003.9.20일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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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남 덕흥리에서 발견된 고분 벽화는 무척 흥미로운 사실을 전해 준다. 이 무덤의 주인은 고구려의 '진'이란 사람이다. 그가 유주의 자사로 재직하고 있을 때 13명의 태수들로부터 업무 보고를 받는데 그 태수들의 지역이 벽화 속에 정확히 기록되어 있다. 과연 이 열세 지역은 어디일까? 고증을 통해 파악된 위치는 놀랍게도 모두 지금의 북경 부근이다. 이것은 5세기 초 고구려가 중국의 북경 지역을 장악할 정도로 강성했다는 증거가 된다. 당시 중국은 5호 16국 시대로, 북방 이민족들이 남하해 나라를 세웠다가 망하고 왕조들이 단명해 자주 바뀌는 대단히 혼란한 시기였다. 이런 혼란기를 틈타 고구려가 중국에 진출한 것이다.

한편 광개토 대왕의 비문을 통해 당시 고구려인의 기개를 읽을 수 있다. 세계 최대를 자랑하는 7m 높이의 이 비문은 광개토 대왕을 왕 중의 왕인 '태왕'이라 부르고 '태왕의 업적은 황천에 달하며 위력은 사해에 떨쳤다'고 새기고 있다. 함경도 절터에서 발견된 고구려 금동판에선 고구려 사람들이 스스로를 '천손'이라 일컫고 있다.
--- p.34-36
참나무로 만든 이 주사위는 정사각형 면이 6개, 육각형 면이 8개, 총 14면체로 일반적인 6면체 주사위에 비해 만들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각 면에는 글씨가 씌어 있는데, 김택규 교수(영남대, 문화인류학)와 신라문화진흥원 회원들의 도움을 받아 이 주사위에 담긴 내용을 재연해 보았다. 그러나 주사위 각 면마다 적힌 14개 벌칙을 다 파악할 수 없어 우선 해석이 가능한 것만을 시연해 보았다.

주사위에 적힌 글씨는 역시 술과 관련된 내용이 가장 많다. 그 중 '삼잔일거'는 '술 석 잔을 단숨에 마시라'는 뜻이다. 요즘 흔한 말로 술 석 잔을 '원샷'했다는 것인데, 이처럼 주사위는 술자리에서 벌칙을 줄 때 사용한 일종의 놀이기구로 보인다. 또 다른 면의 '곡비죽진'이란 '팔뚝을 구부린 채 다 마시라'는 뜻이다. 두 사람이 함께 마시는 자세를 말하는 모양인데 역시 요즘 술자리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양반즉방'이란 것도 눈에 띈다. '술 두 잔이면 즉각 마시라'는 말인데 술상 앞에 두 잔 이상을 놓지 말라는 뜻 같다. 이것도 요즘 술자리에서의 '안경 쓰지 말라'는 재촉과 통한다.
--- p.147~148
장경호에 장식된 다양한 토우들에서 사랑을 나누는 남녀의 모습은 그 표현이 솔직하고 적나라해 신선하기까지 하다. 당시에는 성생활이 생의 중요한 부분이어서 사후에도 그런 즐거움을 갖고자 하는 염원으로 이런 노골적인 표현이 가능했을 것이다. 성을 은밀하거나 수치스럽게 여기지 않고 익살과 해학을 담아 일상적인 것으로 표현한 것이다.
--- p.135
'왜'씨 이름을 사용한 천황과 그의 자식들이 24명에 이르고 그것이 또한 백제 도래인을 지칭한다면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단순히 백제가 선진 문화를 전해준 것이 아니라 당시 일본의 천황가가 바로 백제계였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 p.285
왜 신라에만 여왕이 있었나 진평왕이 죽고 선덕여왕이 즉위한 해는 632년, 이 해를 중심으로 주변 인물을 통해 여왕의 나이를 추정해보자. 선덕여왕의 조카인 김춘추는 603년에 태어났다. 그렇다면 선덕여왕이 즉위한 632년 김춘추는 서른 살이다. 김춘추의 어머니이자 선덕여왕의 여동새인 천명 부인의 나이도 짐작할 수 있다. 언니가 왕위에 올랐을 때 아들이 서른살이라면 천명부인은 쉰살이었을 것이다. 왕위에 오를 당시 동생이 쉰 살이었다면 선덕여왕도 이미 쉰살이 넘었을 것이다.덕만공주는 할머니가 다 되어 왕위에 오른 것이다.
--- pp. 129-130
오랜 세월을 두고 고인돌 형태는 서서히 변화한다. 고인돌이 이처럼 오랜 기간 많은 양이 축조되었다는 것은 3000년 전 한반도가 매우 역동적인 땅이었음을 의미한다. 이 지역을 두고 모엥은 '현재 세계에서 발굴된 지역 중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한다. 어쩌면 당시의 공동체는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발전횐 사회였는지도 모른다.
--- p.231
아버지 김춘추의 뒤를 이어 통일을 완수한 문무왕은 긴박한 전쟁 중에서도 사천왕사를 세운다. 호국의 상징인 사천왕사는 통일을 염원한 선덕여왕의 뜻을 받들어 여왕의 능 바로 아래에 세워진다.문무왕은 출전에 앞서 군사들을 이곳에 열병시키고,통일의 의지를 다졌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신라는 삼국통일의 대업을 달성한다. 선덕여왕과 진덕여왕이 등장하고,250여 년이 흐른 후 신라의 마지막 여왕인 진성여왕이 왕위에 오른다.문헌에는 선덕여왕과 진덕여왕의 전례에 따른 것이라 기록되어 있다.

이런 사실을 통해 통일신라 후기까지 신라인들은 여왕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신라가 멸망한 후 여왕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지금도 여왕의 존재를 특별한 사례로 보는 시각들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현재의 잣대로 바라본 것일 뿐, 그 시대로 되돌아 가서 신라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러면,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여성의 지위가 높았던 신라 사회와 그 사회를 역동적으로 살았던 신라 여성들을 만날 수 있다. 바로 그런 사회였기 때문에 신라는 우리 역사에서 유일하게 3명의 여왕을 탄생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 p.144
문자가 없던 시절 사람들은 바위에 그림을 그렸다. 역사는 이 암각화를 통해 수천년의 침묵을 거슬러오를 수 있다. 1970년 처음 발견된 암각화를 이후 고령, 남원 등지에서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 현재까지 남한에서만 16곳이 발견되었다.
--- p.251
당시 원정군 규모는 좌군대장 우문술이 지휘하는 52만 8천 명, 우군대장 우중문이 지휘하는 52만 8천 명, 그리고 수양제가 직접 이끄는 중군 26만 4천 명, 이렇게 탁군에 집결한 수나라 군사는 모두 132만 명이었다. 이들은 다시 두 갈래로 나뉘어 육군 100만은 요하쪽으로, 수군 10만은 동래지역으로 향했다.

수나라의 군사들이 모두 출발하는데 총 40일이 걸렸으며 그 길이도 서울과 부산 거리인 432km에 이르렀다고 전한다. 서계 역사상 유례 없는 대원정이었다. 수양제가 수백만명을 동원해 거대한 운하를 건설하고 전국을 전시체제로 만들면서까지 고구려를 정벌하려 했던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 p. 31
당시 선덕여왕이 왕위를 계승한 것은 성골 남자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성골은 일반적으로 왕이 될 수 있는 왕족 계층이다. 고대사회 같은 특수한 신분사회에선 특히 왕실이나 특권층이 자기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배타적이고 우월한 신성성을 강조하는데 성골은 인도의 브라만처럼 제1신분층을 자칭했을 것이다. 그런데 다른 왕들의 경우 성골이라는 것을 굳이 밝힌 적이 없다. 유독 선덕여왕 때만 강조한 이유는 성골 남자가 없다는 것을 강조해야 성골여자가 즉위할 수 있는 명분을 얻기 때문이다. 사회구조적으로 신분 혈통이 그만큼 중요했고, 진평왕이 아무리 왕권을 강화해 기반을 다져도 딸에게 왕위를 물려주기 위해선 여러 가지 명분이 필요했던 것이다. p131-132

길쌈은 단순한 놀이 차원이 아니었다. 당시 세금을 견포나 마포 같은 직물로 냈기 때문에 화폐가치가 있으므로 직물을 잘 짜는 것은 경제와 직결되었다. 그래서 국가에서 모든 국민의 직물생산을 독려하기 위해 1년에 한번씩 길쌈놀이를 통해 생산기술을 높였던 것이다. 후대의 고려나 조선에선 직물을 생산하는 관서의 장인이나 관리들이 모두 남자인데 반해 신라에선 생산은 물론 관리도 여자가 맡았다. p140
--- p.131-132 ---p.140
난공불락의 고구려성
전운이 감돌던 고구려 땅, 중국 요령성 등탑현에 그 역사의 현장이 남아있다. 바로 고구려 백암성. 1300년 동안 아무도 돌보지 않았건만 지금도 장엄한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고구려의 가장 큰 무기는 바로 성이었다. 수나라가 가공할 만한 무기를 만든것도 모두 고구려의 성을 넘기 위해서였다. 현재 남아 있는 백암성 성벽 높이는 10M이지만 원래는 15m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구릉지역의 능선을 따라 성벽을 구축한 백암성은 가장 높은곳에 총지휘소인 장대를 설치하였다.성 내부는 반구릉지대로 한쪽면에는 태자하라는 강을 끼고 있고 그 안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 p.41-42
그렇다면 왜, 어떤 목적으로 일본에 사신을 파견했던 것일까?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선 좀더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지금으로부터 1200여 년 전 우리 역사에 아주 획기적인 사건이 하나 있었다. 바로 발해의 당나라 공격이다. 이 전투는 우리 역사상 최초의 해외원정이었고 게다가 승전의 기록으로 남아 있다.
--- p.20
1971년 무령왕릉의 발굴은 한일 고대사학계를 흥분시키는 사건이었다. 그것은 패망하여 잊혀진 왕국 백제가 1400년의 시공을 뛰어넘어 부활하는 역사의 순간이었다. 그동안 무령왕릉에서는 108종 총 2906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 무덤이 발견된 지 올해로 29년, 그렇지만 아직도 무령왕릉에는 많은 의문들이 남아 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동경(銅鏡)이다.
무덤에서는 모두 3개의 동경(방격규구신수문경, 왕비의 수문경, 의자손수대경)이 발견되었는데 그 중 하나의 위치가 눈길을 끌었다. 의자손수대경 밑에서 왕의 뒷머리를 장식하는 금제 뒤꽂이가 함께 발견되 것이다. 동경이 놓인 자리가 바로 왕의 머리부분임을 말해준다. 그리고 동경 고리에 당시의 가죽끈이 남아 있었는데 이는 처음 있는 일이다. 어째서 금제 뒤꽂이가 동경 밑에 있었던 걸까, 그리고 이 가죽끈의 용도는 무엇이었을까?
지금까지 왕의 머리쪽에서 나온 청동 거울에 대해 특별히 연구된 것은 없다. 다만 동경의 위치로 볼 때 왕을 묻으며 뒷머리에 금제 뒷꽂이를 꽂고 얼굴을 동경으로 덮었던 것 같다. 요즘도 마찬가지지만 산 사람 이상으로 죽은 사람을 신성시했던 당시에 일반인도 아닌 하늘과도 같은 왕의 얼굴을 가렸다면 그만큼 이 동경이 중요했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백제의 왕급 무덤에서 동경이 발견된 경우는 무령왕릉이 유일하다. 그러나 다른 지역의 왕릉에서도 동경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이 동경이 왕을 상징하는 물건임을 알 수 있다.
--- p.269~270
1960년대의 벽화 사진은 현체를 알아볼 수 없는 부분이 많고, 윤곽이 남아 있는 1930년대 도록은 그 색이 분명치 않다. 그래서 무용총안에 직접 색대조표를 갖고 들어가 실제 그림과 맞춰 보면서 두 자료를 보완하였다. 그 결과 고구려 고분벽화는 자연에서 채위한 색을 그대로 사용하여 색이 선명하게 살아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주조색은 적갈색인데 여기서 다섯 가지 정도의 색이 나온다.
우선 인물들의 옷 색깔을 보면 도록에는 흰색으로 된 부분이 실제로는 약간 노르스름한 빛을 띠었고, 붉은색도 도록보다 더 짙었다. 도록에서 단색으로 처리된 옷도 실제와는 차이가 있었는데 옷깃과 소매깃이 붉은색으로 강조되어 있다. 이런 점들을 감안하여 색을 보정해 옷을 만들어보니 전통 한복과 아주 흡사했다.
무용도에는 현재 다리밖에 남지 않은 인물이 있다. 사진과 도록에도 없으니 실제 모습은 확인할 길이 없지만 최초의 고분 보고서 「통구(通溝)」는 이 사람을 완함 연주자로 기록하고 있다. 완함은 조선시대의 월금과 아주 흡사하다. 다행히 감신총 벽화에 완함 연주자의 모습이 남아 있어 그것을 근거로 원래의 모습을 추정할 수 있었다. 기록에 의하면 완함 연주자 옆에 있는 사람은 전체를 지휘하는 영무(令舞)고 그 아래 7명은 가수들이라고 한다. 가운데 다섯 사람은 영무의 지휘에 따라 춤을 추는 춤꾼들이다.
--- p.6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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